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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스초코 님의 서재입니다.

게임 속, 사이비로 살아남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백두루미3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8
최근연재일 :
2023.06.14 16:20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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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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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38,014

작성
23.05.1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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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집단의 성직자

DUMMY

“또 죽었네.”


이번에야말로 이 게임의 끝을 볼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난 게임의 끝을 보지 못했다.


내가 하던 게임의 이름은 ‘더 월드’.


‘곧 현실이 되는 게임’이라는 미친 소리를 하며 광고를 해댔던 게임이다.


그래도 미친 소리를 했던 것과는 별개로 게임성 자체는 꽤나 훌륭했다.

이 게임은 오픈 월드 형식에 수많은 퀘스트와 NPC들이 준비되어 있고, 게이머들은 그 속에서 ‘방랑자’라는 이방인의 신분으로 살아가게 되는 게임이다.


이 게임은 초기엔 그래도 제법 호평을 받았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게임은 망했다. 제기되었던 표절 의혹은 차치하더라도, 결정적인 문제는 게임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알려주는 정보는 없고, 몹들은 강하고, 캐릭터는 약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은 툭하면 죽게 되는 이 게임을 ‘좆망겜’이라고 울부짖으며 떠나갔다.


그런데, 난 오히려 이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게임은 어려워야 제맛이지!


그렇게 입으로는 궁시렁거리면서도 난 꾸역꾸역 게임을 진행해왔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수많은 엔딩을 정복하고, 사이트에 초보자들을 위한 몇 가지 공략까지 남기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힘들게 알아낸 모든 정보를 풀어낸 건 아니고, 아주 살짝만 수많은 엔딩 중에서 딱 기본 엔딩 몇 가지만 볼 수 있을 정도로만 정보를 풀었다.


그러자 내가 공략을 올린 효과가 있긴 있었는지, 파리만 날리던 개망겜에 하나둘씩 유저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런 소수의 유저들이 지금까지 남아 이 망겜을 지키고 있는 실정이었다.


물론 사람이 늘었다고 해서 나한테 뭔가 공략적으로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초보들이었으니까.


업정 랭킹

1.신채리 [1,332,222]

2.라스푸틴 [1,022,883]

3.지존짱킹 [765,723]

4.레온하르트 [543,110]


「검은 태양 1,032,442,112」

「업적 점수를 랭킹에 등록하시겠습니까?」


NO.


그래도 이번엔 진도를 조금 더 나가서 그런지, 업적 점수가 10억을 돌파했다. 지금 랭킹 1등으로 있는 사람과 비교해도 100배쯤 높은 점수다.


근데 이래봤자 뭐하나? 아직도 끝판왕을 깨려면 멀었다.


모니터에서는 내가 플레이했던 기록이 엔딩 크레딧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클래스 : 폭풍의 신」

「처치한 적의 수 : 15,332,111」

「처치한 스테이지 보스의 수 : 5」


그리고 인물 한 명 한 명의 초상화가 화면에 나타났다.


「솔라」

「샤르니아」

「아쉬타르」

「셀리나」


마지막까지 같이 했던 동료들의 목록이다.


그렇게 모니터에서 올라오는 식상한 엔딩 크레딧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난, 마지막에 나온 문장을 보고 눈이 번쩍 떠졌다.


「그동안 ‘더 월드’를 사랑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미친, 갑자기 이렇게 섭종한다고?”


「‘더 월드’의 오픈베타 서비스가 끝나고 정식 서비스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진정한 모험에 동참하시겠습니까?」


난 홀린 듯이 버튼을 눌렀다.


YES.


***


척박한 북쪽 땅을, 승객 몇 명 태운 낡은 달구지 한 대가 달달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이야 장관이구만! 여기가 그 천산이라는 곳인가? 내가 황금교단에 갔을 때 봤던 산만큼이나 웅장하구만.”

“어허, 피터 이 사람아. 입 조심하게!”


다른 사내는 피터라는 사내에게 핀잔을 주면서, 구석에 앉은 승객의 눈치를 힐끗 살폈다. 모험가로 살면서 동행하는 사람의 신상을 파악하는 건 필수다.


