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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상어 님의 서재입니다.

여장공작은 사교계의 여왕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귀신상어
작품등록일 :
2022.01.29 12:54
최근연재일 :
2022.03.2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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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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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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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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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정령과 용사와 마왕 (2)

DUMMY

“회귀 법진을 사용하더라도 여전히 마나 수율이 문제가 되는군. 마력 밀도가 녹색 등급을 넘지 못한다면 오히려 낭비에 가까워.”


아버지가 무거운 한숨을 쉬시며 평가를 내렸다.


이곳은 아버지의 연구실.


난 잠자리에 들기 직전 가벼운 잠옷만을 입은 채로 아버지의 마법 연구를 거들고 있었다.


-슈와아아아아


허공에서 유체의 성질을 가진 불꽃이 마치 의지를 가친 것처럼 꿈틀거리며 구체를 만들었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본래 에너지에 불과한 불꽃이 물질적 특성을 띈다는 것은 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아버지가 새로 정립해 만들어낸 마법 이론은 그것을 가능케 했다.


정확하게는 내가 만들어낸 불완전한 마력 상호작용 이론을 아버지가 가진 마도학 지식으로 보완한 것이었지만.


뭐, 어느 쪽이든 서로의 지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니 맘 편하게 공동 작업물로 생각하는 게 맞을 것이다.


-사각, 사각, 사각


아버지는 내 손 위에서 움직이는 불꽃 덩어리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만연필로 양피지 위에 수식과 마법진을 그려 기록으로 남기곤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도면 되겠구나.”

“네.”


-팍!


내가 주먹을 쥐어 마력을 차단하자 사과 정도의 크기였던 불꽃이 확 번지면서 화조(火鳥)의 모양을 취했다가 곧 흩어져 사라졌다.


“오늘도 네 덕에 논문 집필이 한결 편했다. 마력 운용 능력만큼은 갈수록 발전하는 구나. 네 미모와 마찬가지로.”

“과찬이십니다······.”

“아니. 이건 어찌 보면 내 한탄에 가까운 넋두리다. 40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면서 수많은 천재들을 보아왔지만 가련, 너처럼 어린 나이에 세상의 이치를 직관하고 꿰뚫을 수 있었던 자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그건 어마어마한 재능이란다. 그 위대하다는 제국의 십성(十星)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없었던 자질이니 말이다.”

“십성이라니······. 황제 폐하에게 대륙 최강의 이름을 부여받은 자들이 아닌가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들에게 비견될 수 있겠어요······.”

“후후. 뭘 네 재능은 무려 세계에 변혁과 파멸을 불러오는 재능이 아니냐.”

“아버지!”


누구도 들어선 안 되는 끔찍한 비밀이 아무렇지도 않게 폭로되자 난 당황해 따지듯 목소리를 올렸지만 아버지는 웃을 뿐이었다.


“마음만 같아선 가문의 속박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모험가가 된 네 성장을 지켜보고 싶기도 하다만.”

“······사교 파티에서 귀족 남성들의 추파를 받는 것보단 차라리 그쪽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아니······. 그랬다간 유리앙에게 혼쭐이 날 테니 그만 두도록 하자꾸나.”

“후후.”


난 그것이 이따금 던져지는 아버지의 말뿐인 농담임을 알았기에 작게 웃고 말았다.


“하지만 네 재능의 완전한 개화를 위해선 이 저택을 떠나야만 한다는 생각은 진심이란다.”

“네······?”


난 웃음을 어정쩡하게 멈추고 표정을 굳혔다.


지난 15년간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눠왔지만 본가를 떠나는 건에 대해선 단 한번도, 그 뉘앙스조차 비추신 적이 없었으니까.


-드르륵!


내가 의중을 살피며 살짝 고개를 갸웃하자 아버지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선반 위의 반투명한 크리스탈을 향해 손을 뻗으셨다.


-우웅~


아버지가 손을 대자 크리스탈은 짙은 남색을 띄었고 그대로 옮겨져 내 앞, 탁자 위에 올려졌다.


“이건 마량석이다. 알고 있겠지?”

“네······던전 심층부에서 발생하는 보석으로, 마력을 빛으로 바꾸는 성질을 가지고 있죠. 던전 안에서 기화성이 커 위험한 등불 대신 활용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리고 동시에 마량석이 띄는 색은 마력 보유자의 마력을 가늠하는 데 가장 직관적인 지표가 되지. 그 스펙트럼은 빛의 산란과 같다. 가장 약한 마력은 적색을 그리고 가장 강력한 마력은 자색을 띄게 되지.”


