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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품은 꽃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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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6.11 23:29
최근연재일 :
2022.06.19 16:0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365
추천수 :
122
글자수 :
132,905

작성
22.06.17 20:50
조회
70
추천
4
글자
10쪽

제3화 향기로운 꽃과 나비

조선시대로 돌아가 신선하고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역사는 우리 미래의 거울이기도 합니다.




DUMMY

궁중연회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갈 무렵이었다. 어디선가 신비로운 대금 소리와 장구 소리와 처음 듣는 낯선 악기 소리들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연회석 자리의 앞쪽으로 보이는 넓은 공간 안에 궁중 무희들이 가득 채워졌다. 눈에 확 띄는 무희 의상들을 멋스럽게 차려입은 궁녀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그토록 눈이 빠지게 기다렸던 궁중연회의 축하 공연을 시작했다. 고종과 대신들은 점잖은 모습으로 술잔을 나누었지만, 외국공사들은 놀란 토끼처럼 동그랗게 눈을 뜨곤 무희들의 춤사위에 몰입하느라 바빴다. 신비로운 조선 춤을 추는 궁중 무희들을 생전 처음 보는 외국공사들도 있는 모양이었다. 작은 소리지만 그녀들의 춤사위에 매료되어 ‘원더풀!’을 연발하는 미국공사와 하품을 하는 아이처럼 입을 떡 벌리고 두 눈을 깜빡이면서 감탄하는 외국공사들도 있었다. 조선의 궁중 무희들이 추는 춤에 반했다는 뜻을 그들은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표현을 했다. 그런데, 다른 무희들은 뒤로 물러가고 푸르스름한 연못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공연의상을 차려 입은 젊은 무희가 장구를 메고 나와 뱅글뱅글 돌거나 혹은 오른손에 든 장구채를 하늘하늘 흔들면서 한 마리 나비처럼 매혹적인 춤사위를 선보였다. 말로만 듣던 조선의 장구춤이었다.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다가 살포시 미소를 짓는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던 고종은 온몸이 분해되어 공중으로 후르르 날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 궁중 무희를 보고 더욱 놀란 사람은 우정이었다. 오정도가 부친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시골로 내려가는 통에, 불란서 공사의 통역으로 일을 하게 된 사람이 우정이었다. 그는 불란서 공사 옆에 앉아 조용한 음성으로 통역을 하고 있었던 탓에, 궁중 무희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궁중 무희의 얼굴을 보곤 몹시 놀라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지나가다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오정도의 말이 퍼뜩 그의 뇌리를 자극하고 지나갔다. 장구 춤을 추고 있는 그 무희가 틀림없이 고서들을 파는 서관에서 만났던 처자임을 깨닫게 되었던 까닭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우정은 작은 신음을 목울대 안으로 밀어 넣었다. 조금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지만, 또렷한 눈매에 흑진주처럼 빛을 발하는 검은 눈동자와 앵두같이 붉은 입술이 그의 눈동자에 아로새겨졌다. 몸을 움직일 적마다 드러나는 희고 갸름한 얼굴 그리고 가늘고 긴 목선의 부드러운 움직임이 영락없는 그녀였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자기 앞에 놓여있는 적포도주 한 잔을 단숨에 마셔버리곤 그녀의 춤사위에 시선을 꽂았다. 더군다나 그녀는 그를 알아보았다는 듯이 그와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생긋생긋 웃음꽃을 피워냈다.

‘당신은 천부님이 내게 보낸 하늘의 천사입니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당신을 내 아내로 맞이할 것을, 지금 천부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가 초점을 잃은 눈빛으로 입안에서 그렇게 웅얼거리며, 그 내면의 소리들을 가만히 곱씹었다.