구석에 앉은 승객은 검은색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기에 겉모습을 보고 알 수 있는 건 별로 많지 않았다.


일단 체격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남자였다. 여기까지는 뭐 특별할 게 없는, 일반적인 모험가였다. 하지만, 그의 후드 안에서는 으스스한 청록빛 안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건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검은 후드와 그 안에서 으스스하게 흘러나오는 청록빛의 안광.

저게 뜻하는 바는 하나다. 저 사내는 바로 암살교단의 성직자라는 것.


단언컨대, 암살교단은 로렌시아 대륙에서 가장 위험한 집단이다.


사내들도 거친 모험가 생활을 해왔기에 제법 간은 크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간이 큰 사람이라도 암살교단의 성직자 앞에서는 간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간이 크다고 하면 직접 간을 꺼내 보자고 하고도 남을 작자들이 암살교단의 성직자들이니까.


암살교단의 성직자 앞에서 그와 대척하는 황금교단을 언급하는 건 절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사내는 주제를 황급히 돌렸다.

“큼큼... 근데 이 너머에 뭐가 있는지 아시오?”

“뭐긴 뭐야, 우리가 찾고자 하는 암흑신의 신전이라는 게 있겠지.”


“근데 암흑신이 누구요? 처음 들어보는 신인데.”

“뭐, 암흑이라는 음험한 이름이 달린 거 보면 뭐 악신 같은 거 아니겠나?”


암흑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들이 여기 모인 이유는 어떤 소문을 듣고서다.


‘붉은 달이 뜨고 황금나무의 빛이 바랄 때, 세상의 끝에서 암흑신에게 가는 길이 열린다.’라는 문구는 이 대륙, 로렌시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살면서 다 한번쯤은 들어 본 문구다.


문제는 듣기만 많이 들어봤지 내용이 하도 아리송해서 정확한 뜻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거였다. 그런데 어느 날, 저 문구를 해석한 내용이 소문으로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문을 들은 수많은 모험가들은 홀린 듯이 척박한 북쪽 땅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봐, 그 소문이 뜻하는 곳이 여기가 맞겠지?”

“아마도 맞을 거요.”


“아니, 근데 그 정보가 확실한 게 맞아? 엄청난 던전에 대한 정보가 그렇게 허술하게 풀릴 리가 있나. 붉은 달이 뜬다는 것도 허무맹랑한 소리지. 대체 하늘에 있는 달이 어떻게 붉은색이... 되는군....”


피터란 사내가 말하던 중, 하늘에 붉은 달이 뜨며 세상이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소문이 사실이었군....”

“오오... 세상이 이런 일이....”


붉은 달을 본 모험가들은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소문의 마지막 구절까지 사실이길 바랐다.

제발 이 길의 끝에 암흑신의 신전이 있기를!


***


현대의 군인들의 외형이 집단적인 특색을 가지는 것처럼, 모험가들도 그들 나름의 독특한 특색을 가진다.


먼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노안과 까맣고 거친 피부. 그리고 여기저기에 난 흉터들은 모험가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거친 모험가들 사이에, 이질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는 두 명의 인물들이 섞여 있었다.


아름다운 주황색 머리카락을 가졌으나, 얼굴은 다소 밋밋한 여인 한 명과 검은 후드를 뒤집어 쓴 사내.


후드를 뒤집어 쓴 사람이 바로 나다.


내가 이곳에 빙의한 지도 어느덧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다.


‘후...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던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 떨어져서 레벨도 1이고, 직업도 없는 상태로 대륙을 전전하며 지냈다.


게임 속에 빙의를 했으면 히든 특성이라던가 뭔가 좋은 것을 주는 것은 상식이거늘, 이놈의 망겜은 빙의자를 위한 어떤 근사한 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참으로 망겜다운 처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 또한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었다. 이 척박한 불모의 망겜에서 초보유저들을 기른 게 바로 나다.


준비된 특별한 능력이나 직업이 없다면, 내가 직접 준비하면 되는 것이다.

