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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 님의 서재입니다.

가슴에 품은 꽃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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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6.11 23:29
최근연재일 :
2022.06.19 16:0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357
추천수 :
122
글자수 :
132,905

작성
22.06.19 09:00
조회
45
추천
4
글자
9쪽

제7화 밀담

조선시대로 돌아가 신선하고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역사는 우리 미래의 거울이기도 합니다.




DUMMY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고민을 하다가 불란서 공사의 집무실을 향하여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어떻게 해야 불란서 공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인지 온갖 지혜를 찾아봤지만, 그저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

“일단 한 번 부딪쳐보자! 때 묻지 않은 내 진심을 숨김없이 꺼내어놓는다면, 뭔가 통할 수 있지 않겠는가? 사내답게 한 번 독대를 해보자. 실제로 내가 없으면 불란서 공사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으니, 나를 동네 개 보듯 그렇게 무시하는 일은 없을 터이니.”

우정은 마른 침을 삼키며 불란서 공사의 집무실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용기를 내어 안으로 불쑥 들어갔다.

“공사님! 잠깐, 제게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우정이 창백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우정 통역관! 무슨 일입니까?”

“제게 생사가 달린 매우 시급한 일이 생겨서, 이렇게 선약도 없이 직접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아니, 생사가 달렸다니요? 대체 그게 무슨 말입니까?”

불란서 공사가 금테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제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습니다.”

“오우! 축하합니다. 앞으로 혼인을 하게 되면, 행복한 가정을 이루실 수 있겠군요. 진정으로 축하를 받을 일입니다. 정말 부럽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궁녀입니다.”

“네? 궁녀라고 했습니까? 조선에선 궁녀와 사귀는 건 국법을 어기는 일입니다. 내가 알기론 사형을 당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해서, 제가 불란서 공사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전하께 고하여, 제가 그 궁녀와 혼인을 할 수 있도록만 해주시면, 그 은혜는 평생토록 잊지 않겠습니다. 그렇게만 해주시면, 저는 공사님을 위하여 제 생명도 받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사실, 나도 할 수만 있다면 우정 통역관을 돕고 싶습니다. 허나, 그 일은 내 권한 밖에 있는 일입니다. 아무리 내가 불란서를 대표하는 공사라도 조선의 국법을 함부로 어길 수는 없습니다.”

“공사님! 제발 저를 도와주십시오.”

우정의 목소리가 허공을 치고 있었다.

불란서 공사는 고개를 흔들면서 집무실 밖으로 나가고 말았다. 도저히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라고 하면서, 불란서 공사는 침통한 얼굴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공사님이 나를 도울 수 없다면, 내가 직접 전하를 알현하고 반드시 허락을 받아낼 것입니다. 오 년이 아니라 십 년이 걸린다고 해도, 난 그 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정은 불란서 공사가 들으라는 듯이 큰 목소리로 집무실 밖에서 부르짖었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팔이 벌벌 떨릴 만큼,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저 똥고집을 누가 말릴 것인가? 그래, 조선을 흔들 수 있는 거목이 되어 자네 소원을 이루게나. 자넨 할 수 있을 거야! 그래야 나도 자네 덕을 볼 수 있을 테니까.”

은행나무 뒤에 숨어, 우정을 지켜보던 오정도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우정은 일본으로 가서 돈을 번 후에, 다시 불란서로 들어가 서양의 학문을 공부하려는 큰 뜻을 품었다. 조선이 강대국들을 밀어내고, 제 자리에 우뚝 서서 큰 나라로 성장해가려면, 서양 학문을 제대로 배운 젊은 정치인이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 불란서에서 서양 학문을 배우고 돌아오면, 고종도 자신을 인정해줄 거라고 내다봤다. 일본에서 일 년 그리고 불란서에 이 년만 학문을 더 배운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다. 남들보다 백배 노력을 한다면 그까짓 불란서 언어와 서양 학문 정도야 얼마든지 통달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으로 그는 일본행을 계획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급한 일은 설아를 구하는 일이었다. 우정은 불란서 공사에게서 원하는 답을 얻어내지 못하자, 불안한 마음이 앞섰다. 어서 속히 설아를 옥사 안에서 꺼내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설 뿐이었다. 숙소로 돌아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우정은 민비와 줄이 닿아있는 민영소 대감을 찾아가서 하소연을 해보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어떻게 해서라도 옥사에 있는 설아가 다시 장악원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함이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녀의 고통은 커질 것이고 절망과 괴로움 속에서 지옥을 맛볼 것만 같아 그의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민영소 대감!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우정이 예를 갖추고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흠! 오랜만일세. 헌데 무슨 일인가? 자네가 나를 찾아온 걸 보면, 필시 무슨 일이 있는 게로군.”

민영소 대감이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점잖게 입을 열었다.

“사실은 부탁드릴 일 있어서 이렇게 염치불구하고 대감을 찾아 왔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보게. 무슨 부탁을 하려는 겐가?”

“사실은 옥사에 갇힌 사촌 누이를 꺼내어 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이렇게 민대감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옥사에 갇힌 사촌 누이라고? 허면, 죄명이 무엇인가?”

“사촌 누이는 신입 궁중 무희온데, 제가 몇 번 장터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헌데, 신입 궁중 무희가 젊은 사내와 만나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포도청에 끌려간 것 같사옵니다.”

“어허! 아무리 시대가 서양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개화기를 맞고 있다고 해도, 국법을 어기면 되겠는가? 궁녀가 외간 사내를 만나고 있다면 당연히 능치처참을 당해야 마땅할 일이지.”

