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gr***** 님의 서재입니다.

가슴에 품은 꽃신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일반소설

greater
작품등록일 :
2022.06.11 23:29
최근연재일 :
2022.06.19 16:0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368
추천수 :
122
글자수 :
132,905

작성
22.06.19 15:00
조회
29
추천
3
글자
9쪽

제23화 서찰

조선시대로 돌아가 신선하고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역사는 우리 미래의 거울이기도 합니다.




DUMMY

우정이 고종을 알현한 후에, 쏜살같이 달려간 곳은 장악원이었다. 그는 청련에게 설아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청련 스승님! 제가 어떻게 해야 설아를 만날 수 있겠습니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설아를 만나서 무얼 하시겠다는 게요?”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설아를 만나야 합니다.”

“자그마치 오 년 동안이나 우정 씨의 서찰들을 설아에게 전해주는 일을 하면서, 얼마나 내 심장이 두근거렸는지 아시오? 본의 아니게 국법을 어기는 일에 동참하는 꼴이 되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 점은 제가 너무도 죄송하고, 가슴 아프게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꼭 설아를 만나야 합니다.”

“허면, 궁중 무희와 혼인이라도 하겠다는 게요? 두 사람이 다 능치처참을 당해도 좋다는 겝니까?”

“어찌 제가 그런 끔찍한 일을 도모하겠나이까? 다만,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어 그러는 것이니, 넓은 아량으로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우정이 무릎을 꿇고 간절히 빌었다.

“이번 한 번만 기회를 드릴 터이니, 두 번 다시 설아를 만나려는 마음은 오늘부로 접어야 할 것이오. 아시겠소?”

“고맙소이다.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가 환한 얼굴로 웃었다.

“설아가 오늘 궁궐에 있는데, 외출을 할 수 있는 건지 그것은 확실히 모르겠으나, 아무튼 연통을 넣을 터이니 설아의 방에서 조용히 기다리셔야 할 것이오.”

청련은 제자를 불러 궁궐에 있는 설아에게 몰래 연통을 넣도록 주선했다. 아무리 막고 타이른다고 해서, 고개를 숙이고 순종할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헤어날 수 없는 운명의 사슬로 묶였으니, 아무도 그를 막을 수는 없다고 여겼다. 세상이 바뀌어 서양처럼,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젊은 남녀들이 자유롭게 사랑을 할 수 있는 그런 조선이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양반과 천민이라는 신분을 떠나서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혼인도 하고 자식도 낳으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조선이 된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만 같았다. 그녀는 우정을 설아의 방으로 안내했다. 그는 방안에 서서 눈을 감고 편안한 얼굴로 길게 심호흡을 했다. 여전히 그곳은 깨끗하고 그녀의 향기와 고운 숨결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아늑하고 고요한 방이었다.


설아는 장실로부터 청련 스승이 보내온 서찰을 받았다. 그녀는 그 서찰을 읽다가 그만 깜짝 놀라서 ‘아-’ 하고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토록 오래도록 기다리던 우정이 장악원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사실이 도무지 믿겨 지질 않았다. 이것이 대체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질 못했다.

“설아야! 믿겨 지질 않겠지만, 사실이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빨리 장악원으로 와야 해. 우정 씨가 목이 빠져라, 너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장실이 그녀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실은 사방을 둘러보곤 서둘러 장악원으로 향했다. 그녀에게 서찰을 전했다고 청련 스승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얼른 서찰을 궁녀 복 안쪽에 감추곤 경복궁을 빠져나갈 궁리를 했다. 복통이 너무 심하여 의원에 다녀와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그녀는 경복궁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일본군들이 경계를 서고, 정치적으로도 어수선한 시기라, 궁중 무희들은 종종 의원에 다녀온다는 핑계를 대고 외출을 하곤 했었다. 그녀는 무희들의 생활을 담당하는 김상궁에게 몸이 안 좋아 의원을 다녀오겠다고 하면서 경복궁을 빠져나왔다. 뛰어가듯 빠른 걸음으로 그녀는 장악원을 향했다. 어디 아픈 곳이나 다친 곳은 없는 건지 불안해서 마음이 놓이질 않았지만, 그래도 그를 다시 장악원에서 볼 수 있게 된 걸 생각하니 그저 고맙기만 하고 감사할 뿐이었다.

설아가 장악원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장실은 그녀를 그가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그러곤 장실은 양 볼을 붉히곤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녀는 방문 앞에 선 채, 거친 호흡 소리를 가다듬으려고 애를 썼지만 그게 잘되질 않았다. 할 수 없이 그녀는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며 그의 얼굴을 본능적으로 바라봤다.

“이제 조선으로 오셨으니, 다시는 먼 길을 떠나지 마옵소서.”

그녀가 눈물이 글썽글썽한 얼굴로 그의 품 안에 안겼다.

“설아! 다시는 내가 그대 곁을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오. 내가 얼마나 그대를 그리워하며 살았는지 아시오? 그건 마치 죽음의 세월과도 흡사했소. 그대가 없는 세상은 호흡이 끊어진 무덤 속이나 다름이 없었소.”

그가 그녀의 상반신을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이옵니다. 하루하루가 바늘방석이었고, 신명나게 춤을 출 때도 기쁨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힘들고 아픈지, 차라리 자결을 생각할 때도 있었으니까요.”

“그건 절대로 아니 되오! 내가 그대를 지킬 것이니, 두 번 다시 그런 말은 입에도 담지 마시오. 그대가 자결한다는 말을 들으니, 내 심장이 떨리고 다리가 녹는 것 같아 정신이 다 혼미해지는 것 같소.”

“생명을 다 받쳐 죽기까지 사랑합니다.”

“영원한 내 사랑 설아! 그대와 함께라면 내가 지옥 불 속이라도 들어갈 것이니, 누가 우리의 사랑을 막을 수 있겠소.”

