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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 님의 서재입니다.

가슴에 품은 꽃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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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er
작품등록일 :
2022.06.11 23:29
최근연재일 :
2022.06.19 16:0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384
추천수 :
122
글자수 :
132,905

작성
22.06.19 09:13
조회
41
추천
4
글자
9쪽

제9화 동양화

조선시대로 돌아가 신선하고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역사는 우리 미래의 거울이기도 합니다.




DUMMY

그렇지 않아도 포도청에서 안 좋은 눈으로 그녀를 주시하고 있는 터라 오히려 잘 되었다고 하면서, 그녀는 그와 헤어지는 아픔을 스스로 달랬다. 삼 년 동안 깊은 산속에서 도를 닦는 사람 마냥 오직 춤과 악기를 배우고 연습하는 일에 전념하다 보면 포도청에서도 끈질기게 조사를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냥 그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다 보면, 언젠가는 마음을 열고 한없이 기뻐할 날이 올 거라고 다짐을 했다. 그녀는 그가 선물로 건네준 옥 반지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일본으로 건너온 우정은 일단 돈을 벌기로 작정을 했다. 불란서로 유학을 가려면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할 터인데, 그걸 마련하자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는 민영소 대감이 소개해준 집을 찾기 위하여 동경거리를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결국, 그가 찾아간 곳은 넓은 정원이 있는 저택이었다. 그곳으로 가게 되면 일자리와 잠자리도 얻게 될 것이니, 사양하지 말고 도움을 받으라는 민영소 대감의 말을 기억해냈다.

다행히도 그곳에는 낯선 일본인이 살고 있었지만, 조선말을 할 줄 아는 자였다. 민영소대감이 보내서 왔다는 말을 듣고, 그 일본인은 밝은 표정을 지어내며 그를 반갑게 대했다.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상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민영소 대감과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이인 것 같았다.

“내 이름은 히데요시라고 하오. 민영소 대감과 나는 거의 친구나 다름이 없는 아주 가까운 사이예요. 허니 마음을 놓고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이곳에서 편안하게 지내십시오. 이층에다 우정 씨가 거할 방도 하나 마련해두었으니, 그곳에서 잠을 주무시면 될 것이고, 식사는 거실에서 하는데, 그게 거북하시면 별도로 상을 차려서 그 방으로 올려 보내줄 수도 있습니다.”

히데요시가 만면에 웃음을 지어내며 푸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저를 가족 식탁에 초대해주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식사를 하겠습니다. 잠만 재워주셔도 감사한 일인데, 식사까지 배려해주신다니 너무도 감개무량할 뿐입니다.”

“아니오.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내가 민영소 대감에게 큰 빚이 있어요. 허니, 우정 씨를 제가 소홀히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고맙습니다.”

“아! 그리고 내 딸 아이를 소개하겠습니다. 게이코 이리 오너라!”

히데요시가 부엌 안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딸을 보곤 가볍게 손짓을 했다.

“하이!”

기모노를 입은 게이코가 조용히 다가와 그에게 머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를 했다.

“게이코! 앞으로 여러 달 동안 우리 집에서 거하게 될 분이시다. 특별히 민영소대감이 추천한 분이니, 넌 이분을 친 오빠처럼 잘 대해야 한다. 알겠느냐?”

“하이! 처음 뵙겠습니다! 전 게이코라고 합니다.”

그녀가 빛나는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난 조선에서 온 우정이라고 하오. 앞으로 잘 부탁하오.”

“실례지만,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이신가요?”

게이코가 귀여운 표정을 지어내며 물었다.

“난 불란서 유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조선의 학자이지만, 가끔 동양화를 그릴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유명한 화가는 아니고요.”

“아! 소데스까? 반갑습니다. 저도 불란서 유학을 준비하고 있지만, 아직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답니다. 부친께서 아직도 그걸 허락해주시질 않아서요.”

그녀가 미간을 약간 찡그리곤 히데요시의 눈치를 살폈다.

