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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품은 꽃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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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6.11 23:29
최근연재일 :
2022.06.19 16:00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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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4
추천수 :
122
글자수 :
132,905

작성
22.06.1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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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제25화 조선 왕비의 죽음

조선시대로 돌아가 신선하고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역사는 우리 미래의 거울이기도 합니다.




DUMMY

“세상이 변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조선의 왕실도 소멸될 겁니다. 불란서나 미국처럼 백성들 가운데 지도자가 뽑혀 조선을 이끌어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전하! 이조 오백 년의 역사를 가진 왕실이 그리 쉽게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제가 살아서 눈을 뜨고 있는 한, 조선의 왕실은 굳건할 것이오니, 아무런 염려도 하지 마옵소서.”

중전이 고종을 위로하기 위하여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나갔다. 그들은 해가 질 무렵까지 철없이 지냈던 어린 시절들을 떠올리며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 비록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인생이 그토록 기쁨과 여유로움으로 채워질 수만 있다면, 힘들고 괴로운 삶조차도 행복해질 것 같았다. 중전은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는 고종을 보면서 가늘게 미소를 지어냈다.


1895년 10월 8일이었다. 조선의 역사 속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끔찍한 사건이, 그날 새벽 6시경에 벌어지게 되었다. 조선 역사의 비극인 을미사변이 일어난 날이었다. 경복궁 안에서 조선의 왕비가 일본 낭인들의 칼날에 살해되는 그야말로 입에 담을 수 없는 처참한 사건이 건청궁에서 벌어졌다.

이노우에 공사가 일본으로 귀국한 후에 이토 히로부미 총리는 군인 출신의 일본공사 미우라를 조선으로 파송했다. 그는 지시받은 각본대로 중전을 시해하기 위하여 일본 낭인들을 이끌고 칼날이 선 일본도를 뽑아 들었다.


우정은 다음날 아침에 경복궁에 들어오면서 기겁을 하고 말았다. 건청궁 쪽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여기저기서 피 냄새가 진동했다. 일본 군인들이 곳곳에 경계를 서고 있었으며, 궁녀들은 사색이 되어있었다. 무슨 일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끔찍한 대형 참사가 벌어진 것만 같았다. 들것에 실려 나가는 사람들을 운반하는 일본 군인들은 중전이 살해되었으니, 조선의 왕실은 끝났다고 하면서 일본말로 빈정거리는 걸 듣게 된, 그는 절망과 분노로 몸서리를 쳐야만 했다.

“일본 놈들에게 중전마마가 살해되었다는 말인가?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조선 땅에서 그것도 건청궁 안에서 중전마마가 일본 낭인들의 칼날에 돌아가시다니.”

그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그는 궁중 무희였던 설아도 혹시 잘못된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그녀의 모습이 떠오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낭인들을 가로막던 대신들과 적지 않은 숫자의 궁녀들이 그들의 칼날에 베임을 당해 죽었다고 했다. 그는 허겁지겁 궁중 무희들의 숙소로 달려갔다. 그녀가 살아있기만을 간절히 소원하면서 그는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무희들이 수군거리면서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설아는 안색이 좀 안 좋았지만, 외형상 전혀 이상이 없어 보였다. 여전히 아름답고 예쁜 얼굴로 그녀는 숙소 밖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는 작은 돌 하나를 그녀의 등 뒤로 살짝 던졌다. 그녀가 작은 돌이 등 뒤로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는 깜짝 놀라서 뒤로 돌아섰다. 그때였다. 그가 얼른 고개를 내밀면서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화들짝 놀란 그녀가 사방을 둘러보고는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조심을 하면서 그가 있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대체 어쩌자고 무희들의 숙소까지 찾아오신 겝니까?”

그녀가 당황한 얼굴로 그에게 귓속말로 야단을 치듯 물었다.

“중전마마께서 일본 낭인들에게 살해되었소. 그걸 알고 있는 게요?”

