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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상어 님의 서재입니다.

여장공작은 사교계의 여왕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귀신상어
작품등록일 :
2022.01.29 12:54
최근연재일 :
2022.03.28 18:20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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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7
추천수 :
81
글자수 :
329,731

작성
22.02.1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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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에렌델의 탑 (2)

DUMMY

“학장님께선 아무래도 제가 마음에 안 드시는가 보네요.”


학장실을 나와 다시 올라선 이동 마법진 위에서 내가 말을 꺼냈다.


물론 이유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건 책망이라기보단 스스로 하는 한탄에 가까웠다.


원인은 내 목에 걸린 붉은 보석의 목걸이. 통칭 ‘마나 디퓨저’


착용자의 마력 순환과 집중을 보조해 기량을 끌어올려주는 보통의 아티펙트와는 정 반대의 가능을 가진 이 보석은 마력의 흐름을 멋대로 훼방 놓고 흩어놓아 착용자의 기량을 저하시키는 일종의 디버프 아티펙트였다. 저주받은 목걸이라고나 할까······.


어머니께서 에른에게 신신당부를 하며 전달하신 물건이라고 한다.


“흐음.”


난 시험 삼아 손바닥을 펼치고 그 위에 마력을 모아보았지만 곧장 목걸이의 붉은 보석이 반응하며 빛을 내더니 내 손 위의 마력은 그대로 흩어져 사라지고 말았다.


-슈슈슈······.


효과 확실하구만.


“아무리 눈에 띄면 안 되는 입장이라지만 이렇게 초라한 마력량을 보면 주변에서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명망 높은 레시오스코프 공작가문의 수치로 비치진 않을까 걱정이 되네요.”

“그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을 걸? 남자라면 몰라도 귀족 여성에 대해선 마력량보단 마력 조절의 섬세함을 더 높이 평가하거든. 네가 그 외모만으로도 여태 얼마나 구설을 일으키고 다녔는지를 생각하면 차라리 백치미가 있는 편이 긍정적인 이미지를 챙기는 데 도움이 될 거야. 그리고 솔직히······나네 돌출된 재능은 가능한 감추는 편이 네 삶을 위해 도움이 될 거다.”


이 사람은 그걸 지금 위로라고 하는 건가?


난 고개를 돌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흥, 어차피 작은 상처도 내지 못하는 허접한 재능인데요 뭘.”

“아아! 이제 그만 해주라~!!”


-와락!


에른이 징징대면서 내 목에 두 팔을 둘렀다. 그는 용서를 빌듯 내 몸을 마구 흔들어댔지만 난 주먹으로 그의 배를 퍽퍽 때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저리 꺼져 임마~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법진이 에른이 설정한 층계에 멈춰 섰다.


-띵~


“에휴······. 슬프다. 그럼 수속은 이제 이걸로 전부 끝났으니 난 내 볼일을 마저 처리해야겠다. 가련, 삼촌은 잠시 만나볼 옛 친구가 있으니 여기서 이만 작별을 하도록 하자. 넌 탑을 구경하던지 숙소로 가보도록 해. 이제부터 수년을 보내게 될 공간이니. 미리미리 구조를 익혀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무엇보다 넌 2달 반이나 뒤늦게 합류하는 이방인의 입장이니까.”

“에른 삼촌도 탑에 용건이 있으셨나요? 전 순전히 제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어머니께서 붙여놓은 감시역인 줄 알았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 누님이 들으면 슬퍼하시겠다! 물론 아니지······! 라고 하고 싶지만. 사실 그게 맞아. 하하······. 지금의 볼일이 겸사인 거지.”


에른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듯 축 몸을 늘어뜨렸다.


“무슨 볼일인데요?”

“아마 넌 모르는 편이 나을 거다. 가련은 친구를 사귀고 공부를 하는 데 전념하도록 하세요.”


에른은 궁금증을 보이는 내 머리를 손바닥으로 두 번 톡톡 치곤 마법진을 빠져나갔다.


“······.”


오히려 그게 불안한데 말이야.


*


-또각또각


난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는 한적한 탑의 복도를 천천히 발소리를 내며 걸었다.


