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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품은 꽃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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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6.11 23:29
최근연재일 :
2022.06.19 16:0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369
추천수 :
122
글자수 :
132,905

작성
22.06.19 13:18
조회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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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9쪽

제12화 좋은 동지

조선시대로 돌아가 신선하고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역사는 우리 미래의 거울이기도 합니다.




DUMMY

“역시, 중전의 말씀에는 남다른 깊은 배려가 있고, 따스한 정이 듬뿍 담겨 있는 걸 느끼게 됩니다. 대체 어디서 그런 지혜가 생기는 건지 궁금합니다.”

“저는 무능하오나 이렇게 전하를 모시고 살다 보니, 자연적으로 얻게 된 삶의 지혜이기도 하지요.”

중전이 연실 화사한 미소를 지어내며 설아를 넌지시 바라봤다. 어디 하나 흠을 잡을 수가 없는 아리따운 몸매를 가졌고, 얼굴도 곱고 예쁜 데다가 춤사위까지 빼어나니 사내들의 마음을 움켜쥘 수 있는 아이라고 여기며, 중전은 속으로 작은 신음을 삼켰다. 그러다가 문득 민영소 대감의 말을 기억해내곤, 조마간 설아를 전하 앞으로 불러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이용가치가 큰 무희라 더욱 그러했다.


다음날 오후였다. 중전은 김상궁에게 명하여 궁중무희 설아를 고종 앞으로 불러들였다. 너무 시간이 지체되면 검기무를 추던 아름다운 궁중 무희의 모습이 고종의 마음속에서 희미해질 것이라 내다봤다. 그리되면 다 된 죽에 오물을 빠뜨리는 격이니 아무래도 흥이 깨질 것 같아서였다. 모든 사내란 미색을 겸비한 여인 앞에서는 무장이 해제되고, 침을 흘리는 어리석은 아이가 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터라, 중전은 서둘러 설아를 고종 앞으로 불러들였다.

“고종도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내가 아닌가? 그 아이를 보면 절로 웃으면서 양기가 살아날 것이야. 내가 전하를 위하여 그 아이를 데려온 것이니, 전하도 내색을 하지는 않겠지만 속으론 무척 기뻐하실 게야.”

중전이 그녀를 기다리며 가녀린 웃음을 입가에서 담아냈다.


“전하! 궁중무희 설아가 들었사옵나이다.”

이 내관이 방문 밖에서 고종에게 고했다.

“어서 들라 하라!”

고종이 윤허하자, 궁녀 복을 곱게 차려입은 설아가 사뿐사뿐 걸어 들어와, 예를 갖춰 절을 하고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었다. 무슨 일로 부름을 받게 된 것인지 연유는 알 수 없었으나, 그리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아, 설아의 얼굴도 환하게 빛이 났다. 감히 궁중 무희가 전하 앞으로 부름을 받게 되는 일은 없었던 터라, 다소 긴장이 되었지만, 그녀는 용기를 내었다. 고종이 가까이 와서 앉으라는 말을 하자, 그녀는 공손히 고개를 숙인 채 고종 앞으로 다가갔다.

“고개를 들라! 사실, 너를 부른 것은 짐이 아니고, 중전이시다. 네 춤사위가 하도 아름답고 탁월하여 칭찬을 해주라는 부탁을 짐이 받았느니라.”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미천한 소녀의 춤사위를 전하와 중전마마께서 그토록 칭찬해주시니, 그저 황공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아니다. 듣던 대로 넌 남다른 미모뿐만 아니라, 조선 최고의 춤꾼으로 인정을 받고 있으니, 어떤 일이 있어도 전하와 조선을 위하여 죽기까지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부드러운 말이었지만, 뭔가 뼈가 있는 말을 하면서 중전이 그녀를 눈여겨 바라봤다.

“중전마마! 황공하옵나이다. 그저 하찮은 궁중 무희이긴 하오나, 생명이 다하여 죽기까지 전하와 조선을 위하여 헌신할 것이옵니다.”

