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신현웅 님의 서재입니다.

롱 리브 더 데블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신현웅
작품등록일 :
2019.06.10 02:12
최근연재일 :
2020.01.06 14:45
연재수 :
90 회
조회수 :
8,629
추천수 :
142
글자수 :
510,676

작성
19.11.11 11:47
조회
37
추천
1
글자
12쪽

68화 스튜는 좋아하나? 좋아해야 할 거야.

DUMMY

“으아악!”


오두막에 인기척이 있어 언제나 그렇듯이 물리 공격에 강한 게일이 앞장서서 문을 열었지만, 정말로 열자마자 칼이 날아올 줄 생각지도 못했다.


게일은 무의식적으로 폴암을 쥐고 뒤로 뛰어 거리를 벌렸다.


오두막 안은 어두워서 상대는 실루엣만 보였지만, 상대가 손에 쥔 황금 손잡이의 검만큼은 빛을 받아 뚜렷이 볼 수 있었다.


게일이 실수라도 잘못 볼 수 없었다. 그 검은 세상에 둘도 없는 용사의 검인 게 분명했다. 그리고 용사의 검을 가지고 있는 자는 용사인 게 당연했다. 그는 욕지기를 내뱉었다.


“제길! 모두 여기서 도망쳐!”


용사 레오나는 어리거나 힘이 없던 마족도 베어버리던 검귀나 다름없었다. 다행히 크룩스와 챠오, 그리고 엘라이자에게 죽음의 기운이 보이지 않았으니, 어찌 됐든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게일 자신은 어떨까. 점쟁이가 자신의 점괘를 치지 못하듯이, 듀라한은 제 죽음을 읽을 수 없었다.


크룩스가 뭔가 말하려 했으나, 결국 그도 게일에게 적당히 상대하고 빠지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게일은 그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용사를 쓰러트릴 생각뿐이었다.


게일 일행이 자리를 피하자, 레오나가 입을 열었다.


“너는 내가 여기에 있었다는 걸 모르고 있었군. 그랬다면 나를 발견하기 전에 일행을 피신시키거나 매복을 시켰을 테니.”


“용사가 여기에 있을 줄 알았다면, 고작 매복만 준비하진 않았겠지.”


“그렇다면 돌아가라. 나도 못 본 셈 칠 테니.”


게일이 알고 있던 용사라면 하지 않았을 말을 레오나가 말했다.


“못 본 셈 치고 싶어도, 전장에서 죽어 나간 내 부하들이 저승에서 두 눈을 뜨고 나를 보고 있다. 나는 그들의 대장이다.”


눈이 내리는 숲속 언덕에 일순 정적이 내려앉고, 게일이 고함쳤다.


“듀라한 군단의 군단장! 게일 맹크스가 용사 레오나에게 일기토를 신청하는 바이다!”


게일의 붉은 눈이 타올라 어둠 속에 가려진 용사를 잡아먹어 버릴 듯이 노려보았다. 그녀가 전투에 응하지 않는대도, 응할 때까지 자리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을 기세였다.


레오나는 설리반과 카그라를 보았다. 그녀는 두 사람을 지킬 명분도 없으며, 마왕이 되어 왕성에 대해 복수를 계획했을 정도니 두 사람이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갑자기 떠나버린 오스먼드도 포함해서, 마왕이 되기 위해 마족이 되었는데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 걸까. 결국, 그녀는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다.


그녀는 햇볕 아래 자신의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기로 했다. 용사는 가볍게 도약했지만, 순식간에 절반의 거리 차를 좁혔다.


게일은 평소와 다른 그녀의 모습에 놀랐지만, 폴암을 휘두르는 것에는 전혀 영향이 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검보다 범위가 넓은 폴암이 더 유리하겠지만, 그건 폴암이 거리를 충분히 벌렸을 때 이야기였다. 그러니 게일은 적극적으로 거리를 좁히려는 레오나를 피해 뒤로 빠지며 싸워야 했다.