아마도 한창 수업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그런 듯 했고 마침 지나치게 된 강의실 안쪽에선 그 강의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주어진 마력은 그 절대량이 빈약한 대신 무한한 가능성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이건 인간 역사의 발전사와도 닮아있지요. 하지만 예외적으로 정령과 계약하는 것으로 마력을 증폭하고 특성을 부여할 수가···


뭐야. 이미 다 아는 내용이잖아.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한 난 강의를 들어보는 대신 슬쩍 안의 광경을 둘러봤는데 학생들은 전부 교복을 입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교복······.”


검은색과 붉은색이 적절하게 섞인 복장은 남자와 여자를 구분해 통일하고 있었고 난 당연히 내가 입어야 할 교복에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검은 니삭스에 무릎 조금 위에 떨어지는 스커트. 그리고 나풀거리는 레이스로 장식된 옷깃에 맨 넥타이까지.


······돌겠군. 이젠 드레스를 넘어서 여자 교복이냐?


난 지끈거리는 머리를 매만지며 강의실을 지나쳤고 모퉁이를 돌았는데 그 순간.


“우왓?!”

“어, 어머?”


짐을 옮기던 메이드와 하마터면 부딪칠 뻔 했다.


메이드는 수업시간 중 복도에서 누군가와 마주칠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깜짝 놀라 손에 든 옷을 떨어뜨렸고 난 사과의 뜻으로 그 옷을 주워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제가 길을 비켰어야 하는데!”

“아뇨. 피차 주의가 부족했던 거니까요. 일하시는 도중이셨을 텐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난 가능한 수업이 끝나기 전에 돌아보는 것을 끝마치고 싶었기에 부드럽게 웃으며 이 상황을 넘기고 지나치고 싶었지만 메이드는 어째서인지 옷을 받아들고도 발걸음을 멈춘 채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뭐, 뭐야 부담스러운데.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내가 슬쩍 시선을 피하고 목을 뒤로 빼며 묻자 메이드는 눈을 반짝이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시, 실례되는 말인 줄은 알고 있지만 아가씨께선 혹시······공작가에서?”

“버, 벌써 소문이 퍼졌나요? 그렇습니다만.”


이렇게 되면 또 격식을 차려서 아가씨를 연기하는 수밖에는 없나······.


가슴에 손을 살짝 얹고 몸을 숙였다.


“잘 부탁 드려요. 오늘부로 에렌델의 탑의 일원이 된 가련 레시오스코프라고 합니다.”

“네네! 알고 있습니다. 아, 그, 그렇지! 이건 아가씨께서 입으실 교복이에요! 선배들이 가져오라고 시켜서 지금 기숙사로 가지고 가는 중이었어요! 그리고 소문대로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선배들이 같은 여자인데도 반할 뻔했다고 어찌나 호들갑을 떨던지!”

“아, 고맙습니다······.”


눈앞에 내밀어진 여자용 교복을 보자마자 난 내 표정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억제해야만 했다. 교복이라는 익숙한 복장이 들이밀어지니 귀족 드레스를 입을 때보다 더 현실감이 들어서. 나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 아닐까?


하지만 내 반응이 어떻던 메이드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전 정말 귀족 영애님들을 동경하고 있거든요! 옷도 예쁜 거 입으시고 피부도 좋으시고 얼굴도 작으시고! 결혼도 잘생긴 기사님들이랑 하실 수도 있고! 무, 물론 아닌 분들도 있지만 적어도 가련 님은 제가 꿈에 그리던 그런 귀족 영애에 가장 들어맞는 멋진 분이세요!”

“그건 과찬이네요.”

“아니에요!! 보세요! 전 다리도 짤막하고. 머리결도 푸석푸석한데다 얼굴엔 주근께만 잔뜩! 하지만 아가씨는······아가씨는 정말 완벽해요!!”


이 여자 조금 전가지만 해도 질겁해서 버벅대더니 입이 풀린 건지 흥분해서 시선도 신경 안쓰고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물론 그 내용엔 알맹이가 없어서 하등 쓸데없는 외모 이야기뿐이었지만.


“하하.”


