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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상어 님의 서재입니다.

여장공작은 사교계의 여왕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귀신상어
작품등록일 :
2022.01.29 12:54
최근연재일 :
2022.03.28 18:20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4,474
추천수 :
81
글자수 :
329,731

작성
22.03.06 14:10
조회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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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21쪽

혼의 수복 (3)

DUMMY

“지금 뭐라고······?”


난 내 귀를 의심하며 경악해 반문했지만 그리폰은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시치미를 땠다.


“아니. 신경 쓰지 말거라. 그냥 해본 말일 뿐이니”


지금 상황에서 그럴 수 있겠냐고······.


특히나 마왕의 관계자로 보이는 누군가가 내 영혼 속 무언가를 두렵다고 공언한 상태에서. 그러한 발언은 내게 심한 불안감을 야기할 뿐이었다.


마치 내가 사이비 종교 다단계에 걸려들 때 불안감을 자극하려 미끼를 던지던 포교꾼 같은 화법이잖아······.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는데.


“그럴 바엔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는 편이 제게 도움이 되었겠어요.”

“그런가. 꽤나 까칠한 발언이로군. 아가씨.”


순간 그리폰이 나를 나무라는가 싶었지만 그러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는 목을 그르렁 거리며 무언가를 고민하는가 싶더니 나를 보곤 평이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가트와의 연이라는 것이 있으니. 한 가지만 말해주도록 할까? 뭐 그것도 일반론이다만. 그렇기에 진리에 가까운 이야기다. 예언이란 것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곧 순응하라는 말이 되는 것은 아니야.”

“모순되는 것 아닌가요······?”

“예언이란 건 고작 문장일 뿐이지 않나.”

“그러니까 그게 대체 무슨···”

“여기까지다. 너를 확인했으니 내 볼 일은 끝났다.”


-펄럭! 펄럭!


그리폰은 내 반문을 딱 잘라 끊어내고는 다시 날개짓을 하기 시작했고 짧은 폭풍을 일으키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큭!”


난 몰아치는 바람을 두 팔로 막았고 그것이 잦아들 쯤엔 이미 그리폰은 저 멀리 하늘의 점이 된 뒤였다.


그러니 허망하게 중얼거릴 수밖에.


“대체 무슨 소리냐고요, 불안하게······.”


그리고 그리폰이 탑을 떠나자 다른 학생들은 뒤늦게 내 주변으로 달려왔고 방금 대화에 대해 마구 묻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던가요?! 저 그리폰이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어요!”

“공작 각하께서 그리폰을 다루신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는데. 설마 직접 눈앞에서 목격하게 될 줄이야. 전부 아가씨의 은덕이라 생각합니다. 영광입니다!”

“과연 대륙 최고의 이론가 중 한분. 그 재능은···”

“어이! 이봐! 입 조심해!”

“어······어?”

“그 주제는 금지야···!”


-쉬잇!


커다란 호통에 당황하는 학생과 입가에 손가락을 대며 주의 시키는 학생들. 그건 마치 누군가 해선 안 되는 말을 해서 지뢰를 밟아 버렸다는 반응이었다.


뭐지? 갑자기?


난 고개를 갸웃하며 물음표를 띄웠다. 분명 방금 이상한 대화는 없었는데. 아버지의 재능을 칭찬하는 와중에······아. 그렇군.


내가 상처를 받을 걸 생각해주는 거구나. 내 마법적 재능은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둔재에 가깝다는 설정이었으니까.


뒤늦게 깨달은 나는 공포에 질려 벌벌 떨고 있는 소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그녀는 당장 고개를 숙이며 내게 사과해 왔다.


“아. 이런 죄송합······.”

“아뇨. 저 역시 아버지를 존경하니까요. 전혀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제가 사려 깊지 못한 탓에 그만······.”

“아버님은 저희가문의 자랑이시랍니다. 저도 기쁜 걸요?”


난 싱긋 웃으며 사과를 건네는 학생에게 손을 저었다.


*


한바탕의 소란이 지나가고 모든 수업이 끝난 후.


유나 비비프와 루토 아니우는 교재를 챙기고 복도를 걸으며 낮에 있었던 소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 결국 그 소동의 정체는 뭐였던 거야? 그리폰이 나타나서는 공작가 아가씨한테 짐을 가져다주고 떠났다고? 그것뿐이었단 말이야? 스케일이 너무 남다르잖아. 환상의 동물을 집배부로 써먹다니······.”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또 어떻게 생각해보면 제국의 공작가가 영수로서 그리폰을 다룬다 한들 이상할 건 없겠지.”

