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gr***** 님의 서재입니다.

가슴에 품은 꽃신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일반소설

greater
작품등록일 :
2022.06.11 23:29
최근연재일 :
2022.06.19 16:0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370
추천수 :
122
글자수 :
132,905

작성
22.06.19 15:31
조회
37
추천
3
글자
9쪽

제28화 조선의 춤사위

조선시대로 돌아가 신선하고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역사는 우리 미래의 거울이기도 합니다.




DUMMY

오정도는 우정이 거하는 집으로 부리나케 찾아갔다. 그곳은 우정이 김옥균을 권총으로 살해한 대가로 고종이 직접 하사한 좋은 기와집이었다. 그가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우정이 그를 보곤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정도 통역관! 여긴 웬일이시오?”

“사실 내가 긴히 할 말이 있어서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니, 나를 너무 몰아세우지는 마시오.”

오정도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손바닥을 비벼댔다.

“그게 무슨 말이오? 우리 사이에 털어놓지 못할 일들이 어디 있겠소? 어서 들어오시오.”

우정이 그를 안방으로 인도하면서 헛기침을 했다.

“다름이 아니라, 내일 저녁에 일본공사관에서 주관하는 국제파티가 있는 걸 알고 계시오?”

“알고 있소.”

“헌데, 불란서 공사관으로 온 초대장을 상세히 살펴보니, 초청을 받은 자들 가운데 우정 대감이 있는 걸 봤소이다. 허면, 우정 대감도 그 국제파티에 참석하실 건가요?”

오정도가 물었다.

“내 생각엔 일본공사관에서 주관하는 국제파티라서 궁금하긴 하오만, 그곳에 참석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은데.”

“물론 우정 대감이 그렇게 나올 줄은 짐작하고 있었소. 헌데, 조선 무희들 중에서 특별히 설아가 공연을 한다고 하니, 가보고 싶지 않소? 설아는 우정 대감도 잘 아는 조선 최고의 무희가 아닙니까?”

“뭐라? 그게 정말 사실이오?”

“틀림없지요. 일본공사가 조선의 춤사위를 보고 싶다며, 특별공연의 무희로 설아를 직접 지목했다는 말을 내가 소문으로 들었소이다.”

“허면, 몇 시에 국제파티가 시작되는 게요?”

“오후 6시부터 시작인데, 우정 대감도 정말 참석을 하시려는 게요? 허긴, 설아가 공연하는데, 초청을 받은 우정 대감이 빠진다면, 그 여인이 적잖게 섭섭할 텐데요. 안 그렇습니까?”

오정도가 그의 눈치를 살피면서 숨겨둔 비밀을 알고 있다는 듯이, 일부러 실실 웃는 얼굴을 그에게 드러냈다.

우정은 고개를 밑으로 숙인 채,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일본공사가 궁중 무희인 설아를 일부러 지목했다는 것도 뭔가 석연치 않았고, 친일파도 아니고 수구파에 속한 자신을 국제파티에 초대했다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어쩐지 안 좋은 냄새가 풀풀 배어 나오는 것만 같았다. 가만히 돌아가는 상황으로 볼 때, 그건 일본공사 가토 마스오가 은밀하게 파놓은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기도 했다. 명분은 그럴듯한 국제파티의 초청이었으나, 실상은 아무것도 모르는 궁중 무희 설아를 앞세워 자신을 협박하는 거라고 여겼다. 그건 공개적으로 협상을 하자는 패를 자신에게 던진 거나 다름이 없었다.

“가토 마스오! 너는 정말 영리하고, 아주 사악한 놈이로구나!”

우정이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입속말로 혼자 중얼거렸다.

일본공사가 원하는 게 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게 된 것을, 그는 다행스럽게 여겼다. 어쩌면 조선의 국왕을 움직여서 경의선 철도부설권을 일본제국으로 넘겨달라는 요청을 해올 수도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는 할 수 없이 위험부담을 안고, 마치 뜨거운 불 속으로 들어가는 불나방처럼,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어쩔 수 없이 국제파티에 참석하기로 마음을 바꿨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은 그의 마음을 찔러댔다. 그걸 거부한다면 분명코 일본공사가 하수인들을 시켜 설아에게 엉뚱한 짓을 하게 될 것이 뻔했다.

