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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상어 님의 서재입니다.

여장공작은 사교계의 여왕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귀신상어
작품등록일 :
2022.01.29 12:54
최근연재일 :
2022.03.2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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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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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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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0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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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혼의 수복 (2)

DUMMY

“이건 좀······지나치게 끔찍하군.”


여관 창고에서 일어난 참살 현장을 보고 경악한 병사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뮤스턴은 모험가들이 모여드는 도시인만큼 거친 분쟁이 잦았고 그로 인한 사상자 역시 적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구속된 상태에서 목을 참수해 전시하는 듯한 악의적 행위는 매우 드물었다.


“자살 혹은 서로를 공격했을 가능성은 없는 겁니까?”


남녀의 시체를 확인하는 검시관에게 카르트가 물었지만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절단면이 지나치리만큼 깔끔해요. 이건 피해자 두 명이 구속된 상태에서 제 3자가 날붙이를 사용해 목을 쳤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상흔이에요.”

“하지만 이 장소는······.”

“네?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있습니까?”

“아, 아뇨. 아닙니다.”


카르트는 시치미를 떼며 고개를 돌렸고 검시관도 그 이상 묻지는 않았다.


지나치게 잔혹한 사건이라곤 하나 동시에 뮤스턴에서 흔하디흔한 모험가간의 원한살인중 하나일 뿐이다. 유동인구가 수십을 넘어가는 이 여관에서 범인을 추려낼 수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그리고 카르트는 심각한 표정으로 등을 돌렸다. 사실 단서라면 있다. 그들 두 명이 이 창고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기껏해야 어제 모인 카르트의 동료들이 전부. 따라서 용의자는 그들 중 한명일 확률이 매우 높으며 아마도 그 이유는 라마트라의 입막음을 위해서······겠지.


즉 파티 내부에 역시 정체를 숨기고 있는 신도가 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이리라.


‘날붙이를 사용하는 신과 베어가 가장 의심스럽지만 그렇다고 노아와 그 비스타라는 남자의 존재 역시 간과할 수는 없다. 이미 정체를 숨기고 있는 데 뭘 또 못 속이겠어?’


모험가의 소양은 다재다능과 교활함이니까.


카르트는 동료를 의심해야한다는 속이 쓰린 상황에 한숨을 쉬었는데.


“괜찮나?”

“응?”


누군가가 그의 등 뒤에서 덤덤하게 물어왔다.


그 목소리는 분명 비스타라는 이름을 자칭한 궁수. 신의 동료라곤 하나 카르트와는 어제 처음 만났을 텐데. 그는 상당히 자연스럽게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 사건 일일이 신경 쓰지 마라. 제 명에 못 산다.”

“지금 충고해주는 거야?”

“그럴 성격이 아니라고 생각했나?”

“아니 그건······.”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충고도 뭣도 아니야. 일종의 미봉책이라고 해야 되나. 동료든 적이든 그런 죽음에 일일이 신경 쓰다간 제 명에 못 가니까. 용사라면 특이나 더. 가능하면 감정을 죽여라.”

“레인저로서의 방법론인가?”

“아니. 제국의 개가 된다는 건 그런 거니까.”


‘······비꼬는 건가?’


카르트도 딱히 제국을 찬양한다거나 하는 애국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그리 노골적인 말을 들으니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대화는 없었고 비스타는 할 말을 마쳤는지 그대로 그를 떠나갔다.


그리고 카르트는 한숨을 쉬며 모퉁이를 돌아 화장실로 향했는데.


“우왓?!”


그곳에서 옷에 묻은 피를 싹싹 씻고 있는 야파와 마주쳤다.


“야파씨······?”

“아아아! 이, 이건!”


그는 재빠르게 피에 젖은 옷감을 등뒤로 숨겼지만 그 허술한 움직임을 카르트가 포착하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설마···”

“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절대 아니에요! 오해라고요!”