“게이코! 여자가 너무 말이 많으면 매력이 없어 보이는 거란다. 내가 불란서 유학을 허락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야. 네가 여자이기 때문이지. 젊은 딸이 홀로 불란서로 유학을 떠나는 걸, 흔쾌히 허락할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게다. 네가 아들이라면 몰라도.”

“참으로 따님의 용기가 대단하시군요. 혼자서 불란서 유학을 떠나려고 마음을 먹었다니요.”

“아직 어리고 철이 없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입니다. 세상이 얼마나 무섭고 냉정한 곳인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자란 탓이지요.”

히데요시가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한 손으로 자신의 목을 어루만졌다.

우연이긴 하지만, 게이코가 불란서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면, 자신도 밥값은 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불란서 사람처럼 불어가 능숙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의사를 전할 수 있는 실력을 어느 정도 갖춘 까닭에 자신감이 생겼던 탓이다.


며칠 후 그는 게이코에게 불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취직할 동안만 불어를 가르치기로 그녀와 구두 약속을 했다. 그녀는 다소곳이 앉아서 그의 가르침을 받으며 불어 실력을 키워나갔다. 첫날은 식당 안에서 불어 공부를 했지만, 일주일 후에는 이층에 있는 그의 방에서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히데요시도 그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어서 안심하고 딸을 그에게 맡겼다. 그녀를 볼 적마다 그는 조선에 두고 온 설아를 떠올렸다. 그가 그림을 그리거나 불어를 공부하는 동안에도 그는 설아의 모습을 수시로 되짚어보곤 했다.

게이코는 두어 달이 넘게 되자, 농도 하고 장난을 치면서 그에게 노골적으로 접근을 해왔다. 조선의 처자와는 사뭇 다른 가치관과 열린 마음을 가진 존재가 게이코였다. 일어는 물론이고 조선어와 영어까지 할 수 있는 게이코를 보면서 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언어학습기능이 남다르게 탁월한 그녀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하여 그는 밤을 새워가며 일어와 불어를 연구해야만 했다. 그로 인해서 그의 불어 실력은 날로 성장을 거듭해갔다. 머리가 복잡해지면서, 온통 설아가 보고 싶어 미칠 것만 같은 고통이 휘몰아치면, 그는 하얀 한지 위에다 능숙한 솜씨로 난을 그리곤 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은 잘 보관해두었다. 훗날 조선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 난을 담아놓은 그림을 설아에게 선물하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우정 오빠! 진짜 난을 잘 그리네요. 이 정도면 백화점에 내다 팔아도 되겠어요. 그걸 팔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예요. 워낙 그림이 좋으니까.”

“과연 그럴까요? 심심풀이로 그린 그림들이라서 백화점에 진열하기엔 너무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손님들이 이걸 보고 나서, 내 그림의 작품성을 인정하게 된다면야,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우정 오빠! 분명코 장담하건데, 이건 백화점에서 팔릴 수 있어요. 아주 고가의 작품이 될 겁니다. 저는 그림은 못 그리지만, 그 작품의 가치가 과연 얼마나 되는 건지 그걸 잘 알거든요. 내다 팔아요. 그 대신 수입금에 2할을 내게 주셔야 합니다.”

그녀가 정색을 하곤 작품들을 하나씩 섬세하게 뜯어보다가 하는 말이었다.

“내 그림들이 팔리기만 한다면 2할이 아니라 수입금에 반이라도 주겠소.”


게이코의 예상은 빗나가질 않았다. 어렵게 동경백화점을 뚫고 들어가 작품을 팔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비싼 값에 그림들이 팔려나갔다. 석 달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우정은 동경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의 동양화를 살려고 돈깨나 있는 자들이 줄을 서곤 했다. 그는 아예 자기 방에서 동양화를 그리곤 했는데, 그 시간은 점점 길어져 갔다. 그는 불란서 파리로 들어갈 비용과 한 달 생활비만 준비된다면, 곧바로 불란서행 상선을 타기로 작정했다.

며칠 후였다. 밤 열 시가 되자 동경백화점에서 일을 마친 우정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인력거를 탔다. 바로 그때였다. 큰길로 나가다가 그는 게이코의 비명을 듣게 되었다. 백화점 옆에 있는 골목길에서 돌려오는 그녀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그는 부리나케 그 골목길을 향하여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길바닥에 쓰러진 게이코를 추행하려고 모여든 불량배들이 모여 있었다.

