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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품은 꽃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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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6.11 23:29
최근연재일 :
2022.06.19 16:00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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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6
추천수 :
122
글자수 :
132,905

작성
22.06.19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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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제26화 노서아 공사관

조선시대로 돌아가 신선하고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역사는 우리 미래의 거울이기도 합니다.




DUMMY

고종은 중전을 그리워하다가 중전의 초상화나 사진을 구해보려고 애를 썼다. 적지 않은 상금까지 내걸고 중전의 사진이나 초상화를 구하려고 노력해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결국, 대원군은 빈관 안에 중전의 비단옷들을 넣어 사람의 형상을 만들었다. 그러곤 관 뚜껑에 손수 못질을 했다. 중전이 두 번 다시 살아서 돌아올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그녀의 사망을 만천하에 선포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대원군과 중전이 평소에도 기름과 물처럼 사이가 안 좋았던 사실을 떠올리면서, 고종은 하염없이 괴로워하며 탄식했으나,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사람들의 눈앞에서 안개처럼 사라져버린 중전은 그렇게 사망처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미우라 공사는 조선의 왕비가 녹원의 뜰에서 한 줌의 재로 불태워졌음을 이토 히로부미 총리에게 보고했다.

“짐의 분신과 같았던 중전이 내 눈에 보이질 않으니, 온통 세상이 한 치도 내다볼 수 없는 어둠 속에 갇힌 것만 같습니다. 중전, 그대는 정녕 짐의 곁을 영원히 떠난 것이오?”

고종이 중전의 관 앞에 겨우 서서 독백을 하듯 턱에 작은 경련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의 용안에서 한 줄기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종이 일본인들의 감시를 받고 있었던 터라, 우정은 가까이 나아가 진언을 올릴 수가 없었다. 아무도 고종의 내실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일본 병사들이 엄하게 감시를 하고 있었다. 고종을 독대하기는커녕, 그 근처에 머무르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종은 일본인들이 주는 음식들을 조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중전처럼 자신도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거나 독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고종이 믿을 만한 존재는 평소 가까이 지냈던 엄상궁이었다. 그래서 고종은 그녀가 직접 만들어서 가져온 음식들이 아니면, 도무지 삼킬 수가 없을 정도로 심한 불안증에 빠져있었다. 어떻게 해야 경복궁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며 날 밤을 새울 때도 많았다. 말이 조선의 국왕이지 그가 거하는 곳은 옥사와 흡사했다. 문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상태에서, 고종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고통 속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우정은 날마다 탄식을 하면서, 고종을 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봤으나 방법을 얻지 못했다. 옥새를 가진 고종이 일본인들에게 잡혀있다는 것은 왜놈들이 조선을 탈취한 거나 다름이 없다고 여겼다.

우정은 일본인들을 속이고 고종을 구출하기 위하여 노서아 공사인 베베르를 떠올렸다. 만약 그가 고종을 도울 수만 있다면, 노서아 공관으로 고종을 피신시킬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찰거머리 같은 일본인들을 궁궐 밖으로 몰아낼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청나라는 일본과 대적할 힘을 잃었고, 불란서나 미국은 일본인들과 적이 되어 전쟁을 하게 되는 것을 심히 꺼리고 있었다. 좀 더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가 먹이를 움켜쥐는 것도 나쁘지 않은 전략이라고 생각한 자들이, 불란서 공사와 미국 공사였다. 하지만 노서아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이미 일본은 청나라와 전쟁을 해서 국력이 많이 소모된 상태라, 여차하면 한바탕 일본과 전쟁을 해서라도 노서아의 이권을 챙기겠다는 속셈이었다. 그러한 계획을 낱낱이 알고 있었던 우정은 노서아 공사관이야말로 고종이 은신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장소라고 판단했다.


1896년 2월 11일이었다. 이범진이 노서아의 베베르 공사와 공모하여, 고종과 세자가 경복궁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왔다. 그 전에 베베르 공사는 노서아의 수병 일백 명가량을 경성으로 옮겨, 보초를 서게 했다. 고종이 노서아 공사관으로 오게 될 때, 발생하게 될지도 모를 일본 군사들과의 무력충돌을 의식한 탓이었다. 하지만 큰 어려움 없이 무슨 마술을 하듯, 엄상궁의 도움으로 고종과 세자가 탄 가마는 노서아 공사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일본 병사들의 눈을 속일 수 있었던 것은 고종과 세자가 엄상궁이 타는 가마 안으로 신속히 몸을 숨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설마 여인들이 타는 가마 안에 고종과 세자가 있으리라고는 일본 병사들이 상상치 못한 일이었다. 철통같이 경복궁을 지키던 일본 병사들도 그 가마 안을 수색하지 않았다.

그날로부터 약 일 년 동안은 고종의 옥새가 노서아의 수중에 들어간 것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고종과 옥새를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일본인들은 땅을 치며 후회를 했으나, 그건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한 마디로 일본인들은 닭을 쫓던 개 신세가 되었고, 노서아 공관으로 자리를 옮긴 고종은 두 다리를 펴고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적어도 베베르 공사가 있는 한 노서아 공사관이야말로 조선 땅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여겼다. 그로 인해, 또 한 번의 피바람이 조선 땅에 일어나게 되었다. 일본인들에 의하여 살해된 중전의 사건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고, 민족의 전통과 정기를 말살코자 시행된 단발령은 조선인들의 마음속에 분노의 불을 지피고 말았다. 전국적으로 민중봉기가 일어났고, 일본인들은 평정심을 잃고 당황하게 되었다. 게다가 노서아 공사관으로 어처를 옮긴 고종이 척살해야 할 오적의 명단을 선포하기에 이르자, 일본인들과 친일파 대신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경복궁을 빠져나가던 친일파의 대신들은 분노로 들끓는 백성들에게 포위되어 돌에 맞아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거나, 도망을 치기에 급급했다. 노서아의 베베르 공사와 친분이 두터웠던 이범진과 이완용은 조선의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지만, 김홍집과 정병하는 백성들이 던진 돌에 맞아 사망하였고, 유길준은 일본으로 피신했다.


