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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 님의 서재입니다.

가슴에 품은 꽃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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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6.11 23:29
최근연재일 :
2022.06.19 16:00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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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22
글자수 :
132,905

작성
22.06.19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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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제21화 사냥개

조선시대로 돌아가 신선하고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역사는 우리 미래의 거울이기도 합니다.




DUMMY

김옥균은 그가 만든 불란서 요리를 맛보곤 감탄사를 연발하며, 세상에서 제일 맛있고, 품격 있는 요리를 먹었다고 하면서 기쁨을 감추질 못했다.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고 좋아하는 김옥균을 보면서, 그는 미소를 지었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쓰리고 아파왔다. 그의 가슴에 총탄을 박아야 하는 고통이 그의 마음을 쉴 새 없이 밟고 짓눌렀던 까닭이었다. 김옥균의 사상을 담은 짧은 연설을 끝으로 저녁 모임은 막을 내렸다. 융숭한 대접을 받은 손님들은 만족한 표정으로 서로 인사를 하고는 그 대문 밖으로 사라졌다. 김옥균이 초대한 손님들이 다 나간 후에, 그들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대화의 장을 펼쳤다. 김옥균은 일본에서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왔는지를 전했고, 우정은 불란서에서 겪고 배운 삶과 문화를 낱낱이 쏟아놓았다. 이야기의 흐름이 얼마나 흥미로웠는지 그들은 다음날 새벽까지 그 식탁에서 일어날 줄을 몰랐다. 정치적인 적이 아니라, 순수한 친구의 눈으로, 그들은 자신의 사상을 모두 꺼내놓고 침을 튀겨가며 토론을 했다. 김옥균은 개화파의 입장에서 조선을 개혁시키려고 했고, 우정은 조선의 왕실을 중심으로 해서 점진적이고 자체적인 개혁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날이 훤하게 밝아올 무렵에야, 그들은 김옥균의 방으로 자리를 옮기곤 힘없이 요 위로 쓰러졌다. 그러곤 약속이라도 한 듯이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기 위하여 큰 대자로 누워 피곤한 눈을 감았다.

“미안하지만, 나도 잠시 눈 좀 붙이고 가야겠네.”

우정이 반쯤 감긴 눈으로 겨우 일을 열었다.

“안심하고 푹 주무시게. 해가 중천에 떠야 겨우 일어나게 될 것 같으니, 그때까지 무조건 잡시다. 그리고 나랑 점심도 먹고 난 후에 가야, 내 마음도 한결 가볍고 편할 것 같소. 어제는 수고가 많으셨소.”

김옥균이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장악원에서 스승 청련을 만난 설아는 가슴이 콩닥거렸다. 조만간 조선으로 가게 될 거라는 장문의 서찰을, 우정으로부터 받은 터라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그냥 부푼 가슴으로 그를 만나게 될 날을 기다리며, 서찰을 반복해서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가 그렇게도 애타게 기다리던 우정이 드디어 조선으로 온다는 편지냐?”

청련이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예! 지금은 우정 씨가 일본에 있는데, 곧 청나라 상해로 가서 큰일 하나를 잘 끝낸 후에야 다시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답니다.”

“그래? 허면, 큰일이란 게 대체 무엇을 말하는 건지 넌 알고 있는 게냐?”

“그건 비밀이라 함부로 언급할 수가 없다고 하네요.”

“어쨌거나 우정이 조선으로 돌아온다니 내 마음이 다 설레는구나. 허니 너는 얼마나 더 가슴이 벌렁거리고 흥분이 되겠느냐? 그래도 정신 줄을 놓아버리면 안 된다. 넌 아직도 궁중 무희라는 걸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해.”

청련 스승이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인물 하나는 너무도 곱고 아름다우나, 설아의 인생도 참 기구하고 가련하다는 말을 하려다가 청련은 헛기침을 하곤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도록 배려하기 위해서였다. 그토록 긴 세월 동안 오직 한 사내만을 마음에 품고 지극정성으로 기다려온 설아의 마음을 헤아려봤다. 그 인연이 결코 악연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진정 좋은 만남으로 잘 마무리되기만을 청련은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설아가 모친의 집으로 가기 위하여 장악원을 나왔다. 그녀가 발길을 돌려 한참 걸어가다가 골목길로 접어들 때였다.

