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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품은 꽃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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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6.11 23:29
최근연재일 :
2022.06.19 16:00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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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7
추천수 :
122
글자수 :
132,905

작성
22.06.19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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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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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31화 일본 자객

조선시대로 돌아가 신선하고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역사는 우리 미래의 거울이기도 합니다.




DUMMY

설아가 별일 없이 궁궐로 무사히 들어가게만 된다면, 모든 난제는 일시적이나마 덮어지고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내다봤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방법 외엔 달리 길이 없었다.

“설아가 무탈하게 궁궐로 들어가야 할 텐데. 몸이 허하여 길가에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큰일인데. 설마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그나저나 일본공사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텐데, 그자가 어떻게 나올 건지 참으로 걱정이다.”

그는 자신의 왼팔을 다시 단단하게 묶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왼쪽 팔이 저리고 아팠지만, 총알이 스쳐 지나가면서 얻게 된 깊지 않은 상처인지라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일본공사는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벌겋게 변한 눈으로 부하들에게 고함을 치고 있었다.

“네 놈들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권총도 휴대하고 무술깨나 한다는 자들이, 고작 조선놈 하나를 당하지 못하고, 허망하게 그 계집을 놓치다니, 그게 말이 되냐고?”

“그 조선 놈이 워낙 탁월한 무술 실력을 갖고 있었고, 부지중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당장, 두 연놈이 조선 국왕을 만나기 전에 속히 잡아 들여라! 그리고 앞으로 너희들을 총지휘할 인물을 내가 일본에서 초청했으니 그리 알거라!”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일본공사의 안광이 사납게 번뜩였다.

부하들이 집무실 밖으로 나간 후에, 일본공사는 분을 참지 못하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단검을 책상에 꽂았다. 그는 이를 갈면서 자신을 우롱한 우정을 반드시 죽이고야 말겠다는 말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장악원에서 설아와 대화를 나누던 청련은 긴장한 얼굴을 감추질 못했다. 일본 공사에게 납치되었다가, 우정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는 설아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틀림없이 일본공사가 쥐도 새도 모르게 공격을 해서 우정을 죽이거나 고통 속에 빠지게 할 거라는 예감이 들어서였다. 설아도 그 점을 심히 염려하고 있었다.

“일본공사의 손에 걸려들었으니, 이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그 일본인들은 경복궁 안으로 낭인들을 들여보내 감히 조선의 국모까지 살해한 자들이 아니더냐? 저놈들은 일본제국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는 짐승 같은 자들이다. 이걸 어쩌면 좋으냐? 저놈들은 우정을 잡기 위하여, 너를 희생 제물로 쓰려는 것이다.” 청련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내가 없어지면, 우정 씨도 위험에 빠지는 일이 없게 될 것이옵니다.”

“뭐라? 그게 무슨 말이냐? 네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게야?”

“어차피 저는 죽은 몸이나 다름이 없는데, 저 때문에 우정 씨가 고통을 당하는 걸 이대로 지켜볼 수가 없습니다.”

“어리석은 것아! 네가 사라지거나 죽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일본인들이 조선에 있는 한, 그런 일은 계속 일어나게 될 것이다. 허니, 너는 외출을 금하고 궁궐 안에 숨어있으면 되느니라.”

“길이 보이질 않습니다. 일본 병사들이 궁궐을 지키고 있는데, 숨을 곳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제가 멀리 떠날 것이니, 우정 씨에겐 제가 죽었다고 전해주세요. 그 패 외엔 다른 뾰족한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알겠다. 허면, 당분간 어디 먼 곳으로 가서 숨어있어야 한다. 네가 살아있는 걸 알게 된다면 일본공사나 우정이 너를 찾아 헤맬 것이니, 그것 또한 심히 위험한 일이 될 거야.”

청련은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탄식을 했다. 딸처럼 키운 설아를 오래도록 만날 수 없게 된 것을 생각하니, 가슴도 아프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위기에 빠진 그녀를 살려내고, 세상이 잠잠해진 후에 다시 그를 만나게 해준다면, 둘만의 행복한 삶이 시작될 거라고 여겼다. 이런 험한 일들이 힘을 잃은 조선과 유약한 고종으로 인하여 생긴 재앙이나,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조선의 현실이라고 자위하며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하필이면 우정을 만나 그런 사랑까지 하고, 온갖 우여곡절(迂餘曲折)을 겪으며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하는 그녀가 너무도 가엾게만 여겨졌다.

