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사원 (2)
기묘한 느낌과 함께 던전의 내부로 들어가자, 먼저 나를 맞이한 건 촉촉한 흙냄새였다. 그리고 그 안에 한 줄기 섞여있는 비릿한 냄새.
흙냄새 나는 땅 옆에는 녹색으로 된 강이 흐르고 있었다.
....
단순히 녹조라고 보기엔 끈적끈적해보인다. 가끔씩 기포가 보글보글 생기다가 터지기도 하고. 더 볼 것도 없이 저건 독이다.
[목표 : 사원의 오염을 정화하세요.]
여기서 말하는 오염을 정화하라는 게 이걸 정화하라는 것일 가능성이 컸다.
눈길을 돌렸을 때, 독성 물질은 강 상류 어딘가에서부터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시간에 침식된흔 석조로 이루어진 탑이 서 있었다.
목적지는 아마도 저 곳.
저기까지 도착하려면 외나무 다리도 몇 개 건너야 하고 제법 먼 길을 가야했다.
일단 당장 눈에 보이는 몬스터는 없었다.
하지만, 방심하면 안 된다.
이 똥겜의 던전에선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색색돌이공]
-물푸레나무의 잎을 빚어 만든 조잡한 공으로 바닥에 부딪히면 매우 큰 소리를 냄.
매우 쓸모없는 아이템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제법 유용하다.
난 색색돌이공을 들고 정면으로 힘껏 던졌다. 공이 공중을 가르며 날아가는 순간, 요란한 소리가 사방을 가득 채운다.
끼-꿍. 끼-꿍. 끼-꾸우웅.
그러자, 그 소리에 반응하는 듯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스-슥.
그것은 바로 뱀의 소리였다. 풀숲에서 모험가들이 지나가면 기습하기 위해 숨어있던 뱀들이 살금살금 모습을 드러냈다.
뱀들의 크기는 상당했다.
[먹구렁이 lv. 35]
역시나,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이곳에는 뱀들이 사방에 숨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
구렁이들은 당장에라도 덮칠 것처럼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스슥 소리와 함께 구렁이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
그 순간, 성직자는 대충 어디선가 주운 칼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싸움이 시작되었다.
성직자는 빠르게 구렁이를 향해 돌진했다. 그의 칼은 빛나는 궤적을 그리며 공기를 갈랐다. 하지만 구렁이는 빠르게 움직여 그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나 성직자는 몸의 균형을 잃지 않고 다시 한 번 구렁이를 향해 돌진했다. 이번에는 성직자의 칼날이 구렁이의 피부를 갈라냈다. 잘려진 상처에서 피가 뿜어져 나온다.
구렁이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더욱 격렬하게 반격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치켜세우고, 빠르게 움직여 이빨로 성직자의 목덜미를 노린다.
성직자는 고개를 숙여 그 공격을 피해냈으나, 구렁이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어느새 뒤에서 다가온 구렁이 한 마리가 성직자의 발꿈치를 물었다.
“크흑!”
발꿈치에서 독이 퍼지기 시작했지만, 독의 내성을 올려주는 물약을 먹은 탓에 그것이 치명상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성직자는 고통을 참아내며 다시 구렁이를 겨냥하고, 있는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댕겅-.
잘려진 구렁이의 머리가 바닥에 뒹군다.
성직자는 잠시도 쉬지 않고, 남아있는 구렁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이 구렁이의 피부를 갈라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칼날이 무뎠다. 덕분에 구렁이의 질긴 피부를 완전히 잘라내지는 못하고, 그의 공격은 구렁이에게 약간의 상처만을 남겼다.
화가 난 구렁이는 그의 공격에 반응하여 다시 이빨을 들이밀었다. 그의 이빨은 날카롭게 성직자를 향해 날아갔다.
성직자는 잠시 한숨을 쉬며, 왼팔에 로브를 둘둘 두르고 구렁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성직자는 이렇게 구렁이의 공격을 막아내며, 그 사이에 검으로 구렁이의 머리통을 내리찍었다.
그의 검은 구렁이의 머리를 꿰뚫었다. 구렁이는 몸을 부르르 떠는 와중에도 아가리를 벌려 성직자를 물어뜯으려고 했지만, 구렁이의 움직임은 점점 둔해져갔다.
마침내, 그의 움직임은 완전히 멈췄다. 구렁이의 머리는 바닥에 떨어졌다.
***
-레벨업!
-레벨업!
-레벨업!
「근접 무기 숙련도가 상승하여, 근접무기 숙련도가 lv.3에서 lv.4가 됩니다.」
「근접 무기 사용 시 공격력이 65%만큼 상승합니다.」
단번에 레벨이 3개나 올랐다. 현재 레벨은 16.
한 20정도까진 이런 식으로 잘 오를 거다. 20부터는 필요한 경험치가 폭등하기에 그렇게 잘 오르진 않는다.
헥토르의 버프를 받지 못해서 그런지 나온 아이템은 별 볼 일 없었다.