아버지는 말 없이 내게 손짓했고 난 조금 주저하다가 마량석에 손을 댔다.


-우웅~


그리고 그는 내 마력이 띄는 색을 보고는 턱을 쓰다듬었다.


“밝은 남색. 물론 어마어마한 질량과 부피다. 대부분의 마법대학이 내건 전액 장학금 조건 중 하나가 짙은 녹색 등급 이상이란 것을 생각하면 네 나이를 제외하더라도 대륙 최상위로 분류되겠지.”

“그럼 괜찮은 것 아닌가요······. 아무런 기반도 없는 평민이 한 푼도 쓰지 않고 졸업할 수 있는 정도인데.”


난 불안한 마음이 들어 변명 비슷한 말을 해봤지만 그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모든 평가는 상대적인 법이다. 숨기려 해도 소용없다. 네 마력량은 이미 11살일 때부터 지금과 같은 수준에 도달해 있었어. 그런데 마력의 운용 테크닉은 날이 갈수록 고도화 되는 가운데 정작 마력량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니. 그건 내 교육에 어딘가 문제가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청색 마력량 정도만 해도 기사단 필살의 폭격병기 취급받는 판에 이 이상 마력이 늘어나버리면 그건 그것대로 눈에 띄어 위험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하지만 가트 레시온스코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했다.


“어쩌면 내가 연구라는 빌미로 네 발목을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구나. 그간 성장이 없었다는 건 이제 내 가르침으로 네 성장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거기에······.”


그는 수심 깊은 눈으로 바닥을 응시했다.


“어제 파날라에서 두 명의 용사가 선정됐다.”

“네?! 정말인가요!?”


난 깜짝 놀라 그만 아버지 앞에서 목소리를 높여버리고 말았다.


“용사라니······. 그런 게 진짜로?”

“오늘 보고를 받았다. 두 명 다 너와 같은 또래로 금발을 가진 쌍둥이 남매라고 하더구나. 설마 같은 지역에서 그것도 쌍둥이 두 명이 동시에 선택받다니. 이건 기나긴 대륙의 역사를 비추어 보더라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금발의 쌍둥이라······.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인상착의인데.


선택받은 자라니. 참 카르트 다운 칭호라고 생각됐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고작 11살짜리가 나와 대등하게 겨룰 수 있었다는 자체가 그 녀석이 가진 천재성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열심히 하겠다고 소리쳤던 기억은 있지만 설마 용사로 선정될 줄은 몰랐는데······. 인생 2회 차인 내 입장도 좀 생각해달라고. 얼굴도 잘생겨서.


멜리아는 조금 의외였지만 사실 카르트와 쌍둥이였던 그녀에게 역시 소질은 넘치도록 있었지.


“과거 네가 정령에게 선택받을 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을 유리앙과 우스갯소리로 떠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이제 그건 웃을 수 없는 일이 됐다.”

“아뇨. 설마 저까지 선정되지는 일이 벌어질 리가 없잖아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건 용사의 선정 그 자체지. 지금 이 시점에서 네 또래의 용사가 출현했다는 건, 곧 용사가 선정돼야 할 만큼 거대한 시련이 네 세대에게 닥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 그렇죠······. 용사는 위대한 흐름이 발생시키는 일종의 자연현상이니까.”


내 대답에 아버지는 침묵을 지키시다가 결심을 굳히신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련. 너도 알고 있겠지? 잦은 분쟁으로 최근 제국의 정세는 눈에 띄게 불안정해졌고 귀족에 대한 적개심 또한 늘어나고 있다. 어쩌면 이곳 파날라 역시 이상 안전지대가 될 수는 없을 거다. 넌 마법 대학인 ‘현자 에렌델의 탑’으로 가라.”

“아버지!!”


난 무례하게도 버럭 소리쳤고 손바닥으로 내 가슴을 팍 쳤다.


“전 이제 열다섯입니다. 그런 배려는 필요하지 않아요! 최근 백작가 그리고 자작가에서 혼담이 넘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수락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렇더라도 제가 충분히 한명의 성인으로 기능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방증이라고 사료됩니다만!?”

