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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웅 님의 서재입니다.

롱 리브 더 데블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신현웅
작품등록일 :
2019.06.10 02:12
최근연재일 :
2020.01.06 14:45
연재수 :
90 회
조회수 :
8,627
추천수 :
142
글자수 :
510,676

작성
19.12.0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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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79화 저는 마왕이 아녜요. 약초꾼이죠.

DUMMY

거츠와 엘라이자는 갑자기 눈앞에 포탈을 타고 넘어온 실크 탓에 놀란 것은 당연했지만, 그렇다고 두 손 놓고 바라보고만 있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자신들의 비밀에 조심스럽고 민감했기 때문에 여러 상황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거츠는 엘라이자의 앞을 가로막았고, 엘라이자는 고약을 발라둔 종이를 흩뿌렸다.


실크가 얼굴에 들러붙는 종이를 치우려 했지만, 엘라이자가 자유자재로 조작하는 종이는 찢어져도 그의 얼굴을 괴롭혔다.


쇄액!


의도치 않게 실크가 웅크리며 공격을 피할 수 있었지만, 분명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였다. 실크가 피에 젖은 덕분에 종이가 헤지기 시작했고, 고약이 옅어져 마법의 효과가 사라짐에 실크는 얼굴을 들러붙는 종이를 뗄 수 있었다.


거츠가 다음 화살을 시위에 당겨 그를 노리고 있었다. 골렘인 그는 흔들림 없는 조준이 가능했고, 불필요한 동작 또한 섞여 있지 않아 재빠른 속사가 가능했다. 게다가 시위를 당기는 힘도 강해, 관통력도 출중했다.


실크는 칼을 놓았다. 실크가 그들을 진정케 하고자 했지만,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봐도 그들을 말리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에게 매튜나 미겔과 같은 언변이 있었다면 이 상황을 쉽게 풀었겠지만, 그렇지 못한 실크가 해결하기엔 버거운 상황이었다.


실크가 칼을 놓으니 거츠가 더는 활을 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시위를 내리진 않았다.


“누구냐.” 거츠가 물었다.


“마왕이다.”


“······선전 포고인가.”


“결단코 아니다. 하지만 쉽게 믿어줄 거라 생각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용건이 무엇인가.”


“곧 테스널 왕국은 멸망할 것이다. 이미 휘시스와 랩틸리아는 왕족과 귀족을 잃고 멸망했다.”


그 후로 담담하게 이어지는 실크의 말은 어느 하나 가벼운 일이 없이 재앙 덩어리뿐이었다. 줄리엣과 오스먼드의 반란, 그리고 각자의 목적까지. 수은이 흐르는 거츠마저도 인상을 구겨버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큰 파란을 일으키고 볼프강에게 제지받아 끌려가는 실크는 단지 그들에게 시간이 없다는 말만 남겼을 뿐이었다.


“엘라이자.”


그녀의 이름 뒤에 엘라이자가 원하던 남쪽으로 함께 도주하자는 뜻이 생략되어 있었다. 그 뜻을 모를 리 없는 엘라이자가 답했다.


“우린 인간이 아니지만, 괴물로 살고 싶지 않잖아. 그렇지?”


검은 베일을 가린 엘라이자는 그를 보고 있었다. 거츠는 그 베일을 들쳐 그녀에게 입맞춤했다. 다만 두 입술 모두 차가워, 그 어느 쪽도 온기를 건네주지 못했다.


“그렇다면 서큐버스 퀸과 아크리치를 잡아야겠군.”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보습제와 수은도 사러 가자구.”


왕과 왕비는 가능한 한 오래 테스널 왕국을 통치할 생각이었다.





대략 두 개의 소대가 실크를 경계하며 지하 감옥으로 호송하고 있었다. 특히 볼프강은 그의 왼편에 바짝 붙어 경계를 풀지 않았다. 마왕이 되는 자가 순순히 투항할 리 없으며, 무언가 꿍꿍이가 있으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대 마왕 중 스스로 왕성에 나타나 위험을 경고하는 일은 역사적으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머릿속에 벌레처럼 돌아다니는 질문의 답을 알고 싶었다.

볼프강이 말했다.


“마왕인 너는 필연적으로 용사님을 만났을 것이다. 용사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지 바른대로 답하라.”


볼프강은 용사를 홀로 마왕성에 둔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었다. 그 후로 오비디언이 병사들을 세뇌해 루가루 숲으로 들어갔을 때도, 왕국 전체에 뒤숭숭한 일이 나타나도 용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혹자는 용사 한 명에게 국방 대부분을 떠넘겨버리는 걸 두고 볼프강 장군을 향해 손가락질하기도 했다. 그제야 볼프강은 깨달았다. 용사가 없는 왕국의 무능력함에 책임감을 느낀 것이다.


