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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품은 꽃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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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6.11 23:29
최근연재일 :
2022.06.19 16:0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376
추천수 :
122
글자수 :
132,905

작성
22.06.19 09:05
조회
40
추천
4
글자
9쪽

제8화 운명

조선시대로 돌아가 신선하고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역사는 우리 미래의 거울이기도 합니다.




DUMMY

“하하하! 역시 민영소 대감이시오. 죽을 때까지 주인을 버릴 수 없는, 잘 길들여진 사냥개. 그런 걸 한 마리 얻은 거나 다름이 없소이다!”

“해서, 옥에 갇혀있는 궁녀 설아를 먼저 석방해줘야 할 것이옵니다. 그래야 그자도 안심하고 일본으로 건너갈 수 있을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내가 전하를 알현하고 그 궁녀가 석방되도록 힘을 쓸 것이니 아무 염려도 하지 마세요. 무엇보다도 민대감은 대역죄인 김옥균을 제거할 계획이나 빈틈없이 진행시키세요. 반드시 그자의 목을 가져와야 합니다.”

“알겠사옵니다. 중전마마!”

“오늘 주고받은 얘기들이 결코 외부로 발설되는 일이 없도록, 대감은 각별히 입조심을 하세요!”

그를 주시하는 중전이 얼굴에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오니 안심하시옵소서! 중전마마!”


민영소는 경복궁을 빠져나오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등 뒤에는 막강한 권세를 가진 중전이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었던 터라, 자신의 계획들이 차질 없이 순조롭게 흘러갈 거라는 예감이 들어서였다. 고종과 중전이 가장 기뻐할 수 있는 일이 김옥균을 사살해서 그 목을 가져오는 일이라는 걸,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존재가 민영소였다. 그 일만 실수 없이 잘 해낸다면, 고종과 중전의 신임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그야말로 조선 최고의 실세가 될 거라 여기면서, 그는 입가에서 흡족한 미소를 흘려냈다.


초췌한 몰골로 장악원으로 돌아온 설아를 보고, 청련은 정신없이 달려가 그녀를 맞았다.

“설아야! 네가 다시 돌아오다니 믿을 수가 없구나. 그래 어디 아픈 곳은 없는 게냐?”

“예! 스승님!”

설아가 겨우 미소를 입가에 그려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필시, 네가 옥사에서 풀려나도록 도운 사람이 있을 것인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는 있는 게냐?”

“예에? 허면, 누가 저를 도왔단 말입니까?”

“너도 알다시피 궁녀는 임금님의 여자이니라. 그런 네가 외간 사내와 연분을 나누었으니, 능지처참을 당해야 마땅한 일이었다. 허나, 불란서 공사의 통역관 우정이 생명을 걸고 너를 옥사에서 구해낸 것 같구나.”

“아니, 어떻게 그 사람이 저를 옥사에서 구해낼 수 있단 말입니까?”

“그건 나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아마도 그가 불란서 공사를 움직여 너를 옥사에서 풀려나도록 한 거라고 본다. 누가 감히 너를 구하기 위하여 전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느냐?”

“허면, 제가 여기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지요. 어서 가서 제 생명의 은인이신 우정 씨를 만나 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고맙다는 말도 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지요.”

“염려하지 말거라. 그분은 벌써 네 방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느니라.”

청련이 옅은 웃음을 입가에 머금었다.

“예에? 우정 씨가 제 방에 있단 말씀입니까?”

그녀는 후다닥 일어나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만지고 분을 발라가며 급히 화장을 고쳤다. 그러곤 넘어질 듯이 숙소에 있는 그녀의 방을 향하여 달려갔다.


