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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품은 꽃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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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6.11 23:29
최근연재일 :
2022.06.19 16:00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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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8
추천수 :
122
글자수 :
132,905

작성
22.06.19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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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제13화 무서운 싸움꾼

조선시대로 돌아가 신선하고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역사는 우리 미래의 거울이기도 합니다.




DUMMY

“난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그런 제국주의적인 발상은 눈을 감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보다도 위험하지요. 아무튼, 허튼 소리는 집어 치우고 술이나 마십시다. 여기서 탁상공론을 한다고 조선의 난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테니까요.”

우정이 술잔을 비우고 미간을 찌푸렸다. 평상시에는 사람을 좋아하고 부드러운 말을 썼지만, 조선의 이야기만 나오면 그의 눈동자에서 불똥이 튀고 언성이 날카롭게 변했다. 정치 이야기를 더 하다간 서로 친구가 아니라 원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마도 갑신정변이 일어났을 때, 김옥은 뭔가 중요한 직책을 맡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우정은 화제를 바꾸었다. 하지만 그가 삼일천하의 우두머리인 김옥균이라는 것은 우정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들은 주기적으로 만났지만, 조선이나 정치에 관한 말들은 서로 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다. 조선을 바라보는 이상이 달랐고, 이왕이면 동경에서 맺은 좋은 인간관계를 깨고 싶지 않아서였다.


어느날 하야시가 어떻게 알았는지 그가 일하는 아사히신문사로 찾아왔다. 어떻게 말도 없이 자기를 떠날 수가 있느냐면서, 하야시는 우정에게 따지듯 물었다. 난처한 상황이 벌어졌지만, 우정은 편안한 얼굴로 야쿠자들과 엮이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어서 그랬다고 하면서 간신히 변명을 늘어놓았다.

“우정 오야봉! 우리는 한 번 맺은 의리는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이라 믿고 있는 자들입니다. 우정 오야봉이 일본에 거주하시는 한, 우리 조직은 무슨 일이 있어도 우정 오야봉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하야시 오야봉! 난 이제 일본에서 돈을 벌어서 불란서로 유학을 떠나야 하는 몸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싸움질을 싫어합니다. 더군다나 그렇게 한가하게 야쿠자들과 어울리며 살아갈 삶의 여유도 없고요. 허니, 제발 나를 좀 내버려 두시오.”

“허면, 좋습니다. 우정 오야봉께서 나를 위해서 한 가지 일만 잘 처리해주시면, 저희들도 그 뜻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하야시가 날카로운 눈매로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한 가지 일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일이오?”

“요시무라를 제거하는 일입니다.”

“요시무라요?”

“하이! 그자는 우리 하야시 상사를 삼키려는 무라카미 상사가 매수한 전문적인 싸움꾼입니다. 요시무라가 이기면 하야시 상사가 그들에게 넘어갈 것이고, 우정 오야봉이 이기면 하야시 상사가 무라카미 상사를 접수하게 되는 겁니다. 그야말로 아번 판은 우리 조직이 죽을 수도 있는 아주 위태로운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 거나 다름이 없소.”

“그렇다면, 요시무라와 싸워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말이 아니오?”

“하이! 소데스네.”

“어떤 조건의 싸움이오?”

“일대일로 붙는 싸움인데, 처음에는 손과 발로 하는 대련이나, 마지막까지 승부가 안 나면 일본도를 들고 대결을 하게 될 겁니다.”

“이거 단번에 죽을 수도 있는 싸움이 아니오?”

“하이! 이번 대결은 저와 하야시 상사의 미래가 걸려있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야말로 생명을 건 모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허나, 상대방이 패배를 인정하고 포기하면, 그 즉시 그 대결은 막이 내려지고, 승패가 그 자리에서 선포될 겁니다.”

“좋소이다. 그렇게 합시다. 기필코 내가 이겨서 하야시 상사를 지켜드리고, 나 또한 홀가분한 마음으로 불란서로 떠나길 희망하니까요.”

“아링아도 고자이마쓰! 우정 오야봉! 평생토록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하야시와 뒤를 따라온 그의 부하들이 허리를 깊이 숙여 우정에게 절도 있게 인사를 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 우정은 결단을 내려야만 했지만, 내심 두려움이 솟구쳐 올라왔다. 불란서 유학은커녕 야쿠자들의 싸움터에서 개죽음을 당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다행히도 요시무라와 대결을 할 때까지는 열흘 정도가 남아있었다. 우정은 그 동안 하야시의 도움을 받아 요시무라에 관한 다양한 정보들을 수집해봤다. 그는 가라테와 검도뿐만 아니라 유도와 동양의 무술까지 섭렵한 대단한 자였다. 패배를 모르는 자였고, 싸움이 시작되면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로 널리 알려진 무서운 싸움꾼으로 알려져 있었다.

“제 아무리 강한 고수라도 어딘 가에 약점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싸움을 하기 전에 그 약점을 제대로 찾아내야 할 텐데.”

그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는 조선에서 살 때, 지리산으로 들어가 약초를 찾아다니면서 우연히 만나게 된 스승 도율의 모습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조선 권법을 수십 년간 연구하여 득도의 경지에 이른 자가 도율 스승이었다. 숲속에선 삵처럼 날렵하고, 들판에서는 호랑이처럼 담대하고 빠른 움직임으로 상대방을 순식간에 제압하는 도율 권법의 창시자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놀라운 검술과 표창 던지기이 고수였다. 조선에서는 도율을 따라잡을 수 있는 무술의 고수가 없었다. 한 마디로 그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도인이었다. 그런 도율 스승을 만난 덕분에 그는 무술의 고수들을 제압할 수 있는 무서운 실력자로 급성장할 수 있었다.

