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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품은 꽃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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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6.11 23:29
최근연재일 :
2022.06.19 16:00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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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7
추천수 :
122
글자수 :
132,905

작성
22.06.19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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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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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제20화 꼬꼬뱅

조선시대로 돌아가 신선하고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역사는 우리 미래의 거울이기도 합니다.




DUMMY

“그건 김옥균이 청나라의 리홍장과 관계를 맺고, 새로운 정치적 발판을 만들 수 있도록 주선해주는 일입니다. 물론, 그럴듯하게 포장을 잘해서 속인다면, 김옥균은 그 미끼를 텁석 물고 상해로 떠나게 될 겁니다. 그럴 때 상당한 액수의 정치자금을 환전해주겠다며, 그에게 접근해서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상해에서 김옥균을 처단한 후에, 나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일만 잘되면, 우정은 조선으로 들어가 영웅이 될 것이고, 전하의 신임을 받는 고위관직에 오르게 될 겁니다. 허니, 조금도 염려하지 마시오. 전하의 윤허를 받은 중전께서 약조한 일이니, 의심 따위는 모두 버려야 합니다.”

“알겠소이다. 내가 전하의 밀지를 받은 신하가 되겠소. 왕실을 능멸하고 일본인들에게 조선을 넘겨 권세를 얻으려고 했던 대역죄인 김옥균을, 조선의 이름으로 처단하겠소!.”

흥분한 우정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일직은 검지를 입술에 대며 언성을 낮추라고 했다.

“먼 불란서에서 이곳 일본까지 바닷길로 오셨으니, 무척 피곤하실 게요. 사흘간 더 편안하게 휴식을 취한 후에, 김옥균이 있는 곳으로 직접 가서 그자를 만나시오. 먼저 그자의 얼굴을 머릿속에 기억해두세요. 그리고 그자의 신임을 얻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일직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그에게 남겼다.

그는 김옥균에 관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왔지만, 실제로 그가 어떻게 생긴 인물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오직 조선개혁을 위하여 담대히 일어나 갑신정변을 일으킨 자가 김옥균이라, 그를 과소평가하면 안 될 것만 같았다.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인물은 아닐 거라고 여긴 탓이었다.


이일직의 소개를 받은 우정은 김옥균이 주도하는 모임의 장소로 향했다. 개화파를 지지하는 조선인들과 김옥균과 친분이 있는 일본인들도 한자리에 모여 대화를 나누는 곳이었다. 우정은 계획한 대로 한복을 벗고,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막상 양복을 입고 보니 어쩐지 어색하고 갑갑했지만, 김옥균의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도착한 곳은 김옥균이 자주 찾는 단층건물이었는데, 그를 후원하는 일본인들이 마련해준 집이었다. 시원한 정원도 있고 긴 식탁이 놓여있어서, 수십 명이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넓은 곳이었다. 일본인들과 조선인들이 적당히 섞여져 있는 모임이었는데, 그들은 스물여덟 명이나 되었다.

우정은 음식을 나르는 일본 여인에게 이들 중에서 김옥균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녀는 따라오라고 하면서 그를 김옥균에게 안내했다. 조선인들과 선 채로 담화를 나누던 김옥균의 등이 보였다. 체구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골격이 단단하고 몸도 알맞게 균형이 잡힌 인물이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우정을 보고는 호탕한 웃음소리를 냈다.

“아! 우정이 아니오? 이게 대체 얼마 만인가? 헌데, 어떻게 여길 알고 나를 찾아왔소? 하하하!”

김옥균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활짝 웃는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김옥이 아니오? 허면, 당신이 김옥균이었단 말이오?”

“놀라게 해서 미안하오. 우정이 부담감을 느낄까 봐 내 이름을 김옥이라고 속였소이다. 김옥이나 김옥균이나 한 자만 틀리니, 뭐 거짓말이라고 할 수도 없지요.”

“어떻게 그리도 나를 감쪽같이 속인 게요?”