그들은 뜨거운 입맞춤을 하고, 서로의 몸을 애무하며 깊은 사랑의 세계로 함몰되어갔다. 격렬하고 애틋하며 온갖 환희로 버무려진 쾌락의 시간들이 그들의 욕망을 불덩이 속에서 녹여내고 있었다. 정식 혼인을 한 부부는 아니었지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아름다운 육신으로, 한 몸을 이룬 그들은 이미 정신적으로도 하나가 되어있었다. 상상할 수 없는 쾌락의 절정을 온몸의 피부로 맛보고 느끼며, 그들은 죽음까지도 초월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열기로 채워진 사랑의 행위를 멈추질 않았다.

긴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들은 피곤이 몰려온 탓인지 잠시 잠속에 빠져들었다. 그러곤 다시 일어나 겉옷을 입고 상기된 얼굴로 밝게 웃었다.

“허면, 큰일을 마치시고 조선으로 돌아와서, 벼슬이라도 한자리 얻게 된 것이옵니까?”

그녀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대역 죄인인 김옥균을 처단했으니, 전하께서 큰 벼슬을 내리게 될 것이오.”

“궁궐을 자주 드나들다 보면, 저를 만날 수도 있겠네요?”

“물론, 우연히 그대를 만날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겠으나, 잘못하면 그것이 도리어 화가 될 수도 있소. 허니, 궁궐 안에서는 절대로 나를 만나서도 안 되고, 눈길조차 보내도 안 될 것이오.”

“그래도 어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는데요.”

“불란서처럼 조선이 바뀔 수만 있다면, 궁중 무희들이나 궁녀들도 사랑하는 사내와 혼인을 할 수 있는 날이 분명코 오게 될 겁니다.”

“대체 불란서는 어떤 나라이옵니까?”

“그곳은 백성들의 천국이라 볼 수 있지요. 젊은 남녀가 길거리에 자연스럽게 포옹을 하고 입을 맞추어도 누구 하나 탓하지 않는 나라요. 양반과 천민도 없고, 그저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혼인을 하는 나라입니다. 젊은 여인들도 젖가슴을 반쯤 내놓고 허리가 잘록한 옷을 입고 다니는데, 처음에는 너무 놀라서 내가 기절을 할 뻔했지요.”

“아무리 자유와 평화가 있는 대국이라도, 여인들이 젖가슴을 반이나 드러내고 다니다니, 그건 너무 망측한 문화가 아니옵니까?”

“그게 아니라, 그만큼 모든 걸 개방한 예술의 나라가 불란서라 볼 수 있는 겝니다. 그런 문화가 조선에서 가능하겠소? 그러고 다니면 당장 풍기문란죄로 옥사에 갇히게 되겠지요. 그래서 조선도 불란서처럼 해 묶은 전통을 털어낼 수 있는 개화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조선에 그런 개화의 미래가 올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면, 저를 불란서로 데리고 가주세요. 그곳에서 나도 불란서 여인처럼 화려한 의상을 입고, 당신을 사랑하며 평생을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하하하! 과연 설아다운 생각이오! 오랜만에 나를 웃게 하시다니요, 가만히 보니 인간의 행복이란 것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아주 가까운 곳에 숨겨져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농을 하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동안 쌓였던 회포를 낱낱이 풀어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근접한 곳에서 머리를 맞대고 살아야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여기면서, 그는 해맑은 웃음을 입가에 담아냈다.




여기가지 읽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복되고 좋은 일들이 많아지시길 기원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가슴에 품은 꽃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2 제32화 휘몰아치는 희락 +4 22.06.19 61 4 10쪽
31 제31화 일본 자객 22.06.19 42 3 10쪽
30 제30화 끊어진 밧줄 22.06.19 33 3 10쪽
29 제29화 철도부설권 22.06.19 33 3 9쪽
28 제28화 조선의 춤사위 +2 22.06.19 37 3 9쪽
27 제27화 국제파티 22.06.19 34 3 9쪽
26 제26화 노서아 공사관 22.06.19 35 4 9쪽
25 제25화 조선 왕비의 죽음 22.06.19 34 4 9쪽
24 제24화 여우 사냥 22.06.19 31 3 9쪽
» 제23화 서찰 22.06.19 30 3 9쪽
22 제22화 빈 무덤 +1 22.06.19 34 4 9쪽
21 제21화 사냥개 22.06.19 31 3 9쪽
20 제20화 꼬꼬뱅 22.06.19 35 3 9쪽
19 제19화 밑밥 +1 22.06.19 34 4 9쪽
18 제18화 불란서로 가다 +1 22.06.19 33 4 9쪽
17 제17화 밤하늘에 뜬 달 22.06.19 31 4 9쪽
16 제16화 도율 권법 22.06.19 30 4 9쪽
15 제15화 무형의 벽 22.06.19 33 4 9쪽
14 제14화 그의 이름 22.06.19 33 4 9쪽
13 제13화 무서운 싸움꾼 +1 22.06.19 39 5 9쪽
12 제12화 좋은 동지 22.06.19 36 4 9쪽
11 제11화 금상첨화 22.06.19 35 4 9쪽
10 제10화 조선의 학자 22.06.19 40 4 9쪽
9 제9화 동양화 +2 22.06.19 41 4 9쪽
8 제8화 운명 22.06.19 40 4 9쪽
7 제7화 밀담 22.06.19 46 4 9쪽
6 제6화 꽃 사슴 한 마리 22.06.18 48 4 10쪽
5 제5화 가비 차 22.06.18 51 3 10쪽
4 제4화 불란서 공사관 22.06.17 59 4 10쪽
3 제3화 향기로운 꽃과 나비 +2 22.06.17 71 4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