내가 끔찍한 사실을 알려줄까······? 이건 말이야 전부······화장빨이야! 네가 아는 여신님은 없다고! 난 그냥 여장꾼이라고!


난 차라리 당나귀 귀에 대해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녀 뒤쪽에 방문이 닫히지 않은 창고를 보고 난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아, 아가씨.”

“자. 기억하세요. 외모라는 건 껍데기에 불과해요. 결국 인간성을 빛내는 건 삶을 대하는 당신의 태도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 그런 멋진 말까지······.”


아. 이 사람 중증이네.


결국 난 몇번 더 그녀의 호들갑을 받아줘야 했고 앞으로 열심히 살겠다는 신앙 고백까지 들어준 뒤에야 그녀와 헤어질 수 있었다.


상당히 상대하기 피곤한 타입이었지만 그녀의 신경을 빼앗아 잡아둔 성과는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깜빡하고 닫지 않은 문의 안쪽에는 아직 주인을 만나지 못한 에렌델의 탑 교복이 잔뜩 있었으니까.


*


-주섬주섬


“후! 이젠 이쪽이 더 어색하네.”


난 마지막으로 손목을 돌리며 소매의 신축성을 확인했다.


셔츠 위에 차례대로 넥타이, 베스트, 그리고 자켓까지.


내가 입은 교복은 조금 전 메이드가 손에 들고 있던 것에 비해 드러난 면적이 현저히 적어 보였다.


그래 맞다.


난 재고가 쌓여있던 창고에서 남자용 교복을 골라 입은 것이다.


방금 전 메이드와 마주쳤을 때도 느낀 거지만 가련 레시오스코프로의 외모와 신분은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니까.


모두가 이야기하듯 에렌델의 탑은 마법의 역사이자 발전의 산 증인이며 동시에 지식의 보고였다. 그건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아직 대중화되지 않은 사료, 논문 그리고 유물 등이 탑 여기저기에 잔뜩 산재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


부끄럽지만 사실 이 탑의 거대한 규모와 그것이 품은 방대한 가능성에 조금 흥분하고 있었다.


에른과 맞붙었을 때 아버지의 말씀이 맞았다는 것을 실감하기도 했으니까.


내 재능이 특출나다는 착각은 어디까지나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일찍부터 마법 훈련을 시작한 덕택에 만들어진 후천적 형질. 절대적인 태생이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내가 정진하길 멈춘다면 난 그대로 성장을 멈추고 퇴보하게 되겠지. 따라서 난 이곳 에렌델의 탑에서 내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계기를 찾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은 질리도록 있을 테고 이곳엔 여태껏 내가 알지 못했던 지식이 잔뜩 산재해 있을 테니까.


그리고 만약 아버지의 말마따나 제국의 불안정함이 임계를 넘어 붕괴하기 시작한다면 내가 가진 공작 영애로서의 이점은 곧 약점이 되고 난 표적이 될 수밖에 없겠지.


그럴 경우 혼란 속에선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건 스스로의 감함뿐이라는 이야기다.


“이렇게 차려 입으니까 의욕이 솟는 기분인데!”


난 그렇게 외치곤 짧아진 검은 머리를 한번 훑어 넘긴 다음 힘차게 창고를 나가 다시 모퉁이를 돌아선···!


“꺄악!”

“우왓?!”


-철푸덕!


또 부딪쳤다.


*


“아야야야······.”


유나는 들고 있던 종이들을 흩뿌리며 바닥에 엉덩방아를 찌었고 고통에 표정을 찌푸리며 획! 고개를 들었다.


대체 누구야!


“어, 어라?”


분명 메이드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녀와 부딪친 이는 에렌델의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었다.


“아. 미안. 괜찮아? 오늘 자주 이러네.”


그는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알고 있는지 곧장 손을 내밀어 그녀를 끌어올려줬고 유나는 떨떠름하게 그 손을 잡은 뒤 일어나서 엉덩이를 털었다.


-탁탁


‘양아치치고는 친절하네······.’


유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수업이 진행되고 있을 시간인데 창고에서에서 나오는 길인 걸 보면 아마도 몰래 농땡이라도 부리고 있었던 모양이겠지.


