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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품은 꽃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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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6.11 23:29
최근연재일 :
2022.06.19 16:0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377
추천수 :
122
글자수 :
132,905

작성
22.06.19 13:59
조회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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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9쪽

제17화 밤하늘에 뜬 달

조선시대로 돌아가 신선하고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역사는 우리 미래의 거울이기도 합니다.




DUMMY

하지만 설아라는 조선 무희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우정이 한편으로는 미웠다. 단 한 번도 좋아한다는 말을 하거나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본 적이 없었던 목석같은 사내가 우정이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무관심한 사내를 죽도록 사랑하며 애를 태워야 하는 자신이 초라하고 비참하게 여겨져서, 그녀는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며 서러움을 삼켜야만 했다. 우정에게 편안하게 잘 자라는 말을 하면서 그녀는 그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길게 바라봤다. 잘생기고 정감이 넘치는 귀족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얼굴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우정 씨! 오늘 밤만이라도 설아가 아니라, 게이코를 사랑해주세요! 내가 얼마나 당신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

그녀는 양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쳐내곤 울먹이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오정도로부터 연통을 받은 설아는 해가 저물어가는 저녁에, 약속장소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은 인적이 드문 숲속이었다. 그녀는 두려움과 불안으로 가슴이 콩닥거렸지만, 자신의 약점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는 오정도의 부름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일단 생명줄을 끊어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그를 만나야만 했다. 그녀가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약속장소 앞에 나타났을 때, 그곳에는 오정도가 미리 나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아 씨! 무리한 부탁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약속장소로 나오신 걸 참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간단히 용건만 말하세요.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밤에 인적이 드문 곳으로 궁녀를 불러내는 것도 국법을 어기는 일이 아닙니까?”

“이건 국법을 어기는 죄가 아니라, 상생을 위한 거래일뿐입니다. 설아 씨도 살고, 나도 사는 유일한 길이지요. 헤헤헤!”

오정도가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징글맞게 웃었다.

“대체 일개 궁중 무희에 불과한 내게서 무슨 정보를 얻겠단 말씀입니까?”

“쉬잇- 언성을 낮추세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나도 갑갑해서 하는 말이니, 어서 하실 말씀을 빙빙 돌리지 말고 직접 내게 해보세요.”

“어지간히 성질도 급하십니다. 밤도 긴데 할 말이 오죽 많겠습니까? 헤헤헤!”

그녀는 그의 욕망이 뭔지 쉽게 알 수는 없었지만, 쉽게 다룰 수 있는 그런 인물은 아닐 거라는 예감이 들어 마른 침을 삼켰다.

“혹, 음심을 품고 나를 겁탈하려는 욕망이 있으신 건 아니겠지요? 당신도 국법을 어기고 죽고 싶은 마음은 없으실 것 같은데.”

“그럴 리가요. 난 그저 왕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일본인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들을 듣고 싶은 게요. 그래야 나도 일본공사로부터 넉넉한 돈을 받을 수 있지 않겠소? 집안에 워낙 궁핍하다 보니,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소이다.”

오정도가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이보시오. 내가 임금님과 중전마마의 이야기를 어찌 들을 수 있단 말이오? 지금 일본 공사가 필요로 하는 정보들을 가져오라는 말씀이 아니오? 지금, 나보고 죽으라는 말과 뭐가 다르오? 난 그리할 수 없습니다.”

그녀가 단호하게 거절을 하면서 오정도의 반응을 지켜봤다.

“알고 있소이다. 당장 큰 정보를 가져오라는 게 아니라, 그저 듣고 보고 알게 된 것들을 소상히 적어서 보내거나, 나를 만나게 될 때 전해주면 그뿐이오. 예를 들자면, 중전이 누구를 만났는지 그리고 설아 씨를 불러 뭐라고 했는지, 그런 걸 알려주면 되는 일이오.”

“그런 하찮은 정보들이 왜 필요한 겝니까?”

“말 속에는 숨겨진 뼈가 들어있는 법이오. 그런 말들을 백 번, 천 번, 자꾸만 곱씹다 보면, 그 말속에 숨겨진 진의가 무엇인지를 알아낼 수가 있지요.”

그의 눈이 달빛을 받아 매서운 빛을 반사해냈다.

설아는 오정도가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라는 걸 직감하곤,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자신이 흘리는 말을 타고 자신의 정보가 그에게 들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비록 일본공사와 딱 붙어서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 같은 자였지만, 기회만 주어진다면 조선도 이리저리 떼어서 팔아먹을 놈이라고 여겼다.

일단은 뭐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말을 하고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허면, 뭐든지 내게 부탁을 하시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면 어렵고, 그 범위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을 내가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았습니다. 그리하시지요. 그리고 이 일에 관한 모든 것들을 절대 비밀로 지켜주셔야 합니다. 이 일은 설아 씨 외에 그 누구도 알아선 안 되는 비밀이어야 합니다. 아울러 우정에게도 그걸 말하면 안 됩니다.”

오정도는 정색을 하고 입술 위에 검지를 세우며 일부러 목소리를 조심스럽게 낮추었다. 그녀는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그녀는 무슨 수를 써야 찰거머리 같은 오정도를 떼어내고, 협박질을 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잠시 고민을 해봤다. 하지만 그건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처럼, 반드시 오정도를 제압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거라고 그녀는 믿었다.

“어찌 이리도 손이 예쁘고 아름다우신 게요!”

오정도가 그녀의 손목을 슬며시 잡았다.

“이게 무슨 짓이오?”

그녀가 정색을 하고 눈을 크게 뜨면서 그의 손길을 뿌리치자, 그는 어색한 얼굴로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났다.