“저도 야파씨를 의심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피는···”


‘하지만 야파씨에게 인간의 목을 그리도 깔끔하게 절단해낼 검 실력은 없을 터인데?’


카르트의 머릿속에선 두 가지 논리가 서로를 배제하며 마구 뒤섞였고 야파는 그에게 벌벌 떨며 해명을 해야 했다.


“전 단지 그 두 사람에게 물을 것이 있어 찾아간 것뿐입니다! 이래봬도 광대 나부랭이니까 창문 바깥으로 넘어 갈 수는 있었죠. 그런데 조심스레 그 안으로 발을 디딘 순간 바닥에 흥건한 피에 걸려 넘어지고 만 겁니다······.”

“그럼 저희가 발견하기 전부터 이미 놈들의 죽음을 알고 계셨다는 건가요? 제게 말해주지 그러셨어요!?”

“그거야 당연히 의심을 살까봐······.”


야파는 움찔대며 눈을 피했고 카르트는 천천히 머리를 긁었다.


“저도 믿어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라마트라놈들의 기만전술에 이골이 나 있어 그만······.”

“저는 용사라니까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녀석들에게 시달려보시면 그런 말씀은 하지 못하실 겁니다······. 사랑을 나누던 연인도 어려서부터 함께 동고동락해온 동생도. 심지어는 부모자식간의 정마저도 간단히 저버리게 하는 것이 놈들의 악독함이란 말입니다. 대체 그놈의 신앙이란 게 뭔지······.”


야파는 썩어들어가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고 카르트는 입술을 살짝 씹었다.


“······죄송합니다.”

“아뇨.”


또다시 섣불렀나. 카르트는 스스로의 성급함에 침울한 사과를 건넸고 야파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누구도 믿으셔서는 안 됩니다.”


*


-덜그락! 덜그락!


나풀거리는 귀족의 드레스를 입은 부인이 이미 가지런히 정리된 짐을 다시금 뒤지며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그러니까······혼치호의 이빨, 레드 페어리의 가루 또 또 또······산광 마나석 그리고 혼령낭철!”


공작가의 부인인 유리앙 레시오스코프는 물건을 파헤쳐가며 산만하게 아들에게 보낼 물품 목록을 확인했고 가트는 그런 아내의 모습에 한숨을 쉬며 책상에 서류 더미를 탁탁 쳐 정리했다.


“이제 그만 하지? 벌써 몇 번째야? 당신이 풀어 해쳐놓은 짐을 사용인들이 다시 정리해야하는 수고를 생각할 때가 되지 않았나?”

“그러다가 물건을 빼먹으면 어떻게 해!? 모처럼 가련이 우리에게 부탁을 해온 건데.”

“호들갑을 엄청 떠는군.”

“당신이 어미의 마음을 알겠어요? 거기에 늘 의젓하게 남에게 힘든 내색 한번 안하던 애가 처음으로 부탁해온 일이란 말이야! 아어! 역시 보내는 게 아니었나? 그 어린나이에 혼자서 타지 생활을 어떻게 해! 안 그래도 흑심을 품고 접근하는 늑대 같은 놈들이 잔뜩 있을 텐데!”


유리앙은 울상이 되어 소리쳤지만 가트는 그런 아내의 호소에도 여전히 식은 반응을 보였다.


“가련을 다치게 할 수 있는 인간은 대륙 전체를 고려해도 100명이 채 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럼 엄청나게 많잖아! 실제로 다쳤다는 편지가 왔고! ······물론 그 뒤에 가련이 다시 편지를 보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가트 당신은 아버지면서 어쩜 그래요?!”

“하긴. 듣고 보니 그도 그렇겠군. 그 아들을 두들겨 패서 그 외지로 보낸 장본인이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야.”

“으익!!!”


정곡을 찌르는 남편의 말. 유리앙은 그 말 안에 가시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기어를 낮추며 작은 목소리로 변명했다.