“그건 조금이라도 건강한 후계를 얻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전통에 지나지 않아. 그리고 심성이 약한 네게 전투는 어울리지 않아.”

“어울리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죠! 저 역시 공작가의 일원으로서, 귀족으로서 응당 영민들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할 의무가 있어요!”

“어디까지나 남성의 의무겠지.”

“아버지 정말······!”


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음에도 애써 무시하려는 듯한 아버지의 황당한 논리에 얼이 빠졌다. 늘 애지중지하며 가능한 내 억지를 들어주시던 아버지가 이렇게까지 완고하신 건 처음······아니 그렇기 때문인 건가.


그는 얼굴에서 표정을 지우고 딱딱한 말로 못을 박았다.


“이 사안에 대해서만큼은 네 의견을 물을 생각은 없다. 유리앙과 의논한 뒤 다시 이야기해주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도록.”

“저는······!”

“그만.”


아버지는 완고했고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끝나야만 했다.


*


아버지의 연구실이 있는 본당에서 빠져나와 내 방이 있는 외채로 돌아가는 길.


난 복잡해진 심경으로 바닥을 보며 걷고 있었지만 저택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자자. 비켜가세요! 이거 쏟아지면 여러분 다 죽습니다!”


안 그래도 소란스러운 와중에 메이드 다다는 더욱 크게 목소리를 높이며 복도를 가로질렀다.


그녀는 천장에 닿기 직전까지 쌓아올린 접시를 바닥에 쏟아내지 않도록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크게 성큼성큼 보폭을 벌리고 있었다.


저렇게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나오는 건가 신기할 정도.


그리고 그녀는 곧 내 앞으로 다가와 와 나를 발견하곤 반가운 듯 쫑긋 귀를 세웠다.


“아앗! 아가씨 안녕하세요! 침실로 돌아가는 길이시군요!”

“아 네.”


그리고 다다의 선창에 이어 다른 사용인들의 인사 세례 역시 쏟아졌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아름다우십니다!”

“어디 아프신 곳은 없으시죠?”


그들의 인사에 난 힘없이 웃음을 지으며 그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래요, 다들 수고하시네요.”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자자! 아가씨께 불순한 시선 보내지 말고 계속 일해!”


지나치게 열성적으로 대답하는 집사들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다다가 소리쳤다.


그녀가 우리 저택에 온지도 어느덧 7년이 지났으니 이제 나름의 고참인 셈이군.


다다의 낙천적인 성격 덕에 약간의 위로를 받은 난 그녀에게 뮤렌에 관해 물었다.


“뮤렌은 어디 있어?”

“뮤렌 님이요?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잠깐 상담할 일이 있어서.”

“죄송합니다. 보지 못했어요. 대신 제가 상담해 드릴까요?!”

“응? 아니 아무래도 그건······.”


접시를 산처럼 쌓아놓고 무슨 상담이냐.


난 그녀의 열정에 마음만이라도 감사하단 미소를 짓고는 부드럽게 거절했다.


“그냥 내가 찾아볼게.”

.

.

.


-끼익~


하지만 난 결국 뮤렌을 찾지 못했고 괜히 쓸데없이 복도에서 시간만을 낭비한 채 방으로 돌아와 기지개를 폈다.


“끄응! 하암~”


이제 잘 시간이 지났기 때문인가? 하품을 나왔고 손으로 입을 막았던 그때.


“기다리고 있었단다. 가련.”


비어있어야 할 내 방에 선객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선객의 정체는···


“어머니······.”


유리앙 레시오스코프가 메이드 뮤렌과 함께 내 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네 아버지께 이야기는 들었니?”

“무슨······탑에 대한 일 말인가요?”

“그래. 그리고 네 표정을 보니 어떤 대답을 했는지도 알겠구나.”


어머니는 뻔하다는 듯 웃음을 흘리고는 내 책상 위를 가리켰다.


언젠가 한번 이랬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 기시감.


그리고 그곳에는 여태껏 내가 독자적으로 연구해왔던 연구서 더미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제가 설명을 할게요. 그건···”

“낙서라고 할 셈이니? 네 아버지와 너에 비하면 난 마도에 관해선 문외한에 가깝지만 이래 뵈도 귀족인 몸. 마학에 있어 문맹은 아니란다.”

“우우······.”

