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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웅 님의 서재입니다.

롱 리브 더 데블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신현웅
작품등록일 :
2019.06.10 02:12
최근연재일 :
2020.01.06 14:45
연재수 :
90 회
조회수 :
8,643
추천수 :
142
글자수 :
510,676

작성
19.12.30 14:14
조회
35
추천
1
글자
11쪽

88화 아무도 네게 세상을 구하란 소린 안 해.

DUMMY

제물이 갑자기 사라진 탓에 변이마법이 무너지고, 마법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줄리엣이 슬라임 핵을 훔치고 도망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아공간이 점점 자라며 모든 것을 먹어 치우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우르슬라와 오스먼드가 마비약에 취해 미처 대응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치명적이었다.


“폭주하고 있어! 우리로선 막을······, 수······!”


그 말을 끝으로 우르슬라와 오스먼드, 그리고 설리반과 거츠가 어둠 속에 잡아먹혔다.





챠오는 시비스터의 폐허에 있었다. 넓은 강가 덕분에 시야도 트여있어 마왕성이 잘 보였는데, 마왕성의 상단에서 검은색 구체가 점점 자라며 성을 집어삼키는 걸 볼 수 있었다.


챠오는 달리 들어줄 사람도 없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품속의 슬라임을 달래주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검은 구체가 커지는 속도가 줄어들 기미가 없으니, 마냥 구경만 하지 말고 도망쳐야 했다.


어디로 도망쳐야 할까. 이미 선박들은 출항해 버렸고, 비어있는 배 한 척도 없었다. 있었다 한들 챠오에게 배를 몰 수 있는 기술도 없었다.


마땅한 이동수단이 없으니 챠오가 눈을 돌린 곳은 높은 산 위였다. 올라가기까지 힘들지라도, 길을 찾을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운 좋게 말 한 필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멀리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말을 길들이고 타는 법 정도는 게일에게 배운 적이 있었다.


그렇게 챠오가 산 쪽으로 걸음을 향하는데, 성에서 나와 도망치는 누군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름 아닌 여왕님이었다. 서큐버스 퀸이 무언갈 품에 쥐고 달리고 있었다.


챠오는 말에 관한 생각은 잊어버리고, 서큐버스 퀸을 쫓기 시작했다.





“여왕님.”


갑작스럽게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에 줄리엣은 반사적으로 결정석 마법을 쏘려고 했다. 하지만 상대가 인큐버스임을 깨닫자, 그 마법을 거둬들였다.


“챠오, 그래······. 챠오였구나.”


분명 그녀는 마법을 거둬들였지만, 그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무슨 일 있으셨어요? 성에서 자라는 저 검은 구체는 무엇이지요? 왜 여왕님이 저 안에서 나오시는 거예요?”


줄리엣은 챠오를 앞에 두고 딴생각에 사로잡힌듯했다. 그녀의 머릿속엔 부랑아에게 부활의 오브를 먹여, 초대마왕을 죽음의 경계 너머에서 데려온 오스먼드가 떠올랐을 뿐이었다.


줄리엣이 챠오의 어깨를 잡았다.


“일단은 여긴 위험하니, 안전한 곳으로 가자꾸나.”





실크는 오두막 안에 멀쩡히 잘살고 있는 카그라에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오스먼드는 모든 생명체의 변이나 소멸이 아닌, 엘프들의 번영을 바랐을 뿐이었다. 그리고 호전적인 인간들의 칼끝을 돌릴 곳으로 마족을 골랐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오스먼드가 카그라 대신 인간들을 지휘하는 동안 진짜 카그라는 조용히 숨어지내야 했고, 나중에 기회를 봐서 오스먼드와 조용히 바꾸면 되는 일이었다. 그 대가로 엘프들과 인간은 친선관계를 유지할 것이며, 서로의 자치 구역을 인정한다는 조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그라가 자신의 몸을 숨길 장소로 이 오두막을 택한 건 악수였다. 오스먼드가 카그라가 이곳에 숨을 줄은 예상치 못했으며, 카그라도 실크가 이곳에 떨어질 것도 알지 못했으니 말이었다.