“다, 당신도 동의한 일이잖아······.”

“내가? 난 가련이 말을 듣지 않으면 기절시켜서 데리고 갈 예정이란 말은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데? 그래도 여자인 당신이 상냥하게 어르고 달래보라고 맡겼더니 처남을 불러서 대련을 시켜?”

“좋게 끝났잖아······.”

“좋게 끝났지. 과거 전장에서 처남이 베어 넘긴 적국의 군사들이 겪은 꼴에 비하면 매우 온건하게 결말이 났어. 암!”

“이익······. 그, 그래! 내가 잘못했다! 됐어요!?”


더 이상 반박할 말이 없어진 유리앙은 버럭 화를 내며 입을 내밀곤 풀어 해쳐놓았던 짐을 어설프게 다시 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트 공작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고는 책상 위 가련에게 도착한 편지로 눈을 돌렸다.


에렌델의 학장이 정중하게 보낸 사과문이 도착한 직후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 연이어 도착한 편지.


거기에는 첫날의 긴장 그리고 새로운 인간관계에 대한 두근거림과 부담감 그리고 수업과 생활 등에 대한 묘사까지. 줄곧 저택에서 자란 그 아이가 독립생활에 허둥대는 것을 생각하면 그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신경이 쓰였던 것은 인부인사에 뒤이어지는 ‘두 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라는 문구였다.


유리앙이 이야기했던 대로. 지난 15년의 시간 중 가련이 그렇게 노골적으로 손을 벌린 적은 없었으니까.


가련은 연구에 필요한 소재의 목록을 잔뜩 작성해서 보내왔는데 그것들은 하나같이 희귀하고도 비싼 값을 매기더라도 구매하기 힘든 것들뿐이었다.


그 많은 소재들을 대체 어디에 쓰려는 건지.


가련은 마치 일부러 그 용도를 숨기려는 듯 노골적으로 내용을 누락 시켜 놓았지만 그걸 눈치 챌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 바로 가련의 귀여운 변명이라는 것을 가트는 알고 있었다.


가련만큼 똑똑한 아이가 그런 어설픈 거짓말을 할 리가 없으니까.


그리고 전공은 아니더라도 그 재료 목록을 보면 목적이 뭔지 정도는 대충 알 수 있었고,


“설마 혼마학에 관심을 가지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당신은 잘 모르는 분야?”

“그렇지. 애초에 혼과 관련된 분야는 아직 밝혀진 영역이 좁고 활용성이 낮아 배우려는 이도 가르치려는 이도 드물거든.”

“그래서 기회가 되니 본격적으로 파고드는 건가? 가련답다고 할 수 있겠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에렌델의 탑에는 전문가가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셰인 비소던가? 그 사람 요즘 사교계에서도 소문이 자자하잖아. 상당한 미남이라고. 백작가가 이번에 제대로 월척을 건졌다고.”


유리앙은 짝 박수를 치며 납득하는 듯했지만 가트는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나도 최근엔 내 연구에 치중하느라 업계 사정에 자세하진 않지만 그 남자의 연구 방식은 가련이 배우기에 그리 적절할 것 같지는 않은데.”

“뭐야. 질투하는 거예요? 가련의 스승 자리를 빼앗길까봐?”


안그런척 해도 귀여운 구석이 있다니까.


유리앙은 남편의 투정에 미소를 지었지만 가트는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으흠! 목을 가다듬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그자의 연구는 과연 놀랍긴 해도 유기성이 부족하다는 평이 많아. 아마도 자신의 천재성에 기인한 직관적인 영역에서 도출된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하다 보니 생긴 문제겠지. 그리고 그건 가련이 마법을 인식하는 방식과 정 반대인 방식이거든.”


가트의 사뭇 진지한 이야기에 유리앙은 잠시 멍하니 초점을 흐렸다가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이제 다다에게 짐을 옮기라고 이야기 해야겠다.”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외국어인가?’


*


“오는군.”