고종은 설아의 춤사위를 눈여겨보면서 오른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툭툭 치거나 발로 장단을 맞추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공사들의 눈빛을 바라보며, 고종은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허어! 공사들이 장구 춤을 추는 무희에게 홀딱 반하여 오금을 펴지 못하니. 양놈이나 조선 사대부 놈들이나 그저 반반한 계집만 보면 개처럼 침을 흘려 대는구나. 도무지 사내들이란 게, 본능만 가진 동물이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허나, 그게 어디 인력으로 막을 수 있는 일은 아니지. 그리도 깐깐한 일본 공사조차도 두 눈에서 안광을 발하고 있으니! 수컷들의 본능이란 어쩔 수 없는 게야! 허허허!’ 하고 고종은 엷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마음속으로는 비웃음이 담긴 속된 말들을 마구 쏟아냈다.

설아는 장구 춤을 마치고 고개와 무릎을 굽혀 애교가 넘치는 단아한 자세로 절을 하자, 고종과 외국공사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우정은 아쉬운 마음으로, 퇴장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이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내게 찾아온 첫사랑이란 말인가? 나도 내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으니, 이걸 어찌하면 좋은가? 천부님! 그 서관에서 만났던 그 궁중 무희를 제발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우정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기도문을 외우듯 자신만 들을 수 있는 작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가 장악원에 당도하여 문 앞에서 머뭇거릴 때였다. 설아의 스승이었던 청련이 대문을 열고 나오며 그를 쳐다봤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경복궁에서 장구 춤을 춘 궁중 무희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청련은 장악원 출신의 무희인 그녀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던 터라 그녀의 이름이 설아임을 그에게 가르쳐주었다. 그는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자 심히 기뻐했다. 그리곤 그녀를 당장 만나게 해달라고 청련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청련은 그의 심중을 꿰뚫어 보고 마음속으로 큰 걱정을 하게 되었다. 쉽게 물러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던 탓이다. 하지만 그의 사랑과 열정은 아무래도 막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자, 그녀는 궁중 무희라 궁 밖으로 쉽게 나올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보름 정도 지나야 장악원으로 올 거라고 알려주었다. 그는 기쁜 얼굴로 청나라 상인에게 얻은 나비 모양의 황금 장신구를 그녀에게 선물로 전해달라고 청련에게 부탁을 했다. 그의 진심이 담긴 황금 장신구를 쳐다보면서 그녀는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어냈다. 그 선물을 그녀가 받을 것인지 아니면 다시 돌려보낼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그의 성의를 봐서 그녀에게 전해줄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고 하면서 청련은 우정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맑고 강한 그의 안광을 느끼면서, 그녀는 알 수 없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쩐지 그로 인해 설아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앞서서 청련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우정은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곤 발길을 불란서 공사관 쪽으로 옮겼다. 보름 동안이나 그녀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해 질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을 알아냈고, 다시 만날 수 있는 희망을 얻게 된 걸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뿌듯해졌다. 우연히 두 번이나 만났으니, 세 번째는 필연이 될 거라고 하면서, 그는 힘을 주어 어금니를 굳게 다물었다.

가만히 되짚어보면 불란서 공사의 통역관으로 일하게 된 것이 너무도 고마웠고, 감사하게만 여겨졌다. 설아를 만나고 그녀와 한 몸을 이룰 수 있는 미래의 꿈을 꿀 수 있어서 더욱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만에 하나 그녀와의 혼인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평생을 독신으로 살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면서, 그는 손바닥에서 통증이 느껴질 만큼 두 주먹을 힘껏 말아 쥐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말을 연거푸 쏟아내다가 그는 잠시 묵상기도를 하는 불란서 신부처럼 두 눈을 조용히 감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장구를 치면서 온갖 앙증맞고 귀여운 몸짓으로 덩실덩실 곡선을 그려내며 화사한 춤을 추고 있는 그녀의 환영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대체 이런 감정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귀신에게 홀린 것 마냥, 내가 스스로 마음을 통제할 수가 없다니.’ 그는 고개를 흔들었지만, 그녀의 환영은 그의 마음속에서 도무지 사라질 줄을 몰랐다.

