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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웅 님의 서재입니다.

롱 리브 더 데블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신현웅
작품등록일 :
2019.06.10 02:12
최근연재일 :
2020.01.06 14:45
연재수 :
90 회
조회수 :
8,641
추천수 :
142
글자수 :
510,676

작성
19.11.1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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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71화 드래곤은 아직 한창 잘 시간이라고!

DUMMY

카그라는 답답한 마음에 설리반을 들들 볶았다. 설리반은 서러브레드 남매와 오스먼드 그리고 레오나가 차례차례 떠나버리고, 자신의 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설리반이 그를 위해 호의를 베풀 명분은 전혀 없었다. 설리반은 카그라와 접점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카그라에게 시선 한번 주지 않은 채, 오스먼드의 행동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가 마왕성에서 아공간을 만들어서까지 설리반에게 했던 말. ‘악당이 되어야 한다.’라는 말은 악역 행세를 하겠다는 말일까, 말 그대로 악한 짓을 하겠다는 말이었을까. 그 의도가 어느 쪽이 되었든 설리반에게 원하는 반응이 있기에 그가 입을 연 것일 것이다.


한편 설리반은 오스먼드의 계획을 알 것 같았다. 부활의 오브로 이름 마법의 주인인 초대마왕을 되살려서, 인간들의 왕과 엘프의 신목과 함께 제물로 삼을 생각인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를 삼분하는 세 종족을 한데 묶는 강력한 마법이 될 것이 분명했다.


초대마왕은 오스먼드가 이미 되살려서 숨겨놓았을 테고, 신목이야 항상 엘프의 영토 한가운데에 있었다. 레오나는 인간들의 왕으로 내세우고 싶었을 것이다.


그제야 설리반은 턱을 괴고 있다가 고개를 천천히 돌려 카그라를 봤다. 카그라는 자신에게 관심도 없던 설리반이 드디어 자신을 쳐다보니 긴장했지만, 결코 자신의 목소리를 줄이지 않았다.


“이제야 여길 보는군! 자네 친구가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망쳐버렸으니, 자네가 책임지고 원상태로 복구······!”


설리반은 그를 보고 있되, 귀담아듣지 않았다. 다만, 상념에 빠져있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오스먼드에게 저 귀족의 쓸모는 무엇이었을까?’라고 고민하던 설리반이 그의 말을 끊고 질문을 던졌다.


“혹시 아크리치와 계약하거나 약속한 게 있어요?”


“무, 뭐? 이, 이런 무례한······!”


카그라가 여전히 권위적인 모습을 앞세우며 따지길래, 설리반은 먼저 그의 기세를 꺾어주기로 했다.


“솔직히 털어놓지 않는다면, 제 도움을 받을 생각 따위 기대하지 마요. 보다시피 저는 엘프입니다. 인간 따위가 어떻게 해볼 상대가 아녜요. 게다가 당신은 마법도, 검도 쓰지 못하는 그저 돈만 밝히는 귀족일 뿐이죠. 아니면 지금 당장 눈앞에 사병이라도 끌고 올 수단이라도 있나요? 당신이 입을 열지 않는다면, 좋습니다. 제가 마법을 부릴 수밖에요. 저는 당신의 몸이 망가질지언정, 입을 열게 할 확실한 방법을 하나 알고 있지요.”


설리반이 씨앗을 쥐고 손 위에서 으깨니 그대로 포자가 되었고, 버섯이 자라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하나같이 붉고 푸른 독버섯이었다.


물론 버섯 독의 종류가 제아무리 다양한들, 닫힌 입을 열게 하는 독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모른다는 것은 그대로 약점이 되는 법이다. 설리반이 대놓고 거짓말을 해도 약초학에 무지한 카그라가 진위를 알 수 있는 방법 따윈 없었고, 상인인 카그라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 그는 내가 원하는 물자를 제공하는 대신, 내가 죽으면 그 시체를 갖겠다고 했지. 나는 죽어서까지 황금을 들고 갈 수 있을 거라 믿는 바보는 아니니까. 손해 볼 것은 없었어.”


설리반이 인상을 팍 구겼다. 차분했던 인상과 반대되는 벼락이라도 떨어트릴 듯한 목소리였다.


“뭐?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는 거야!”


어딘가 가슴 속 깊이 답답했던 마음이 해갈되자, 설리반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났다. 복잡했던 머릿속이 인제야 맑아졌고, 오스먼드의 계획이 정리되었다.


초대마왕과 엘프의 신목을 마법의 재료로 쓰는 건 변함 없었지만, 두루뭉술하게 레오나를 뒤에서 조종해 인간의 왕으로 추켜세운다? 그의 계획치고는 안일하고 위험한 방법이었다. 그는 몇백 년 동안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이름을 바꿔가며 숨어있던 녀석이었다. 고작 용사의 뒷바라지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이 인간이 되어, 왕이 될 작정인 것이다. 카그라 시체는 오스먼드의 껍데기가 될 것이다.