“뭐야. 내가 없는 사이에 친해진 줄 알았는데. 아무 말도 못 들었어?”

“그래. 유감스럽게도 난 영 까칠한 성격이라! 그리고 유치원에 딸을 처음 보낸 엄마처럼 말하지 말아줄래?”


루토가 김이 팍 샜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자 유나는 심술이 난 듯 흥, 고개를 돌렸다.


루토가 컨디션 난조로 수업을 빠졌던 지난 열흘 사이 유나의 대인관계에 진전이 있을까 기대를 해봤지만 그녀의 가시 돋친 태도는 여전했던 모양이다.


‘유나도 특유의 독기만 빠진다면 분명 인기가 많을 텐데.’


하나 뿐인 친구의 걱정을 하는 루토.


그리고 두 친구는 그대로 복도의 모퉁이를 돌아섰는데.


“앗···!”


누군가를 발견한 유나가 눈을 크게 뜨더니 우뚝 발걸음을 멈춰 섰다.


“왜 그래?”


유나의 이상반응에 루토가 물음표를 띄우며 옆을 돌아보자 그녀는 몸이 뻣뻣하게 굳어선 볼을 발갛게 붉히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친구의 수줍은 모습에 당황한 루토는 유나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움직였고 그 끝에 서 있는 흑발의 남학생을 발견하자 입가를 음흉하게 뒤틀었다.


어쩌면······봄날이 왔을지도?


남학생이 손을 흔들며 뛰어오자 유나는 뛰쳐나가듯 몸을 확 내밀면서 소리쳤다.


“어, 어쩐 일이야?! 약속은 내일이잖아!”

“아. 미안······. 너무 신나서 바로 달려왔나? 혹시 시간이 안 돼?”

“뭐, 뭐. 안되진 않아!”


검은 머리의 소년이 멋쩍게 머리를 긁자 유나는 책을 품에 꽉 당기면서 고개를 돌리곤 자신이 선심 쓴다는 듯 뻔뻔하게 대답했다.


‘얘 좀 봐라?’


씰룩씰룩 입가가 올라가고 있는데 그런 거짓부렁을 늘어놓다니.


루토는 입을 그런 친구의 태도에 황당하다는 듯 입을 벌렸다.


‘조금 전 말은 취소. 이미 독기가 다 빠졌잖아.’


힐끔힐끔 시선을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하고 몸을 배배꼬고 있는 유나 비비프의 모습은 탑에 입학하기 전부터 친구 사이였던 루토조차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검은 머리의 남자는 그런 유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갑작스레 일정을 바꾸는 게 너무한 일인 건 알지만 그래도···”

“아냐! 급한 일이잖아? 나도 알고 결정한 일이고.”

“괜찮아?”

“괜찮다니까!”


유나는 여전히 볼을 붉힌 채로 크게 대답하고는 매우 자연스럽게 손에 들린 책을 루토에게 넘겼다.


“자. 난 가볼게. 이거 부탁해.”

“어···? 뭐···? 응···?”

“내 기숙사 방 앞에만 가져다 놔 주면 될 거야. 그럼!”

“에···?”


갑작스런 심부름꾼 신세에 루토는 연속해서 물음표를 띄워댔지만 유나에겐 이미 눈에 뵈는 게 없어보였다.


그녀는 루토가 엉겁결에 책을 넘겨받자마자 쌩하고 달려가 소년의 옆에 섰고 오히려 남학생이 힐끔 뒤를 돌아보며 그녀에게 고개를 까딱 숙여 미안함을 표했다.


“나 참······.”


루토는 턱 아래까지 쌓인 책 더미를 들고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래 청춘이다 이거냐?”


그녀는 유나의 말마따나 엄마 같은 미소를 지어보였지만 동시에 가슴 한 켠이 텅 빈 것 같은 시림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원래 남의 연애사에 영향을 받는 성격은 아니었는데. 오늘은 어째서인지 이별을 맞이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지나치게 쓰렸다,


“하아······.”


루토 아니무는 유나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옮겼다.