“네 연구는 아버지의 것과는 달리 마법의 파괴력과 살상력의 극한을 추구한 것처럼 보이더구나. 그리고 함께 그려져 있는 무기들은 분명 드워프의 고대 유물이었지?”


X됐다. 이거 진짜 위험하다.


어머니의 발언에 서서히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언젠가 집에 돌아가니 내 컴퓨터에서 19금 동영상이 발견되었던 그날을 떠올리게 하는······.


내가 처음 검을 배우길 선택했던 이래로 어머니는 줄곧 내가 전투와 동떨어진 삶을 살기를 원원하셨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 거래 조건이기도 했고 말이다.


예언과는 별개로 검과 피 그리고 폭연에 파묻혀 젊은 시절을 보내야했던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기를 원했기 때문이라던가?


하지만 만약 내가 지금 여기서 굽히고 용서를 구한다면 난 그대로 탑으로 격리되고 말겠지.


그건 절대 사절이다.


그렇게 판단한 난 눈에 힘을 주고 강하게 이야기했다.


“어머니! 전 싸우고 싶습니다!”

“가련. 네게 주어진 운명은···”

“그런 건 없어요!”

“있어!!”

“만약 그렇다 해도 과거의 어머니가 저와 같은 입장이었다면 그 예언에 순응했을 까요?! 이그넨 가문의 들짐승이라고 불렸던 어머니가!?”

“너······너!”


내 폭탄 발언에 어머니는 들켜선 안 되는 수치스러운 사실이 발각된 냥 볼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마구 삿대질을 하셨다.


후후. 제가 다 아는 게 있는데 왜 이제 와서 점잖은 귀부인인 척 하십니까. 그렇게 말을 잘 듣는 사람이었으면 전장이 아니라 사교계로 가셨겠지.


‘대체 그런 쓸데없는 정보는 또 어디서······아니 뻔하지. 가트 그 이가 진짜! 딸내미 앞에서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지! 내가 이노무 바깥양반을 그냥!’


어머니는 정말 당황했는지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아버지가 들었다간 질겁할만한 말을 중얼거리시곤 이를 악물곤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억지 부리지 마라.”

“억지가 아니라 논리적 반박입니다. 어머니도 검술 가르쳐 주면 사교계에 데뷔한다고 거짓말 하고 외조부님한테 이그넨가 제식 검술을 배운 거잖아요?”

“이게······! 너랑 내가 같아?!”

“뭐가 다른데요!?”

“넌 예쁘잖아!!”

“하! 애초에 남자거든요!!”


“마, 마님. 그리고 도련님 일단 진정을······,”


“어어! 그래! 어렸을 때는 마마! 마마! 하면서 졸졸 따라다니더니 이젠 바락바락 대들기나 하고. 다 컸다 이거냐?”

“대드는 게 아니라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나이가 된 것뿐입니다.”

“오냐! 정 네 뜻이 그렇다면. 네가 그 길을 걸을 자격이 있는지를 증명하도록 해라!”

“문제될 것 없죠! 어떻게 할까요!”

“네가 내 어린 시절을 들먹였으니 같은 기준을 적용하도록 하면 되겠지? 내가 전장에 출전을 결심 했을 때 나와 합을 겨뤄 이길 수 있는 자가 없었거든!”

“어머니와 싸워 보라는 말씀은 아니겠지요······?”


난 흠칫 우려를 표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녀와 나의 전력 차를 계산하기 시작했지만 다행히도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며칠 뒤면 알게 될 거다. 너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상당히 두려울 정도로 으르렁 대시긴 했지만······.


*


-다그닥······. 다그닥······.


마차를 매단 말이 제자리에서 툭툭, 발굽을 울려댔다.


그리고 마차의 주인인 마부는 벽에 기댄 채로 입에서 흘러나오는 입김만을 보고 있을 뿐, 놀리고 있는 마차의 손님을 찾아 호객 행위를 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그런데 누군가 그에게 접근해 말을 걸어왔다.


“마차 비어있습니까?”

“예에?!”


마부는 당황한 듯 반문하며 누군가를 쳐다보았다가 손님의 옷차림이 멀끔한 귀족의 것으로 보이자 매우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어디로 모실까요!? 식당가, 도서관, 무도회장, 그리고 왕성까지. 물론 창관이라도! 어디든 말만 하시죠!”

“수도 바깥. 공작령 파날라로 가고 싶습니다만.”

