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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상어 님의 서재입니다.

여장공작은 사교계의 여왕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귀신상어
작품등록일 :
2022.01.29 12:54
최근연재일 :
2022.03.2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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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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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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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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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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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2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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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마왕의 혼 (1)

DUMMY

“시, 실패라고요?! 그게 무슨······.”


게데우스의 발언에 멜리아가 질겁하며 되물었다.


그렇게나 소란을 떨면서 떠나왔는데 이제 와서 용사가 될 수 없다고 이야기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럼 여태까지 우리를 축하해 준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게 큰일인 것 치곤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미적지근한 것 같기도 하고······.


“아직 준비가 부족한 모양이군요.”

“그래. 맞다.”


여동생과는 사뭇 다른 카르트의 덤덤한 대답에 게데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용사의 본체는 어디까지나 정령과 그 계약자. 정령검은 융합된 두 혼이 온전한 힘을 발현하게 하는 매개체다. 계약자와 정령은 수많은 전투를 거치며 교감하고 가장 적합한 전투 방식을 도출해내야 하지 그리고. 나서 정령이 정령석과 접촉함으로서 비로소 형태를 갖추는 원오프 타입의 무구가 바로 정령검. 그렇기에 설사 적합한 정령석을 찾아냈더라도 그때까지의 데이터 축적이 부족하다면 정령검은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그럼 이제 저희는 큰일 난 것 아니에요?! 황제 폐하께선 분명 정령검을 가지고 올 거라고 생각하고 계실 텐데!”


멜리아는 그 잔혹해보이는 황제의 붉은 눈을 떠올리며 오들오들 떨었지만 게데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사소한 것에 일일이 신경 쓰시는 분은 아니야. 오히려 너희들이 걱정해야 할 건 정령검을 얻지 못한 채로 임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임무······.”


카르트와 멜리아는 황제의 명령으로 제국의 적을 상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제국의 적은 곧 인류의 적.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적이라 할 만한 세력이란 게 대체······?


그들은 긴장으로 목을 움츠렸다가 문득 불안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


“저기 게데우스님······. 혹시나 하는 질문이지만 저희 임무는 마왕······이랑은 관계없겠죠?”

“음? 마왕?”

“아! 그, 그러니까! 문득 궁금증이 들어서요! 정령왕과 계약한 최초의 용사는 천 년 전 마왕을 쓰러뜨리기 위해 선정되었던 거잖아요? 그렇다면 저희도 똑같이······그런 게 아닌가 싶어서······.”


갈수록 줄어드는 목소리와 자신감.


그건 파날라를 떠날 적 몰랑과 키닛츠가 했던 말이 마음에 결렸기 때문이었지만 어떻게 들으면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아이들의 철없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멜리아는 게데우스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다행히도 게데우스는 시원스럽게 그들의 우려를 일축해 주었다.


“걱정하지 말도록. 마왕은 말 그대로 마왕. 천 년 전에 사라진 존재지. 정령왕과 계약했던 용사와 마찬가지로 말이야. 선정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 이해 못하는 바는 하지만 걱정할 건 없다. 그래도 불안하다면 몇 가지 비밀을 귀띔해주마. 과거에도 너와 같이 불안해하는 이들 역시 있었지. 그렇기에 고대의 현자들은 그 일말의 가능성조차 차단하기 위해 마왕이 사용하던 마구를 신성한 장소 지하 깊은 곳에 봉인해두었지. 그러니 혹시나 같은 건 없을 거다.”

“다행이다······.”

“하지만 마왕의 출현을 두려워하는 용사의 존재는······알고 있겠지?”

“아,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안도하는 것도 잠시. 멜리아는 게데우스의 선배로서 건넨 충고에 퍼뜩 정신을 차리곤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카르트는 잠시 생각을 하는가 싶다가 게데우스에게 물었다.


“그게 어디죠?”

“응?”

“마왕의 마구가 잠들어 있는 곳 말이에요.”


마구와 마왕의 부활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파괴되지 않고 보존되고 있는 한 오히려 불안이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그의 우려에도 게데우스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에렌델의 탑. 그 누구도 함부로 침입할 수 없는 대륙 최고의 마법 대학이지.”