*


“그, 그래서 급한 일이란 건 뭐야? 뭔가 단서가 될 만한 문헌이라도 찾았어?”


이제는 사실상 만남의 장소가 된 가상구현화실에서 유나는 책상에 의자를 바짝 붙이며 물어왔다.


그녀는 안경 옆으로 땋여져 있는 붉은 머리칼을 매만지면서 계속 딴청을 피웠는데 볼이 붉은 것을 보면 역시 말로는 이해한다고 해도 약속을 깬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시간을 빡빡하게 사용하는 모범생이니까. 따라서 난 가능한 빠르게 용건을 털어놓았다.


“문헌을 이상 살펴볼 필요도 없어. 처음 이론 그대로 밀고 나가면 되니까.”

“응? 처음 이론이라면 설마 슬리우데르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환혼법 현상’을 유발하는 영약 말하는 거야······?”

“그래.”


내 당당한 끄덕거림에 유나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듯 다시 물어왔다.


“물론 이론상 가장 안정적이고 확정적인 방법이겠지만 사용되는 재료들이 지나치게 고비용인 것들뿐이었잖아? 그래서 부족한 재료를 대신해 비슷한 작용을 할 수 있는 소재나 이론 탐색에 몰두해왔던 건데······. 네 급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만약 강행한다면 그 약은 반쪽짜리······아니 자칫 잘못하면 리바운드 현상이 일어나서 여남은 샤론 양의 혼에까지 문제가 생길지 몰라.”


유나는 슬리우데르 교수가 그녀에게 일렀던 주의사항을 그대로 읊었다.


샤론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숨기고 유나의 개인 연구라는 명분으로 상담을 청했던 탓인지. 슬리우데르 교수는 상용화가 가능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 영약의 연구를 진행시켰다고 한다.


이론 그대로 영약을 만들었다간 지나치게 가성비가 좋지 않으니 학술적 성과로 인정받기 위해선 가성비를 고려해야 한다고 하면서.


사실 그게 맞는 말이긴 하지.


기억에 누락이 생긴다는 부족용이 있다고는 하나 가만히 놔두기만 하면 회복할 수 있는 상태이상을 조금 빠르게 회복시키기 위해 그런 고비용을 들여 투자한다는 건 비효율을 넘어 비합리적인 판단일 테니까.


하지만 그것도 압도적인 부 앞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야기가 된다.


“방금 교수님께 확인하고 오는 길이야. 혹시 몰라 우리가 게시판에 요청해놓았던 소재가 전부 기부됐데. 탑의 학생들의 연구 성과 증진을 위한 일이라고 하면서.”

“뭐? 저, 정말?!”


난 고개를 끄덕이며 기부된 소재 리스트를 그녀에게 넘겼다.


“엄청난 양이야. 네가 이야기했던 소재는 사실상 전부 모였어. 이정도 재료라면 완벽한 영약을 만드는 데도 지장이 없을 거야.

“아, 아니 이건······.”

“레드 페어리의 가루부터 혼령낭철까지. 네가 필요할 것 같다고 이야기한 고가의 재료는 전부 있어.”

“이게 대체 얼마야······. 하나만 해도 금화 30냥은 우스운 소재들이 무려······. 무려······.”


유나는 그 소재들이 전부 한데 모였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을 더듬었다.


난 그 광경에 기분이 좋아 미소를 지었지만 곧 유나의 표정은 전에 없을 정도로 흐려지더니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소재가 대체 갑자기 어디서 나온 거지···?”

“응? 방금 말했잖아. 우리가 리스트업 해놓은 걸 누군가 보고 익명으로 기부를···”

“모든 조건이 갖춰져도 조달하는 데에는 적어도 1달. 현실적인 비용과 운송 리스크까지 고려한다면 그보다 훨씬 더한 시간이 걸릴 텐데?”


날카로운 지적. 난 나도 모르게 유나의 시선을 피했지만 그녀의 눈빛은 이미 답을 확정지은 것처럼 보였다.


“오늘 가련 레시오스코프 앞으로 거대 소포가 도착했다고 했지······.”

“잠깐. 그거 무조건 오해거든.”

“이정도 기껏해야 제국의 황제 아니면 바로 아래인 제국의 공작 정도겠지. 그리고 오늘 바로 익명으로 기부됐다는 건······. 너무 노골적이잖아.”

“그건······.”