“그런 고통이 네 운명이라면 어찌하겠느냐? 그 운명에 사로잡히질 말고, 네 힘으로 그 운명을 뛰어넘어야 하느니라. 넌 내가 제자로 삼은 딸이다. 그래서 넌 할 수 있을 것이야.”

청련이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속으로 꾸역꾸역 삼키는 말이었다.


설아는 청련의 도움을 받아 지리산 자락에 있는 작은 초가집으로 떠났다. 그곳에 청련이 잘 아는 지인이 살고 있어서 반갑게 맞아줄 것이니, 연통을 보낼 때까지 그곳에 숨어있으라고 청련은 그녀에게 귀띔을 해주었다. 지리산 자락에 은거하고 있는 설아를 찾아낼 자는 조선 땅에 아무도 없을 거라고 하면서, 안심을 시켰다. 앞으로 삼 년이 되든지 아니면 십 년이 강물처럼 흘러가든지, 그곳에 있다 보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고단한 인생의 고통도 모두 사라지게 될 거라고 여겼다. 그리되면 우정도 평정을 되찾아 큰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그녀는 먼 길을 떠나기 전에 우정의 집이 곳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큰절을 했다. 주변 사람들을 의식해서, 그녀는 가난한 선비의 모습으로 변장을 했다. 설아는 청련이 준 돈과 패물들을 챙겨 들고 지리산 자락을 향해 먼 길을 기어코 떠나고야 말았다.


우정은 한복을 입고 고종을 알현하기 위하여 대문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십여 명이나 되는 자들이 검은 복면을 한 채 그를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탓이다. 그들은 일본도를 허리에 차고 있었는데,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무술의 고수들일 가능성이 컸다. 그들은 일본공사가 보낸 자객이라는 걸 단박 눈치채곤, 그는 서너 걸음을 뒤로 물러났다. 팔에 총상을 입은 몸이라 그들과 싸우는 건, 거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걸 깨닫곤 깊이 심호흡을 했다.

“살아야 한다. 기회를 봐서 멀리 도망쳐야 산다. 그래야 내가 살고, 설아도 살 수 있다.”

그가 마음속으로 웅얼거렸다.

복면 자객 두 명이 일본도를 휘두르면서 다가왔지만, 그는 칼의 방향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던 터라, 좌우로 혹은 뒤로 몸을 움직이며 그들의 칼날을 피하는가 싶더니 오른손으로 그들의 명치와 목을 찌르고 타격하자, 두 명이 고꾸라졌다. 그는 쓰러진 자객의 손에 들려있던 일본도를 움켜쥐었다. 그러곤 나머지 세 놈을 비호처럼 몸을 날려 베어버렸다. 한 줄기 피가 허공으로 뿜어졌다. 도율 권법을 배우면서 터득한 조선검법이었다. 단순한 일본검법과는 달리 조선검법은 속도와 변화의 폭이 상상외로 컸다. 삽시간에 또 한 놈이 그의 칼에 옆구리를 찔려 힘없이 쓰러졌다. 이제 남은 자객의 숫자는 도합 다섯 명이었다. 위협을 느낀 다섯 놈들이 그를 포위하듯 원을 그리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짧은 기합 소리를 내곤 소름 끼치는 바람 소리를 일으키면서 앞쪽에 두 놈을 좌우 대각선으로 베었다. 그 찰나 뒤에서 날아온 칼날이 그의 오른쪽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깨뼈가 끊어지는 것 같은 통증이 생기면서 피가 흘러나왔다. 칼은 쥔 그의 손이 심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그가 칼을 들고 몸을 날려 집 밖으로 튀었다. 그러곤 골목길을 따라 정신없이 달렸다. 자객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서 좁은 골목길들을 포위했다. 그를 포위해서 일순간에 잡자는 무언의 행동이었다. 그가 골목길모퉁이에 서서 자객들의 동태를 파악하려는 순간이었다.

“꼼짝 마라! 움직이면 쏜다!”

권총을 손에 든 자객 하나가 그의 등 쪽에서 총구를 내밀었다.