설아는 고종과 중전을 바라보면서 충성을 다짐했다. 미리 수차례 연습을 했던 일이지만, 그래도 고종 앞에서 큰 실수를 하지 않고, 할 말을 다 한 것 같아서 속까지 시원해졌다.

고종은 용의 형상이 새겨진 왕실의 은장도 하나를 그녀에게 하사했다. 궁중 무희로는 처음으로 받게 된 고종의 하사품이었다. 그것은 왕의 신임과 사랑을 받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중전은 예리한 눈빛으로 그녀의 얼굴과 모양새를 낱낱이 뜯어보면서, 만족한 웃음을 입가에 드러냈다.


우정은 아사히신문사에서 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려고 가까운 식당을 찾아갔다. 너무 이른 시각인지 우동 집 안에는 손님들이 별로 없었다. 그는 사방을 둘러보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러곤 늘 그랬듯이 우동 한 그릇을 주문했다. 잠시 후에 젊은 여자가 우동 한 그릇을 쟁반에 담아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가 가져온 뜨거운 우동 국물을 한 모금 들이마시곤 ‘아! 시원하다.’라고 하면서 소박하게 웃었다. 그의 삶 속에서 인생이 평안하고 기쁘다고 여긴 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모든 불안과 고통을 내려놓고 식사를 할 때만큼은 그런 마음이 조금 회복되기도 했다. 늘 즐겨 찾던 식당의 의자에 앉아, 마음에 드는 음식들을 음미하면서 밥을 먹을 때가 그에겐 작은 천국과 같았다. 비록 낯선 일본 음식들이었지만, 자주 먹다 보니 그런대로 맛있게 먹을 수가 있었다.

“조선에서 오신 분이시오?”

옆자리에 앉아 우동을 먹던 사내가 물었다.

“그렇소만, 어떻게 조선말을 그리 잘하시오? 혹, 당신도 나처럼 조선 사람인 게요?”

“반갑소이다. 난 오래도록 조선의 경성에서 살다 온 사람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이런 타국에서 조선 사람을 만나니 너무도 반갑습니다. 난 조선에서 온 우정이라 하오.”

“난 김옥이라 합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입니다.”

“한때 조선의 미래를 위하여 내 생명까지 받쳤지만, 거사를 실패했소이다. 지금은 거꾸로 조선의 적이 되어 이리저리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만.”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조선을 위하여 희생을 마다하지 않으셨다고 하니, 뭔가 나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것 같소.”

“고맙소이다. 서로 외로운 처지인 것 같은데, 말벗이나 하면서 지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오. 허면,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소?”

“한자리에 앉기만 해도 인연이라 했거늘, 이렇게 타국에서 만나 통성명까지 했으니 의형제처럼 가깝게 지냅시다.”

우정이 불쑥 오른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허어!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보았소이다. 이리도 호탕한 기질을 가진 사내라면, 내가 벗으로 삼아도 후회는 없을 듯하오. 하하하!”

그가 우정의 손을 힘 있게 잡곤 시원하게 웃었다.

김옥이라고 소개했던 사내는 김옥균이었다.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면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어, 그는 일부러 이름을 속였다. 우정을 살펴보니 사내다운 우직함도 있고, 의리도 있어 보이는지라, 김옥균은 좋은 동지를 얻었다고 여기며 속으로 기뻐했다. 혼자 힘들게 사는 것보다 도움이 될 만한 조선인이 곁에 있어만 준다면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데, 적잖은 힘이 될 거라고 여겼다.


그들은 자주 만나서 조선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더군다나 우정이 불란서로 유학을 가서 법학을 공부하고 돌아와서, 조선을 위하여 일을 하겠다는 말을 듣고는 김옥균은 심히 기뻐했다. 어쩐지 방향은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조선의 개화기를 앞당기는 일에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인물이라고 여긴 탓이었다. 게다가 동경의 야쿠자와도 손이 닿아있는 사내이니, 김옥균의 입장에선 힘이 좋고 든든한 오른팔 하나를 더 얻은 셈이었다.

