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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웅 님의 서재입니다.

롱 리브 더 데블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신현웅
작품등록일 :
2019.06.10 02:12
최근연재일 :
2020.01.06 14:45
연재수 :
90 회
조회수 :
8,618
추천수 :
142
글자수 :
510,676

작성
19.11.13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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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69화 모두 하나같이 멍청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어.

DUMMY

키클롭스는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실크를 위해 온천을 비웠다. 아무래도 마왕이 초주검이 되어 실려 온 게 알려진다면 큰 혼란이 예상되었기 때문이었다.


마왕은 몸 상태는 솔직히 빈말이라도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전신에 바늘에 박힌 상처가 있었고, 오랜 시간 동안 추위에 방치된 탓인지 체력적으로도 바닥나 있었다. 그나마 곰의 두꺼운 가죽이 그를 살렸다지만, 가까스로 온천에 도착하자마자 마나도 바닥나버려 변신도 풀려버리고 말았다. 한 시간이라도 더 늦게 발견되었다면 그는 이미 저승으로 떠났을지도 몰랐다.


키클롭스는 얼어붙은 마왕을 바로 뜨거운 온천수에 넣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압축되었던 신체조직이 순식간에 팽창하면 그대로 괴사할 위험이 있었다. 따라서 온천장은 온천 위에 나무판자를 덧대 쌓아놓고, 그 위에 마왕을 눕혀 따듯한 증기를 쐬게 했다.


따듯한 습기에 드디어 굳어있던 마왕의 표정이 풀어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쉰 키클롭스가 온천에서 나왔다. 온천 앞에 오스먼드가 앉아있었다.


“아크리치님,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마왕님이 어째서 저 지경이 될 때까지 공격을 받으신 거죠?”


“······조용히.”


“예?”


“조용히 하라고 했어.”


온천장이 처음 보는 그의 싸늘한 모습에 놀라 어물쩍거리며 자리를 떠나버렸다. 홀로 남은 오스먼드는 보라색 빛이 나는 동그란 마나홀을 쥐고 손톱으로 겉면을 긁고 있었다. 마나홀에 생채기가 옅게 생길 때마다, 머릿속의 가려운 곳을 긁는 느낌이 들기에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이었다.


오스먼드는 마법진으로 레오나와 설리반 등 주요 인물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 특히 미겔의 위치를 살펴보며 미겔이 하이페리온에게 붙잡혀 엘프 왕국으로 향하는 걸 알게 되었다. 아마 자신들을 엿보고 있다는 건 하이페리온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추방당한 자신의 마법이 미치지 않는 엘프들의 왕국으로 가는 것이리라.


까드득.


오스먼드의 잇소리가 온천 안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 소리는 자욱한 증기에 덮여 금세 사라졌고, 오스먼드는 허공에서 퍼져나가는 그 증기를 노려보고 있었다.


오스먼드가 모든 종족을 스켈레톤으로 통일시키기 위해선, 각 종족을 아우르는 세 가지의 상징이 필요했다.


가장 먼저 마족을 하나로 엮는 것은 초대마왕의 이름 마법으로, 그 어떤 마족이라도 그 마법에 자유롭지 않았다. 오스먼드는 그 마법의 주인인 초대마왕을 소생의 오브로 되살려, 마침 연이 닿아 만난 부랑아 미겔에게 심어둔 상태였다.


엘프 종족의 상징은 단연 세계수였다. 오스먼드는 그중에서도 엘프 전체가 가꾸며 연구하는 신목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신수의 크기가 크기다 보니 가장 마지막에 노획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땅속 깊이 뿌리를 박고 있으니, 좌표가 달라질 이유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그들을 다스리는 단 한 명의 왕을 생각했었다. 애초에 오스먼드는 오비디언이 그 역할을 해주길 바랐으나, 안타깝게도 그는 자신의 힘을 시험하길 원하는 왕이었을 뿐이었다. 심지어 그 뒤를 이은 실크마저도 정복전에 흥미가 없는 마왕이었다.


오스먼드는 용사 레오나의 복수심을 엿보아 반란을 부추겼고, 테스널 왕국과 주변 인간 왕국을 정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레오나가 강한 힘을 원한다길래 그 소원을 이루어주었고, 마법을 원하길래 마법도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그 결과로 레오나가 원하는 목표는 인간들의 왕이 아닌 마족의 왕이었다. 그녀는 현재 마왕성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마왕의 검을 갖기위해서.


미겔은 하이페리온에게 빼앗겼고, 레오나는 뜻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지금 오스먼드의 손바닥엔 아무 패도 없어 갑갑한 상태였다. 아니, 정확히는 분노가 쌓여있는 상태였다.


“모두 하나같이 멍청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어.”


모든 종족이 차이가 없어지면 차별도 사라지고, 덩달아 평화가 따라올 것이다. 물론 사소하게 생기는 갈등 정도야 있겠지만, 현재 종족 간의 분쟁과 비교한다면 새 발의 피일 것이다.


“으으······.”