*


<에렌델의 탑>


내가 탑에 입학하고 나서 열흘 정도가 지난 시점.


이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방대한 자료들과 학계의 정상에 있는 교수들의 지혜를 빌려 막혀있었던 나 자신의 마력 증강에 관한 문제를 해결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처음 내 예정과는 사뭇 다른 기묘한 상황에 다소 당황하고 있었다.


“가련 아가씨. 오늘 식사는 어떻게 하실까요?”

“네···? 늘 가던 곳에서 먹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역시 그렇죠?! 제가 자리를 맡아두겠습니다!”

“아가씨! 오늘 과제는 제가 아가씨의 몫까지 처리해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 그래주면 고맙죠?”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가씨! 저는······를 도와드릴게요!”

“아가씨! 저는······를 준비하겠습니다!”


왜······. 이렇게······.


난 한시도 날 가만히 놔두지 않고 자잘한 일 하나라도 내게 일일이 보고하며 수발을 들려 하는 수많은 여학생들을 상대하느라 진이 다 빠진 상태였다.


분명 날 도우려고 하는 사람들밖에 없는데 정작 점점 지쳐가는 게 나인 이유는 뭘까?


하루 종일 내 주변을 둘러싼 모든 이들이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아부를 하고 칭찬을 갈구하는 그 광경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지옥도.


죽을 것 가타······. 거기에.


“젠장······. 집중이 안 되잖아······. 바보 같은 귀족놈들······.”


그건 내 옆자리에 앉은 유나 비비프양은 마찬가지였던 모양인지 그녀는 책 위에 코를 쳐박고은 채로 살벌한 말을 칭얼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추종자들은 내가 그녀를 아낀다고 생각해서 그런 그녀의 험담을 못들은 척 내게 부비적대는 데에만 박차를 가했지만 오히려 본인 입장에선 그게 더 귀찮은 처사였던 모양이다.


아니! 사실 나도 귀찮아!


난 분명 카트린느가 학생들을 선동해 날 고립시켜주길 바랬는데 왜 내가 의도했던 것과 정 반대나 다름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냐고!


난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중고딩들의 여왕벌 놀이는 하고 싶지 않단 말이야!


······물론 내가 남자인걸 알고 들이대는 거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어쨌든!


“아가씨! 아직 학외 활동을 선택하지 않으셨다면 괴담 탐색은 어떠세요?”

“네? 뭘 탐색해요?”


난 수십 가지의 제안 중 독특한 것이 들려 순간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자 내가 반응한 것이 기뻤는지 그녀는 손을 모으며 신나서 대답했다.


“아, 그러고 보니 가련 아가씨께선 편입을 하셨으니 잘 모르시겠군요. 학외 활동이란 건···”

“아. 학외 활동에 대해선 알고 있어요. 제가 궁금한 건 괴담 쪽이에요. 마법 학교인 데도 그런 게 있나요?”

“네! 오히려 천년의 역사를 가진 선배들에 의해 각종 경험담이 쌓이고 쌓여 잔뜩 있답니다!”


내가 드물게 관심을 보이자 여학생은 흥분해 고개를 끄덕였다.


“탑의 지하에는 거대한 악이 잠들어 있다던가 탑의 부지에는 사실 실험 도중 죽어나간 수백명의 마법사 시체가 묻혀져 있다던가 아니면 어린 아이의 형상을 한 귀신이 탑을 돌아다나며 학생들에게 말을 건다던가 하는 것들로 잔뜩요!”

“혹시 봉인된 마법서가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던가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아티펙트가 숨겨져 있다는 소문 같은 건···?”

“그, 글쎄요. 부장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아.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어요.”

“히잉···”


여학생은 내가 흥미를 거두자 입을 셀쭉 내밀고 앙탈을 부렸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귀신 괴담이라니. 학생이라고 해 봐야 결국 한창때의 청소년들일 뿐이라는 걸까? 아무 신빙성도 없이 겁을 주는 데에만 힘을 준, 가장 시간낭비하기 좋은 소재잖아.


봐 유나도 콧방귀를 뀌고 있······.