여태껏 본 적 없는 얼굴인 걸 보면 필수 과목조차 자주 결석할 정도로 학업과는 담을 쌓은 녀석일 게 뻔하고. 얼굴은 꽤 반반하게 생긴 게 교복까지 단정하지 못하게 입고 있으니 더욱 확신이 들었다.


반면 유나는 붉은 머리에 뿔태 안경, 베레모를 쓰고 왼쪽 앞머리를 몇 가닥 땋아 내려뜨린 것이 멋의 전부인 전형적인 모범생의 모습. 거기에 그녀의 옷깃에는 학년 수석에게만 주어진다는 황금색의 징표가 자랑스럽게 달려있기까지 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남자는 어울리지 않게 친절한 태도를 보이며 그녀가 흘린 자료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심부름 중인 거지? 빨리 주워 줄게. 교수님한테 혼나면 큰일일 테니까.”

“아니······. 심부름 중인 건 아니고. 이건 내 개인 연구야.”

“응? 개인 연구? 학생이? 수업시간에?”


검은 머리의 남자는 유나의 말에 물음표를 띄우며 줍고 있던 양피지를 들여다보았다.


“일부 고성적자들 대상으로 교수님들께 허가를 받으면 수업을 하는 대신···아니, 아니다. 어차피 넌 들여다봐도 몰라! 이리 줘!”


-획!


유나는 순간 신나서 설명을 늘어놓다가 상대가 머리 나쁜 양아치라는 것을 깨닫곤 그 손에 들린 연구지를 빼앗았다. 어차피 이야기 해봐야 이해하지 못할 것이 뻔하고 뭘알아먹을 수 없는 말을 혼자 신나서 떠드냐며 한 소리 들을 것이 뻔하니까.


이미 2달 반 동안 질리도록 경험해오지 않았나. 에렌델의 탑이라는 명성도 결국 허울에 불과함을. 학생들의 수준은 다른 일반 학교보다 낫다 뿐이지 말 그대로 학생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어중이떠중이들이 태반이다. 하물며 여기서조차 적응하지 못하는 열등생에겐 말할 것도 없겠지.


무, 물론 화를 낼까 조금 무섭지만······.


“응······?”


이, 이거 봐!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하는 남학생의 반응을 보며 유나는 몸을 움츠렸다.


“으윽······.”


안 그래도 계산이 잘 안 풀리는 와중이라 마법식 가상연산장치를 사용하러 가는 중이었는데 여기서 괜히 시비를 걸렸다간 하루 일과가 다 어그러지고 만다.


그렇게 판단한 그녀는 슬금슬금 시선을 피하며 양피지 더미를 정돈하곤 곧장 등을 돌렸다.


하지만.


“그거. 정령 계열 마법 중첩 이론식이지? 3번째 결합식 계산이 틀렸어.”


-우뚝.


등 뒤에서 들려온 말에 그녀의 발이 멈춰 섰다.


“설마 알아 보······.”

“그 이론의 근간은 고대 드워프가 유물을 만들어내던 방식이잖아? 당시 대륙의 기후가 지금과는 다르고 또한 드워프들이 작업하던 곳이 깊은 땅 속이기에 기압과 온도가 다르다는 것을 계산에 넣었어야 했어. 하지만 뭐 그런 예측상정 없이 정교하게 식을 깎아내 전개식을 완성한 것도 놀랍지만.”

“그걸 어떻게······.”


유나는 자신의 연구에 대한 표면적인 이해를 넘어 그 근간이 되는 사고방식까지 꿰뚫린 것 같은 소름끼치는 감각에 손을 떨다가 뒤를 돌아 정체불명의 남학생에게로 되돌아갔다.


“호, 혹시 교수님이신가요?!”

“뭐어? 그럴 리가 없잖아. 난 여기 학새···”

“그럼 같이 가주라!”

“뭐. 어?! 자, 잠깐!”


대체 뭔 소리를 하냐는 투로 시치미를 떼던 소년은 그대로 유나의 손에 붙잡혀 확 당겨졌고 기우뚱 넘어질 뻔 했지만 간신히 균형을 되찾았다.


‘갑자기 어디로 날 끌고 가는 거야!?’