물론 카그라가 이와 같은 말을 나불대며 밝힌 것은 그의 목에 검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실크가 검을 거두자, 카그라는 몰아쉬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 시간에 자네가 여기에 있다는 뜻은 오스먼드가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겠군.”


실크는 짧게 답했다.


“과연, 그렇다.”


갑자기 적막한 숲속에 말발굽 소리가 들리고, 덜컹거리는 빈 마차 소리가 울렸다. 실크가 창밖을 내다보니 말 두 필이 마차를 끌고 오두막으로 향하고 있었으며, 마차에는 매튜와 엘렌, 그리고 네드가 탑승해 있었다.


카그라도 어안이 벙벙해져서 오두막 바깥으로 나가자, 두 마리의 말이 앞발굽을 들어 기세 좋게 울부짖었다. 하나는 뜨거운 김을 내뿜는 갈색 말 칠리였고, 다른 하나는 게일의 해골마였다. 놀라서 땅에 엉덩방아를 찧는 카그라를 뒤로하고, 실크가 선발대들에게 다가갔다.


“네드, 바삐 달려와 줘서 고맙다.”


“갑자기 시비스터에서 그래스호퍼까지 달려가고, 또 여기까지 오라는 말을 어떻게 그리 쉽게 할 수 있어요? 가볍고 지치지 않는 해골마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요!”


“하지만 해내지 않았는가. 대견하다. 네드.”


실크는 매튜에게 말했다.


“인간종족이신 어르신께 이런 부탁하기 죄송합니다만, 마족을 위해 도움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매튜가 수염을 만졌다.


“나는 그저 입바른 소리에 신용이 생기리라 생각지 않네. 우리가 비록 마계를 함께 모험했던 시간이 있다고 해도 말이야.”


엘렌이 매튜의 등짝을 때리려 하자, 매튜가 곧바로 이어서 말했다. 그는 뼛속까지 상인이었다.


“그러니 도와주는 대가로 마계와 교역할 수 있는 권리를 주게. 그래야 서로 신용이 돈독해지지 않겠나.”


“마왕의 이름으로 약속드리겠습니다.”


“상인의 이름으로 약속함세.”


두 사람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악수했다.





선발대들은 한시바삐 시비스터의 마왕성으로 마차를 몰았다.


“하지만 우리가 뭘 할 수 있는 거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할 수 있는 게 떠오르지 않아.”


엘렌이 물어보자, 실크가 답했다.


“오스먼드가 인간들의 적을 마족으로 겨눴으니, 해법은 간단합니다. 엘프들이 이 사실을 알면 되는 일이죠. 얼마나 많은 엘프가 동의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세계수가 달린 일입니다. 엘프 장로들이 사실을 알고 나서 오스먼드를 가만히 두진 않을 테죠. 안 그래도 세계수가 뽑혔으니 엘프 왕국 내에 혼란이 예상되고, 움직일 수 있는 엘프들은 뿔뿔이 흩어져 세계수를 찾고 있을 테니 연락하기는 쉬울 겁니다. 저희는 약간의 소문만 흘려주면 되는 일입니다.”


“그렇군. 하지만 그걸로 부족한듯싶은데 말이지.”


“물론 위치를 알고 있는 저희가 세계수를 차지할 겁니다. 인간들과 마왕이 세계수를 구하고 오스먼드의 계획을 무너트렸다는 걸 알면, 엘프들은 무엇을 지급하더라도 세계수를 되찾아오려 하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저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엘프 측에서 거래를 원할 겁니다.”


실크는 선발대의 사람들에게 해야 할 일을 정리해주었다.


“매튜 어르신과 엘렌 사모님은 엘프들에게 닿도록 소문을 퍼트려주세요. 그리고 저희는 마왕성으로 돌아갈 겁니다.”