“······혹시 그 괴담 이야기 중에 남자 학생에 관한 이야기도 있나······? 고민하고 있는 학생에게 도움을 준다던가 하는······.”

“넌 또 그 얘기야? 확실히 네가 요즘 무리를 하긴 했다보다······.”

“아니라니까! 진짜 있었던 일이라고! 그 증거로 풀리지 않던 연구가 단번에······!”

“그래그래. 나이에 맞게 왕자님 꿈을 꾸는 건 나중에 큰일 난다? 그러데 나쁜 남자한테 잘못 걸리면 수석이고 뭐고. 응?”

“진짜로 봤단 말이야······.”

“응응.”


-토닥토닥


루토는 유나를 다루는 데에 도가 텄는지 대강대강 대답하면서 그녀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죄송한데 그건 애초에 귀신이 아니거든요······.


*


-또각 또각


“아, 안녕하세요. 아가씨.”

“먼저 지나가세요!”

“오늘도 아름다우세요!”

“고맙습니다······.”


난 힘없이 웃으며 일일이 고개를 꾸벅이며 복도를 걸었다.


학생들의 성가신 인사 세례는 수업이 전부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도 이어진다.


내가 앞장을 서면 자연스럽게 길이 열리고 내 시녀를 자청하는 여자들이 뒤를 따른다.


아마 나와 가까울수록 얻어먹을 콩고물이 많아진다고 여기는 거겠지.


솔직히 말하면 공작이란 지위가 이렇게까지 이목을 끌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가끔씩 등교하던 아이돌 동급생처럼 멀거니 힐끔힐끔 쳐다보는 정도의 취급으로 그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취급이 계속되다간 인간 불신이 생기겠어······. 하긴 루실 선생님이 그런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지. 네게 호의를 보이는 모든 이를 의심하라. 그것이 사교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신경 쓰이는 건 바로 저기 탑의 난간에 기댄 채로 힐끔힐끔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는 여자.


불청객인 내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탑에서 가장 높은 작위를 가지고 여학생들의 중심에 군림하고 있었던 카트린느 트리나드였다.


난 그녀와 눈을 마주쳤고 작게 한숨을 쉬며 난간 쪽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카트린느양. 오늘 마주치는 건 처음이죠?”

“그렇군요······. 가련 아가씨.”

“어떻게 수업은 들을만하신가요? 전 편입생 입장인지 조금 따라잡기 힘들다는 인상도 있네요.”

“네. 저는 괜찮습니다만······.”


이런 답이 없군.


난 가능한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을 건넸지만 카르린느는 눈에 띄게 주눅이 든 티를 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할 뿐이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선 그녀 주변을 지키고 있던 다른 여학생들까지도 잠깐 카트린느의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내 앞으로 뛰어와 말을 걸어왔다.


“그, 그럼 저희가 도와 드릴까요?”

“저 입학 성적 괜찮았거든요! 그······카트린느 님의 시험 준비도 제가 담당하고 있었어요! 물론 유나 비비프만은 못하겠지만 가련 아가씨의 도움이 되어드릴 수 있어요!”

“아니 저는······.”


그냥 대화의 물꼬를 트려고 꺼낸 말이었을 뿐인데······.


난 당황하며 그녀들 너머로 카트린느를 보았지만 그녀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이 눈망울로 나를 노려보고는 획! 등을 돌려 성큼성큼 멀어지기 시작했다.


태연하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너무 강하게 꽉 쥔 두 주먹이 그녀의 뒷모습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있었다.


정말······미안해 죽겠네.


야. 너네는 의리도 없나?


난 웃으며 카트린느의 친구들을 속으로 질타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내 근처엔 어떻게 하면 공작가의 영애님과 친해져 볼 수 있을까 하는 사심으로 가득한 하이에나들만이 남아있는 상태.


결국 난 제풀에 지쳐 그녀들에게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 죄송하지만. 오늘은 이만 기숙사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네요.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서요. 괜찮겠죠?”

“네?! 몸 상태가 좋지 않으신가요? 탑에는 치유 마법을 전문적으로 다루시는 교수님도 계십니다!”

“아뇨······. 그 정도는 아니에요. 다만 영지를 떠나온 직후라 그런지 몸이 여행의 피로에 젖어 있다는 느낌입니다. 거기에 아직 주변 신상을 정리하지 못한 것도 있고 해서. ······안될까요?”