“도율 스승님! 제가 약초를 캐러 지리산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가 독사에게 물려서 죽어갈 때, 저를 살려주신 생명의 은인이 바로 스승님이셨습니다. 오갈 데 없는 저를 치료해주시고, 무술을 가르쳐주신 그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불란서 유학을 마치고 나서, 조선을 바로 잡게 되면, 잊지 않고 도율 스승님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가 묵상기도를 하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는 어렸을 때의 삶을 되짚어보다가, 눈시울을 적셨다. 형편없이 몰락한 양반의 집안에서 날마다 굶주리며 제대로 된 옷가지 하나 입어본 적이 없었던 아이가 우정이었다. 다 떨어진 걸레 같은 옷을 몸에 걸친 채, 거지처럼 살았던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살아나 흙탕물 속의 미꾸라지처럼 요동쳤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쓰레기통을 뒤져가며 먹을 것을 찾았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중노동을 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전국을 방황하다가 지리산으로 들어가 약초들을 캐서 장터에 내다 팔아 겨우 밥을 먹을 수 있는 삶을 유지하곤 했다. 그야말로 죽지 못해 벌레처럼 살았던 시절에, 절대 고수인 도율 스승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만남은 그에게 크나큰 행운이었다. 그거야말로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어린 시절 모친을 통하여 천자문을 배우고 사서삼경을 통독하며 글공부를 하였으나, 지리산에서 무술의 고수인 도울 스승을 만나 제자가 될 줄은 전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도율 권법의 핵심은 신출귀몰한 보법과 상대방의 움직임보다 반보 빠른 움직임과 짧지만 강한 연속타격에 있었다. 그가 동경의 싸움꾼인 하야시를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수련을 통해서 얻은 빠른 기술과 무서운 파괴력 덕분이었다. 그는 요시무라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 상상을 해보다가, 단전 호흡을 했다. 무조건 이기려는 마음이 앞서게 되면 긴장의 도가 높아져서, 아무래도 이성을 잃고 상대방에게 약점을 보일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 바람을 타고 부유하는 한 가닥 깃털처럼 상대방의 움직임을 고요한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는 도율 스승의 가르침을 되새김질하면서 정신을 통일하고 심호흡을 계속했다.


무라카미 상사 안에는 분위기가 별로 안 좋았다. 요시무라가 거만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불편하게 실실 웃고 있었다. 생사를 건 승부를 놓고 싸워야 하는 상대가 고작 조선의 화가라는 말을 듣고 나서, 기가 막힌 모양이었다.

“무라카미 오야봉! 내가 그 따위 하찮은 조센징 화가하고 혈투를 벌여야 한단 말입니까? 상대가 될 수 있는 자를 보내라고 하야시 상사에 연통을 넣으세요.”

요시무라가 심기가 불편하다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요시무라! 그렇긴 하지만, 그 조센징이 맨주먹으로 하야시를 굴복시켰다는 말을 들었다. 아마도 조선 무술의 고수임에 틀림이 없어. 허니, 만만한 상대는 아니지.”

“뭐요? 아니, 조선처럼 하찮은 작은 나라에 무슨 무술의 고수 따위가 있다는 말입니까?”

“하야시가 보내려고 하는 놈이니, 분명코 쉬운 상대는 아닐 거야. 그렇게 너무 방심하다가는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어. 오늘부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거야.”

무라카미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여기가지 읽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복되고 좋은 일들이 많아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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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제31화 일본 자객 22.06.19 41 3 10쪽
30 제30화 끊어진 밧줄 22.06.19 33 3 10쪽
29 제29화 철도부설권 22.06.19 33 3 9쪽
28 제28화 조선의 춤사위 +2 22.06.19 37 3 9쪽
27 제27화 국제파티 22.06.19 34 3 9쪽
26 제26화 노서아 공사관 22.06.19 35 4 9쪽
25 제25화 조선 왕비의 죽음 22.06.19 34 4 9쪽
24 제24화 여우 사냥 22.06.19 31 3 9쪽
23 제23화 서찰 22.06.19 28 3 9쪽
22 제22화 빈 무덤 +1 22.06.19 34 4 9쪽
21 제21화 사냥개 22.06.19 31 3 9쪽
20 제20화 꼬꼬뱅 22.06.19 34 3 9쪽
19 제19화 밑밥 +1 22.06.19 34 4 9쪽
18 제18화 불란서로 가다 +1 22.06.19 33 4 9쪽
17 제17화 밤하늘에 뜬 달 22.06.19 31 4 9쪽
16 제16화 도율 권법 22.06.19 30 4 9쪽
15 제15화 무형의 벽 22.06.19 33 4 9쪽
14 제14화 그의 이름 22.06.19 32 4 9쪽
» 제13화 무서운 싸움꾼 +1 22.06.19 39 5 9쪽
12 제12화 좋은 동지 22.06.19 36 4 9쪽
11 제11화 금상첨화 22.06.19 35 4 9쪽
10 제10화 조선의 학자 22.06.19 39 4 9쪽
9 제9화 동양화 +2 22.06.19 41 4 9쪽
8 제8화 운명 22.06.19 40 4 9쪽
7 제7화 밀담 22.06.19 46 4 9쪽
6 제6화 꽃 사슴 한 마리 22.06.18 48 4 10쪽
5 제5화 가비 차 22.06.18 51 3 10쪽
4 제4화 불란서 공사관 22.06.17 58 4 10쪽
3 제3화 향기로운 꽃과 나비 +2 22.06.17 70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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