설아의 방에는 작은 경대 하나와 옷을 넣어두는 장롱 한 개가 있었다. 하지만 벽에 걸어놓은 족자에서 은은한 난향이 흘러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는 오래도록 그 족자 안에 들어있는 난들을 감상하면서 적잖은 감동의 도가니 안에 녹아들고 있었다. 마치 난처럼 청초하고 고운 모습을 가진 처자가 바로 설아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는 빙그레 웃었다. 어서 그녀가 방문을 열고 화사한 모습으로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에 사박사박 들려오는 그녀의 치마에서 나오는 소리를 엿듣다가, 그는 얼굴이 상기되고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틀림없는 설아의 치마에서 들려오는 소리라는 걸 직감한 탓이었다. 이른 오후 내내 그곳에서 그녀만을 기다렸는데, 드디어 그녀가 자신의 눈앞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날 것을 떠올리니, 가슴이 격하게 뛰었다. 술에 취한 자 마냥 그의 양 볼은 붉어졌고, 앉았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그는 길게 숨을 몰아쉬고 나서야 가까스로 마음을 안정시켰다. 방문이 열리고 단아한 모습으로 그녀가 그의 앞에 서 있는 걸 보면서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서 오세요! 그간 얼마나 고생이 많았습니까?”

우정이 그녀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아닙니다. 저를 구해주신 은혜를 제가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헤어나올 수 없는 죽음의 자리에서 제 목숨을 구해주셨으니, 저는 이제 우정 씨만을 영원토록 사모하며 살아갈 것이옵니다. 너무도 고맙습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요. 모든 사건과 고통의 뿌리가, 다 나로 말미암아 생긴 일인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게요? 설아 씨! 죽을죄를 지은 나를 먼저 용서해주시오. 나만 없었다면, 아니 내가 그대를 가까이하지만 않았어도 그대는 궁중에서 지금까지 아무런 일도 없이 편안하게 살 수 있었을 겝니다.”

우정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녀도 그의 품 안에 안겨 주르륵 눈물을 흘려냈다. 설령,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와 함께 하는 길이라면 아무런 후회가 없을 것만 같았다. 어차피 한 번 왔다 가는 인생인데, 후회가 없는 삶을 인생의 그릇에 담고 싶을 뿐이었다. 그들은 따뜻한 체온을 서로 느끼면서 길게 입을 맞추곤, 환희의 기쁨을 맛보았다. 길게 포옹을 하면서 두 남녀는 천천히 옷을 벗고 더욱 밀착하여 뜨거운 몸으로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방문 밖에서 그들의 신음을 듣던 청련은 고개를 돌려 먼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인력으로 막을 수 없는 운명이라면, 더욱 사랑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하리니. 사랑하는 이들이 품고 있는 열정보다 더 아름답고 애틋한 정이 어디에 또 있을까? 이 세상에 죽음을 넘어갈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인력으로도 막을 수 없는 순수한 사랑이 아닌가.”

청련은 마음속으로 홀로 중얼거리며, 잔잔한 미소를 목안으로 삼켰다. 젊은 시절 남사당 패거리에 들어가 춤을 배우고 창을 하며 전국을 돌아다녔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머릿속에서 나풀거렸다. 그 당시 춤꾼과 눈이 맞아 사랑을 나누었던 시절을 더듬어가다가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그것들은 어두운 과거의 일들이었다. 그걸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듯 아프고 목이 막힌 듯 답답하기만 했다. 아픈 상처들을 남긴 과거의 기억들이었지만, 춤꾼의 아이를 낳게 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이십 년이 넘은 까마득한 과거의 사건들이라, 세월이 흘러갈수록 그런 기억들은 안개처럼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이제 와서 후회를 한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 지난 일들인데.”

청련은 장구를 목에 걸고 장단에 맞춰 양어깨를 부드럽게 들썩이더니,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장구 소리와 일체가 되어, 청련의 몸은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양손으로 학처럼 날갯짓을 하면서, 사뿐사뿐 버선발로 바닥을 가볍게 밟으며 신명나게 장구춤을 추었다. 그녀의 이마에서 땀방울들이 송알송알 맺혀지도록, 그녀는 쉬지 않고 장구춤의 세계로 깊숙이 빠져들고 있었다.


