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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품은 꽃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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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6.11 23:29
최근연재일 :
2022.06.19 16:00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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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글자수 :
132,905

작성
22.06.1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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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제22화 빈 무덤

조선시대로 돌아가 신선하고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역사는 우리 미래의 거울이기도 합니다.




DUMMY

그래서인지 그는 불란서 공사관이 아니라, 아예 일본공사관으로 자리를 옮길 각오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야 자신의 출세를 차단하고 있던 돌벽들이 허물어지고, 뭔가 광명한 새길이 화려하게 다가올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나를 욕하고 손가락질하는 조선인들이 있다면, 그들은 무능하고 어리석은 자들일 뿐이다. 누가 뭐래도 난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야!”

그가 중얼거리면서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내뱉는 말이었다.


우정은 김옥균과 함께 상해로 가는 여객선을 탔다. 이미 계획된 대로 이일직은 우정을 통해 오천 원짜리 어음을 김옥균에게 정치자금으로 내어준 터라, 그는 조금도 김옥균의 의심을 받지 않게 되었다. 짜놓은 판대로 일정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고 있음을 그는 속으로 기뻐했다. 그는 품속에 감추어 두었던 권총을 어루만졌다. 이일직의 권총이었으나, 그것은 김옥균의 생명줄을 단번에 끊기 위한 매서운 무기이기도 했다. 만약 그가 마음을 바꾸고 그 권총을 바다에 던지면 김옥균은 죽지 않을 것이나, 그는 그것을 버리지 못했다.

먼 앞날을 내다보며 조선의 개화를 꿈꾸었던 자가 김옥균이었다. 그런 자가 도무지 이상할 정도로 단순하고 쉽게 남의 말을 너무 신뢰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도무지 그걸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만약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어음을 김옥균에게 주고 청나라로 가서 리홍장을 만나자고 했다면, 과연 그가 그 제안을 받아들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김옥균은 정치적인 동료이기 전에 순수한 친구로 자신을 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여기며, 그는 잠시 눈을 감고 김옥균의 얼굴을 마음속에 떠올려봤다.

“다른 길은 없다. 조선과 왕실을 위하여 친구를 포기해야 한다.”

그는 아득하게 보이는 수평선을 주시하고 있다가, 단호한 결행 의지를 스스로 밝혔다.

“갑판위에서 혼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소? 드넓은 바다를 보니,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의 등 뒤에 나타난 김옥균이 그에게 다가왔다.

“이렇게 평안하게 여행이나 다니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좋은 바다 구경도 하면서 말이오.”

우정이 그를 바라봤다.

“이왕이면 혼자가 아니라, 곱고 아리따운 조선 여인이라도 곁에 둔다면, 더욱 빛이 날게요. 설아라는 처자가 아직도 조선에서 우정을 기다리고 있는 겝니까?”

“그렇소. 설아는 일편단심, 오직 나만 바라보는 여인이오.”

“우정은 좋겠소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여인까지 있으니. 허나, 난 그저 정처 없이 떠도는 버림받은 인생이 되었다오. 이제는 일본 정부도 내게서 등을 돌렸고, 게다가 조선에서는 날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자객들까지 보냈다는 소문이 돌고 있으니. 난 앞길이 그저 캄캄할 뿐이오. 이번 여행길에서 청나라의 리홍장을 만나 정치적 도약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난 희망이 없소이다.”

김옥균이 고개를 밑으로 숙이고 길게 한숨을 쏟아냈다.

“뜻하신 일들이 다 잘 될 겁니다. 리홍장도 나름대로 무슨 계획이 있으니까, 초대장을 보냈겠지요.”

“그래요. 이번 일은 내 일생일대에 있어서, 재기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마지막 행보가 될 것 같소.”

김옥균은 리홍장과 밀약을 맺고, 정치적인 후원을 어느 정도 받게 된다면, 고종이나 조정 대신들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을 거라고 믿었다. 그는 운만 좋으면 조선으로 들어가 새로운 각오로 일을 하며, 뜻을 이룰 수 있게 될 거라는 작은 희망을 가슴에 담았다.


상해에 도착하게 된 김옥균과 우정은 동화양행에서 숙박을 하기로 했다. 김옥균의 숙소는 이층에 있는 첫 번째 방이었다. 우정은 짐을 풀기도 전에 한복을 챙겨 입고 품 안에 숨겨두었던 리볼버 권총을 천천히 떨리는 손으로 꺼내었다. 그는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을 하며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그 권총을 요 밑에 숨겨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오후 네 시경에 그는 그 권총을 자신의 품 안에 감춘 채, 김옥균의 방으로 들어갔다. 김옥균은 침대에 누운 채 한가한 모습으로 서책을 읽고 있었다. 우정은 갑자기 권총을 꺼내어 들고 김옥균의 머리를 겨냥했다.

“우정! 지금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 왜 총구를 내게 겨누는 것이오?”

김옥균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을 하면서,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나를 원망하지 마시오. 나는 친구를 죽이고 싶지 않소. 허나, 이건 전하의 밀명이라 어쩔 수가 없소이다. 왕실과 조선을 능멸하고,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개화당의 괴수 김옥균을 내가 전하의 명을 받아 처단하는 겁니다! 잘 가시오!”

우정이 담대한 목소리로 입을 열곤 방아쇠를 두 번 당겼다. 요란한 총성이 실내를 울렸고, 짙은 화약 냄새가 사방으로 번졌다.

그 총알은 김옥균의 얼굴 하단부와 복부에 박혔다. 피를 흘리며 김옥균이 방 밖으로 도망을 쳤다. 그가 계단 밑으로 비틀거리며 내려가자, 우정이 따라가며 또 한 발의 총격을 그의 등 쪽에 가했다. 그 총알은 그의 오른쪽 어깨 쪽에 박히면서, 그는 그 자리에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몇 번 손가락들을 움직이며 몸을 미세하게 떨었으나, 그대로 그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가 숨진 것을 확인한 우정은 혼이 나간 사람처럼,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고, 권총을 들고 있는 손에 심한 경련이 일어났다.