우정이 얼굴을 붉히며 그에게 바싹 다가섰다.

“미안하오. 조선에서 자객을 보내어 나를 죽이려고 한다는 정보를 듣고, 나도 어쩔 수가 없었소이다. 처음에는 나도 우정을 의심했었지요. 우정이 조선의 왕실에서 보낸 자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하하!”

“아무튼, 반갑고 놀라울 뿐이오. 나의 유일한 친구였던 김옥이 바로 김옥균이라니. 나도 그동안 대인을 몰라보고 허접하고 말실수가 많은 멍청이로 산 것만 같아서 내심 후회가 되오.”

“헌데, 불란서에서 법학공부는 잘 마치셨소? 그러고 보니 우정이 일본을 떠난 지 벌써 이년이나 되었소이다. 그간 별고없이 불란서에서 잘 지내신 게요?”

“돌이켜보면 너무도 행복한 세월이었소이다. 혹시, 이일직이라는 분을 잘 아시오?”

“알다마다요. 내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지속적으로 거금을 보내주시는 분이지요. 무역업을 하시는 이일직 사장을 우정이 어떻게 아십니까?”

“그분은 불란서의 인사들과도 친분이 있고, 나를 물질적으로도 많이 후원해주셨소이다. 해서, 지금은 그분을 도우며 친가족처럼 가깝게 지내고 있지요.”

“아! 그러시오? 참 잘된 일입니다. 오래 살다 보니 별일도 많소이다. 조선의 미래를 걱정하던 우정이 그분과 함께 지내고 있다니 말입니다. 하하하!”

“그러게 말이오. 지금, 저녁 식사를 준비하시는 모양인데, 내가 좀 도울 수 있겠소? 불란서에서 배운 요리 솜씨를 선보이고 싶소이다. 내 요리 솜씨가 제법 불란서여인들에게 인정을 받을 만큼 유명했소이다.”

“손님들이 많아서 식당에 일손이 너무 부족할 텐데, 아무튼 고맙소이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우리들의 이야기는 손님들이 다 간 후에, 단둘이 마주 앉아서 밤새도록 하십시다. 까짓것 웃통도 벗어버리고 사내답게 술판을 벌여봅시다. 그게 좋지 않겠소? 하하하!”

“그러지요. 허면, 나는 식당으로 가서 불란서 요리를 만들어 보겠소.”

우정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식당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고 자신을 신뢰하는 김옥균을 보고,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김옥균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휘몰아치자, 그의 마음은 혼란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비록 일본에서 만난 사내였지만, 그 누구보다도 가깝게 지낸 좋은 친구였는데, 그를 처단해야 하는 운명이 너무도 가혹하게만 여겨졌다. 그래도 그는 마음을 정리하면서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좋은 친구 이전에, 김옥균은 갑신정변을 일으킨 대역도가 아닌가. 굶주린 늑대 같은 일본제국을 등에 업고, 전하와 조선을 손아귀에 쥐려고 했던 자가 바로 김옥균이다. 난 전하의 특명을 받은 단순한 신하에 불과할 뿐이다. 그를 처단하지 않는 것은, 내가 대역 죄인을 감싸고 보호한 죄를 짓는 일이다. 그것은 또한 내가 어명을 어긴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 된다는 걸 의미한다.”

우정은 식당 안으로 들어서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각오를 단단히 해서 그런 건지, 그의 눈에서 알 수 없는 안광이 흘러나왔다.


그는 식당 안에서 일을 하는 여자들에게 김옥균이 보내서 왔다고 하면서, 밝은 표정으로 짧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러곤 그는 불란서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쇠고기를 넉넉히 가져오라고 부탁을 하고는, 포도주와 밀가루와 훗추 가루와 싱싱한 과일도 준비해달라고 하면서, 그는 양복의 상의를 후딱 벗었다. 본격적으로 주방장의 일을 하게 된 그는 넓은 식당에서 신속한 동작으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식당 안에서 일을 하던 여자들은 덩치가 큰 조선 사내가 날렵한 솜씨로 칼질을 하고, 기가 막힌 냄새를 풍기며 서양 요리를 만들고 있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불란서에 있을 때, 미식가였던 레가미 관장에게서 배운 음식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후각과 시각과 혀를 자극하는 불란서 요리를 만들면서, 그는 잠시 긴장의 끈을 풀고 편안한 마음으로 콧노래를 불렀다.