우정과 함께 외출하기 위하여 장악원 밖으로 나온 설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허면, 언제 일본으로 떠나실 예정입니까?” 그녀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물었다.

“달포 안으로 조선을 떠나야 할 것 같소. 아무래도 내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모양이오.”

“일본으로 가시면 언제 다시 이곳으로 오실 예정입니까?”

“적어도 삼 년은 넘어야 조선 땅을 밟게 될 게요. 그때까지 날 기다려줄 수 있겠소?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라, 내 마음은 바위처럼 무겁기만 하오.”

우정이 눈시울을 붉혔다.

“기다리겠습니다. 십 년이나 이십 년도 아니고 고작 삼 년을 제가 못 기다리겠습니까? 제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마시고, 부디 서양 학문을 모두 배우시고, 조선으로 금의환향하게 되시기를 학수고대하겠습니다.”

그녀가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장악원 앞이라 그는 그녀를 포옹하지 못하고 넌지시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의 얼굴을 잊지 않고 기억해두려는 듯이, 그녀의 이마에서 시작하여 눈과 코를 거쳐 입술과 턱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살펴봤다. 그는 하루도 잊지 않고 그녀의 모습을 가슴판에 새기며 살겠노라고 마지막 말을 남기곤 발길을 돌렸다. 점점 멀어져 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가 미처 하지 못했던 말들을 꾸역꾸역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삼 년 후에 그를 만나게 되면, 그의 앞에서 가슴에 담아 두었던 말들을 부끄러움 없이 당당히 말하고 싶어서였다.




여기가지 읽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복되고 좋은 일들이 많아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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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제32화 휘몰아치는 희락 +4 22.06.19 61 4 10쪽
31 제31화 일본 자객 22.06.19 42 3 10쪽
30 제30화 끊어진 밧줄 22.06.19 33 3 10쪽
29 제29화 철도부설권 22.06.19 33 3 9쪽
28 제28화 조선의 춤사위 +2 22.06.19 38 3 9쪽
27 제27화 국제파티 22.06.19 35 3 9쪽
26 제26화 노서아 공사관 22.06.19 35 4 9쪽
25 제25화 조선 왕비의 죽음 22.06.19 35 4 9쪽
24 제24화 여우 사냥 22.06.19 31 3 9쪽
23 제23화 서찰 22.06.19 30 3 9쪽
22 제22화 빈 무덤 +1 22.06.19 35 4 9쪽
21 제21화 사냥개 22.06.19 31 3 9쪽
20 제20화 꼬꼬뱅 22.06.19 35 3 9쪽
19 제19화 밑밥 +1 22.06.19 34 4 9쪽
18 제18화 불란서로 가다 +1 22.06.19 34 4 9쪽
17 제17화 밤하늘에 뜬 달 22.06.19 31 4 9쪽
16 제16화 도율 권법 22.06.19 30 4 9쪽
15 제15화 무형의 벽 22.06.19 33 4 9쪽
14 제14화 그의 이름 22.06.19 33 4 9쪽
13 제13화 무서운 싸움꾼 +1 22.06.19 39 5 9쪽
12 제12화 좋은 동지 22.06.19 37 4 9쪽
11 제11화 금상첨화 22.06.19 35 4 9쪽
10 제10화 조선의 학자 22.06.19 40 4 9쪽
9 제9화 동양화 +2 22.06.19 41 4 9쪽
» 제8화 운명 22.06.19 41 4 9쪽
7 제7화 밀담 22.06.19 46 4 9쪽
6 제6화 꽃 사슴 한 마리 22.06.18 48 4 10쪽
5 제5화 가비 차 22.06.18 52 3 10쪽
4 제4화 불란서 공사관 22.06.17 59 4 10쪽
3 제3화 향기로운 꽃과 나비 +2 22.06.17 71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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