“아······그, 그건.”


손님의 목적지를 들은 마부의 표정이 흐려졌다. 그리고 그는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다가 조심스레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주제넘은 말씀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최근의 치안 악화 이슈로 인해 시외운행비용은 상당할 텐데요?”

“비용이라면 걱정할 것 없습니다. 파날라의 영주께서 얼마든지 지불해주실 테니까요.”


남자는 씨익 미소지으며 공작가의 낙인이 박힌 허가서를 척! 내밀었고 마부는 화들짝 놀라며 머리를 숙였다.


“시, 실례했습니다! 공작가의 관계자일 것이라곤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하지만 공작가의 관계자라는 언행은 조금 불쾌하군요. 전 공작이 아닌 누님을 뵈러 가는 거니까요.”

“예? 누님이라면······?”

“······흠! 공작가의 부인 말입니다.”


남자는 그 단어를 입에 담는 것이 불쾌하다는 듯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내가 뭔가 말을 잘못했나? 마부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의 허리춤에 걸린 화려한 하늘색의 보검을 보고는 식겁하며 다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그렇군요 지금 당장 출발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부 말에 안장을 얹고 줄을 매고 마차를 움직일 준비를 하는 사이.


-스스스...


손님의 뒤에서부터 푸른색의 반투명한 팔이 그의 목을 감싸듯 감겨들었다.


그 팔의 주인은 성숙한 외모의 여성 형태를 띠고 있었으면서 동시에 바람을 형상화한 듯한 머리를 늘어뜨린 여성이었다.


그리고 하체가 거의 사라져 보이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인간이 아닌 영체에 가까워 보였다.


여인은 애정을 표하듯 남자의 몸을 매만지며 그의 귓가에 끈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유리앙 이그넨을 보게 되는 것이 그리도 신이 나? 아무리 친족이라지만 조금 질투가 나는 걸?


그건 명백히도 비현실적인 현상. 하지만 남자는 이미 익숙하다는 듯 시선을 조금도 돌리지 않고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네가 질투를 하든 말든.”


그건 조금 차가운 대답. 하지만 여인은 여전히 장난기 넘치는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황제의 말도 제대로 듣지 않는 용사 ‘에른 이그넨’이 사실은 누나의 편지 한 장에 부리나케 달려가는 얼간이라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은 몰라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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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4) 22.03.08 32 2 21쪽
41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3) 22.03.07 33 1 18쪽
40 혼의 수복 (3) 22.03.06 35 1 21쪽
39 혼의 수복 (2) 22.03.05 45 2 19쪽
38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2) 22.03.04 40 2 17쪽
37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1) 22.03.03 42 1 19쪽
36 혼의 수복 (1) 22.03.02 41 2 20쪽
35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4) 22.03.01 45 2 18쪽
34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2) 22.02.27 46 2 16쪽
33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1) 22.02.26 55 2 17쪽
32 마왕의 혼 (5) 22.02.25 58 2 14쪽
31 마왕의 혼 (4) 22.02.24 54 2 15쪽
30 마왕의 혼 (3) 22.02.23 55 2 14쪽
29 마왕의 혼 (2) 22.02.22 63 2 17쪽
28 마왕의 혼 (1) +1 22.02.21 100 1 18쪽
27 황제의 명령 (2) 22.02.20 63 2 14쪽
26 황제의 명령 (1) 22.02.19 67 2 16쪽
25 에렌델의 탑 (3) 22.02.18 68 2 19쪽
24 에렌델의 탑 (2) 22.02.17 70 2 18쪽
23 에렌델의 탑 (1) 22.02.16 73 2 21쪽
22 정령과 용사와 마왕 (6) 22.02.15 79 2 19쪽
21 정령과 용사와 마왕 (5) 22.02.14 75 1 16쪽
20 정령과 용사와 마왕 (4) 22.02.13 97 1 17쪽
19 정령과 용사와 마왕 (3) 22.02.12 93 2 19쪽
» 정령과 용사와 마왕 (2) 22.02.11 99 1 18쪽
17 정령과 용사와 마왕 (1) 22.02.10 114 2 15쪽
16 세계 제일의 미녀 (5) 22.02.09 128 2 14쪽
15 세계 제일의 미녀 (4) 22.02.08 123 2 14쪽
14 세계 제일의 미녀 (3) 22.02.07 113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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