가트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저 멀리 하늘에 보이는 작은 점은 점점 가까워지더니 곧 날개를 펄럭이는 사자의 형태가 되어 공작가의 저택에 그 몸을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건 독수리도 사자도 아닌 혼종으로 그리폰이라 불리는 마법생명체의 일종이었다. 어지간한 마차보다도 훨씬 거대한 몸집을 가지고 있는 일종의 괴물. 물론 마물은 아니고.


그리폰은 날개를 접으며 자신을 호출한 계약자에게 안부인사를 건넸다.


“가트 레시오스코프. 오랜만이곤 자그마치 20년만이 아닌가?”

“그렇군요. 정복 전쟁 이후 ‘도론소’ 님의 힘이 필요한 일은 없었으니까요.”


가트는 그리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시선을 옆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가련에게 보내기 위한 짐꾸러미가 놓여있었고 그리폰은 천천히 걸어가 그것을 툭 건드려 본 뒤 다시 가트를 보았다.


“에렌델의 탑이라고 했던가? 자그마치 20년만에 계약수를 호출해 대체 무슨 말을 하는가 했더니. 짐마차 취급이라니. 세계수께서 노할 일이야.”

“죄송하게 됐습니다. 아내가 워낙 극성이라서. 가능한 빠르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약속도 있었으니까. 네게 아들이라니. 오래 살고 볼 일이야.”

“뭘. 이미 알고 계셨던 것 아닙니까? 그리폰이란 존재는 세계수와 함께 탄생한 신비한 존재이니.”

“훗.”


그리폰은 가트와 딱딱한 듯 친근한 대화를 짧게 나눈 뒤. 짐을 발톱으로 집고 아무런 미련도 없이 날아올랐다.


-끼에에엑~!!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떠오르기 시작한 환상의 짐승은 눈 깜짝할 새에 다시 저 하늘의 작은 점이 되었고 그대로 에렌델의 탑을 향해 나아갔다.


그건 귀족의 막대한 부와 화려한 마법에 익숙한 레시오스코프 가문 저택의 사용인들이 보기에도 드문 신기한 광경.


메이드들과 집사들은 어느새 우르르 나와 그리폰의 이륙 장면을 두 눈 가득 담고 있었다.


그리고 가트는 한숨을 쉬며 품속에서 마지막 편지 한 장을 꺼냈다.


“자 그럼······.”


[최근 공작령 파날라에서 토벌 대상으로 지정된 신흥 종교 집단 라마트라의 활동이 감지됨.]


“본격적인 문제 해결로 넘어가 보도록 할까?”


*


-드르륵!


“전승 조사부! 집합!!”


“으, 어?”


강의와 강의 사이 30분 정도 비는 쉬는 시간 동안 턱에 괸 채로 졸고 있던 난 갑작스런 깜짝 놀라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슨 일이 생겼나?!


하지만 내 주변엔 평소와 같이 학생들이 앉아있을 뿐. 그리고 그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강의실 앞쪽의 문을 쳐다보고 있었다.


거기 있는 건 헤일리 샤나스. 미확인 전승 탐색부의 부장이자 초하이 텐션을 자랑하는 그녀는 늘 그랬던 것처럼 엉뚱한 일을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해보였다.


헤일리는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숙이곤 훗 썩은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현재 에렌델 상공에 미확인 비행 물체를 관찰! 따라서 부장의 권한으로 미확인 전승 탐색부를 소집하겠다!”


그건 평소와 같은 헛소리. 그리고 그녀의 기행에 대해선 나뿐만 아니라 강의실의 다른 학생들 역시 익숙해져 있을 터다.


하지만!


‘미확인 비행물체’라는 단어에는 항상 남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 법.


만약 그녀가 유령이 어쩌니 늑대인간이 어쩌니 하는 말을 꺼냈다면 콧방귀도 뀌지 않았을 터지만. 미확인 비행물체는 다르다. 미확인 비행물체는!