난 변명하듯 웃음을 지었지만 그 이상 늘어놓을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건 진짜 위험한가? 예상치도 못한 부분에서 트집을 잡혔다.


만약 여기서 내 정체가 발각되었다간 지난 15년간 쌓아온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데···. 차라리 내가 남장을 했던 거라고 할까? 그냥 호기심에······아아! 젠장 말도 안 되잖아! 더군다나 유유라는 가명을 그대로 쓴 탓에 나중에 카르트나 멜리아의 귀에라도 이 이야기가 들어갔다가는 더 복잡한 일이 벌어질 게 뻔하고 자칫했다간 가문에까지 폐를 끼칠 수가 있다.


방향을 바꿔서 생각해보자. 그러니까 이 경우엔······!


난 맹렬하게 두뇌를 회전시켰지만 역시 적당한 변명 따위는 생각나지 않았고 유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혹시 둘은······그렇고 그런 사이인 거야?”


··················.


그래 그럴 것 같더라.


“아니야.”


난 딱딱하게 한마디로 대답했다.


그랬지······. 넌 마법 분야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였지만 인간 그 자체로 본다면 바보에 가까웠지.


난 안심을 하며 숨을 돌렸지만 유나는 아직도 납득을 하지 못했는지 내게 따지고 들었다.


“어, 어떻게 믿어?! 대체 왜 공작가의 영애가 너를 위해서 이렇게 비싼 재료들을 당장 공수해 주는데?!”

“딱히 나를 위해서 해준 건 아니야. 그래. 거짓말을 한 건 미안한데. 익명으로 부탁을 받았기 때문에 말하려 하지 않았던 거야. 가련도 그날 사건의 피해자 중 하나였잖아. 그러니 샤론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던 거지. 그렇다고 이름을 밝히며 앞에 나섰다간 괜히 소란스러워질 테니 자제한 거고. 그리고 애초에 내가 어떻게 공작가 영애하고 사귀겠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소리지.”

“스스로를 얕보지 마! 넌 충분히······! 아, 아니 이게 아니고! 아니라는 증거라도 있어!?”

“아닌 거에 증거 같은 게 어디있어!?”


난 당황해 소리쳤다.


누가 보면 바람피우다 걸린 남자친구인 줄 알겠다!


하지만 여전히 눈을 째리며 날 노려보는 유나에게선 납득이 되지 않으면 영약이고 뭐고 없다는 듯한 분위기가 뿜뿜 발산되고 있으니.


이대로 평행선을 달렸다간 손해를 보는 것은 결국 나겠지. 실상이야 어찌됐든 늘 아쉬운 놈이 손해를 보는 거지.


난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어. 가련 레시오스코프는 얼굴만 반반해서 머리에 든 것도 없는 멍청이에 아버지 백으로 탑에 들어온 얼간이야!”

“그, 그건 말이 좀 심하다······.”

“이보세요!?”


지금 내가 내 입으로 내 욕을 해서 증명했잖아!?


내가 항의하자 유나는 입을 삐죽 내밀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아, 알았어! 넌 그냥 가련과 거래 관계일 뿐이라는 거지? 알았다고. 곧장 영약을 제조하자.”


그녀는 새침하게 허리를 펴곤 못마땅하게 겨우 납득했다는 듯한 태도로 자리에거 일어났다.


하지만 내심 가련의 욕을 들은 게 기분이 좋은지 헤실헤실 웃고 있는 입 꼬리를 숨기지 못했다.


“히히······얼굴만 반반한 멍청이······.”


하아······. 나 머리 아파······,


*


그리고 그간 밀려 있었던 작업은 순식간에 착착 진행되었다. 이론과 배합식은 이미 유나가 계산을 마쳐놓은 상태였으니 순도가 높은 재료가 갖춰진 뒤에 남은 일이라곤 기껏해야 재료를 정제하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갉아 먹혀 소실된 혼을 뇌의 기억에 의거하여 재생, 수복시키는 영약. 통칭 ‘얼거마린의 환혼약’.


투명한 용액은 재료들을 하나씩 첨가할 때마다 차례대로 노란색, 녹색, 붉은 색 그리고 파란색을 오가며 성질을 변화시켰고 최후의 레드 페어리 가루가 첨가되는 순간 단숨에 연보라색의 뽀얀 물약으로 변모했다.


“됐다···.”