과거에 '폭풍의 신'이라는 신화등급의 직업을 가지고도 결국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더욱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다.


초반에는 약간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후반에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직업. 이게 내가 원하는 직업이었다.


그래서 난, 이 북쪽 땅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날거지가 멀고 먼 북쪽 땅까지 가는 일이 쉬울 리가 없었다. 한국에서나 도보로 국토대장정이 가능하지, 여기 대륙은 제법 위험한 동네다.


평화로운 동네라면 상관없겠지만, 이렇게 대륙의 변방으로 향하면 골목에는 강도들이 출몰하고, 산속에는 산적들이 숨어 있으며, 바다에는 해상 괴수들이 나타난다.


하지만 난 레벨1인 상태로 북쪽 땅까지 가야 했다. 그래야 히든 직업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내가 선택한 생존전략은 위장이었다.

애벌레가 뱀을 따라하고, 나방이 말벌을 따라하듯 난 암살교단의 성직자를 의태했다.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암살교단은 굉장히 무서운 집단이다. 특성상 세가 널리 퍼지진 않았지만, 위명만은 대륙 제일이라 하는 황금교단 못지 않은 게 바로 암살교단이다.


그들을 위장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검은 후드를 뒤집어 쓰고, 약초를 배합해서 으스스한 빛이 흘러나오는 염료를 눈가에 바르면 된다.


뭐 분장이 어설퍼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상식적으로 암살교단을 사칭하는 미친놈이 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인간은 자기가 진실이라고 믿는 일에는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래서 난 무사히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


쿵! 쿵!


달구지 안에서 약초 빻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무런 능력도 없는 나였기에 이 약초를 빻는 일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다. 안광을 뿜어내는 시료를 만드는 것도 그거였지만, 이런 조잡한 약초들도 잘만 배합하면 제법 쓸만한 물건이 나온다.


쿵! 쿵!


넓지 않은 공간에서 끊임없이 들리는 소음은 거슬릴 법도 했지만 이를 제지하는 이는 없었다.

조금 거슬린다고 암살교단의 성직자에게 불만을 제기한다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니까!


하지만 가끔은 본인의 올곧음을 위해서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거 조용히 좀 하면 안 돼요?”


말을 한 건 주황색 머리의 여인이지만, 살이 떨리는 건 다른 사람들의 몫이었다. 저러다 성직자가 화나서 저주라도 퍼부으면 어쩌려고!


“신의 뜻입니다.”


이 발언은 치트키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의 뜻’이 치트키성 발언이라면, 신이 있는 세상에서는 ‘신의 뜻’이 바로 치트키다.


누가 감히 신의 뜻을 거스를까?


“당신의 신은 남에게 폐를 끼쳐도 된다고 하던가요?”


-어허 어찌 저런....

-아가씨 제발 그만 좀 하게나.

-그러다 성직자께서 노여워하시면 어쩌려고!


주위에서 저러면 의견을 굽힐 법도 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역시 네임드 NPC인가? 호락호락하지가 않네.’


저 여자는 본인을 에밀리인가 에일리인가 뭐 둘 중에 하나라고 소개를 했지만, 사실 그녀의 이름은 솔라라는 네임드 NPC다.


여인의 말을 한참 곱씹던 성직자가 말했다.

“이단이군요.”


성직자의 말에 주변의 공기가 변했다.

이단이라니!


종교재판에서나 나올 법한 말이 아니던가! 이 세상엔 제법 가혹한 법이 제정되어 있지만, 아무리 가혹한 법전을 갖다놔도 성경 앞에선 상냥한 법전이 되기 마련이다.


법전 앞에선 죽음이 최고의 형벌이지만, 성경 앞에서 죽음은 축복이다. 수틀리면 말 그대로 아비규환 속에 사람을 가둬버리는 게 종교의 형벌이다.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종교재판은 참고인으로라도 소환되면 그것조차 큰일이다. 괜히 불려갔다가 자신의 신앙심을 시험받기라도 한다면 그게 무슨 날벼락인가!