“예? 중전마마께서 살해되셨다는 말씀이 참말입니까?”

“쉬잇! 목소리를 낮추시오. 아무튼, 설아 씨가 무사하니 다행입니다. 중전마마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누구에게 살해되신 건지 알아봐 주실 수 있겠소?”

“알았어요. 힘이 닿는 데까지 제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허면, 그걸 알아내는 즉시, 내게 연통을 넣어주시오.”

그가 고종이 거하는 건청궁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중전이 일본 낭인들에게 살해되었으니, 고종은 일본공사의 손아귀에 잡힌 거나 다름이 없을 것 같았다. 주변을 보니 일본군들이 무장을 한 채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일본공사였던 이노우에가 계획한 기습작전을 막지 못한 걸 그는 심히 부끄럽게 여겼다. 조선의 중전을 일본인들이 살해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은근히 퍼지고 있었는데,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걸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캐내지 못한 것이 너무도 괴로울 뿐이었다. 어차피 김옥균을 처단하면서 고종의 오른팔이 된 거나 다름이 없었는데, 그런 엄청난 사건을 막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조선을 일본에게 넘겨주게 된 것이, 그에겐 천추의 한이 되었다. 그는 앞으로 조선이 어떻게 될 것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저 원통하고 분한 마음만 앞설 뿐이었다.


설아는 평소 중전의 측근이었던 김상궁을 찾아가 은밀하게 새벽에 일어났던 사건이 뭔지 알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오늘 새벽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옵니까? 새벽에 총소리도 났고, 지금도 온 궁궐 안이 두려움 속에서 술렁거리고 있으니 하는 말입니다.”

그녀가 김상궁의 눈치를 살폈다.

“이건 극비사항인데, 너만 알고 있어야 한다. 중전마마께서 친히 아껴주셨던 궁중 무희라, 내가 특별히 알려주는 것이야.”

“알겠습니다. 제가 들은 말은 절대로 입 밖에 내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래야지! 오늘 새벽에 미우라 공사가 이끄는 일본 낭인들이 삼십여명이나 일본도를 들고 건청궁으로 들어왔다는 게야. 헌데, 중전께서 사진과 초상화를 남김없이 소각시켰기 때문에, 누가 중전인지 찾질 못했던 거지. 해서, 무차별로 궁녀 복을 입고 있는 여자들을 보면 칼을 휘둘러 죽였다고 하더라. 나도 그쪽으로 갔다면 지금쯤 아마도 저세상 사람이 되었을 거다.”

“허면, 중전마마는 어떻게 되셨나요?”

“그놈들이 중전의 얼굴을 모르니, 도망치는 엉뚱한 궁녀 하나를 발로 짓밟고 나서 중전이라고 주장하며, 육신에 상처를 내고 강제로 벌거벗겼다는 게야. 헌데, 중전마마께서도 궁녀 복을 입고 계셨으니까, 필경 그놈들의 칼에 돌아가셨겠지.”

“참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네요. 어떻게 전하가 계신 궁궐 안에서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습니까?”

“그게 다 조선에 힘이 없어서 생긴 일이지. 집에 들어온 도둑놈을 잡을 기운이 없는지라, 그놈들이 겁도 없이 여자들을 벌거벗겨 놓고 겁간도 하고, 눈 뜨고 차마 볼 수 없는 흉악한 짓들을 한 게야.”

“중전마마!”

그녀가 눈시울을 적시며 울먹였다.

많은 궁중 무희들 가운데 유독 자신에게만 사랑을 베풀고, 내실로 초대해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중전의 얼굴을 떠올리곤, 그녀는 어깨를 움츠리고 양손으로 눈을 가린 채 연실 흐느꼈다. 그녀의 입안에 초콜릿 사탕을 넣어주고 환하게 웃었던 중전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터질 것 같은 거친 호흡 소리를 내면서, 그녀의 손가락들 사이로는 맑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되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사건이 건청궁에서 벌어진 건지, 그저 앞이 캄캄하고 불안할 뿐이다.”