애초에 레오나는 베거나 찌르지 못하는 그의 무기를 능숙하게 검으로 쳐내며 전진하고 있었다. 그와의 싸움이 처음도 아니었고, 휘둘러 찍어야 하는 무기라 궤적을 잘 읽고 있다면 맞으려야 맞을 수 없는 무기였다. 힘에서도 레오나가 월등하며, 무기 또한 우월하기에 레오나는 스스로 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가 노리고 있는 것은 게일이 계속 뒷걸음을 치게 해, 눈 속에 파묻혀있는 돌쩌귀라도 잘못 밟아 넘어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레오나의 노림수는 적중해 게일이 뒤로 고꾸라져 넘어졌고, 레오나가 투구 밑으로 단번에 검을 박아 넣었다. 인간이었다면 즉사할 공격이었지만, 듀라한은 실체가 없어 투구까지 부숴버려야 그제야 죽을 것이다.


검이 긁히며 신경질적인 금속음이 들리자, 게일은 비명을 질렀다. 비록 고통은 없었었더라도, 흐릿해지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 레오나를 떨어트리려 애를 쓰고 있었다.


챠오가 난입한 것은 그때였다.


“아저씨!”


챠오는 게일이 떨어트린 폴암을 집어 레오나에게 겨누었다. 어린아이일지라도 틈틈이 단련을 한 덕분에 퍽 자세가 잘 잡혀있었다.


레오나는 아무리 어린 녀석이 휘두르는 무기일지라도, 게일의 투구를 부술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기에 검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김이 새는군, 이런 어린 녀석에게까지 방해를 받다니.”


레오나는 자리를 피해 떠나버렸다. 한 시간 못 되게 잠깐 지낸 오두막이었지만, 벌써 뭔가 그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레오나에겐 목표가 있었다. 바로 마왕성 지하에 오스먼드가 숨겨둔 마왕의 검이었다.


오스먼드가 겹겹이 걸어 잠근 마법진이 그 검을 지키고 있었지만, 그 해골의 계획을 기다리느니 직접 검을 들고 왕성을 무너트리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부모와 자신의 또래들을 죽인 스탕달을 용서할 수 없었다.





챠오와 함께 크룩스가 게일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투구 안쪽에 흠집이 나 있었지만, 다행히 무사해 보였다.


“챠오가 아니었다면 나는 죽었겠군.”


그 말은 살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말투가 아니었다. 용사에게 패배했다는 걸 받아들인 허무 섞인 말이었다.


“멍청한 녀석. 지금 자신이 해야 하는 걸 구별도 못 하는 머저리 같은 놈.”


크룩스는 그런 게일을 꾸짖었다.


“너는 지금 퀘스트 중인 용병이야. 그것도 네 동료인 리저드맨을 살리기 위해서! 그런데 그런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제 목숨을 버리는 짓을 해? 적당히 싸우고 빠지라고 했잖아!”


게일은 크룩스의 비난을 듣고만 있었다. 질렸다는 표정을 한 크룩스는 오두막 안을 살피기로 했다.


오두막 안에는 떠나버린 레오나를 제외하고 두 사람이 더 있었다. 가장 먼저 부지깽이를 무기랍시고 쥐고 있는 인간 하나와 그들이 들어오든 말든 무언가 계산에 열중해있는 엘프 한 명이었다.


크룩스는 그들에게 물었다.


“여기 집주인인가?”


그럴 리 없었지만, 혹시나 해서 물어본 말이었다. 그 사이에 집안을 슬쩍 둘러보던 크룩스가 발밑에 깔린 카펫을 발로 비벼보다니, 그 밑에 깔려있던 쪽지를 꺼내 들었다.


“우리 볼일은 이거뿐이라서. 그럼, 잘 지내라고.”


크룩스는 카그라를 뒤로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그는 쪽지의 내용을 확인도 하지 않고 엘라이자에게 전달해주었다.


“그럼 우리는 이만 갈게, 이봐 게일! 언제까지 늘어져 있을 거야! 일어나! 챠오, 저 녀석 좀 해골마에 올리는 걸 도와줘.”


게일은 앓는 소리로 말했다.


“우울해······. 죽고 싶어, 누구라도 좋으니 내 몸을 더럽혀줘······.”


그의 인생 중 유일하게 느꼈던 감각인 가려움을 그리워한 말이었지만, 다른 사람이 듣기에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표현이었다.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얼른 출발하자고!”


“잠깐만요.”


엘라이자가 그들을 불러세웠다.


“고마워요.”