문제는 이미 기형적으로 뒤틀린 국방체계를 바로잡을 능력이 볼프강에게 없었다. 적어도 용사님이 왕성에 모습을 비추시기만 해도 병사들의 사기가 올라갈 것이고, 유능한 인재를 골라 장군의 자리를 물려주고 자리에서 떠날 생각까지도 했었다. 그곳에 용사 레오나가 앉아있는 게 올바른 순리라고 생각하면서.


실크가 입을 열었다.


“용사는 죽었습니다. 그녀의 유해는 강자에 대한 예우 차원으로 엄숙한 장례를 치렀습니다. 맹세합니다.”


“······.”


볼프강은 턱에 힘이 들어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왕의 뒤를 말없이 걷던 그는 마왕이 왕성 감옥 가장 깊은 곳에 구금되고 나서야 그제야 입술을 뗄 수 있었다.


“젠장!”





실크도 볼프강이 분개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분명 스스로 자책하고 있을 것이다. 그도 장군 출신이라 이해하는 바였다.


실크가 용사가 죽었다고 거짓을 말한 이유는 그녀가 용사인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으며, 레오나와 미겔이 원하는 대로 서로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실크는 또 한 번의 전투를 준비해야 했다. 그 상대는 오스먼드이며, 공간 마법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그를 막아야 했다. 그와 싸우는 것 자체가 오스먼드의 계획 아래에 있는 것이겠지만, 종족을 획일화하려는 오스먼드를 직속 상관인 자신이 아니면 누가 막을 것인가.


실크는 검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검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지며, 방대한 마력이 그를 감쌌다.





미겔이 자신의 영혼이 갇힌 결정석에 토템을 꽂았다. 모두가 보는 가운데 토템에서 분해된 마나가 공중에 흩어지고, 결정석이 조금씩 녹자 줄리엣의 모습 대신 미겔의 얼굴이 나타났다. 약 십여 년 전에 봉인된 모습이라 조금 더 앳된 얼굴이었다. 미겔이 그를 어루만지자 오랫동안 감았던 눈을 뜨고 자신의 몸을 마주 보았다.


부랑아였던 미겔의 영혼이 제자리를 찾는 건 순식간이었다. 반면에 소생의 오브로 되살아난 초대마왕도 동시에 미겔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공중에 두둥실 떠버린 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미겔이 아니었다고. 땅에 발을 딛지 못하고, 마음대로 몸을 겨누지 못하니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크리스티안이 그를 알아보았다.


“당신은······. 오랜만이에요.”


초대마왕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눈빛이었다.


게일이 다가와 누구인지 묻자, 크리스티안이 답했다.


“이분은 마계의 첫 번째 마왕이세요. 그는 이미 명운을 다해 세상을 떠나셨지만, 이렇게 다시 뵐 줄 몰랐네요. 반갑다고 말하기도 힘든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요.”


게일은 첫 번째 마왕보다 그를 기억하는 크리스티안이 더 놀라웠다.


“크리스티안은 몇 살이길래 그런 걸 알고 있······, 알고 계세요?”


“슬라임은 핵이 깨지지 않는 이상, 늙지도 죽지도 않는 몸을 가지고 있죠. 이렇게 말하고 보니 마치 제가 리치 같군요. 후후. 하지만 이대로 구경만 하고 있어선 안 돼요. 영혼은 금방 흩어져 버리니까요. 무언가 담을 육체가 필요한데······.”


크리스티안은 벨라를 구한 알프레도와 자신과 같이 움직였던 스탕달을 번갈아 보았다.


“오랫동안 인간의 몸으로 사셨으니 인간의 몸을 구해드리는 게 맞겠죠. 이왕이면 늙은이보다 젊은 사람이 나을 거예요.”


알프레도를 보며 다가오는 그녀를 벨라가 막았다.


“벨라. 이 사람이 당신을 구해준 건 알아요. 하지만 지금은 무엇이 더 중요한지 무게를 따져야죠. 마계는 지금 유례없는 위기에 닥쳤어요. 종족 대부분이 궤멸에 가까운 상태에 빠졌고, 토지는 인간들이 들어와 빼앗고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우린 무얼 할 수 있죠? 저분은 먼 옛날에 핍박받던 마족을 한군데로 모아 이름 마법으로 한군데 묶어주었죠.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저분의 도움이 필요해요. 벨라, 챠오가 인간들 틈에서 살길 원하나요? 언제나 토벌당한 것은 우리예요.”


크리스티안은 알프레도를 최대한 상처 없이 죽이기 위해, 슬라임으로 그의 기도를 막아 질식시키려 했다.


“크리스티안 님,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들은 그 누구보다 인간들 속에서 지내는 종족입니다. 그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게 우리고, 그들의 시선으로 마족들을 돌아보기도 했어요. 우리는 완벽한 피해자가 아닙니다. 평범한 마을에 역병을 퍼트리고, 삼십여 년을 농사만 짓던 여인에게 마녀라는 감투를 씌우며 그들의 재산을 훔치기도 했지요. 그리고 인간들을 식량으로써 사냥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저마다 각각의 이유가 있겠지만, 피식자가 포식자에게 대항하는 건 당연한 순리에요.”