네드가 자신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저희라고요?”


“그렇다. 우리를 두고 얘기하는 것이다.”


“전 결계 때문에 마왕성을 보지도 못하는데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네드는 테스널 왕국의 새로운 용사니까 당연하지 않은가.”


매튜가 실크를 가만히 보더니, 소감을 말했다.


“자네, 미겔을 닮아가는군.”


“그렇습니까.”


실크가 겸연쩍게 웃음을 흘렸다.





레오나는 미겔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다. 레오나가 알고 있던 미겔이 실은 초대마왕이었단 말과 미겔이 자신의 몸을 되찾은 지금은 슬라임의 몸을 빌렸다는 말을.


그녀도 아공간 안쪽에 있던 슬라임을 본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슬라임은 레오나를 보고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었다.


돌연 레오나가 미겔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의 손바닥을 펴, 풀물에 변색된 굳은살을 들추었다.


“미겔, 나는 그가 인간이든 마족이든, 심지어 마왕일지라도 상관하지 않아. 나는 그가 미겔이 아니더라도 다시 그와 만나고 싶어. 오랜 시간 동안 그의 생각을 공유한 너라면 알 수 있을 거야.”


“무, 뭘 말이야?”


“평소에 날 얼마나 생각하고 있었는지 말이야! 당연한 거 아니야?”


레오나는 덩치와 외모에 걸맞지 않게 초조해하고 있었다.


“그런 건 직접 만나서 물어봐! 나한테 듣고 싶은 게 아니잖아!”


미겔이 성깔을 부리자, 레오나가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그렇지, 참. 후우······.”


레오나는 바닥에 꿇었던 무릎을 털고 쭈그려 앉았다.


“그럼 출발하자.”


“어디로?”


“포탈을 타고 시비스터로 돌아가야지.”


미겔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어떻게 갈 수 있다는 거야? 그 아크리치가 연 포탈은 이미 벌써 닫히고 없어!”


“포탈마법은 아크리치의 전유물이 아니야. 테스널 왕국엔 대형 포탈마법을 쓸 수 있는 장소가 있어, 서두르면 얼마 걸리지도 않지.”


레오나가 흙바닥에 손톱으로 대략적인 지도를 그렸다. 설명하기 위해 그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확인하는 그녀의 방법이었다.


“가봤자 똑같은 꼴을 당할 거야! ”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있을 순 없잖아.”


“난 안 갈 거야.”


바닥에 약도를 새기던 레오나가 고개를 들었다.


“아무도 네게 세상을 구하란 소린 안 해. 그냥 네가 가서 할 수 있는걸 하란 얘기야. 어차피 변이되거나 소멸하거나 둘 중 하나일 텐데 몸뚱어리 하나 아껴서 뭐해? 짐이라도 나르던가 돌이라도 던지러 가. 그리고 너는 나를 따라올 수밖에 없을걸.”


레오나가 갑자기 큰소리로 포효를 했다. 커다란 사자 울음에 병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왕성의 안쪽이었고, 왕과 왕비를 따라 군사들이 출정했다고 해도 최소한의 수성을 위한 병력은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사자 루가루와 수상한 인간을 발견해 대응 병력을 꾸리기 시작했다.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해버린 레오나는 연달아 울리는 타종 소리를 뒤로하고, 미겔을 들춰업어 포탈 마법 석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 녀석은 몰라도 난 네가 정말 싫었고, 지금도 싫어!”


“극찬이네.”


가볍게 무시한 레오나는 쉬지 않고 달렸다.





줄리엣은 챠오를 데리고 숲속으로 들어갔다. 유난히 키가 큰 나무를 등진 줄리엣은 챠오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챠오. 너는 인큐버스킹을 기억하니?”


“물론이죠, 여왕님. 마계 전쟁 이전에 이미 돌아가셨지만요.”


“나는 그가 다시 보고 싶구나.”


“제 몸을 쓰시려는 건가요?”