엘라이자는 거츠의 쪽지를 소중하게 쥐어 말했다. 크룩스는 무덤덤하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다시 남쪽, 골리아투스 산으로 향했다. 벌써 드래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알프레도는 거대한 바위 밑을 지나 리저드맨의 눈총을 받으며 아폴의 뒤를 따라갔다. 그중 눈에 띄는 건 단연 이리저리 움직이는 인간 부부였다. 종이 뭉치들을 휘날리며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상인들의 집착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알프레도가 리저드맨의 사정을 이리저리 캐물어볼 순 없는 일이겠지만, ‘물건을 만들기 위해 대장간에 틀어박혀 있을 테니까, 적당히 의심 안 들게 얌전히 있어요.’라고 말하고 사라진 아폴 때문에 할 일이 없어 무료해진 참이었다.


몇몇 호기심이 생긴 리저드맨 들이 길쭉한 주둥이를 들이대고 가까이 붙어 알프레도의 냄새를 맡기도 했다. 요새 들어 리저드맨의 마을에 인간들의 왕래가 잦아졌다지만 대개는 상인이나 농민들이었지, 알프레도처럼 병사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너 난다, 쇠 냄새가. 아폴과 족장님처럼.”


게다가 리저드맨은 말의 어순을 뒤죽박죽 섞는 버릇이 있는지, 말을 듣고도 한 번은 더 생각해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폴은 너희와 말하는 방식이 다르던데.”


리저드맨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다가 말했다.


“그런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한다, 어쩌면 그럴 수 있다고. 왜냐하면, 족장님의 혈통은 혼혈이니까. 드래곤의.”


알프레도는 이제 더는 대꾸하기 피곤한지, 대장간의 벽에 기대며 말했다.


“그래, 그렇겠지. 드래곤의 혼혈이니까.”


스스로 말하고 나서도 웃긴 이야기였다. 드래곤은 이미 멸족한 지 오래였다. 그러니 알프레도는 리저드맨 중 강한 자를 골라 대충 드래곤이라고 부르는 거려니 생각하고 말았다.


아폴이 토템을 만들어 나온 것은 그 후로 서너 시간쯤 지난 뒤였다.


“얌전히 잘 계셨네요. 여기요. 그 조각을 참고해서 만든 토템이에요.”


알프레도는 토템이라고 하니 땅에 꽂을 수 있는 말뚝 인형을 생각했는데, 아폴이 건넨 것은 방패였다.


“토템이라니? 이건 암만 봐도 방패 같은데?”


방패에는 테스널 왕국의 상징인 풍뎅이가 각인되어 있었다.


“그냥 토템을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면 너무 실용적이지 못하잖아요? 이걸 이렇게 조작하면······.”


각인된 풍뎅이의 날개 부분을 비틀자, 방패의 아랫부분이 반으로 쪼개지며 접혔다. 아폴이 추가로 두 번 정도 조작을 하자, 땅에 꽂을 수 있는 토템의 모양으로 바뀌었다.


“단단한 결정석에 이대로 박아넣으면 마력을 분해하기 시작할 거예요. 안에 봉인되어있다는 분은 오랜 시간 잠들어 계셨을 테니까, 속이 편한 음식을 준비해두는 게 좋겠어요.”


알프레도가 말했다.


“아폴, 정말 고마워. 이 은혜 잊지 않을게.”


아폴은 멋쩍어 콧등을 손톱으로 긁었다.


“아폴! 네 이 녀석!”


지면을 울리며 두 사람 앞에 거대한 리저드맨이 나타났다.


“할머니······.”


“또 조잡한 쇳조각 따위를 가지고 놀다가, 해가 저물어도 마을로 돌아오지도 않고! 게다가 인간에게 도움까지 받다니, 긍지 높은 리저드맨으로써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날숨마다 불꽃이 일렁이는 리저드맨 족장이 알프레도를 흘겨보더니, 바삐 움직이던 매튜를 불러세웠다.


“이봐 장사꾼! 어서 이 녀석을 내 눈에서 보이지 않게 치워버려! 내가 아무리 땅을 허락해줬어도, 마을까지 인간 따위가 어슬렁거리는 건 못 참겠군!”


매튜가 하하 웃으며 능글맞게 대꾸했다.