“해서 민 대감님을 찾아온 것이 아닙니까? 제발 제 사촌누이 설아의 생명을 지켜주시옵소서.”

“흐음! 설아라! 허면, 자네도 생명이 위험하지 않겠는가? 내가 보기엔 자네가 궁중 무희 설아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게 아닌가 하네만.”

민영소 대감이 뭔가 의심이 가는 구석이 있다는 듯이, 실눈을 반짝이면서 그의 표정을 면밀하게 살폈다.

“대감! 아니옵니다! 저는 죽어도 좋사오니, 설아의 생명만 건져주시옵소서.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대감님을 위해서 제 생명도 아낌없이 받치겠나이다.”

“어허! 허면 나와 거래를 하자는 것인가? 하기야, 모든 거래에는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게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내가 중전마마를 만나 뵙고 일이 잘되도록 힘을 써줄 것이니, 자네는 일본으로 가서 잠시 몸을 숨기고 있게나. 그곳에서 자네가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을 게야.”

“대감님! 고맙습니다. 이 은혜는 소인이 죽는 날까지 잊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는 수차례 고개를 숙여 절을 하곤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우정이 사라진 후에, 민영소 대감의 부인이 방으로 들어와 근심염려가 가득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대감! 어쩌자고 포도청 옥사에 갇혀있는 궁녀를 풀어주시겠다고 하는 겝니까? 그 뒷감당을 어찌하시려고요?”

“부인! 내겐 우정 같은 충직한 젊은이가 필요하오. 앞으로 그 젊은이가 내 오른팔이 될 것이니, 너무 염려하지 마시게.” “왜 하필이면 불란서 공사의 통역관을 오른팔로 삼는단 말씀입니까?”

“일본에 있는 역적 김옥균을 처단하려면, 충직하고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젊은이가 있어야 하오. 우정보다 더 좋은 젊은이가 어디에 있겠소? 하늘이 내게 준 기회가 온 것이나 다름이 없잖소.”

“예에? 허면 대감께서 그자를 보내어 김옥균을 사살할 작정이시옵니까?”

“그렇소. 궁녀와 눈이 맞아 국법을 어긴 사내가 일본으로 숨어들었다면, 개화파의 수장이었던 김옥균조차도 의심하지 않을 테니까. 하하하!”

그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만족스러운 듯이 호탕하게 내쳐 웃었다.


그 다음날 민영소 대감은 경복궁으로 들어가 은밀하게 중전을 만났다. 그는 일본으로 자객을 보내어 김옥균을 처단할 계획을 상세하게 중전에게 고했다. 만약 모든 일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마지막 수단으로 우정이라는 사내를 보내어 청나라에서 김옥균을 사살하겠다는 내용도 중전에게 고했다.

“과연 우정이라는 자를 믿을 수 있단 말이오? 만에 하나 그자가 배신이라도 한다면, 큰일이 아니오? 그리되면 김옥균은 죽기는커녕 오만한 눈빛으로 일본에서 전하와 왕실을 저주하며 비웃게 될 것이오!”

“중전마마! 그 점은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옵니다. 그자가 설아라는 이름을 가진 궁녀를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뭐라? 감히 궁녀를 마음에 품다니요?”

“그러하오니, 그자는 제 손에 들어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여차하면 그 궁녀를 내세워 그자를 얼마든지 요리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게다가 불란서 공사의 통역관이니 그곳의 정보들도 수시로 빼낼 수 있을 겝니다. 이거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가지 읽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복되고 좋은 일들이 많아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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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제32화 휘몰아치는 희락 +4 22.06.19 59 4 10쪽
31 제31화 일본 자객 22.06.19 41 3 10쪽
30 제30화 끊어진 밧줄 22.06.19 33 3 10쪽
29 제29화 철도부설권 22.06.19 33 3 9쪽
28 제28화 조선의 춤사위 +2 22.06.19 37 3 9쪽
27 제27화 국제파티 22.06.19 34 3 9쪽
26 제26화 노서아 공사관 22.06.19 35 4 9쪽
25 제25화 조선 왕비의 죽음 22.06.19 34 4 9쪽
24 제24화 여우 사냥 22.06.19 31 3 9쪽
23 제23화 서찰 22.06.19 28 3 9쪽
22 제22화 빈 무덤 +1 22.06.19 34 4 9쪽
21 제21화 사냥개 22.06.19 31 3 9쪽
20 제20화 꼬꼬뱅 22.06.19 34 3 9쪽
19 제19화 밑밥 +1 22.06.19 34 4 9쪽
18 제18화 불란서로 가다 +1 22.06.19 33 4 9쪽
17 제17화 밤하늘에 뜬 달 22.06.19 31 4 9쪽
16 제16화 도율 권법 22.06.19 30 4 9쪽
15 제15화 무형의 벽 22.06.19 33 4 9쪽
14 제14화 그의 이름 22.06.19 32 4 9쪽
13 제13화 무서운 싸움꾼 +1 22.06.19 38 5 9쪽
12 제12화 좋은 동지 22.06.19 36 4 9쪽
11 제11화 금상첨화 22.06.19 35 4 9쪽
10 제10화 조선의 학자 22.06.19 39 4 9쪽
9 제9화 동양화 +2 22.06.19 41 4 9쪽
8 제8화 운명 22.06.19 40 4 9쪽
» 제7화 밀담 22.06.19 45 4 9쪽
6 제6화 꽃 사슴 한 마리 22.06.18 48 4 10쪽
5 제5화 가비 차 22.06.18 51 3 10쪽
4 제4화 불란서 공사관 22.06.17 58 4 10쪽
3 제3화 향기로운 꽃과 나비 +2 22.06.17 70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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