오스먼드가 등진 온천에서 실크가 정신을 차리려는지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전투력은 몰라도 생명력만큼은 질긴 인물이었다. 그가 바로 오스먼드에게 마지막 노림수가 될 것이다. 오스먼드는 그에게 마왕의 검을 쥐여줄 것이다.


실크가 마왕의 검의 마기를 견뎌내지 못한다면 폭주할 것이고, 제어한다면 넘쳐나는 마기를 발산하기 위해 전쟁을 할 수밖에 없다. 오스먼드는 실크가 마왕의 자질이 부족하니 검의 마력에 삼켜질 거라 점쳤고, 검을 봉인해두었었다. 폭주하는 마왕은 자신이 배후에서 조종할 수 없는 장기짝이 되고 만다. 하지만 이제 오스먼드에게도 여유가 없으니, 도박해야만 했다.


오스먼드가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마나홀에 손가락이 움푹 들어가 찌르르하게 울리는 마나의 흐름 탓에 “크흑, 힉! 힉!’”하는 괴기한 웃음소리가 저절로 새어 나왔다.





앞서간 남자는 어두운 지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반면에 서러브레드 남매는 질퍽거리는 진흙 바닥에 발소리가 날 새라 조심스럽게 걸었기에 서로의 거리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다.


결국, 르댕고트가 아이디어를 냈다. 아이디어라곤 해도 남매에겐 익숙한 것이었다. 누나가 남매의 무게를 지우고, 벽에 돌기를 짚으며 벽 사이를 뛰어 다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꽉 잡아.’


르댕고트가 동생에게 속삭였다. 지하는 미로처럼 복잡했지만, 어둡지 않았다. 무언가 재료를 재배하기 위해 가꿔놓은 밭이 있었고, 큼직한 나무상자가 쌓여있기도 했다. 폐허에서 살던 사람은 이곳을 창고 따위로 사용했던 것 같았다.


얼마쯤 가니 말끔하게 닦아놓은 바닥이 나타났다. 지하시설의 입구에 깔린 진흙 바닥은 관리가 된 지 오래되어 수몰된 흔적인 게 분명했다. 남매는 기역으로 꺾인 복도에서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꺾인 복도 너머로부터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매는 숨을 죽여 벽에 달라붙었다.





줄리엣이 벨라의 연구실 밑에서 발견한 것은 용액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결정석을 녹일 용액이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연구를 완성한 상태였고, 심지어 플라스크 속 표본에 그치는 것이 아닌 대량 생산까지 진행한 상황이었다.


벨라가 결정석에 갇히기 전, 더 나아가 마계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벨라는 딱 한 번 줄리엣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여왕님께서는 죽음을 불사하더라도 살려내고 싶은 사람이 있으신가요?”


줄리엣은 잘 못 들었나 싶어 다시 한번 물었지만, 벨라는 “아니에요, 괜한 걸 물었어요.”라며 자리를 피해버렸다. 오늘에야 와서 줄리엣이 그녀의 지하시설을 확인하고 나니, 줄리엣은 벨라가 무언가 알아챘다는 의심에 확신을 뒀다.


결정석 안에 있는 인물은 줄리엣이 아니었다. 오비디언의 복제마법으로 만든 가짜 또한 아니었다. 벨라는 결정석 안에 갇힌 인물이 줄리엣이 아닌 걸 알았기에 그를 꺼내지 않은 것이다.


줄리엣의 모습으로 갇혀있는 인물은 오스먼드가 가진 부활의 오브를 빼앗을 미끼였다. 그는 십몇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과 마을을 떠돌던 고아였다. 그의 이름은 미겔 샌더슨이었다.





하늘에서 눈이 지독히도 퍼붓던 날이었다. 그래도 그날은 미겔이 쓰레기 더미에서 낡은 부츠를 찾아 신은 덕분에 운이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왼쪽 부츠는 밑창이 뚫려있는 탓에 축축한 모래 따위가 틈을 비집고 들어왔지만, 그는 나름 만족했다.


그래도 미겔은 배를 곯아 허기를 채울 것을 찾아야만 했는데, 마침 저녁 시간이 되어 마을 곳곳에서 짭짤하고 고소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미겔은 청각에 온 감각을 집중해 어느 집이 가장 많은 음식을 차렸는지, 또 그걸 먹는 식구들은 얼마나 모였는지 알아보고 있었다. 모인 식구에 비해 음식이 많이 차려져 있다면, 그대로 남길 음식도 많아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저녁 시간이 끝나자, 미겔이 미리 점을 찍어둔 민가에서 부인이 나와 남은 음식물을 눈 속에 파묻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는 남은 음식을 산짐승 따위를 꾀어내는 데 쓰였지만, 이렇게 미겔의 요긴한 식량이 되곤 했다. 마을 사람들도 미겔이 남은 음식을 빼먹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매일 산짐승이 내려오는 것도 아니니 그러려니 하고 무시하는 추세였다. 괜히 간섭했다가 군식구가 딸리는 게 반갑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묻어놓은 음식에는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 미겔은 신경질을 부리며 말했다.