“헙?!”


내가 애원하듯 입을 내밀고 눈을 마주치자 나와 얼굴을 가까이 마주한 여학생이 볼을 붉히며 합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난 주변의 모두에게도 똑같은 표정으로 허락을 구했다.


“미안해요. 여러분······.”

“아, 아닙니다!”

“그만 기숙사로 들어가 보세요. 아가씨. 과제는 저희가 다 끝마쳐두겠습니다.”

“정말요? 고마워요. 솔직히 탑에 적응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었는데. 여러분들 덕분에 그런 걱정은 덜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아, 아가씨. 감동이에요!”


학생들은 그런 내 감사인사에 감동했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사실 조금 비꼰 거였는데. 누가 봐도 너네들 때문에 피곤해 보이지 않니······?


하지만 기뻐 보이니까 그냥 두도록 할까······.


“흑. 영광이에요······.”

“저희 최선을 다할게요!”


난 울먹이기까지 하는 그녀들을 남겨둔 채로 내 방으로 향했다.


*


“하······. 성가시네.”


-탁!


난 한숨을 쉬며 껄렁하게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렸다.


보는 눈이 없어 긴장이 풀리기 쉬웠던 본가에 있을 때와는 달리 이곳 에렌델의 탑은 사방이 날 감시하는 눈이나 다름없는 곳이었고 난 집중력을 쏟아부어가며 공작가의 영애 가련 레시오스코프를 연기하느라 진력이 난 상태였다.


“기껏 그 에렌델의 탑에 왔으니 고대의 마법서라도 살펴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수업은 이미 7살 때 익힌 기초적인 이론에 관한 개론들에 대한 것뿐이라 집중도 안 되고. 결국 난 수업도 제대로 듣지 않으면서 주변을 둘러싼 학생들 탓에 개인적인 연구조차 하지 못하는 모호한 상태에 처해있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파벌 놀이나 하고 있으니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지 않을까?


유나가 주변을 다 쳐내고, 수업도 빼먹고 혼자 개인 연구에만 몰두하는 이유가 어렴풋이 이해가 간다고나할까?


하지만 이렇게 고민해봐야 난 그녀처럼 할 수는 없었다.


결론은 하나.


난 지금처럼 계속 파벌의 중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교계의 여왕이 되실 운명이시라는 ‘가련 레시오스코프’ 아가씨는 첫날부터 헛짓만 했는데 어느새 에렌델의 탑을 지배해버리고 말았구만.


운명이란 게 무섭다니까······.


“에휴! 편지나 써야지!”


-휙


껄렁하게 다리를 올리고 의자 위에 드러눕듯이 앉아있던 난 자세를 가다듬고 펜을 꺼내들었다.


학교에서 적응하고 나면 인사와 함께 감상을 보내달라는 전언이 있었으니까.


팔아넘기다시피 대학에 던져버린 데 대한 화가 아직 다 풀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것까지 포함해 나를 생각해주신 행동이셨으니까······. 적어도 최소한의 감사인사정도는 해야지.


.

.

.


“부디······음. 마땅히 딱 떨어지는 문장이 없네.”


결국 그럴듯한 가식적인 무난한 문장들만을 나열하다가 엉망이 되어버린 편지의 문맥에 난 절망하고는 톡톡, 잉크통 안에 펜을 털어 남은 잉크를 집어넣고 뚜껑을 닫았다.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한숨을 돌리고 생각해볼까······.


시간이 꽤 지났는지 밖은 이미 어둑어둑 해가 다 져 어둠만이 가득했고 멀거니 보이는 등대의 불빛만이 빛나고 있었다.


“으음······!”


난 팔을 뻗어 기지개를 편 뒤 책상 위에 물통에 손을 뻗었다가 그 안이 텅 비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이런. 낭패다 이미 통금 시간이 지났는데!


그냥 참아?


······아니, 아니다. 잠깐이나마 고민이 됐지만 곧 양치도 하지 못한 상태라는 걸 깨달은 나는 물통을 집어 들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몰래 다녀오면 문제가 없겠지 뭐.