벨라는 가방에서 포션을 꺼내 쥐었다. 무슨 효과가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당신, 변절했군요.”


두 여인이 서로 노려보며 대립하자, 게일이 사이에 끼어들었다.


“우리 정말 오랜만에 만났는데 서로 싸우는 건 좋지 않아. 이점엔 둘 다 동의할 거라 생각한다. 게다가 곧 오스먼드의 반란이 머지않아 실현된다면 그 뒤엔 인간이고 마족이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심지어 엘프들까지 스켈레톤이 되어 걸어 다닐 것이다.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계략인가.”


그제야 크리스티안과 벨라는 물론, 스탕달과 챠오, 그리고 알프레도와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슈안과 엔버 또한 크게 소리쳤다.


“그건 무슨 말이지!”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예? 뭐라고요?”


가장 놀란 건 부랑아 미겔이었다.


“기껏 내 몸을 되찾았는데, 그런 얼토당토않은 소리 하지 마!”


모든 이의 눈초리가 게일을 향했다. 갑자기 주목받게 된 그는 버릇처럼 사타구니를 긁었다.


“······너희들은 모르고 있었던가? 오스먼드 그 친구. 인간들의 왕과 엘프의 신목, 그리고 저기 초대마왕님을 제물 삼아 거대한 마법을 사용할 거야.”


그의 말투는 마치 “내일 비라도 오려나.” 말하는 것처럼 무신경해서 오히려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이 멍청한 자식아! 그걸 왜 말 안 하고 있었던 거야!”


그중에서도 초대마왕인 그가 게일의 앞에서 물었다.


“실크, 실크도 이 사실을 알고 있나요?”


“아, 아실 겁니다······? 아마도요?”


이상을 찡그린 미겔이 크리스티안에게 말했다.


“크리스티안, 제게 당신의 몸을 조금만 떼주세요.”


“슬라임의 핵을 만드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마왕님. 게일의 말이 사실이라면 오스먼드는 몸을 갖게 된 마왕님을 노릴 거예요.”


그는 빙긋 웃었다.


“저는 마왕이 아녜요. 약초꾼이죠. 그리고 이대로 사라질 순 없어요. 저도 당신들을 위해 싸우고 싶어요.”


크리스티안은 하는 수 없이 자신의 일부분을 떼어내 슬라임의 핵을 심었고, 약초꾼을 그 안에 깃들도록 했다. 슬라임의 몸을 가진 그는 자신의 몸을 조금 움직이더니 금방 적응하며 어두운 숲속의 한 점을 노려보았다.


“이리로 올 줄 알았어요. 빠르군요. 모두 싸울 준비하는 게 좋겠어요.”


그들의 뒤에서 푸른 포탈이 열렸다. 다름 아닌 오스먼드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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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86화 마왕성에 온걸 환영하는 바다. 용사여. 19.12.25 30 1 11쪽
85 85화 아파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가련하던지. 19.12.20 33 1 11쪽
84 84화 벨라! 으악! 으아악! 19.12.18 34 1 11쪽
83 83화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구요. 19.12.16 30 1 11쪽
82 82화 저를 데려가세요. 19.12.13 37 1 11쪽
81 81화 방구석에 처박혀있던 쓰레기라고 했다! 19.12.11 30 1 12쪽
80 80화 나는 여왕이야. 19.12.09 35 1 12쪽
» 79화 저는 마왕이 아녜요. 약초꾼이죠. 19.12.06 35 1 11쪽
78 78화 후회할 거면 말썽을 부리기 전에 고민해주세요. 19.12.04 37 1 11쪽
77 77화 제발 좀 나를 내버려 둬! 19.12.02 56 1 11쪽
76 76화 늦었군, 후배 마왕. 19.11.29 52 1 12쪽
75 75화 말만 하라고! 뭘 갖고 싶은가! 19.11.27 36 1 12쪽
74 74화 만수무강하소서. 마왕 폐하. +1 19.11.25 34 1 12쪽
73 73화 에취! 19.11.22 31 1 12쪽
72 72화 일어나셨나요, 달링? 19.11.20 4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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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68화 스튜는 좋아하나? 좋아해야 할 거야. 19.11.11 37 1 12쪽
67 67화 그렇군. 하지만, 거절한다. 19.11.08 34 1 12쪽
66 66화 건들면 문다. 19.11.06 40 1 12쪽
65 65화 애는 착해. +1 19.11.04 36 1 11쪽
64 64화 도시락인가, 아폴의? 19.11.01 30 1 11쪽
63 63화 이것은 용사의 데뷔 무대인가. 19.10.30 35 1 12쪽
62 62화 단단히 홀리셨군요. 19.10.28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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