김옥균이 피살된 충격적인 사건은 1894년 3월 28일, 상해의 동화양행에서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우정은 곧 살인죄로 추포되어 청나라의 정부로 넘겨졌다. 하지만, 그는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고 담대히 주장했다. 조선의 왕실을 능멸하고 갑신정변을 일으켜 무고한 자들을 희생시킨 대역죄인 김옥균을, 조선 국왕의 밀명을 받아 처단했을 뿐이라고 외쳤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의 가슴에 각인된 김옥균은 왕실과 조선을 마음대로 흔들어댔던 대역 죄인이었고, 반드시 조선의 이름으로 처단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였다.

일본 정부에서는 김옥균의 시신과 죄수 우정을 받으려고 청나라의 정부에 압력을 가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청나라의 정부는 김옥균 살해사건은 조선 정부와 관련된 사항이니만큼, 제삼자인 일본 정부가 주관할 것이 아니라, 조선 정부에서 담당해야 마땅하다고 여겼다.

청나라의 정부와 조선의 왕실이 서로 힘을 합하여 노력한 결과로, 우정은 김옥균의 시신을 갖고 조선 땅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는 시신이 부패 되는 걸 막으려고 시신에 옻칠까지 했다. 그리고 관 안에는 얼음덩어리들을 가득 채웠다. 개화파의 우두머리 김옥균은 리홍장을 만나지도 못한 채, 상해에서 총상을 입은 시신이 되어 그렇게 처참하게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우정이 양화진에 당도했을 때, 많은 수구파 정치인들과 백성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풍악을 울렸다. 조선의 대역적 김옥균을 처단한 영웅인 우정의 귀환을 축하하고 기뻐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경복궁에 당도하자, 고종은 신발도 신지 않고 달려 나와, 그를 맞아들였다. 갑신정변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일본제국의 극우파 정치인들이 감싸고돌았던 김옥균을 제거했으니, 고종의 입장으로 보면 끙끙거리며 앓고 있던 극심한 종기 하나를 단번에 치유하여 깨끗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던 터라, 연실 입가에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김옥균의 시신을 어떻게 할 건지 우정이 고종에게 묻자, 왕실을 향하여 총칼을 겨누는 자들은 그 운명이 어떻게 되는 건지, 제대로 보여주어야 한다며 고종은 손가락들을 바르르 떨며 두 눈을 부릅떴다. 역적을 대하는 용상의 분노가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고종은 김옥균의 시신을 여덟 조각으로 나누어 팔도에 보내라고 명했다. 개화파의 수장이었던 김옥균은 저자거리에 두상이 높은 장대에 달려 세워졌고, 온몸은 여러 조각으로 쪼개져 팔도로 보내지게 되었다.

일본 정부는 김옥균을 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정치적 유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그의 장례식을 성대히 준비했다. 일본신문에 대서특필된 김옥균의 장례식에는 거의 일천 오백 명 이상이 되는 일본 인사들이 참석했다. 김옥균의 후원자였던 일본인들은 동경에 있는 아오야마 공원에 시신이 없는 빈 무덤을 만들어놓기도 했다. 그 무덤 안에는 시신 대신에 김옥균의 옷들과 머리카락들을 넣어 봉인하였다.




여기가지 읽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복되고 좋은 일들이 많아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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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제32화 휘몰아치는 희락 +4 22.06.19 61 4 10쪽
31 제31화 일본 자객 22.06.19 42 3 10쪽
30 제30화 끊어진 밧줄 22.06.19 33 3 10쪽
29 제29화 철도부설권 22.06.19 33 3 9쪽
28 제28화 조선의 춤사위 +2 22.06.19 38 3 9쪽
27 제27화 국제파티 22.06.19 35 3 9쪽
26 제26화 노서아 공사관 22.06.19 35 4 9쪽
25 제25화 조선 왕비의 죽음 22.06.19 34 4 9쪽
24 제24화 여우 사냥 22.06.19 31 3 9쪽
23 제23화 서찰 22.06.19 30 3 9쪽
» 제22화 빈 무덤 +1 22.06.19 35 4 9쪽
21 제21화 사냥개 22.06.19 31 3 9쪽
20 제20화 꼬꼬뱅 22.06.19 35 3 9쪽
19 제19화 밑밥 +1 22.06.19 34 4 9쪽
18 제18화 불란서로 가다 +1 22.06.19 33 4 9쪽
17 제17화 밤하늘에 뜬 달 22.06.19 31 4 9쪽
16 제16화 도율 권법 22.06.19 30 4 9쪽
15 제15화 무형의 벽 22.06.19 33 4 9쪽
14 제14화 그의 이름 22.06.19 33 4 9쪽
13 제13화 무서운 싸움꾼 +1 22.06.19 39 5 9쪽
12 제12화 좋은 동지 22.06.19 37 4 9쪽
11 제11화 금상첨화 22.06.19 35 4 9쪽
10 제10화 조선의 학자 22.06.19 40 4 9쪽
9 제9화 동양화 +2 22.06.19 41 4 9쪽
8 제8화 운명 22.06.19 40 4 9쪽
7 제7화 밀담 22.06.19 46 4 9쪽
6 제6화 꽃 사슴 한 마리 22.06.18 48 4 10쪽
5 제5화 가비 차 22.06.18 51 3 10쪽
4 제4화 불란서 공사관 22.06.17 59 4 10쪽
3 제3화 향기로운 꽃과 나비 +2 22.06.17 71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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