그녀는 삼각 플라스크에 담긴 액체를 빛에 비추며 중얼거렸다.


“이게······.”


-꿀꺽.


유나는 침을 삼키며 손을 살짝 떨었다.


“갑자기 아까워지기 시작했어. 재료를 팔았으면 평생 돈 걱정은 안 해도 될 정도일지도 모르는데.”

“어이.”

“아, 알고 있어! 가련한테 미안하니까 그런 짓은 안 해!”


유나는 괜히 버럭하며 자신의 말을 강하게 부정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하지만 뭐. 이해는 간다. 거기 들인 재료값만 해도 무려 고급 저택 한 채 값에 비견될 정도니 당연하겠지.


우린 사실상 돈을 땅바닥에 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 남은 절차는 약의 안정성 확인뿐인데······.”

“내가 마셔야지.”

“괜찮겠어?”

“그거야 뭐······.”


내 혼도 조금 손상됐으니 효능을 확인하기엔 딱이고.


난 영약을 거북하게 쳐다보다가 꿀꺽 툭 말을 던졌다.


“포도맛일까?”

“뭐? 푸하하하하!”

“재, 재밌었어? 실없는 농담이었는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진지하던 유나가 깔깔 웃어대는 것을 보고 덩달아 웃음이 나온 난 미소를 짓다가 한숨을 한 번 쉬고 나음을 먹은 뒤 단숨에 약을 한 모금 들이켰다.


-꿀꺽!


“어, 어때? 괜찮아?”

“끄엑······.”


포도맛은 개뿔! 비누에 캡사이신을 섞은 개같은 맛이었다.


난 비커를 내려놓았고 구역질이 올라오는 기분을 진정시키며 테이블에 손을 짚었다.


위장을 타고 들어간 물약이 천천히 몸에 스며든 뒤 어떤 따스한 기운이 심장에 모여드는 기묘한 감각.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영혼이 수복되는 감각임을.


“합격!”

“만세!”


난 엄지를 치켜세웠고 그제야 유나는 웃으며 두 팔을 위로 쭉 뻗었다.


*


“왜, 왜. 안 일어나지?”

“조금 더 기다려야지.”


우리는 그길로 곧장 병실로 향해 샤론의 입에 영약을 먹였고 그녀가 자의식을 되찾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어······아?!”


괴담을 좋아하던 여학생은 악몽에서 깨어나듯 벌떡 일어나더니 이불을 잡아챈 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신이 들어?!”

“어······어? 넌.”

“난 유나 비비프. 기억이 누락되어 있지는 않아? 라고 물으려고 해도 애초에 친분이 없구나······.”


씁쓸하게 시선을 피하는 왕따녀.


“지금 뭐하는 거야?”

“너, 너가 말해.”

“뭐?”

“둘이 친구라며! 난 이런 거 잘 못한단 말이야!”


유나는 후다닥 내 등 뒤로 숨더니 눈만을 빼꼼 내놓았고 얼결에 앞으로 나서게 된 나는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아, 안녕? 샤론?”

“응? 너는······?”

“우, 우리 친구잖아. 그렇지!?”

“친······구?”


샤론은 아직 잠에서 덜 깨어난 듯 비몽사몽 멍하니 반응했고 난 이틈에 재빨리 용건을 끝마쳐야겠다 생각해 질문을 몰아쳤다.


“넌 지난 2주간 정신을 잃고 있었어. 흡혼충이라는 벌레에게 습격을 당했거든 장수풍뎅이 같이 생긴 괴물 말이야.”

“아. 아아! 그, 그 녀석 엄청 무서웠어.”

“그래. 그랬겠지. 그런데 대체 그런 괴물이 어디서 어떻게 왜 튀어나온 건지 알고 있어? 혹시 그때 주변에 7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가 있지 않았어? 그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묘사해줄 수 없을까?”


어쩌면 흡혼충의 등장의 근본적인 원인은 나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적어도 이 문제는 외부에 알리지 않고 내 선에서 끝내고 싶다. 그런 판단에 의한 질문이었지만 샤론의 대답은 내 예상과는 다른 것이었다.


“어린 여자애······라면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방금 네가 물어서 생각났어. 카트린느는 어떻게 됐어?!”

“카트린느? 카트린느 트리나드 말이야?”


갑자기 그 이름이 왜?