-어어억, 아가씨 우, 우리는 대화한 적도 없는 걸세!

-저, 전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


“자기랑 다른 의견을 말했다고 이단인가요?”


-저, 전 여기서 내리겠습니다!

-저, 저도요!


노새를 몰던 마부까지 도망쳐버리자 달구지에는 주황빛의 여인과 어둠의 성직자. 두 명만이 남게 되었다.


‘흠... 이 여자 비겁하군. 팩트로 승부를 보려고 하다니.’


지성인이라면 날조와 사기로 승부를 봐야 하건만, 비겁한 상대를 만나버렸다. 이렇게 말이 안 통하는 상대를 만났을 때는 어쩔 수 없었다.


“신이 말하길, 다른 이의 다름도 존중하라 했습니다. 당신의 말도 일리가 있군요.”


단단히 대꾸하려고 준비 중이던 솔라는 성직자의 말에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렇게 순순히 인정하시는 거예요?”

“이 또한 신의 뜻입니다.”


신의 뜻이라는데 상대가 뭐라 할쏘냐. 역시 치트키다. 아무 때나 쓰면 다 말이 된다.


“흠흠, 그럼 알겠어요.”


저주를 받을까 봐 두려워, 멀찍이 도망갔던 사람들은 눈치를 살피다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자 하나둘씩 돌아오고, 조심스레 다시 달구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그렇게 달구지가 한참을 움직인 끝에 도달한 곳에는 거대한 사원 하나가 있었다.

크기는 크지만 웅장함보다는 알 수 없는 음침함이 느껴지는 검은 사원.


이 검은 사원은 먼 옛날 고대인들이 암흑신을 봉양하기 위해 만들었다가 잊혀진 제단이다.


사원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또 새로운 사람들이 왔나보군.

-쯧, 온갖 잡졸들이 다 모이는구만.


새로 온 사람들이 환영받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기야 누가 보물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을까? 거기다 무려 ‘신’이 언급되는 곳이다. 얼마나 가치 있는 보물이 묻혀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사원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 있는 이유는 저주가 두려워서였다. 무려 ‘암흑신’이라는 이름이 붙은 신전이다.


보통 상급 던전에는 저주가 있기 마련인데, 이곳은 무려 암흑신이라는 음험한 신이 언급되는 곳이다. 특별히 강력하고 음험한 저주가 있더라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건 저주에 대처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성직자였다.


누군가가 어둠의 성직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혹시 성직자십니까?”


꿀꺽.


다른 사람들도 이것이 궁금했는지, 시선이 집중됐다.


“한 때 신에게 세레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군인이었을 적, 성당에서 세레명을 받은 적이 있었다. 물론 제대하고 나서는 간 적 없지만.


“오...! 그럼 교단에 몸담으신 지는 얼마나...?”

“제가 어미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전 신과 함께였습니다.”


모태신앙이긴 했다. 10살 때 관둬서 그렇지.


따지고 보면 여태까지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 그냥 이렇게만 말했을 뿐인데, 다른 사람들이 멋대로 ‘암살교단의 성직자’라고 생각하는 거다.


“헉...! 그럼 혹시 암살교단의...?”

검은 성직자는 말 없이 으스스한 안광을 내보였고, 그것으로 대답은 충분했다.


“어이쿠 이런 실례를.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저주로부터 지켜줄 축복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성직자는 손가락으로 동전 모양을 만들며 말했다.

“저의 신께선 대가 없는 친절을 바라지 말라했습니다.”


돈은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이 세상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화폐다.


상대는 말이 제법 통하는 사람이었다.

“오오, 돈이라면야 얼마든지 내지요.”


다가온 사람은 제법 많은 양의 돈을 건넸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성직자는 신의 축복을 내렸다.


“오오, 이 신묘한 은빛! 신의 축복이 확실합니다. 힘이 솟는군요!”


이 사람은 뜨내기다. 진짜 축복이 뭔지도 모르는 초짜.