그래도 한번에 레벨을 3개나 올린 건 엄청난 쾌거다.
여기서 희소식이 하나 더 있다면 이제 1레벨만 더 올리면 영혼 항아리를 낄 수 있다.
〚영혼 항아리〛
⦁고유아이템
⦁분류 : 보조무기
⦁등급 : 전설
⦁능력치 : 마력 +60, 주문의 위력이 80%만큼 상승합니다.
⦁무기 공격력 : 20
⦁요구 능력치 : 근력 50, 마력 250
⦁고유능력 : 〚영혼 수집〛
-영혼을 수집할 때 생명력과 마나를 회복합니다.
-수집한 영혼에 비례해 능력을 얻습니다.
-수집한 영혼의 수 (0/1000)
-어디선가 사자의 부름이 들려옵니다.
“아오 쓰라려.”
물린 부위가 아프다.
난 명색이 사도인데 무슨 정화 같은 것도 없나?
암흑플레어나 흑점폭발 같은 사기 스킬 말고, 자잘한 스킬들을 배우려면 교단을 만들고 제단을 세워야 하는데 아직 거기까지 진행을 못한 탓이다.
그래도 이제 스펙이 좀 올라서 35레벨짜리 몬스터 정도는 칼 들고 싸울 수준이 됐다.
근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내 인벤토리에는 폭풍왕의 도라는 무시무시한 무기가 잠들어있다는 거다.
〚폭풍왕의 도〛
⦁고유아이템
⦁분류 : 주무기
⦁등급 : 전설
⦁능력치 : 근력 +100, 민첩성 +50
⦁무기 공격력 : 380
⦁요구 능력치 : 근력 300, 민첩성 100
⦁고유능력 : 〚폭풍의 일격〛
저거를 쓰면 구렁이 따위는 그냥 단번에 뎅겅뎅겅 베어버릴 수 있을 거 같은데.
지금 사용할 수 있는 무기는 이것뿐이다.
[병사의 장검]
⦁분류 : 주무기
⦁등급 : 매직
⦁능력치 : 근력 +2
⦁무기 공격력 : 30
폭풍왕의 도를 끼려면 근력 200 정도는 더 올려야 한다.
암흑 플레어를 사용하면 간단하게 잡겠지만, 근접 무기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서 일부러 검으로 잡았는데, 이거 영 수지타산이 맞지가 않는 거 같다.
어디 몸 대주는 착한 고레벨 몬스터 없나?
조금 더 진행하자, 독으로 된 강을 가로지르는 외나무 다리가 나타났다. 일단 몬스터가 안 보인다. 근데 알다시피 여기는 똥겜 속 던전이다.
몬스터가 없을 리가?
옛말에 이런 말도 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
지금 그의 앞에 있는 것이 돌다리는 아니지만, 이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역시나 이번에도 도움을 줄 것은 [색색돌이공].
끼-꿍. 끼-꿍.
내가 이것을 힘껏 던지자, 색색돌이공은 공중을 가르며 날아갔다. 그리고 그것이 땅에 닿는 순간, 요란한 소리가 사방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반응하여, 다리 밑에 숨어있던 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근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외나무 다리는 싸우기에는 너무 좁았다.
그렇다고 [암흑플레어]를 쓰자니 나무가 불 탈 위험이 있다.
뱀들은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쉬-이익!
난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흠.”
그러다 무언가를 깨닫고, 인벤토리에서 [미끌이 물약]을 꺼냈다.
[미끌이 물약]
-바닥을 미끄럽게 합니다.
물약을 외나무 다리에 뿌리자 순식간에 다리는 빙판길처럼 미끄럽게 변했다.
마찰력이 거의 없는 빙판길을 걷는 것은 인간에게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발밑이 미끄러워서 한 발짝도 제대로 내딛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바닥을 기어다니는 뱀들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울까?
뱀들은 갑자기 미끄러워진 바닥에 당황했다. 뱀들의 몸은 미끄러운 바닥에 미끄러졌고, 그들 중 몇몇은 물속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전부 다 멍청이들은 아니었는지 뱀들은 도중에 멈춘 채로, 한 데 뭉쳐서 위협적으로 쉬-쉭!거리는 소리를 내며 나를 주시했다.
“흠, 이걸 이제 어떻게 잡지?”
근데 뭐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독사들은 미끄러운 다리 위에 있다. 그리고 다리는 외나무 다리다.
외나무 다리는 잘 흔들린다.
난 다리 끝에 가서 발을 굴렀다. 그러자 다리가 출렁출렁거리면서 뱀들은 후두둑 녹색 강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레벨업!
-레벨업!
-레벨업!
-레벨업!
날먹도 이런 날먹이 없다.
단숨에 20을 찍어버렸다.
드디어 이제 전설등급의 아이템인 [영혼 항아리]를 낄 수 있다.
영혼 항아리를 장착하자마자 뭔가 으스스하고 스산한 기운이 몸에 감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늦게 죽기 시작한 뱀들이 있었다. 뱀들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이제야 죽었는지 메시지가 들려왔다.