“내가 족장 본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벌써 속내 정도야 내 손바닥 안이지. 아폴이 마을에서 자리를 비운 이틀 동안 얼마나 저 늙은이가 속을 끓였는지 내 모를 줄 안다면, 천하를 손바닥으로 가리는 것이라 믿는 천치뿐이지 않겠나. 거기 병사 이름이······? 알프레도라고? 그래, 알프레도. 내가 근방에 인간들이 기착지를 만든다고 할 때 그녀가 얼마나 노발대발했는지 모를 거야. 한데 아폴이 사라졌을 때는 그것보다 더 날뛰며 마을을 헤집었다고! 아폴을 찾으려고 리저드맨 부대를 창설하질 않나, 우리 인간들에게도 지원요청······.”


“시끄럽다!”


슈네트가 두툼한 팔뚝을 휘두르자, ‘어이쿠.’ 소릴 내던 매튜가 알프레도에게 손짓했다.


“하지만 여기보다 우리가 건설한 기착지에서 밤을 지새는 게 좋겠네. 아무리 그래도 여기는 리저드맨 사는 마을이다 보니까, 인간들이 살기에는 안 맞지. 스튜는 좋아하나? 좋아해야 할 거야. 우리는 아침 점심 저녁 매일같이 마구잡이로 끓인 꿀꿀이 스튜뿐이니까! 하하하!”


매튜는 시비스터와 마왕성 사이에 기착지를 건설한 이후로 유의미한 소득을 올리는 중이라 온종일 얼굴에 웃음꽃이 가시질 않았다. 시비스터의 마편으로부터 시비스터에 닥친 재앙과 그래스호퍼의 습격 소식을 전해 듣기 전까지 말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롱 리브 더 데블킹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휴재 공지] 12월 23일 연재는 쉬어갑니다. 19.12.23 22 0 -
90 마지막화 믿겠습니다. 20.01.06 59 1 13쪽
89 89화 이름은 곧 운명을 뜻하는 것이다. 20.01.01 39 1 12쪽
88 88화 아무도 네게 세상을 구하란 소린 안 해. 19.12.30 35 1 11쪽
87 87화 해치웠나? 19.12.27 31 1 11쪽
86 86화 마왕성에 온걸 환영하는 바다. 용사여. 19.12.25 30 1 11쪽
85 85화 아파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가련하던지. 19.12.20 33 1 11쪽
84 84화 벨라! 으악! 으아악! 19.12.18 34 1 11쪽
83 83화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구요. 19.12.16 30 1 11쪽
82 82화 저를 데려가세요. 19.12.13 37 1 11쪽
81 81화 방구석에 처박혀있던 쓰레기라고 했다! 19.12.11 30 1 12쪽
80 80화 나는 여왕이야. 19.12.09 35 1 12쪽
79 79화 저는 마왕이 아녜요. 약초꾼이죠. 19.12.06 35 1 11쪽
78 78화 후회할 거면 말썽을 부리기 전에 고민해주세요. 19.12.04 37 1 11쪽
77 77화 제발 좀 나를 내버려 둬! 19.12.02 56 1 11쪽
76 76화 늦었군, 후배 마왕. 19.11.29 52 1 12쪽
75 75화 말만 하라고! 뭘 갖고 싶은가! 19.11.27 36 1 12쪽
74 74화 만수무강하소서. 마왕 폐하. +1 19.11.25 34 1 12쪽
73 73화 에취! 19.11.22 31 1 12쪽
72 72화 일어나셨나요, 달링? 19.11.20 43 1 12쪽
71 71화 드래곤은 아직 한창 잘 시간이라고! 19.11.18 38 1 11쪽
70 70화 삼키라니까요! 19.11.15 35 1 12쪽
69 69화 모두 하나같이 멍청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어. 19.11.13 35 1 11쪽
» 68화 스튜는 좋아하나? 좋아해야 할 거야. 19.11.11 38 1 12쪽
67 67화 그렇군. 하지만, 거절한다. 19.11.08 35 1 12쪽
66 66화 건들면 문다. 19.11.06 40 1 12쪽
65 65화 애는 착해. +1 19.11.04 36 1 11쪽
64 64화 도시락인가, 아폴의? 19.11.01 30 1 11쪽
63 63화 이것은 용사의 데뷔 무대인가. 19.10.30 35 1 12쪽
62 62화 단단히 홀리셨군요. 19.10.28 38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