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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품은 꽃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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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6.11 23:29
최근연재일 :
2022.06.19 16:0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373
추천수 :
122
글자수 :
132,905

작성
22.06.19 14:11
조회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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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9쪽

제18화 불란서로 가다

조선시대로 돌아가 신선하고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역사는 우리 미래의 거울이기도 합니다.




DUMMY

“그들은 왕권을 위협하는 무리들이었어. 그래서 중전이 어떤 형태로든지 처단을 하려고 움직였을 것이야. 어쨌거나 빨리 그 정보를 정확히 알아내도록 하게.”

“하이! 제가 반드시 그 비밀을 알아내어 곤도 마스키 공사님께 상세하게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오정도가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이면서 하는 말이었다.

“자! 이건 수고비로 주는 거니까, 약소하지만 받게나.”

일본 공사가 화폐가 든 두툼한 봉투 하나를 오정도에게 건네주었다.

오정도는 돈 봉투를 안주머니에 넣고, 간사한 웃음으로 안면을 도배한 채 일본공사관 밖으로 나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후에 그는 얼른 골목길로 들어가 봉투에 든 돈을 확인하곤 야릇한 웃음을 입가에 담았다. 경복궁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손바닥처럼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열 배 이상의 수고비를 받게 될 날이 곧 오게 될 거라고 오정도는 속으로 흥얼거렸다.

이제 궁중 무희로 국왕의 총애를 받는 설아까지 그의 손안에 넣게 되었으니, 그는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자신의 미래는 돈벼락을 맞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여기며, 텅 빈 골목길에서 그는 큰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이 계획대로 여러 가지 일들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만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돈만 있으면 낸들 못할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나도 고관대작 부럽지 않은 큰 부자가 되어, 보란 듯이 떵떵거리며 살게 될 것이다. 일본인들이 조선을 삼켜도 난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 다른 염려거리는 하나도 없지. 헤헤헤!”

그는 불란서 공사관을 향하여 발길을 돌렸다. 우정이 일본으로 떠난 후에 이런저런 일거리들이 많아져 바쁜 탓이었다. 그래도 심성이 착한 불란서 공사 덕분에 외출도 마음대로 하고, 월급도 꼬박꼬박 챙기고 있으니, 그는 살맛이 났다.


우정은 동경을 떠나 불란서로 갔다. 김옥균과 게이코가 수없이 말리고 붙들었지만, 그는 가슴에 품고 있었던 유학의 꿈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던 탓이다. 일본에서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는 있었지만, 불란서로 가지 못하면 그저 야쿠자의 일원이나 혹은 배고픈 화가로 안주하게 될 확률이 높다고 내다봤다.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그는 불란서로 가야 한다고 주문을 외우듯, 자신에게 암시를 걸곤 했다. 그래야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길 거라고 믿었다. 결국, 그는 몇 가지 옷들과 일본에서 마련한 유학자금이 든 가방 하나를 덜렁 들고는 불란서로 가는 포르투갈 상선에 올랐다. 그의 각오는 실로 대단했다. 불란서의 파리로 가서 조선이 어떤 나라인가를 알리고, 그곳에서 법학과 서양문화를 배운 후에,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신조선을 세우려는 계획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외세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백성들이 개화에 동참하면서 힘을 가진 신조선으로 성장해야 나라가 잘살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일본과 청나라와 강대국들이 작은 조선을 난도질해서 뜯어먹으려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무지한 쇄국 정책을 펼쳐서 방어벽을 치는 왕권정치를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외세를 조선 안으로 끌어들여 여러모로 도움을 청하는 일은 더더욱 위험한 모험이라고 여겼다.

“왕권을 중심으로 하되, 미국이나 불란서처럼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개화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조선의 미래는 풍전등화의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조선은 길이 없는 미로에 갇힌 짐승의 신세가 되고 말게야. 그런 일이 있어선 절대로 안 돼!”

그는 눈을 감고 단전호흡을 하려다가 혼잣말로 중얼거리곤 고개를 내저었다.


그가 불란서에 당도하게 되었을 때, 그동안 갈고 닦아온 불어가 빛을 발했다. 조선에 들어온 불란서 신부로부터 걸음마를 하듯 배운 불어였지만, 불란서 공사관에서 통역관을 하면서 실력이 꽤 늘었고, 일본에 있는 동안에도 밤을 새워가며, 천 개의 핵심 문장들을 통째로 외웠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마르세이유를 거쳐 파리로 갔다. 한복을 입고 있었던 탓에 불란서 사내들과 여인들이 신기하다는 듯이 다가와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졌다. 그럴 적마다 우정은 동양의 조선에서 왔으며, 불란서에서 법학을 공부하러 온 조선의 학자라고 자신을 불어로 소개했다. 낯선 동양인이 불어를 유창하게 하는 걸 지켜보면서, 불란서 인들은 점차 그에게 관심을 보이며 가까이 다가왔다.