챠오는 그녀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선과 어깨를 짚는 손에서 많은 걸 읽어 낼 수 있었다. 서큐버스 퀸은 자신을 챠오가 아닌 다른 무언갈 대하듯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리하구나.”


“하지만 여왕님이 손에 쥔 건 부활의 오브가 아닌, 슬라임의 핵이에요. 둘은 전혀 다른 거예요.”


“그래. 하지만 추출하는 법을 알고 있어. 벨라가 결정석을 녹이는 연구를 했듯이, 나는 부활의 오브를 추출하는 연구를 했으니.”


줄리엣이 품에서 붉은색의 포션 병이 나타났다. 그녀가 포션 병 속에 슬라임 핵을 빠트리니, 빠르게 슬라임이 부식되어 사라지고 더 작은 검은 구슬이 남았다.


줄리엣이 병 속에서 오브를 꺼내 손에 쥐니, 위협을 느낀 아이스 슬라임과 파이어 슬라임이 챠오를 지키기 위해 그의 품에서 나왔다. 하지만 고작 슬라임 두 마리가 줄리엣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괜히 힘쓰지 말자, 아들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줄리엣은 챠오를 아들이라 불렀다. 그녀는 챠오를 재우고, 그 입에 부활의 오브를 삼키게 했다.

이윽고 챠오가 둘로 분리되었다. 한쪽은 챠오의 영혼이었고, 다른 한쪽은 인큐버스 킹일게 분명했다. 적어도 줄리엣은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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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89화 이름은 곧 운명을 뜻하는 것이다. 20.01.01 40 1 12쪽
» 88화 아무도 네게 세상을 구하란 소린 안 해. 19.12.30 36 1 11쪽
87 87화 해치웠나? 19.12.27 32 1 11쪽
86 86화 마왕성에 온걸 환영하는 바다. 용사여. 19.12.25 30 1 11쪽
85 85화 아파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가련하던지. 19.12.20 33 1 11쪽
84 84화 벨라! 으악! 으아악! 19.12.18 34 1 11쪽
83 83화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구요. 19.12.16 31 1 11쪽
82 82화 저를 데려가세요. 19.12.13 37 1 11쪽
81 81화 방구석에 처박혀있던 쓰레기라고 했다! 19.12.11 31 1 12쪽
80 80화 나는 여왕이야. 19.12.09 35 1 12쪽
79 79화 저는 마왕이 아녜요. 약초꾼이죠. 19.12.06 35 1 11쪽
78 78화 후회할 거면 말썽을 부리기 전에 고민해주세요. 19.12.04 38 1 11쪽
77 77화 제발 좀 나를 내버려 둬! 19.12.02 57 1 11쪽
76 76화 늦었군, 후배 마왕. 19.11.29 53 1 12쪽
75 75화 말만 하라고! 뭘 갖고 싶은가! 19.11.27 36 1 12쪽
74 74화 만수무강하소서. 마왕 폐하. +1 19.11.25 35 1 12쪽
73 73화 에취! 19.11.22 31 1 12쪽
72 72화 일어나셨나요, 달링? 19.11.20 43 1 12쪽
71 71화 드래곤은 아직 한창 잘 시간이라고! 19.11.18 39 1 11쪽
70 70화 삼키라니까요! 19.11.15 35 1 12쪽
69 69화 모두 하나같이 멍청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어. 19.11.13 35 1 11쪽
68 68화 스튜는 좋아하나? 좋아해야 할 거야. 19.11.11 38 1 12쪽
67 67화 그렇군. 하지만, 거절한다. 19.11.08 35 1 12쪽
66 66화 건들면 문다. 19.11.06 41 1 12쪽
65 65화 애는 착해. +1 19.11.04 37 1 11쪽
64 64화 도시락인가, 아폴의? 19.11.01 30 1 11쪽
63 63화 이것은 용사의 데뷔 무대인가. 19.10.30 35 1 12쪽
62 62화 단단히 홀리셨군요. 19.10.28 3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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