걸리면 뭐 어쩔 거야. 내가 공작인데.


최근 스트레스로 인해 다소 막나가는 상태가 되어 있었던 난 깊게 고민하지 않고 문을 열었다.


-끼익···


내가 문을 열자 이미 불이 꺼진 복도로 빛이 새어나갔다.


*


결과 보고.


혹여 사용인들에게 걸려 불이익이라도 생기는 건 아닌가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내가 물을 뜨고 이빨을 닦을 때까지 내겐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아무도 보이지를 않았다. 본가에 있을 때는 언제 나가든 복도를 왔다 갔다하며 업무를 보고 있는 녀석들이 한둘은 꼭 있었는데 말이다.


여기의 메이드들은 사용인이라기보단 직장인이라는 인상이 강했는데 근무 동향 역시 그랬던 모양이다.


-꿀꺽꿀꺽


난 물통에 입을 댄 채 물을 들이키며 화장실을 나와서···


“가련 레시오스코프.”

“?!”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


-똑, 똑.


화장실 안쪽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괜히 크게 들렸다.


······누구지?


학생도 메이드일 리도 없는 상당히 앳된 어린 아이의 목소리.


조금 섬찟 한 느낌에 인상을 찌푸렸던 난 잠깐 움직임을 멈췄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래 여기다.”


여전히 앳된 목소리 그리고 거기 있는 것은······무려 고딕 롤리타 타입의 드레스를 입은 7살 정도의 여자아이였다.


“······꼬마야? 내 이름을 부른 거니?”

“가련 레시오스코프······.”


내가 물었지만 소녀는 다시금 내 이름만을 부를 뿐이었고 그 목소리는 마치 동굴 안에서 말하는 듯 으스스하게 울려퍼졌다.


대체 뭐지? 이 스산한 감각은? 단순히 분위기 때문만이 아니라 정말로 한기가 스며드는 것 같은 기분.


난 고작 내 키의 절반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작은 아이를 앞에 두고 어울리지 않게 경계를 하고 있었고 그 아이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사악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마왕님의 부활을 위한 제물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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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3) 22.03.28 44 0 15쪽
42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4) 22.03.08 31 2 21쪽
41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3) 22.03.07 32 1 18쪽
40 혼의 수복 (3) 22.03.06 35 1 21쪽
39 혼의 수복 (2) 22.03.05 45 2 19쪽
38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2) 22.03.04 40 2 17쪽
37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1) 22.03.03 41 1 19쪽
36 혼의 수복 (1) 22.03.02 41 2 20쪽
35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4) 22.03.01 45 2 18쪽
34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2) 22.02.27 46 2 16쪽
33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1) 22.02.26 55 2 17쪽
32 마왕의 혼 (5) 22.02.25 57 2 14쪽
31 마왕의 혼 (4) 22.02.24 54 2 15쪽
30 마왕의 혼 (3) 22.02.23 55 2 14쪽
29 마왕의 혼 (2) 22.02.22 62 2 17쪽
» 마왕의 혼 (1) +1 22.02.21 100 1 18쪽
27 황제의 명령 (2) 22.02.20 62 2 14쪽
26 황제의 명령 (1) 22.02.19 67 2 16쪽
25 에렌델의 탑 (3) 22.02.18 67 2 19쪽
24 에렌델의 탑 (2) 22.02.17 70 2 18쪽
23 에렌델의 탑 (1) 22.02.16 73 2 21쪽
22 정령과 용사와 마왕 (6) 22.02.15 78 2 19쪽
21 정령과 용사와 마왕 (5) 22.02.14 75 1 16쪽
20 정령과 용사와 마왕 (4) 22.02.13 97 1 17쪽
19 정령과 용사와 마왕 (3) 22.02.12 93 2 19쪽
18 정령과 용사와 마왕 (2) 22.02.11 98 1 18쪽
17 정령과 용사와 마왕 (1) 22.02.10 113 2 15쪽
16 세계 제일의 미녀 (5) 22.02.09 127 2 14쪽
15 세계 제일의 미녀 (4) 22.02.08 122 2 14쪽
14 세계 제일의 미녀 (3) 22.02.07 113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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