오스먼드가 레오나나 오비디언, 또는 실크에게 바랬던 건 그들이 인간들을 정복해 왕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인간 국가들이 하나로 뭉칠 구실이 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악역’이 필요했고, 오스먼드가 인간의 탈을 쓰고 ‘영웅’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상보다 일의 진척이 더뎌지자, 자신이 직접 ‘악역’을 자처하겠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카그라는 한심하게도, 이미 자신의 시체에 대한 값을 받아버렸다. 계약을 한 이상 카그라가 죽으면, 오스먼드가 그 몸을 차지하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설리반이 이미 체결된 계약을 무를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뒤로 시간을 길게 끌 방법은 있었다.


“당신은 이제부터 엘프의 왕국으로 갈 겁니다. 아마 당신의 생이 끝날 때까지 엘프의 영역 밖으로 못 나오겠지요. 하지만 그래야 모든 이들을 지킬 수 있습니다.”


엘프 왕국엔 외부인을 막는 결계가 있다. 엘프 장로들에 의해 추방당한 오스먼드는 자발적으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오스먼드가 어디까지 계획하고 설리반에게 언질을 주었는지 모르겠지만, 설리반은 카그라를 죽게 두어서는 안 된다.


당연히 카그라는 그게 무슨 헛소리냐며 노발대발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인간을 보고, 설리반은 자신의 이마를 짚으며 읊조렸다.


“엘렌이 보고 싶다······.”


다크엘프인 그녀는 사리 분별에 냉정한 면이 있어서, 고민을 털어놓으면 깔끔하게 정리해주곤 했다. 설리반은 그저 엘렌의 얼굴 한번 보려고 인간 마을에 들렀을 뿐이었는데, 갑자기 일이 이렇게 꼬일 줄이야.


설리반은 시끄러운 카그라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코르크 마개를 닮은 식물을 틔워냈다. 그리고 호두껍데기로 그를 에워싸고 자신을 따라오게 했다.





“무슨 일이야?”


크룩스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챠오에게 물었다. 귀가 밝은 챠오는 지나왔던 길에서 어느 익숙한 인물의 괴성이 들리는 듯했지만, 굳이 속도를 늦추기 싫어 잠자코 있었다.


“아니에요, 계속 가요.”


챠오는 어느새 몸집이 거대해져 뒤뚱뒤뚱 걷고 있었다. 품속의 아이스 슬라임과 파이어 슬라임이 어느새 두 배 이상의 크기로 자라서 외투만으로 덮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추운 겨울이라 아이스 슬라임은 외투 밖에서 따라와도 좋았을 테지만, 슬라임은 챠오의 품이 그 어느 둥지보다도 더 아늑한 곳이라 여기는 것 같았다. 덕분에 챠오의 배는 늘 따듯했고, 등은 늘 차가웠다.


“떠돌이 상인이 말한 곳이 저 산 위야.”


크룩스가 지난 마을에서 몰래 훔쳐 온 보드카 병으로 산꼭대기를 가리켰다. 이미 병의 내용물은 비어있었다. 그는 모험 중에 홀짝 마시던 보드카 병을 적당히 던져버리고, 동료들에게 말했다.


“불내성은 각자 잘 챙기고 왔겠지?”


챠오에게는 얼음과 불의 슬라임이 있었고, 게일은 무기에 얼음 마법을 인챈트 할 줄 알았다. 크룩스는 가방 안에서 불도마뱀의 망토를 꺼내 둘렀다.


“그럼 가자구.”





우르슬라가 ‘한 숨자고 일어나면 겨울이 끝나있겠지.’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게일의 일행이 산 위에 올라와 그녀의 잠을 방해했다. 화산재 덕분에 날짐승들이 없어 고르고 골라 선택한 화산인데, 날개가 없는 녀석들이 연달아 그녀의 숙면을 방해하니 영 기분이 달갑지 않았다.


게다가 불과 얼음 속성으로 무장한 꼬락서니를 보니 거래가 아닌 토벌이 목표인듯했다. 덕분에 우르슬라의 심사도 더더욱 꼬이고 말았다. 그녀의 말은 확고했다.


“한마디라도 입 벙긋하면 그대로 용암 물에 튀겨질 줄 알아.”


그에 대한 게일의 대답도 확고하긴 마찬가지였다.


“제발 날 구속하고, 더럽히고 괴롭혀줘······. 난 더는 살 가치가 없어······.”


“뭐?”


게일이 아직도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자, 크룩스가 그를 나무랐다.


“너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거야! 나잇값 좀 해라, 멍청이야!”


“네가 내 나이를 세봤어? 어? 세봤냐고오!”


결국, 울상을 짓는 게일을 주먹으로 내려친 크룩스가 용건을 대신 말했다.


“당신의 뿔이 필요합니다. 드래곤의 뿔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환자가 있기 때문이죠.”


우르슬라는 불쾌하다는 투로 말했다.


“나를 찾으러 다니는 사람들은 참 많지. 누구는 ‘드래곤 슬레이어’같은 쓸데없는 타이틀을 위해 나를 찾거나, 또 누구는 자신의 물건을 보관해주는 보물 지기가 필요하다고 고용해놓고, 잘 자고 있던 드래곤을 깨워서 자기 물건을 뺏어간 도둑놈 취급한다거나.”