“미안하오! 손이 너무 예뻐서 나도 모르게 그런 것이니 용서하시오. 자! 허면, 다음에 만나기로 합시다. 내가 설아 씨에게 연통을 넣을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세요. 헤헤헤!”

그는 그녀의 모습을 곁눈질로 훔쳐보면서 징그러운 웃음소리를 흘려냈다. 그녀는 자존심이 상하고 분노가 치솟았지만, 입을 다물고 사라져가는 오정도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어서 우정이 돌아와야 오정도가 함부로 자신을 대하지 못할 거라고 하면서 그녀는 쓰리고 아픈 가슴을 쓸어내렸다.


숲속을 빠져나와 모친의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그녀는 밤하늘에 뜬 달을 보았다. 동그란 은쟁반처럼 큰 보름달이었다. 달빛을 받은 나뭇잎들과 땅은 마치 은빛 보석가루를 뿌려놓은 듯, 은은한 빛을 냈다. 그녀는 우정이 끼워준 옥 반지를 가만히 어루만져보면서 일본에서 유학을 준비하고 있을 그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봤다. 달빛으로 채색된 호젓한 밤길을 혼자 걸어가면서 그녀는 가슴 한편이 허전하기만 했다. 그 밤길을 쓸쓸하게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우정과 더불어 걷게 된다면, 마냥 기쁘고 즐거울 것만 같았다. 언제 사랑하는 우정과 날마다 속삭이며, 달콤한 신혼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기다림이 있어서 행복하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거라고 하면서, 그녀는 콧노래를 불렀다. 작은 희망이 담긴 기다림 하나가 그녀에게 선한 웃음을 선사하는 것만 같았다. 갑자기 생기는 불안한 마음도 잠재우고, 늘 행복한 마음을 그녀에게 주었던 것은 그녀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는 기다림이었다.

“그분이 올 때까지,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그녀가 눈에 힘을 주고 어금니를 힘껏 앙다물었다.


그녀는 모친의 집으로 돌아와 열린 문 안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았다. 그녀의 모친은 잠이 들었는지 안방에 불이 꺼져 있었다. 살금살금 걸어서 그녀의 방안으로 들어선 그녀는 가느다랗게 숨을 내쉬었다. 만에 하나 자신이 저녁에 외출을 했다가 밤늦게 돌아온 걸 모친이 알게 된다면, 어쩐지 시끄럽게 언성을 높이며 소란을 피울 것 같아서였다.

“아무튼, 다행이다.”

그녀가 옷을 벗으며 살짝 미소를 지어냈다. 들창 안으로 스며든 휘영청 밝은 달빛이 유난히 맑고 뽀얀 그녀의 어깨를 더욱 아름답게 채색하고 있었다.


그 다음날 오전이었다. 오정도는 일본공사관에서 곤도 마스키를 만나고 있었다. 집무실에는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을 뿐이었다. 침묵을 깨고 곤도 마스키가 오정도를 노려봤다.

“요시! 중전이 설아라는 궁중 무희에게 필요 이상으로 손을 내밀고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여러 차례 내실로 불러들였다는 게 사실이라고?”

“그렇습니다. 여러 번 국왕의 내실로 들어가서 춤사위를 선보인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옆에는 중전도 있었답니다.”

“뭔가 중전의 속셈이 있는 거야. 그 궁중 무희를 가까이하려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텐데, 그게 궁금하군.”

“갑신정변의 역도들이었던 김옥균과 박영효의 행적을 중전의 사람들이 뒤쫓고 있다는 정보도 있습니다.”




여기가지 읽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복되고 좋은 일들이 많아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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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제32화 휘몰아치는 희락 +4 22.06.19 61 4 10쪽
31 제31화 일본 자객 22.06.19 42 3 10쪽
30 제30화 끊어진 밧줄 22.06.19 33 3 10쪽
29 제29화 철도부설권 22.06.19 33 3 9쪽
28 제28화 조선의 춤사위 +2 22.06.19 38 3 9쪽
27 제27화 국제파티 22.06.19 35 3 9쪽
26 제26화 노서아 공사관 22.06.19 35 4 9쪽
25 제25화 조선 왕비의 죽음 22.06.19 35 4 9쪽
24 제24화 여우 사냥 22.06.19 31 3 9쪽
23 제23화 서찰 22.06.19 30 3 9쪽
22 제22화 빈 무덤 +1 22.06.19 35 4 9쪽
21 제21화 사냥개 22.06.19 31 3 9쪽
20 제20화 꼬꼬뱅 22.06.19 35 3 9쪽
19 제19화 밑밥 +1 22.06.19 34 4 9쪽
18 제18화 불란서로 가다 +1 22.06.19 34 4 9쪽
» 제17화 밤하늘에 뜬 달 22.06.19 32 4 9쪽
16 제16화 도율 권법 22.06.19 30 4 9쪽
15 제15화 무형의 벽 22.06.19 33 4 9쪽
14 제14화 그의 이름 22.06.19 33 4 9쪽
13 제13화 무서운 싸움꾼 +1 22.06.19 39 5 9쪽
12 제12화 좋은 동지 22.06.19 37 4 9쪽
11 제11화 금상첨화 22.06.19 35 4 9쪽
10 제10화 조선의 학자 22.06.19 40 4 9쪽
9 제9화 동양화 +2 22.06.19 41 4 9쪽
8 제8화 운명 22.06.19 41 4 9쪽
7 제7화 밀담 22.06.19 46 4 9쪽
6 제6화 꽃 사슴 한 마리 22.06.18 48 4 10쪽
5 제5화 가비 차 22.06.18 52 3 10쪽
4 제4화 불란서 공사관 22.06.17 59 4 10쪽
3 제3화 향기로운 꽃과 나비 +2 22.06.17 71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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