그 후 친노파 세력들이 조선을 손에 넣고, 큰소리를 치며 다녔지만, 우정은 외세에 의존하여 이루어진 아관파천을 그리 달갑게 여겨질 않았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조선인들의 지혜와 힘으로 일본인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의지가 그의 마음속에서 활화산처럼 솟구쳐 올라오곤 했다. 그래도 조선인들을 핍박하고 말살하려는 일본인들에 비하면, 노서아인들은 조금 선한 구석이 있다고 여겼다. 일본인들보다는 노서아인들이 괜찮아 보였지만, 제국주의적인 야망이 살아있는 한, 노서아도 조선을 집어먹으려는 들짐승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비워낼 수가 없었다. 우정은 마음속으로 고종이 노서아 공사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거처로 옮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겼다. 그는 수시로 아관파천이 아니라 경운궁으로 어처를 옮길 것을 소망하면서 상소문들을 올렸고,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호칭하기를 원했다. 고종의 명칭도 조선의 국왕이 아니라 황제로 칭해야 옳다고 주장했다. 그 상소문은 고종의 마음을 움직였고, 고종 또한 아관파천 이후에 뭔가 새로운 변화를 위한 담대한 행보가 필요한 시점임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조선의 앞날을 걱정하는 대신들도 속히 노서아 공관에서 벗어나, 이제는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가 되어야, 청나라와 일본이나 노서아 같은 대국과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을 거라는 충언을 아끼지 않았다. 고종은 노서아 공관에서 안락하게 지내면서 베베르 공사와 커피를 즐길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친형제지간처럼 정을 나눌 수 있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안일만을 위하여 오래도록 노서아 공사관에 머물러 있는 건 합당치 않다고 여겼다. 밤을 새워가며 고민하다가 조선을 살리고 외세를 밀어내려면, 할 수 없이 어처를 옮겨야 한다고 고종은 마음을 다졌다.


고종이 노서아 공사관에서 거하는 동안에, 노서아에서는 함북 종성과 경성의 금광채굴권과 압록강과 두만강의 산림 채벌권을 비롯하여, 울릉도의 삼림 채벌권도 얻어냈다. 미국은 전등과 전화와 전차 부설권과 경인선 부설권을 따냈다. 일본제국은 제물포에서 경성까지 이어지는 경인선 철도를 몹시 탐을 내었다. 그것은 선박으로 제물포까지 가서 다시 경인선을 타고 경성으로 갈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노선이었다. 부산항에서 경성까지 철도를 타고 가야 하는 경부선 철도는 너무 긴 여정이었다. 하지만 경인선은 제물포에서 경성까지 곧바로 갈 수 있는 기가 막히게 짧고 좋은 철도 노선이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경인선 철도 노선을 손에 넣게 되면 경성을 장악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어서 경의선으로 경성에서 신의주까지 갈 수 있게 된다면, 청나라의 대륙으로 진출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여겼다.




여기가지 읽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복되고 좋은 일들이 많아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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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제32화 휘몰아치는 희락 +4 22.06.19 59 4 10쪽
31 제31화 일본 자객 22.06.19 41 3 10쪽
30 제30화 끊어진 밧줄 22.06.19 33 3 10쪽
29 제29화 철도부설권 22.06.19 33 3 9쪽
28 제28화 조선의 춤사위 +2 22.06.19 37 3 9쪽
27 제27화 국제파티 22.06.19 34 3 9쪽
» 제26화 노서아 공사관 22.06.19 35 4 9쪽
25 제25화 조선 왕비의 죽음 22.06.19 34 4 9쪽
24 제24화 여우 사냥 22.06.19 31 3 9쪽
23 제23화 서찰 22.06.19 28 3 9쪽
22 제22화 빈 무덤 +1 22.06.19 34 4 9쪽
21 제21화 사냥개 22.06.19 31 3 9쪽
20 제20화 꼬꼬뱅 22.06.19 34 3 9쪽
19 제19화 밑밥 +1 22.06.19 34 4 9쪽
18 제18화 불란서로 가다 +1 22.06.19 33 4 9쪽
17 제17화 밤하늘에 뜬 달 22.06.19 31 4 9쪽
16 제16화 도율 권법 22.06.19 30 4 9쪽
15 제15화 무형의 벽 22.06.19 33 4 9쪽
14 제14화 그의 이름 22.06.19 32 4 9쪽
13 제13화 무서운 싸움꾼 +1 22.06.19 38 5 9쪽
12 제12화 좋은 동지 22.06.19 36 4 9쪽
11 제11화 금상첨화 22.06.19 35 4 9쪽
10 제10화 조선의 학자 22.06.19 39 4 9쪽
9 제9화 동양화 +2 22.06.19 41 4 9쪽
8 제8화 운명 22.06.19 40 4 9쪽
7 제7화 밀담 22.06.19 45 4 9쪽
6 제6화 꽃 사슴 한 마리 22.06.18 48 4 10쪽
5 제5화 가비 차 22.06.18 51 3 10쪽
4 제4화 불란서 공사관 22.06.17 58 4 10쪽
3 제3화 향기로운 꽃과 나비 +2 22.06.17 70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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