우르슬라의 예시가 퍽 자세했다. 거대한 발바닥과 꼬리로 바닥을 내려칠 때마다, 화산 속에서 마그마가 끓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 이젠 나를 산속에 핀 약초 취급하는 녀석들도 있군! 심 봐서 좋겠구나, 이 버러지들아! 내가 무슨 너희들의 용건이 있으면 다 들어주는 요정 할머니쯤 되는 거라 착각하고 있는 건가? 그래? 지금이 언제야? 아직 짝수 연도잖아? 드래곤은 아직 한창 잘 시간이라고!”


챠오는 ‘아무리 드래곤이라 하더라도 별 다를 게 없구나.’ 새삼 생각했다. 결국, 인큐버스인 그가 앞장섰다.


작은 녀석이 앞서자, 우르슬라는 더더욱 인상이 구겨졌다. 장성한 수컷 두 녀석이 어린아이를 앞세워 뒤에 숨는 꼴이 밉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리게만 보이던 챠오가 예상 밖의 말을 꺼냈다.


“저희가 뿔을 다듬어 드릴게요. 뿔에 흠집이 있고 층이진 걸 보니 관리를 하신 지 오래 된 것 같은데요. 좀 더 날카롭고 매끈한 뿔을 보시면 분명 만족하실 거에요. 그 대신이라고 말하기엔 뭐하지만, 저희는 그 부산물을 가져가도 될까요?”


우르슬라가 작은 꼬맹이의 얼굴을 다시 뜯어보았다. 결국 아까의 녀석과 하는 말이 별다른게 없었다. 하지만 그 방식이 전혀 달랐다. 생글생글 웃는 그 녀석의 표정 뒤에는 자신이 취해야할 것과 상대가 원할 만한 것을 꿰뜷어보는 안목이 깔려있을 것이다.


뿔은 드래곤의 자존심이다. 하지만 스스로 뿔을 다듬기란 영 쉬운일이 아니었고, 다른 드래곤에게 뿔을 맡긴다는것도 상상 할 수 없었다. 그런 드래곤 중에 곧게 정돈된 매끄러운 뿔을 거부할 수 있는 녀석이 얼마나 될까. ‘요물이다.’ 우르슬라가 어린 인큐버스를 향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너, 혹시 내 밑에서 일해 볼 생각이 있느냐.”


그 말은 허락과 동시에 칭찬이 담겨있었다. 챠오는 올린 입꼬리를 내리지 않았다.


“아직 보고싶은게 많아서요.”


“그래.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나에게 오거라.”


물론 챠오는 일개 인큐버스일 뿐이었지만, 드래곤인 그녀가 직접 곁에두고 키워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비늘로 만든 목걸이를 챠오에게 주었다. 그 목걸이로 그녀가 원한다면 챠오를 찾을 수 있고, 챠오도 원한다면 그녀를 부를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제서야 갑자기 스치는 생각이 들어 우르슬라가 물었다.


“그런데 손질 하는 방법은 알고 있겠지?”


“물론이죠.”


챠오는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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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88화 아무도 네게 세상을 구하란 소린 안 해. 19.12.30 35 1 11쪽
87 87화 해치웠나? 19.12.27 32 1 11쪽
86 86화 마왕성에 온걸 환영하는 바다. 용사여. 19.12.25 30 1 11쪽
85 85화 아파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가련하던지. 19.12.20 33 1 11쪽
84 84화 벨라! 으악! 으아악! 19.12.18 34 1 11쪽
83 83화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구요. 19.12.16 31 1 11쪽
82 82화 저를 데려가세요. 19.12.13 37 1 11쪽
81 81화 방구석에 처박혀있던 쓰레기라고 했다! 19.12.11 31 1 12쪽
80 80화 나는 여왕이야. 19.12.09 3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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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75화 말만 하라고! 뭘 갖고 싶은가! 19.11.27 36 1 12쪽
74 74화 만수무강하소서. 마왕 폐하. +1 19.11.25 35 1 12쪽
73 73화 에취! 19.11.22 31 1 12쪽
72 72화 일어나셨나요, 달링? 19.11.20 43 1 12쪽
» 71화 드래곤은 아직 한창 잘 시간이라고! 19.11.18 39 1 11쪽
70 70화 삼키라니까요! 19.11.15 35 1 12쪽
69 69화 모두 하나같이 멍청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어. 19.11.13 35 1 11쪽
68 68화 스튜는 좋아하나? 좋아해야 할 거야. 19.11.11 38 1 12쪽
67 67화 그렇군. 하지만, 거절한다. 19.11.08 35 1 12쪽
66 66화 건들면 문다. 19.11.06 41 1 12쪽
65 65화 애는 착해. +1 19.11.04 37 1 11쪽
64 64화 도시락인가, 아폴의? 19.11.01 30 1 11쪽
63 63화 이것은 용사의 데뷔 무대인가. 19.10.30 35 1 12쪽
62 62화 단단히 홀리셨군요. 19.10.28 3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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