“뭐하는 놈들이냐? 당장 물러서라!”

불량배들을 향하여 우정은 고함을 쳤다.

“넌 뭐냐? 우리 일에 끼어들지 말고, 조용히 꺼져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덩치가 제일 큰놈이 인상을 쓰면서 그에게 겁을 주었다.

“힘없는 처자에게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게냐? 다섯을 셀 동안 사라지지 않으면 너희들은 죽는다.”

그가 그들에게 천천히 다가서면서 인상을 썼다.

“뭐야? 진짜 겁이 없는 조센징이로군! 우리가 누군지 알고 그러는 거냐? 우리는 동경 야쿠자이다. 죽기 싫으면 그냥 가라.”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는 다섯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몸을 날려 두 놈의 급소를 발로 차서 쓰러뜨렸다. 마지막 한 놈은 번개처럼 손날로 목을 쳐서 기절시켰다. 불량배 세 명은 제대로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조선에서 배운 무술로 야쿠자 세 놈을 보기 좋게 제압하고 나서 그는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여기가지 읽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복되고 좋은 일들이 많아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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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Personacon 9ps
    작성일
    22.12.26 19:27
    No. 1

    '소데스까?' 싫어하면서도 알게 된 일본 말 서넛 중에 하나네요,ㅎㅎ 때마침 토요일이 올해 마지막 날입니다. 한 주가 연말, 따뜻한 시간이 내내 이어지시기를 바랍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2 gr*****
    작성일
    22.12.26 19:38
    No. 2

    만이천봉님 댓글 감사드립니다 ㅎㅎ 늘 건강관리 잘 하시고 평안하시길요, 재밌는 글 많이 연재해주세요 기대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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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제32화 휘몰아치는 희락 +4 22.06.19 61 4 10쪽
31 제31화 일본 자객 22.06.19 42 3 10쪽
30 제30화 끊어진 밧줄 22.06.19 33 3 10쪽
29 제29화 철도부설권 22.06.19 33 3 9쪽
28 제28화 조선의 춤사위 +2 22.06.19 38 3 9쪽
27 제27화 국제파티 22.06.19 35 3 9쪽
26 제26화 노서아 공사관 22.06.19 37 4 9쪽
25 제25화 조선 왕비의 죽음 22.06.19 35 4 9쪽
24 제24화 여우 사냥 22.06.19 31 3 9쪽
23 제23화 서찰 22.06.19 30 3 9쪽
22 제22화 빈 무덤 +1 22.06.19 35 4 9쪽
21 제21화 사냥개 22.06.19 32 3 9쪽
20 제20화 꼬꼬뱅 22.06.19 35 3 9쪽
19 제19화 밑밥 +1 22.06.19 34 4 9쪽
18 제18화 불란서로 가다 +1 22.06.19 35 4 9쪽
17 제17화 밤하늘에 뜬 달 22.06.19 32 4 9쪽
16 제16화 도율 권법 22.06.19 30 4 9쪽
15 제15화 무형의 벽 22.06.19 33 4 9쪽
14 제14화 그의 이름 22.06.19 34 4 9쪽
13 제13화 무서운 싸움꾼 +1 22.06.19 39 5 9쪽
12 제12화 좋은 동지 22.06.19 37 4 9쪽
11 제11화 금상첨화 22.06.19 35 4 9쪽
10 제10화 조선의 학자 22.06.19 40 4 9쪽
» 제9화 동양화 +2 22.06.19 42 4 9쪽
8 제8화 운명 22.06.19 42 4 9쪽
7 제7화 밀담 22.06.19 46 4 9쪽
6 제6화 꽃 사슴 한 마리 22.06.18 48 4 10쪽
5 제5화 가비 차 22.06.18 52 3 10쪽
4 제4화 불란서 공사관 22.06.17 59 4 10쪽
3 제3화 향기로운 꽃과 나비 +2 22.06.17 71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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