“내가 지금은 오갈 곳이 없는 방랑자가 되고 말았으나, 훗날 조선이 날 필요로 하는 날이 반드시 오게 될 겁니다. 그때가 되면 우정이 나를 도와야 합니다. 우리 서로 힘을 모아서 백성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조선의 개화기를 열어갑시다. 큰 꿈을 갖고 조선을 위한 나랏일을 한번 꿈꿔보자는 겁니다. 하하하!”

김옥균이 빈 술잔을 그의 앞에 내려놓으며 크게 웃었다.

“김옥! 그런 날이 오면 얼마나 좋겠소? 하지만, 조선은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게요. 오백 년의 역사를 가진 조선이 몇 사람의 혈기로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허어! 그러니까, 일본제국의 힘을 빌려 부패한 왕권을 무너뜨리고, 백성들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조선을 세우려는 것이오! 왕권이 터를 잡고 있는 한 조선의 미래는 결코 없을 것이오.”

“나도 새로운 조선은 찬성하오만, 일본제국의 힘을 빌려 왕권을 무력화시키는 일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그건 일본인들에게 밥상을 차려주는 꼴이 될지도 모르지요.”

“물런 그럴 수도 있습니다. 허나, 일본제국을 등에 업고 새로운 조선을 세운 후에, 그들을 다시 물러가게 한다면, 대업을 이룰 수 있지 않겠소?”

“살찐 사슴들을 눈앞에 두고 어찌 배고픈 늑대들이 순하게 돌아가겠습니까?”

“하하하! 안 되는 걸 될 수 있도록 묘책의 다리를 놓는 일이 정치입니다. 맛있는 사슴들을 전부 포기하고, 얼른 동굴로 돌아가도록 정치적 상황을 만들어야지요.”

김옥균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그를 주시했다.




여기가지 읽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복되고 좋은 일들이 많아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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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제32화 휘몰아치는 희락 +4 22.06.19 61 4 10쪽
31 제31화 일본 자객 22.06.19 42 3 10쪽
30 제30화 끊어진 밧줄 22.06.19 33 3 10쪽
29 제29화 철도부설권 22.06.19 33 3 9쪽
28 제28화 조선의 춤사위 +2 22.06.19 37 3 9쪽
27 제27화 국제파티 22.06.19 34 3 9쪽
26 제26화 노서아 공사관 22.06.19 35 4 9쪽
25 제25화 조선 왕비의 죽음 22.06.19 34 4 9쪽
24 제24화 여우 사냥 22.06.19 31 3 9쪽
23 제23화 서찰 22.06.19 30 3 9쪽
22 제22화 빈 무덤 +1 22.06.19 34 4 9쪽
21 제21화 사냥개 22.06.19 31 3 9쪽
20 제20화 꼬꼬뱅 22.06.19 35 3 9쪽
19 제19화 밑밥 +1 22.06.19 34 4 9쪽
18 제18화 불란서로 가다 +1 22.06.19 33 4 9쪽
17 제17화 밤하늘에 뜬 달 22.06.19 31 4 9쪽
16 제16화 도율 권법 22.06.19 30 4 9쪽
15 제15화 무형의 벽 22.06.19 33 4 9쪽
14 제14화 그의 이름 22.06.19 33 4 9쪽
13 제13화 무서운 싸움꾼 +1 22.06.19 39 5 9쪽
» 제12화 좋은 동지 22.06.19 37 4 9쪽
11 제11화 금상첨화 22.06.19 35 4 9쪽
10 제10화 조선의 학자 22.06.19 40 4 9쪽
9 제9화 동양화 +2 22.06.19 41 4 9쪽
8 제8화 운명 22.06.19 40 4 9쪽
7 제7화 밀담 22.06.19 46 4 9쪽
6 제6화 꽃 사슴 한 마리 22.06.18 48 4 10쪽
5 제5화 가비 차 22.06.18 51 3 10쪽
4 제4화 불란서 공사관 22.06.17 59 4 10쪽
3 제3화 향기로운 꽃과 나비 +2 22.06.17 71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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