“뭐야! 여긴 내 구역이야! 썩 꺼져!”


상대는 추레한 거적때기를 걸치고 진흙으로 덕지덕지 엉킨 올리브색의 머리를 하고 있어, 딱 늙어 죽어가는 물소 꼴이었다. 미겔은 당연히 그가 이 마을에 새로 온 거지인 줄 알았다. 그는 안타깝게도 정신도 망가져 있었는지, 저 혼자 어물거리며 뜻 모를 혼잣말을 지껄였다.


“벌써 설리반이 가까이 추적해 붙었어. 뺏겨서는 안 돼······. 뺏겨서는 안 돼······.”


“뭐, 뭐야. 괜찮은 거야? 난 하루쯤 굶어도 되니 네가 먹어도 돼.”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미겔이 뒷걸음질을 쳤지만, 이미 거지는 미겔을 노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지! 네가 가지고 있어! 지금 벌써 사용할 생각은 없었지만, 별수 없지! 그렇다면 당장 누굴 되살려내지? 그래! 역시 그 녀석밖에 없어!”


거지가 악력으로 어린 미겔의 턱을 낚아채 작은 구슬을 억지로 삼키게 했다. 삼켜진 구슬은 뱃속을 뒤집어버릴 듯이 날뛰었고, 거지는 손짓 몇 번으로 마법진을 만들어 미겔을 가두었다.


“너, 마법사였어······?”


미겔은 흐릿해지는 시야에 헛걸음치다 넘어져 쓰러져 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아이 하나가 쓰러진 것조차 알지 못한 잠깐의 일이었지만, 오직 줄리엣만이 그 장면을 가감 없이 똑바로 볼 수 있었다.


그날도 인간의 정기를 거두기 위해 인간들 틈에 섞여 있던 줄리엣은, 귀를 자른 엘프가 인간 아이에게 무언갈 삼키게 한 걸 목격했다. 인간 아이는 그대로 기절해 쓰러져 버리고, 누더기 엘프가 사라진 사이에 그대로 방치된 채 누워있었다.


줄리엣은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가 잠을 자고 있는 게 아니니, 의식이 없는 게 분명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엘프가 말했던 ‘되살린다.’라는 표현이 신경이 쓰였다. 만약 죽은 자를 되살릴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그 방법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마침 아이에게 변화가 생기고 있었으니, 줄리엣이 가까이 다가가 그를 관찰했다.


소년의 몸이 슬라임이 증식하듯이 둘로 갈라지고 있었다.





쨍그랑!


“이크!”


르댕고트의 품에서 떨어진 은화가 지하의 공기를 울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그녀는 은화를 급하게 도로 주웠지만, 이미 줄리엣의 상념을 깨트리기엔 충분했다.


줄리엣도, 서러브레드 남매도 서로 긴장 탓에 등골이 뻣뻣해졌다.

모서리 너머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점점 짧아지며, 줄리엣이 남매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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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88화 아무도 네게 세상을 구하란 소린 안 해. 19.12.30 35 1 11쪽
87 87화 해치웠나? 19.12.27 31 1 11쪽
86 86화 마왕성에 온걸 환영하는 바다. 용사여. 19.12.25 29 1 11쪽
85 85화 아파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가련하던지. 19.12.20 33 1 11쪽
84 84화 벨라! 으악! 으아악! 19.12.18 33 1 11쪽
83 83화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구요. 19.12.16 30 1 11쪽
82 82화 저를 데려가세요. 19.12.13 37 1 11쪽
81 81화 방구석에 처박혀있던 쓰레기라고 했다! 19.12.11 30 1 12쪽
80 80화 나는 여왕이야. 19.12.09 34 1 12쪽
79 79화 저는 마왕이 아녜요. 약초꾼이죠. 19.12.06 34 1 11쪽
78 78화 후회할 거면 말썽을 부리기 전에 고민해주세요. 19.12.04 37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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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74화 만수무강하소서. 마왕 폐하. +1 19.11.25 34 1 12쪽
73 73화 에취! 19.11.22 31 1 12쪽
72 72화 일어나셨나요, 달링? 19.11.20 42 1 12쪽
71 71화 드래곤은 아직 한창 잘 시간이라고! 19.11.18 38 1 11쪽
70 70화 삼키라니까요! 19.11.15 34 1 12쪽
» 69화 모두 하나같이 멍청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어. 19.11.13 35 1 11쪽
68 68화 스튜는 좋아하나? 좋아해야 할 거야. 19.11.11 37 1 12쪽
67 67화 그렇군. 하지만, 거절한다. 19.11.08 34 1 12쪽
66 66화 건들면 문다. 19.11.06 40 1 12쪽
65 65화 애는 착해. +1 19.11.04 36 1 11쪽
64 64화 도시락인가, 아폴의? 19.11.01 30 1 11쪽
63 63화 이것은 용사의 데뷔 무대인가. 19.10.30 34 1 12쪽
62 62화 단단히 홀리셨군요. 19.10.28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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