김상궁이 한이 맺힌 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일본 정부는 중전이 살해된 사건을 적당히 덮어버리려고 애를 썼으나, 외국의 공사들과 신문사들이 들고 일어나, 조선의 왕비를 살해한 일본의 낭인들을 날카롭게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일파만파로 퍼져나가는 일본인들의 만행은 국제적으로 지탄을 받게 되었다. 일본 정부는 그 무자비하고, 악하기 이를 데 없는 일본 낭인들의 만행을 슬그머니 덮고 일단락 짓기 위하여, 미우라 공사와 조선 왕비 살해사건에 가담한 자들을 잡아 들였다. 그 사건을 일부 몰지각한 일본 낭인들의 소행으로 못 박고, 그들을 모두 일본으로 송환했다. 그들은 히로시마에서 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지시를 받은 대로 형식적으로만 재판을 받았을 뿐이었다. 사형을 당해야 마땅할 낭인들은 감옥 안에서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며, 일본제국의 영웅들로 추앙을 받고 있었다. 고종과 수구파의 인사들과 뜻있는 조선인들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가슴을 치고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통탄할 노릇이었다.


일본제국은 대원군을 앞장세워 구슬리며, 그를 꼭두각시로 세워 조선 왕비의 죽음을 역사 속으로 완벽하게 묻어버리려고 했다. 그들은 온갖 권모술수를 총동원하여, 조선 왕비 시해 사건의 배후에는 대원군이 있었음을 각인시키려고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여기가지 읽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복되고 좋은 일들이 많아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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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제32화 휘몰아치는 희락 +4 22.06.19 61 4 10쪽
31 제31화 일본 자객 22.06.19 42 3 10쪽
30 제30화 끊어진 밧줄 22.06.19 33 3 10쪽
29 제29화 철도부설권 22.06.19 33 3 9쪽
28 제28화 조선의 춤사위 +2 22.06.19 38 3 9쪽
27 제27화 국제파티 22.06.19 35 3 9쪽
26 제26화 노서아 공사관 22.06.19 35 4 9쪽
» 제25화 조선 왕비의 죽음 22.06.19 35 4 9쪽
24 제24화 여우 사냥 22.06.19 31 3 9쪽
23 제23화 서찰 22.06.19 30 3 9쪽
22 제22화 빈 무덤 +1 22.06.19 35 4 9쪽
21 제21화 사냥개 22.06.19 31 3 9쪽
20 제20화 꼬꼬뱅 22.06.19 35 3 9쪽
19 제19화 밑밥 +1 22.06.19 34 4 9쪽
18 제18화 불란서로 가다 +1 22.06.19 34 4 9쪽
17 제17화 밤하늘에 뜬 달 22.06.19 31 4 9쪽
16 제16화 도율 권법 22.06.19 30 4 9쪽
15 제15화 무형의 벽 22.06.19 33 4 9쪽
14 제14화 그의 이름 22.06.19 33 4 9쪽
13 제13화 무서운 싸움꾼 +1 22.06.19 39 5 9쪽
12 제12화 좋은 동지 22.06.19 37 4 9쪽
11 제11화 금상첨화 22.06.19 35 4 9쪽
10 제10화 조선의 학자 22.06.19 40 4 9쪽
9 제9화 동양화 +2 22.06.19 41 4 9쪽
8 제8화 운명 22.06.19 40 4 9쪽
7 제7화 밀담 22.06.19 46 4 9쪽
6 제6화 꽃 사슴 한 마리 22.06.18 48 4 10쪽
5 제5화 가비 차 22.06.18 51 3 10쪽
4 제4화 불란서 공사관 22.06.17 59 4 10쪽
3 제3화 향기로운 꽃과 나비 +2 22.06.17 71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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