“아! 뒤에 자객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탄식을 하곤 양손을 천천히 올렸다. 어깨와 팔에서 견디기 힘든 통증이 밀려왔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난 거라고 여기며 그는 벽에 몸을 기대었다. 일본 자객의 총탄을 맞고 골목길에서 죽게 되거나, 아니면 일본공사관의 밀실로 끌려가 고문을 당할 판이었다. 그야말로 작은 희망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절망이 머릿속에서 개미 떼처럼 바글거렸다. 그때였다. 그 자객은 복면을 벗으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우정 오야봉!”

“아니, 당신은 하야시 오야봉이 아니오?”

“내가 어떻게 우정 오야봉을 죽일 수 있겠소이까? 어서 도망가시오. 뒤처리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헌데,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된 거요?”

“우정 오야봉이 떠난 후에 무라카미가 다시 동경에 거대한 조직을 만들었소. 난 무라카미의 후원자인 일본공사를 처단하려고 온 겁니다. 일을 잘 마치게 되면, 난 다시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들어갈 거요. 그곳에서 무라카미 상사를 제거할 수 있는 묘책을 찾아봐야지요.”

하야시가 빙그레 웃으며 마지막 인사를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이다. 이 은혜는 내가 평생 잊지 않을 것이오!”

그는 정신없이 뛰어가면서도 하야시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하야시는 다른 두 명의 자객을 발견하자, 권총으로 그들을 제거했다. 두 발의 총성이 골목 안을 울릴 때, 우정은 이미 보이질 않았다. 하야시는 여유 있는 모습으로 탄창의 총알들을 확인하곤 일본공사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설아는 지리산 자락에 있는 오래된 초가집에 당도했다. 새소리들이 들려오고 시원한 산바람이 불어오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 여인에게 청련이 써준 서찰을 넘겨주자, 반가운 얼굴로 그녀를 맞이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인데, 허리가 꼿꼿하고 걸음걸이가 예사롭지 않았다. 어찌 보면 승하하신 중전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스승 청련의 얼굴로 보일 때도 있는 여인이었다. 혹시 중전과 인척 지간이 아니냐고 물었지만, 그 여인은 엷은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가볍게 내저었다. 청련 스승의 친척이냐고 물어도 그 여인은 잔잔한 웃음만 보이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여기가지 읽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복되고 좋은 일들이 많아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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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제32화 휘몰아치는 희락 +4 22.06.19 61 4 10쪽
» 제31화 일본 자객 22.06.19 42 3 10쪽
30 제30화 끊어진 밧줄 22.06.19 33 3 10쪽
29 제29화 철도부설권 22.06.19 33 3 9쪽
28 제28화 조선의 춤사위 +2 22.06.19 37 3 9쪽
27 제27화 국제파티 22.06.19 34 3 9쪽
26 제26화 노서아 공사관 22.06.19 35 4 9쪽
25 제25화 조선 왕비의 죽음 22.06.19 34 4 9쪽
24 제24화 여우 사냥 22.06.19 31 3 9쪽
23 제23화 서찰 22.06.19 29 3 9쪽
22 제22화 빈 무덤 +1 22.06.19 34 4 9쪽
21 제21화 사냥개 22.06.19 31 3 9쪽
20 제20화 꼬꼬뱅 22.06.19 35 3 9쪽
19 제19화 밑밥 +1 22.06.19 34 4 9쪽
18 제18화 불란서로 가다 +1 22.06.19 33 4 9쪽
17 제17화 밤하늘에 뜬 달 22.06.19 31 4 9쪽
16 제16화 도율 권법 22.06.19 30 4 9쪽
15 제15화 무형의 벽 22.06.19 33 4 9쪽
14 제14화 그의 이름 22.06.19 33 4 9쪽
13 제13화 무서운 싸움꾼 +1 22.06.19 39 5 9쪽
12 제12화 좋은 동지 22.06.19 36 4 9쪽
11 제11화 금상첨화 22.06.19 35 4 9쪽
10 제10화 조선의 학자 22.06.19 40 4 9쪽
9 제9화 동양화 +2 22.06.19 41 4 9쪽
8 제8화 운명 22.06.19 40 4 9쪽
7 제7화 밀담 22.06.19 46 4 9쪽
6 제6화 꽃 사슴 한 마리 22.06.18 48 4 10쪽
5 제5화 가비 차 22.06.18 51 3 10쪽
4 제4화 불란서 공사관 22.06.17 59 4 10쪽
3 제3화 향기로운 꽃과 나비 +2 22.06.17 71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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