그날 밤이었다. 설아는 궁중 무희들의 숙소에서 청련이 보낸 선물 보따리 하나를 받게 되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찹쌀떡과 조청을 담은 작은 꿀단지였다. 게다가 비단으로 만든 복주머니까지 보따리 안에 있었다. 그녀는 그 복주머니 안에 든 장신구를 꺼내어 보고는 별안간 어깨를 움츠릴 정도로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것은 예쁜 노랑나비 한 마리의 형상을 보여주는 장신구였다.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었는지 마치 그 나비가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두 개의 더듬이와 몸체의 외형이 반짝이는 황금으로 되어있었다. 한눈에 봐도 그것은 청나라의 왕족들이 사용하는 상당한 고가의 장신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장신구를 가져온 장악원 출신의 무희가 귓속말로 그녀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설아는 그 장신구가 불란서 공사의 통역관인 우정이 보낸 선물이라는 말을 듣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불란서 공사의 통역관 우정이 어찌하여 이런 귀한 물건을 내게 보냈단 말인가?’ 그녀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녀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누가 봐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걸 보고 주변에 있던 다른 무희들이 수군거리면서 부럽다는 듯이 그녀를 넌지시 곁눈질로 바라봤다. 그녀들은 설아를 보고 복도 많다는 말을 쏟아내며 엷은 미소를 입가에 지어냈다. 그녀들 중에 누군가가, 아무래도 그 통역관이 설아를 보고 첫눈에 반해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모양이라고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나비모양의 장신구를 보낸 걸 보면, 필시 너를 향기로운 꽃으로 보고 향기를 찾아 이곳까지 밤에 살며시 찾아오겠다는 뜻이 아닐까?” 설아의 곁에 있던 궁중 무희가 실실 웃었다.




여기가지 읽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복되고 좋은 일들이 많아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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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Personacon 9ps
    작성일
    22.12.09 12:00
    No. 1

    선작해둬야 찾아오기가 쉽겠어요,ㅎㅎ 처음부터 다시 읽어봅니다. 즐겁고 편안한 주말 되세요. 아... 건강하시구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2 gr*****
    작성일
    22.12.09 20:32
    No. 2

    만이천봉님 방문 댓글 감사드립니다 ㅎㅎ 해피하시고 건강한 주말되시길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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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제32화 휘몰아치는 희락 +4 22.06.19 61 4 10쪽
31 제31화 일본 자객 22.06.19 41 3 10쪽
30 제30화 끊어진 밧줄 22.06.19 33 3 10쪽
29 제29화 철도부설권 22.06.19 33 3 9쪽
28 제28화 조선의 춤사위 +2 22.06.19 37 3 9쪽
27 제27화 국제파티 22.06.19 34 3 9쪽
26 제26화 노서아 공사관 22.06.19 35 4 9쪽
25 제25화 조선 왕비의 죽음 22.06.19 34 4 9쪽
24 제24화 여우 사냥 22.06.19 31 3 9쪽
23 제23화 서찰 22.06.19 29 3 9쪽
22 제22화 빈 무덤 +1 22.06.19 34 4 9쪽
21 제21화 사냥개 22.06.19 31 3 9쪽
20 제20화 꼬꼬뱅 22.06.19 35 3 9쪽
19 제19화 밑밥 +1 22.06.19 34 4 9쪽
18 제18화 불란서로 가다 +1 22.06.19 33 4 9쪽
17 제17화 밤하늘에 뜬 달 22.06.19 31 4 9쪽
16 제16화 도율 권법 22.06.19 30 4 9쪽
15 제15화 무형의 벽 22.06.19 33 4 9쪽
14 제14화 그의 이름 22.06.19 33 4 9쪽
13 제13화 무서운 싸움꾼 +1 22.06.19 39 5 9쪽
12 제12화 좋은 동지 22.06.19 36 4 9쪽
11 제11화 금상첨화 22.06.19 35 4 9쪽
10 제10화 조선의 학자 22.06.19 39 4 9쪽
9 제9화 동양화 +2 22.06.19 41 4 9쪽
8 제8화 운명 22.06.19 40 4 9쪽
7 제7화 밀담 22.06.19 46 4 9쪽
6 제6화 꽃 사슴 한 마리 22.06.18 48 4 10쪽
5 제5화 가비 차 22.06.18 51 3 10쪽
4 제4화 불란서 공사관 22.06.17 59 4 10쪽
» 제3화 향기로운 꽃과 나비 +2 22.06.17 71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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