그 마법의 단어에 교실의 학생들은 드물게 흥분하기 시작했다.


“진짜냐···?!”

“조심해! 납치당한다!”

“기계 공학으로 몸을 개조 당한다는 소문이 있어!!”

“끝내준다!”


그녀의 말에 미확인 전승 탐색부의 부원들뿐만 아니라 관계 없는 다른 학생들 역시 벌떡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대로······엥? 나한테!?


-번쩍!


내 몸이 헹가래 쳐지듯 번쩍 들어 올려졌다.


“이, 이봐요!? 뭐하는 거예요!? 들지 마요!?”

“자! 빨리 가자요!”

“아가씨 침 흘리고 있는데. 제가 핥아드리겠습니다!”

“아, 안 돼! 하지 마!!! 죽인다!!”

“자~ 이대로 탑 1층으로 향하라!!”

“아 정말!! 내 발로 갈게요!!”


난 아직 잠에서 덜 깬 상태에서 어눌하게 항의해봤지만 내 말따윈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난 그대로 통나무처럼 바깥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찰나의 순간. 마지막으로 도움을 청하듯 유나를 향해 불쌍한 시선을 보내 보았지만.


“어어······. 얘, 얘들아? 너무 그렇게···”


그녀는 머뭇거리며 맥없이 팔을 뻗었다가 다른 학생들에게 무시당하곤 시무룩하게 시선을 내렸다.


“노력했네요! 가상합니다~~”


난 손으로 확성기를 만들어 소리쳤고 그대로 밖으로 끌려 나갔다.


.

.

.


-펄럭! 펄럭!


“오, 온다!”

“굉장하다!!”

“비행접시는 아니네······.”


멀리서부터 서서히 가까워져 오는 비행 물체 아니 비행생물체의 정체는 바로 그리폰이라고 불리던 환상의 생물이었다.


지, 진짜로 있는 거구나······.


마법에도 마물에도 충분히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거대하고도 미려한 생명체의 등장에 난 나도 모르게 심장이 조여드는 것을 느꼈다.


물론 서책에선 질리도록 읽었지만 그래도!


그리폰이 있다면 드래곤도 있는 걸까? 하는 기대를 두근두근 가지면서 말이다.


여기는 판타지라고!


그리고 그런 감상은 다른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탑 안에 내려앉은 그리폰을 피해 움찔움찔 뒤로 물러나려 하면서도 혹시 건드려도 괜찮을까 손을 뻗을랑 말랑하고 있었다. 옆에서 보면 꽤나 우스운 광경.


하지만 그리폰은 그런 주변의 반응따위는 개의치 않는지 태연하게 날개를 접고는 입을 열었다.


“그런가. 네가 가련 레시오스코프인가······.”


마, 말을 해?


“절······알고 계신가요?”


전혀 예상치 못하게 내 이름이 그리폰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난 당황했고 주변의 학생들은 눈을 반짝이며 날 쳐다보았다.


“그, 그러고 보면 그리핀에겐 반짝이는 물건을 수집하는 습성이 있다고 들었어요!”

“설마 아가씨의 미모가 지나치게 빛나기 때문에 이곳에···?”

“가능성이······있어!”


없어!! 뭔 개소리를 하는 거야!! 부끄러우니까 하지 마!!


난 전력을 다해 부정하고 싶었지만 큰 소리를 지를 수도 없어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입을 꾹 닫았는데 이놈들은 그 꼴을 보더니 한 술 더 떠서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인간은 물론 영물마저 홀리다니!”

“아아. 가련 아가씨의 미색은 전설이다!”

“유후~!”

“고맙······습니다······.”

“귀여워요~!”


그래! 알았어! 지금 놀리는 거지!? 부끄러워하는 내 얼굴을 보고 다 웃고 있잖아!


건방진 평민놈들. 제국 귀족의 따끔한 권력 맛 좀 볼래!?