사실 성직자가 한 것은 축복이 아니라 그저 은빛이 도는 안료를 뿌린 거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말도 있지 않던가? 믿음이 곧 축복이다. 무안단물 같은 것처럼, 효과가 좋다고 믿으면 실제 생리적인 효과도 발생하는 법이다.


한 명이 축복을 받고 효과가 있다고 하자, 이것을 시작으로 너도나도 성직자에게 축복을 받기 위해 달려들었다.


-제가 먼저입니다!

-줄 서세요 줄!


축복에 대부분은 만족하며 돌아갔지만, 간혹가다 믿음이 부족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었다.


“이거 축복이 맞나요? 별로 효과 없는 거 같은데.”


-히익...! 이 사람아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자네가 믿음이 부족한 거겠지!


다른 교단이라면 모를까 상대는 암살교단의 성직자다. 성직자가 분노라도 한다면 어쩌려고 저러나? 사람들은 애가 탔지만, 다행히 성직자는 자비로웠다.


“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군요. 하지만, 신은 자비롭기에 믿음이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함께하실 겁니다.”


-오오...! 과연...!


근데 이곳은 무려 ‘신’이 언급되는 곳이다. 그게 뜻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여기가 전설상의 ‘신화던전’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신화던전은 진짜 강자들도 꼬이기에 충분한 유인이었다.


“껄껄껄, 소문이 궁금해서 와봤더니 순전히 뜨내기들과 사이비 천지로구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내는 조용히 말하는 듯 싶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천지를 울리는 듯했다.


상대는 장대한 체구에 용 무늬가 새겨진 도를 든 사내였다. 나이는 60은 넘었을까? 아니, 머리는 세월의 흔적을 드러내듯 하얗지만 얼굴은 주름 없이 매끈하다. 한국이라면 보톡스를 많이 맞았구나 하겠지만, ‘더 월드’에서 이 부조화가 의미하는 건 하나다. 초월했다는 것.


-헉, 저... 저 사람은 용병왕?

-뭐 용병왕 랄프라고?

-미친, 저런 거물이 여길 왜 온 거야?


보물을 꿈꾸며 모인 사람들이다.


떨어진 보물에는 주인이 없는 법이지만, 용병왕급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무려 칭호에 왕이란 수식어가 붙은 존재다. 안주머니에 깊게 쑤셔놓은 돈도 용병왕이 자기 것이라 주장하면 이제부터는 그의 것이다.


신전의 보물을 가질 임자는 이미 정해진 셈이었기에,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누가 감히 용병왕에게 대항할까 싶을 때 성직자가 말했다.


“전, 저주로부터 몸을 지켜줄 축복을 내렸을 뿐입니다. 신의 축복을 받지 않은 자는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교단의 아해야, 내가 네 교단의 위세에 겁먹을 것 같더냐? 껄껄껄.”


용병왕은 단순히 소리내어 웃을 뿐이었지만, 몇몇 모험가들은 그조차 견디기 힘들어 주저앉았다.


-크윽.

-대체 무슨.


암살교단의 성직자와 용병왕의 팽팽한 신경전.

성직자는 용병왕과 시선을 마주하자니 무슨 야산에서 호랑이와 만난 것 같은 기분이라 슬그머니 시선을 내리깔았지만, 푹 눌러쓴 로브와 으스스한 빛 때문에 용병왕은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껄껄껄. 나름 한 수는 있는 모양이구나.”


개인의 무력이라면 당연히 용병왕이 앞서겠지만, 성직자의 뒤에는 교단이 있었다. 팽팽한 신경전 가운데 먼저 움직인 건 용병왕이었다.


“본좌는 먼저 들어갈 테니, 내 앞을 막을 생각은 말거라.”

“먼저 가시면 후회하실 겁니다.”


성직자가 만류했지만, 본래 인간은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더군다나 용병왕 정도 되는 인물의 뚝심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성직자의 말을 무시한 용병왕이 사원으로 발을 내딘다.


그리고, 그의 거구가 맥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이 광경을 본 누군가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아, 암살교단의 성직자가 용병왕을 죽였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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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오아시스에서 생긴 일 (1) +6 23.05.29 1,123 3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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