“오정도 통역관이 자주 만나는 가토 마스오 공사에게 가서 전하시오. 내가 국제파티에 참석한다고.”

우정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 전하겠소만, 내가 가토 마스오 공사와 만나고 있는 걸, 우정 대감이 어떻게 알고 있는 게요?”

오정도가 발끈하여 그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물었다.

“전하를 가까이 모시는 내가 어찌 그걸 모르겠소? 오정도 통역관이 불란서 공사관과 일본공사관을 오가며 숱한 정보들을 팔아넘기고 있다는 걸, 나는 전부터 다 알고 있었소.”

“허면, 우정 대감이 언제부터 그걸 알고 있었던 겁니까?”

“오래되었소. 우연히 오정도 통역관이 일본공사관에서 나오는 걸 보곤, 아무도 모르게 뒷조사를 했소이다. 큰돈을 받고 온갖 정보들을 일본 공사에게 팔아넘기곤 했던 걸, 내가 전혀 모를 줄 알았소?”

“설마, 날 추포하여 사헌부에 넘기실 계획을 갖고 계신 건 아니겠지요? 그랬다간 나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진 않을 테니까.”

그를 바라보는 오정도의 눈동자에서 독사처럼 매서운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나를 옭아매려는 일본공사 가토 마스오의 속셈이 대체 무엇이오? 나를 이용하여 감히 전하의 마음을 움직여보겠다는 게요?”

“그건 나도 모르겠소.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일본공사가 우정 대감을 그리 곱지 않은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겁니다. 그걸 잊지 마시오. 아무튼, 범사에 조심을 하는 게 좋을 것이오. 지금은 나라도 어수선하고 정치적으로도 상당히 어려운 고비라 여겨져서 하는 말이오?”

오정도가 그를 쳐다보면서 점잖게 타이르는 윗사람처럼 허세를 부렸다.

“조선은 그리 쉽게 일본 제국에게 굴복하지 않을 거요. 가서 일본 공사에게 전하시오. 나, 우정은 사나 죽으나, 오직 전하와 조선을 위하여 목숨을 드릴 각오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걸.”

우정은 오정도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조선을 버리고 매국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를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알겠소이다. 그리고 나에 관한 사실들은 우정 대감만 알고 있으시오. 다른 사람에게 내가 일본공사와 한 통속이라는 걸 절대로 발설해선 안 되오. 그 이유는 우정 대감과 설아가 더 잘 알고 있겠지만.”

오정도는 그에게 비밀을 지켜달라는 말을 남기곤 소리 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장악원에서 청련을 만난 설아는 서로 마주 보고 흥겨운 춤사위로 대결을 하고 있었다. 설아가 스승을 뛰어넘는 놀라운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실제로 느끼면서, 청련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그동안 외동딸처럼 키우며 수석제자로 삼아, 온 정성을 쏟아부은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청련과 설아의 춤사위는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탁월하고 아름다웠다. 청련은 노련한 춤 맛을 우려내어 손끝에서 발끝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곡선의 흐름을 연출해냈다. 마치 깊은 산중에 불어오고 있는 신선한 바람 마냥 신선하고 시원하게 연출되는 춤사위였다. 그야말로 흐트러짐이 전혀 없는 맑고 아름다운 기운을 넉넉하게 담아놓은 전통적인 춤사위였다.

설아는 변화무쌍한 곡선의 흐름과 장단에 맞추어 흘러가는 춤사위가 끊어질 듯 이어지고, 머무르는 듯 펼쳐지는, 화려한 손발의 움직임으로 인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춤은 어느 부분에 한 점을 더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하나를 뺄 수도 없을 만큼 완벽한 춤의 절정을 이룬 놀라운 달인의 춤사위였다.

“설아야! 이젠 내가 조선 춤으로 너를 뛰어넘을 수가 없구나. 그저 놀랍고 대단하다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구나!”

청련이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천천히 닦아냈다.