유나 비비프가 고개를 내민 채로 묻자 샤론은 다급하게 소리치며 대답했다.


“그때 나와 함께 있던 게 그 녀석이었단 말이야!”


*


-저벅 저벅


한편 가슴 속 허탈함 이끄는 대로, 멍하니 발걸음이 닿는 대로 움직이던 루토가 도달한 곳은 어째서인지 셰인 교수의 교수실이 있는 복도 앞이었다.


“어라? 내가 왜······?”


뒤늦게 정신을 차린 루토는 셰인 비소란 명패의 글씨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렇다고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뭔가 미련이 강하게 남는. 자신의 행동원리를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기분.


그녀는 그대로 우두커니 그곳에 서서 그 오묘한 감정을 갈피잡기 위해 애썼다.


“하······잖···요!”

“응······?”


루토는 귀를 쫑긋 세우며 물음표를 띄웠다.


문 안쪽에서 빽빽 소리를 질러대는 여자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교수실에서 고성이 오고가다니. 그건 상당히 드문 일이다.


그녀는 문득 호기심이 동했고 조심스럽게 문 앞으로 다가가 귀를 붙였다.


“이야기가 다르잖아요! 그때 분명······다고 했는데!”

“진정해. 내게 생각이 있어. 성급하게 굴지 마.”

“벌써 2주가 지났어요! 전 분명 가련······했는데. 아직까지······면 어쩌자는 건데요!?”

“그러니까 여유가 필요하다고 했을 텐데.”

“됐어요! 그렇게······이상 제가 직접 가련에게······어요!!”

“이봐! 그만 둬! 그건 너무 위험해!”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셰인 오라버니.”


점차 격앙되는 다툼의 끝에 있었던 것은 파국.


루토는 곧 그 앙칼진 목소리의 주인이 교수실을 나올 것임을 직감하며 황급히 발걸음을 돌렸고 그 직후 교수실의 문이 쾅! 하고 열렸다.


“정말이지. 얼간이가 따로 없다니까!”


교수실에서 나온 여성은 빠르게 성큼성큼 걸어 루토를 스쳐지나갔고 루토는 그런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가 저도 모르게 휙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이를 앙다문 백작가 영애. 카트린느 트리나드의 표정은 상당히 지나치게 위험해 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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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3) 22.03.28 45 0 15쪽
42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4) 22.03.08 32 2 21쪽
41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3) 22.03.07 33 1 18쪽
» 혼의 수복 (3) 22.03.06 36 1 21쪽
39 혼의 수복 (2) 22.03.05 45 2 19쪽
38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2) 22.03.04 40 2 17쪽
37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1) 22.03.03 42 1 19쪽
36 혼의 수복 (1) 22.03.02 41 2 20쪽
35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4) 22.03.01 46 2 18쪽
34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2) 22.02.27 46 2 16쪽
33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1) 22.02.26 55 2 17쪽
32 마왕의 혼 (5) 22.02.25 58 2 14쪽
31 마왕의 혼 (4) 22.02.24 54 2 15쪽
30 마왕의 혼 (3) 22.02.23 55 2 14쪽
29 마왕의 혼 (2) 22.02.22 63 2 17쪽
28 마왕의 혼 (1) +1 22.02.21 100 1 18쪽
27 황제의 명령 (2) 22.02.20 63 2 14쪽
26 황제의 명령 (1) 22.02.19 67 2 16쪽
25 에렌델의 탑 (3) 22.02.18 68 2 19쪽
24 에렌델의 탑 (2) 22.02.17 70 2 18쪽
23 에렌델의 탑 (1) 22.02.16 73 2 21쪽
22 정령과 용사와 마왕 (6) 22.02.15 79 2 19쪽
21 정령과 용사와 마왕 (5) 22.02.14 76 1 16쪽
20 정령과 용사와 마왕 (4) 22.02.13 97 1 17쪽
19 정령과 용사와 마왕 (3) 22.02.12 94 2 19쪽
18 정령과 용사와 마왕 (2) 22.02.11 99 1 18쪽
17 정령과 용사와 마왕 (1) 22.02.10 114 2 15쪽
16 세계 제일의 미녀 (5) 22.02.09 128 2 14쪽
15 세계 제일의 미녀 (4) 22.02.08 123 2 14쪽
14 세계 제일의 미녀 (3) 22.02.07 113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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