“설아 씨! 어디를 그렇게 바쁜 걸음으로 가는 거요? 나 오정도요!”

골목길 한 쪽 모퉁이에 숨어있던 오정도가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여긴 어쩐 일이시오?”

“내가 설아 씨를 찾아오는 이유가 달리 있겠소이까? 일본공사가 바뀌고 나서, 아주 나를 달달 복고 있어요. 국왕과 중전이 요즘 무슨 계획을 갖고 있는지 알아오라고 하니, 낸들 어쩌겠소? 요번에는 뭐 하나 큰놈으로 던져주셨으면 하오만.”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김옥균과 박영효를 처단하기 위하여 일본으로 자객을 보냈다는 말을 얼핏 들은 것 같습니다. 그 정도면 일본공사가 긴장할 큰 정보가 될 겁니다.”

“국왕과 중전이 김옥균과 박영효를 처단하려고 자객을 보냈다니, 이거야말로 큰 고기 하나가 내 그물에 걸린 게나 다름이 없지. 헤헤헤!”

“허면, 나는 이만 가보겠소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우정 씨가 조선으로 올 겁니다. 그때가 되면 나를 찾아오지 마시오. 내 말을 명심하지 않으면 당신도 감당하기 어려운 큰 화를 당하게 될 게요.”

그녀가 오정도에게 일침을 가하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알겠소이다. 대쪽 같은 우정의 성품을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나도 생명을 보전하려면 언행을 조심해야지요. 그렇다고 우리의 거래가 모두 끝난 건 아닙니다.”

“허면, 어쩌자는 게요?”

“나도 생각이 있으니, 아무런 염려도 하지 마시오. 내가 누굽니까? 천하의 오정도라 그 말이오. 헤헤헤.”

오정도가 힐끔 그녀를 바라보곤 징그럽게 웃었다.

그녀는 오정도가 사라진 후에 길게 한숨을 토해냈다. 거머리처럼 붙어서 자신을 괴롭히는 악마 같은 자를 어떻게 제거해야 좋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함부로 나섰다간 우정이 위험하고, 훗날 그 비밀을 우정이 알게 되면 감당키 어려운 큰 사건이 생길 것만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면초가에 빠진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슬퍼서, 그녀는 울음 섞인 신음을 하염없이 쏟아냈다.


일본공사관에는 살벌한 분위기가 깔려있었다. 새로 부임한 일본공사는 이노우에 가오루였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도맡아 처리했던 일본의 거물 정치인이자, 조선을 삼키려고 혈안이 된 야수와 같은 자이기도 했다.

“뭐라? 국왕과 중전이 감히 일본 땅에 허락도 없이 자객을 보냈단 말인가?”

“제 오른팔이나 다름이 없는 궁중 무희를 통해서 직접 듣게 된 정보라서, 틀림이 없을 것이옵니다.”

“요시! 허면 이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까? 당장, 김옥균과 박영효를 보호하기 위하여 군사들을 보내야 하는가?”

“제 생각에는 중전이 자객을 보내어 사건을 저지르게 방치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 칼이나 권총을 든 자객들을 현행범으로 추포해서, 그걸 빌미로 하여 국왕과 중전의 숨통을 단숨에 옭아매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흐음! 그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지. 허나, 이미 조선에서 대역 죄인이 된 김옥균과 박영효를 우리 일본 정부가 굳이 보호해야 할 의무는 없지. 이빨 빠지고 사냥을 못하는 늙은 개는 빨리 버려야 해. 비싼 밥만 축내거든. 푸하하하!”