그가 만드는 음식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친구였던 김옥균을 위한 불란서 요리였다. 친구를 향한 진심이 담긴 감사와 정을 듬뿍 담은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고 있음을 깨닫곤 그는 가슴이 뭉클했다. 옛날처럼 밤새도록 이야기를 하며 조선의 미래를 걱정했던 때가 문뜩 그리워지기도 했다.

“이 음식은 자네를 향한 마지막 나의 선물이니,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기억을 해주었으면 고맙겠네.”

그가 마음속으로 진심이 담긴 말을 고백했다.

콧등이 찡해서인지 그는 눈을 깜빡이다가 잠시 천정을 향해 고개를 들곤 눈시울을 적셨다. 애초부터 그를 만나는 일이 없었다면,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은 아픔을 겪게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하면서, 그는 홀로 넋두리를 해댔다.


우정 덕분에 김옥균과 초대를 받은 손님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훌륭한 불란서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식재료가 조금 부족했지만, 일본에서 구할 수 있는 음식물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서 불란서의 전통요리인 ‘부흐기뇽’과 ‘꼬꼬뱅’을 식탁에 올렸다. ‘부흐기뇽’은 조선의 갈비탕과 비슷한 맛을 가졌고, ‘꼬꼬뱅’은 포도주에 찐 닭고기 요리였다.




여기가지 읽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복되고 좋은 일들이 많아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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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제32화 휘몰아치는 희락 +4 22.06.19 73 4 10쪽
31 제31화 일본 자객 22.06.19 44 3 10쪽
30 제30화 끊어진 밧줄 22.06.19 36 3 10쪽
29 제29화 철도부설권 22.06.19 35 3 9쪽
28 제28화 조선의 춤사위 +2 22.06.19 40 3 9쪽
27 제27화 국제파티 22.06.19 37 3 9쪽
26 제26화 노서아 공사관 22.06.19 42 4 9쪽
25 제25화 조선 왕비의 죽음 22.06.19 37 4 9쪽
24 제24화 여우 사냥 22.06.19 32 3 9쪽
23 제23화 서찰 22.06.19 32 3 9쪽
22 제22화 빈 무덤 +1 22.06.19 36 4 9쪽
21 제21화 사냥개 22.06.19 33 3 9쪽
» 제20화 꼬꼬뱅 22.06.19 38 3 9쪽
19 제19화 밑밥 +1 22.06.19 36 4 9쪽
18 제18화 불란서로 가다 +1 22.06.19 38 4 9쪽
17 제17화 밤하늘에 뜬 달 22.06.19 35 4 9쪽
16 제16화 도율 권법 22.06.19 32 4 9쪽
15 제15화 무형의 벽 22.06.19 34 4 9쪽
14 제14화 그의 이름 22.06.19 36 4 9쪽
13 제13화 무서운 싸움꾼 +1 22.06.19 40 5 9쪽
12 제12화 좋은 동지 22.06.19 39 4 9쪽
11 제11화 금상첨화 22.06.19 37 4 9쪽
10 제10화 조선의 학자 22.06.19 42 4 9쪽
9 제9화 동양화 +2 22.06.19 46 4 9쪽
8 제8화 운명 22.06.19 44 4 9쪽
7 제7화 밀담 22.06.19 48 4 9쪽
6 제6화 꽃 사슴 한 마리 22.06.18 51 4 10쪽
5 제5화 가비 차 22.06.18 54 3 10쪽
4 제4화 불란서 공사관 22.06.17 63 4 10쪽
3 제3화 향기로운 꽃과 나비 +2 22.06.17 75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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