난 대체 이 상황을 보고 그리폰이 무슨 생각을 할까 걱정되었지만 다행인가? 그리폰은 그 어이없는 소리들에 역시 답할 가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두 무시하고는 곧장 내게 용건을 꺼내놓았다.


“난 네 아버지 가트 레시오스코프와 계약한 정령수 ‘도론소’라고 한다. 그가 이 짐을 네게 전해달라고 하더군.”

“아, 그렇군요. 아버지가······. 아버지가?!”


난 그의 말을 되뇌다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리폰과 계약을 하셨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리고 왜 갑자기 그리폰을 내게······아.


난 그제야 그리폰이 가져온 큰 짐꾸러미를 보았고 그의 용건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내가 아버지께 부탁드렸던 영약을 만드는 데 필요했던 재료구나.


편지를 보낸지 아직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빨리······.


그의 정성에 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짐을 쓰다듬었다.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는데······.”

“귀중한 물건들이 잔뜩 들어있으니 조심하라고 내게 신신당부를 하더군.”

“후후. 수고하셨습니다. 그 그리폰을 짐꾼으로 써먹으시다니. 세계수의 짐승께 무례한 처사일지도 모르겠군요. 대신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드디어 샤론을 회복시킬 수 있겠어. 곧장 슬리우데르 교수님의 연구실에 익명으로 기부해야지.


설마 셰인 교수가 뭔가 조치를 취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 전에 도착해서 다행이야.


기분이 좋아진 난 헤실헤실 웃으며 그리폰의 부슬부슬한 등을 톡톡 두들겨주었는데.


“그렇군······. 넌 두 개의 혼과 예언을 짊어진 자. 그 운명 또한 기구하구나.”


그리폰이 의미심장한 말을 작게 속삭였다.


작가의말

(속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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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장공작은 사교계의 여왕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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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3) 22.03.28 45 0 15쪽
42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4) 22.03.08 32 2 21쪽
41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3) 22.03.07 33 1 18쪽
40 혼의 수복 (3) 22.03.06 36 1 21쪽
» 혼의 수복 (2) 22.03.05 46 2 19쪽
38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2) 22.03.04 40 2 17쪽
37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1) 22.03.03 42 1 19쪽
36 혼의 수복 (1) 22.03.02 41 2 20쪽
35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4) 22.03.01 46 2 18쪽
34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2) 22.02.27 46 2 16쪽
33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1) 22.02.26 56 2 17쪽
32 마왕의 혼 (5) 22.02.25 58 2 14쪽
31 마왕의 혼 (4) 22.02.24 54 2 15쪽
30 마왕의 혼 (3) 22.02.23 55 2 14쪽
29 마왕의 혼 (2) 22.02.22 63 2 17쪽
28 마왕의 혼 (1) +1 22.02.21 100 1 18쪽
27 황제의 명령 (2) 22.02.20 63 2 14쪽
26 황제의 명령 (1) 22.02.19 68 2 16쪽
25 에렌델의 탑 (3) 22.02.18 68 2 19쪽
24 에렌델의 탑 (2) 22.02.17 71 2 18쪽
23 에렌델의 탑 (1) 22.02.16 73 2 21쪽
22 정령과 용사와 마왕 (6) 22.02.15 79 2 19쪽
21 정령과 용사와 마왕 (5) 22.02.14 76 1 16쪽
20 정령과 용사와 마왕 (4) 22.02.13 97 1 17쪽
19 정령과 용사와 마왕 (3) 22.02.12 94 2 19쪽
18 정령과 용사와 마왕 (2) 22.02.11 99 1 18쪽
17 정령과 용사와 마왕 (1) 22.02.10 114 2 15쪽
16 세계 제일의 미녀 (5) 22.02.09 128 2 14쪽
15 세계 제일의 미녀 (4) 22.02.08 123 2 14쪽
14 세계 제일의 미녀 (3) 22.02.07 113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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