이누우에 공사가 살기를 띈 눈빛으로 듣기 거북한 웃음소리를 냈다.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오정도는 이노우에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아부를 했다. 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무서운 정치인이라고 여기며, 그는 마른 침을 삼켰다. 어설프게 이노우에 공사를 대하다가 목숨까지 위험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음을 직감한 오정도는 본인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자네는 조선인인데 어찌해서 적국인 일본제국에 그토록 충성하는 건가?”

“부패하고 무능한 조선의 왕실이 존재하는 한, 조선의 미래는 없다고 봅니다. 머지않아 일본의 속국이 되어 짐승처럼 살아야 하는 존재들이 조선인들입니다. 해서 저는 일본인으로 신분을 바꾸고, 대 일본제국을 위하여 목숨을 희생하겠다는 각오로 일하고 있습니다.”

무대에선 광대처럼 오정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동자세로 언성을 높였다.

“요시! 그런 불변의 정신자세로 대일본제국을 위하여 헌신하도록 하게.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 자네는 조선인들을 관리하는 고위층 인사로 신분세탁이 될 테니까.”

“하이! 그날까지 이노우에 공사님을 위하여, 그리고 대일본제국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이 한목숨을 기꺼이 드리겠습니다.”

오정도는 할복을 각오하고 출전하는 일본 병사처럼 그렇게 충성을 다짐했다. 그는 실제로 이노우에의 사냥개가 된 걸 은근히 자랑스럽게 여겼다.

오정도는 일본공사관을 빠져나와, 불란서 공사관 쪽으로 향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조선의 미래가 존재하지 않았다. 일본이나 청나라 그리고 노서아와 같은 대국의 밥이 되어 찢겨나갈 운명을 가진 조선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면서 자신을 위로했다. 그는 수년 내에 일본제국이 조선의 주권을 강탈하고 마음대로 조선을 주무를 수 있는 세상이 오게 될 거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여기가지 읽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복되고 좋은 일들이 많아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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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제32화 휘몰아치는 희락 +4 22.06.19 61 4 10쪽
31 제31화 일본 자객 22.06.19 42 3 10쪽
30 제30화 끊어진 밧줄 22.06.19 33 3 10쪽
29 제29화 철도부설권 22.06.19 33 3 9쪽
28 제28화 조선의 춤사위 +2 22.06.19 38 3 9쪽
27 제27화 국제파티 22.06.19 35 3 9쪽
26 제26화 노서아 공사관 22.06.19 35 4 9쪽
25 제25화 조선 왕비의 죽음 22.06.19 35 4 9쪽
24 제24화 여우 사냥 22.06.19 31 3 9쪽
23 제23화 서찰 22.06.19 30 3 9쪽
22 제22화 빈 무덤 +1 22.06.19 35 4 9쪽
» 제21화 사냥개 22.06.19 32 3 9쪽
20 제20화 꼬꼬뱅 22.06.19 35 3 9쪽
19 제19화 밑밥 +1 22.06.19 34 4 9쪽
18 제18화 불란서로 가다 +1 22.06.19 34 4 9쪽
17 제17화 밤하늘에 뜬 달 22.06.19 32 4 9쪽
16 제16화 도율 권법 22.06.19 30 4 9쪽
15 제15화 무형의 벽 22.06.19 33 4 9쪽
14 제14화 그의 이름 22.06.19 33 4 9쪽
13 제13화 무서운 싸움꾼 +1 22.06.19 39 5 9쪽
12 제12화 좋은 동지 22.06.19 37 4 9쪽
11 제11화 금상첨화 22.06.19 35 4 9쪽
10 제10화 조선의 학자 22.06.19 40 4 9쪽
9 제9화 동양화 +2 22.06.19 41 4 9쪽
8 제8화 운명 22.06.19 41 4 9쪽
7 제7화 밀담 22.06.19 46 4 9쪽
6 제6화 꽃 사슴 한 마리 22.06.18 48 4 10쪽
5 제5화 가비 차 22.06.18 52 3 10쪽
4 제4화 불란서 공사관 22.06.17 59 4 10쪽
3 제3화 향기로운 꽃과 나비 +2 22.06.17 71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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