“스승님! 과분한 말씀이옵니다. 감히 제가 어떻게 조선 최고의 춤꾼이신 스승님을 능가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다. 그리 겸손할 필요까지는 없다. 네가 누구인지 그걸 똑바로 알고,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조선 춤의 전통과 혼을 이어가야 하느니라. 내 말의 뜻을 알겠느냐?”

“예! 스승님!”

“오늘 저녁에 있는 특별공연에서도, 조선에서 가장 아름다운 네 춤사위를 풍성하게 선보여야 한다. 세계 각국의 공사들뿐만 아니라, 일본공사도 오백 년의 전통을 가진 조선의 역사가 담긴 춤사위를 보고, 깊은 감동 속에 빠져들도록 만들어라.”

“알겠습니다.”

“조선을 짓밟으려는 악한 마음을 아름다운 춤사위의 기로 낱낱이 녹여내어, 그가 마음속으로 무릎을 꿇게 만들어야 할 것이야.”

“예!”

설아는 청련의 말을 가슴에 새겨넣었다. 아름답고 화려한 조선의 춤사위로 국제파티에 참석한 공사들과 일본 공사에게 깜짝 놀랄 무언의 감동을 줄 수 있게 될 거라고, 그녀는 스스로 확신했다. 언어는 달라도 아름다운 춤과 악기 소리로 형상화된 조선의 춤사위를 보면,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스스로 감동을 받아 마음의 문이 열릴 거라고 믿었다. 그런 내적인 흥과 감동을 깊이 되새김질하게 된다면, 짐승처럼 포악한 마음도 깨끗하게 정화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녀는 의심치 않았다.

설아는 청련의 스승이었던, 백련의 이야기를 되짚어보았다. 백련은 자신의 춤에 도취 되어 깊은 산속에서 사흘 동안 음식을 먹지 않고, 생수로 목을 적시며 춤만 추다가 홀연히 안개처럼 사라졌다고 하는 말을, 스승 청련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여기가지 읽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복되고 좋은 일들이 많아지시길 기원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가슴에 품은 꽃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2 제32화 휘몰아치는 희락 +4 22.06.19 61 4 10쪽
31 제31화 일본 자객 22.06.19 42 3 10쪽
30 제30화 끊어진 밧줄 22.06.19 33 3 10쪽
29 제29화 철도부설권 22.06.19 33 3 9쪽
» 제28화 조선의 춤사위 +2 22.06.19 38 3 9쪽
27 제27화 국제파티 22.06.19 34 3 9쪽
26 제26화 노서아 공사관 22.06.19 35 4 9쪽
25 제25화 조선 왕비의 죽음 22.06.19 34 4 9쪽
24 제24화 여우 사냥 22.06.19 31 3 9쪽
23 제23화 서찰 22.06.19 30 3 9쪽
22 제22화 빈 무덤 +1 22.06.19 34 4 9쪽
21 제21화 사냥개 22.06.19 31 3 9쪽
20 제20화 꼬꼬뱅 22.06.19 35 3 9쪽
19 제19화 밑밥 +1 22.06.19 34 4 9쪽
18 제18화 불란서로 가다 +1 22.06.19 33 4 9쪽
17 제17화 밤하늘에 뜬 달 22.06.19 31 4 9쪽
16 제16화 도율 권법 22.06.19 30 4 9쪽
15 제15화 무형의 벽 22.06.19 33 4 9쪽
14 제14화 그의 이름 22.06.19 33 4 9쪽
13 제13화 무서운 싸움꾼 +1 22.06.19 39 5 9쪽
12 제12화 좋은 동지 22.06.19 37 4 9쪽
11 제11화 금상첨화 22.06.19 35 4 9쪽
10 제10화 조선의 학자 22.06.19 40 4 9쪽
9 제9화 동양화 +2 22.06.19 41 4 9쪽
8 제8화 운명 22.06.19 40 4 9쪽
7 제7화 밀담 22.06.19 46 4 9쪽
6 제6화 꽃 사슴 한 마리 22.06.18 48 4 10쪽
5 제5화 가비 차 22.06.18 51 3 10쪽
4 제4화 불란서 공사관 22.06.17 59 4 10쪽
3 제3화 향기로운 꽃과 나비 +2 22.06.17 71 4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