-레벨업!
20부터는 필요한 경험치가 대폭 증가하기에 레벨이 많이 오르진 않았다. 하지만 대신 다른 걸 얻었다.
「수집한 영혼에 비례해 능력을 얻습니다.」
「영혼 항아리가 먹구렁이의 영혼을 수집합니다. 하급 영혼을 수집합니다.」
「영혼 항아리가 먹구렁이의 영혼을 수집합니다. 하급 영혼을 수집합니다.」
「영혼 항아리가 먹구렁이의 영혼을 수집합니다. 하급 영혼을 수집합니다.」
....
「수집한 영혼의 수 (6/1000)」
「어떤 능력을 올리시겠습니까?」
대박.
역시 사기템.
이미 마력은 충분한 상황이다. 나한테 필요한 건 근력이다.
「수집한 영혼에 비례해 능력을 얻습니다. 현재 적용된 능력치 근력+6」
영혼 항아리는 스텟을 천 개까지 올려줄 수 있는 사기템이었다.
전설등급의 아이템이 괜히 귀중한 게 아니다.
저거로 근력을 조금만 올리면 이제 [폭풍왕의 도]를 낄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마침내 석조로 된 탑에 도착했다.
무거운 돌 문이 천천히 열리자, 차가운 공기가 밖으로 흘러나왔고, 앞에는 어둠에 잠긴 복도가 이어져 있었다.
탑의 구조는 위로 뻗어 올라가는 대신, 아래로 내려가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나는 계단을 따라 저벅저벅 내려갔다.
저벅저벅.
지하로 내려가자, 내 눈앞에는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곳곳에 배치된 횃불들이 희미한 빛을 내뿜어 주변을 비춰준다.
앞에는 좁은 다리 하나가 있었다. 마치 나를 저쪽으로 인도하려는 듯한 모습이다. 다리 아래에는 깊고 어두운 구덩이가 있었다. 깊이는 어둠 속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다만, 깊은 구덩이 아래서는 쉬-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 뱀이네.”
난 다시 한번 색색돌이 공을 꺼내 다리 위로 던졌다. 그 공은 다리를 따라 튕기며 요란한 소리를 내뿜었다.
끼-꿍. 끼-꿍.
밑에 있던 뱀들이 색색돌이 공의 소리에 자극을 받았는지, 그들의 쉬-쉭거리는 소리가 빨라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리 위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적어도 다리 근처에는 뱀이 없다는 뜻이었다.
안일한 모험가라면 이대로 다리를 건넜을 거다.
하지만 난 이 게임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이 게임은 유저를 엿먹이기 위해서 모든 열과 성을 다하는 게임이다.
앞에 보이는 건 안전해보이는 돌다리라 한들 방심할 수 없다. 어디서 낫이 떨어져 내려 공격할 수도 있고, 무거운 추가 튀어나와 모험가를 떨어트릴 수도 있다.
“이번에야말로 돌다리네.”
난 인벤토리에서 무게가 제법 묵직한 매직 등급의 갑옷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다리 위로 던졌다. 갑옷이 다리를 두드리며 큰 소음이 일었지만, 일단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 발자국 가고.
다시 던진다.
그러자 엄청난 소리와 함께 갑옷이 놓인 바닥이 갑자기 아래로 꺼져 내려갔다.
쿠쿵!!
떨어진 갑옷을 향해 뱀들이 독을 뿜어내고 있는지 밑에서 풍겨오는 비릿한 냄새가 강해진다.
쉬-쉭!
다리가 좀 무너져내리긴 했지만, 내가 건너기에는 충분했기에 새로운 물건을 꺼내 던져가면서 다리 끝부분에 도착하는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건 한 걸음.
언제나 사람이 방심했을 때를 노린다.
사람이 가장 방심하는 순간은 목표가 바로 눈앞에 있을 때!
멈춰선 채로 이것저것 물건을 던져봤다. 딱히 반응은 없었다.
이 정도까지 했지만, 그래도 방심하기엔 이르다.
어쩌면 생명체에만 반응하는 함정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마침 벽을 타고 올라온 뱀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인벤토리에서 재료를 꺼내 대충 기다란 작대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작대기를 이용해 뱀을 낚아채고 그 뱀을 앞에다가 던졌다.
지지직!!!
순간 전기 함정이 터져나오며 그 자리에서 뱀이 통구이가 되어버렸다.
“역시나.”
이제서야 안심을 한 난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건너편에 도착하니 다시 내려가는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은 이대로 내려가겠지만, 아직 여기서 할 일이 남아있었다.
저 밑에 있는 수많은 뱀들.
전부 다 생명체 아닌가?
뱀들이 경험치는 별로 안 주겠지만, 그래도 영혼 항아리에 바칠 제물은 되지 않을까?
- 작가의말
뱀 잡느라 레벨은 많이 올렸네요.
근데 한 가지 질문을 좀 하자면 레온하르트가 충분히 악당처럼 느껴지나요 아니면 그냥 그렇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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