나중에 그는 망설이다가 기메 박물관을 찾아갔다. 그곳에 동양의 예술품들과 고서들이 보관되어 있다는 정보를 이미 일본에서 알게 되었던 터라, 그곳으로 가면 뭔가 취직을 하는데 적잖은 도움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

그는 기메 박물관의 관장이었던 레가미를 만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거리를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가 숙소와 식사 문제만 해결된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고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고 도움을 청했는데, 레가미 관장은 그를 좋게 보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는 기메 박물관에서 일본과 조선에 관련된 자료들을 분류하고 불어로 표기하는 일들을 성실하게 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조선의 고서들과 예술품들이 자료보관실에 가득한 걸 보고,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파리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개방된 유럽의 도시였다. 그곳에서 문화생활을 하는 사내들은 거의 다 양복을 입고 다녔고, 길거리를 걸어가는 행인들조차도 삶의 여유가 흘러넘쳤다. 실제로 여인들은 젖가슴이 반쯤 드러나 보이는 망측스러운 의상을 입고 있었는데, 허리의 둘레는 한 손에 잡힐 듯이 날씬했다.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지 애를 먹었는데, 차츰 불란서 전통에 익숙해지면서 그런 모습들이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보이기도 했다. 자신이 조선 사람이 아니라 불란서 인으로 진화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는 가슴에 품고 있었던 고종의 초상화를 어루만지기도 했다.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멋진 서양의 고전 음악들을 감상하면서 빵과 포도주와 신선한 과일들을 평안하게 먹고 있는 불란서인들을 보면서, 그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빵 한 조각과 포도주 한 잔은커녕 보리밥 한 그릇도 먹지 못해 굶어 죽어가는 조선인들의 삶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의원의 진료를 받지 못해 쉽게 고칠 수 있는 병도 포기한 채, 가마떼기에 둘둘 말려 산기슭에 버려진 조선인들의 시신들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내가 살던 조선과 타국 불란서의 삶은 어찌도 이렇게 다르단 말인가? 도대체 조선은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하고 우정은 길게 탄식을 했다.

그는 기메 박물관의 직원들과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콧등이 시큰거려서 그곳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속이 안 좋아 식사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인적이 드문 공원으로 갔다. 그곳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는 조선을 불란서처럼 잘 사는 나라로 세우겠다는 꿈을 연실 되새김질했다. 고종과 중전과 요직에 있는 대신들이 불란서에 와서 백성들이 얼마나 자유롭고 편안한 모습으로 부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제대로 봐야 한다며 가슴을 치고 탄식을 했다. 온갖 부정부패와 이권을 위한 정치싸움과 백성들에게 등을 돌린 이기적인 삶에 갇혀있는 대신들이 그의 눈에 보였다. 그렇게 오염된 틀 안에서 상한 먹이들을 찾아 헤매고 있는 자들과 역겨운 오물통에 빠져있는 썩은 정치인들로 말미암아 과연 조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전하와 백성들에게 큰 목소리로 묻고 싶었다.

“내가 조선 사람이 아니라면, 설아와 함께 이곳에서 영원히 살고 싶을 만큼, 이곳의 삶은 작은 천국이나 다름이 없다. 수렁에 빠져 잠들고 있는 조선을 속히 깨워야 한다. 무너져가는 유약한 조선을.”

그가 공원의 숲속을 걸어가며 눈물로 버무려진 신음을 목울대 안으로 삼켰다.


기메 박물관의 관장인 레가미의 도움을 받아 그는 일백 프랑씩 월급을 받아가며 그곳에서 연구보조원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레가미는 박물관의 관장이기 전에 파리에서 유명한 화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는 조선에서 온 낯선 사내인 우정에게 호기심어린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로 인해 레가미의 집에서 숙식을 하며, 그에게 조선의 전통과 문화와 정치에 관한 이야기들을 자주 들려주곤 했다.




여기가지 읽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복되고 좋은 일들이 많아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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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17 수연..
    작성일
    22.06.25 07:14
    No. 1

    오늘 여기까지요 숨가쁘게 왔어요. 추천을 누른다는 게 깜박해서 다시 달려가 공짜로 읽은 값 추천으로 하고 왔어요 ㅎㅎ
    갑갑하고 맴이 아파요 . ㅜㅜ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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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제31화 일본 자객 22.06.19 42 3 10쪽
30 제30화 끊어진 밧줄 22.06.19 33 3 10쪽
29 제29화 철도부설권 22.06.19 33 3 9쪽
28 제28화 조선의 춤사위 +2 22.06.19 38 3 9쪽
27 제27화 국제파티 22.06.19 35 3 9쪽
26 제26화 노서아 공사관 22.06.19 35 4 9쪽
25 제25화 조선 왕비의 죽음 22.06.19 34 4 9쪽
24 제24화 여우 사냥 22.06.19 31 3 9쪽
23 제23화 서찰 22.06.19 30 3 9쪽
22 제22화 빈 무덤 +1 22.06.19 35 4 9쪽
21 제21화 사냥개 22.06.19 31 3 9쪽
20 제20화 꼬꼬뱅 22.06.19 35 3 9쪽
19 제19화 밑밥 +1 22.06.19 34 4 9쪽
» 제18화 불란서로 가다 +1 22.06.19 34 4 9쪽
17 제17화 밤하늘에 뜬 달 22.06.19 31 4 9쪽
16 제16화 도율 권법 22.06.19 30 4 9쪽
15 제15화 무형의 벽 22.06.19 33 4 9쪽
14 제14화 그의 이름 22.06.19 33 4 9쪽
13 제13화 무서운 싸움꾼 +1 22.06.19 39 5 9쪽
12 제12화 좋은 동지 22.06.19 37 4 9쪽
11 제11화 금상첨화 22.06.19 35 4 9쪽
10 제10화 조선의 학자 22.06.19 40 4 9쪽
9 제9화 동양화 +2 22.06.19 41 4 9쪽
8 제8화 운명 22.06.19 40 4 9쪽
7 제7화 밀담 22.06.19 46 4 9쪽
6 제6화 꽃 사슴 한 마리 22.06.18 48 4 10쪽
5 제5화 가비 차 22.06.18 51 3 10쪽
4 제4화 불란서 공사관 22.06.17 59 4 10쪽
3 제3화 향기로운 꽃과 나비 +2 22.06.17 71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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