그는 이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너무도 해맑게 웃으며 손을 잡아당기는 소녀의 표정을 보니 그 손을 뿌리칠 수도 없었다.


“난 유나. 유나 비비프! 네 말대로 정령계 중첩 마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지! 아아! 설마 이걸 이해해주는 녀석을 만날 줄이야! 네 이름은?!”

“나, 나? 난······그, 유유.”

“그래. 유유구나! 네가 한번 봐줬으면 하는 게 있어!”

*


결국 얼결에 유유의 이름을 대고 만 나는 그대로 유나 비비프 양의 손에 이끌려 마법식 가상연산장치 라는 복잡한 기계장치가 있는 방에 도착하게 됐다.


내가 마주하게 된건 크고 작은 톱니바퀴 수백 개에 룬문자를 새겨 넣어 마법공학으로 엮어 완성한 기구. 그건 일종의 앙부일구 같이 생긴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아마 이름 그대로 마법식을 입력하면 마력 소모 없이 그 결과를 연산해 투영해주는 장치인 것 같은데······. 아이디어 한번 기똥차네. 나도 써보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린다.


하지만 동시에 우려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멋대로 들어가도 괜찮은 거야? 꽤 비싸보이는데······.”

“괜찮아. 본래라면 적어도 조교수쯤은 되어야 출입 가능하겠지만 난 허락을 받았거든.”

“학생끼리. 그것도 수업시간에 들어와도 괜찮다고···?”

“황금빛 뱃지가 있으니 상관없어. 학칙적으론 탑의 모든 시설을 열람 할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되거든. ······그리고 너도 이미 땡땡이 치고 있는 불량학생이었던 주제에.”


내가 걱정되어 묻자 유나는 그렇게 자신을 못 믿겠냐는 듯 볼을 부풀리며 투정을 부렸다.


“아니 나는······그래. 그런 걸로 하자.”

“타, 탓하는 건 아냐! 다만 말이 그렇다는 것뿐이지!”


난 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까 하다가 차라리 말을 않는 게 낫겠다 싶어 입을 닫았는데 그녀는 괜히 미안했는지 뒤늦게 변명을 덧붙이고는 책상에 앉아 양피지를 펼쳤다.


-촥!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설마 내 전개식을 한눈에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학생이 있을 줄은 몰랐어. 그것도 학생들 중에! 물론 무시하는 말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나와 수준이 맞지 않거든. 그래서 수업을 듣는 대신 개인 연구를 하고 있는 거고. 황금빛 배지 덕분에 여기저기 유물이나 책을 보러 돌아다니기도 좋고. 그리고 또, 그리고 또···”


나를 옆에 세워논 채로 유나의 말은 처음의 논점을 잃은 채 지리멸렬하게 횡설수설 방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난 어쩔 수 없이 옅게 웃었다.


“술식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알려줘?”

“아, 알려줄 수 있어!? 아니 잠깐! 역시 내가 직접 하지 않으면 의미가······아냐! 그래도 알려줘!”


3초 만에 스탠스를 두 번이나 바꾸신 유나는 반짝이는 눈으로 날 올려다봤고 난 잠깐 망설이다가 으쓱하고는 그녀 옆 의자를 빼 앉았다.


“그 대신 조건이 하나 있어.”

“조건······?”


내가 턱을 괸 채로 미소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자 유나는 흠칫 놀라는가 싶더니 팔을 교차시켜 두 손으로 양 어깨를 감쌌다.


“내, 내 몸은 안 돼!”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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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3) 22.03.28 45 0 15쪽
42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4) 22.03.08 32 2 21쪽
41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3) 22.03.07 33 1 18쪽
40 혼의 수복 (3) 22.03.06 36 1 21쪽
39 혼의 수복 (2) 22.03.05 45 2 19쪽
38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2) 22.03.04 40 2 17쪽
37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1) 22.03.03 42 1 19쪽
36 혼의 수복 (1) 22.03.02 41 2 20쪽
35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4) 22.03.01 46 2 18쪽
34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2) 22.02.27 46 2 16쪽
33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1) 22.02.26 56 2 17쪽
32 마왕의 혼 (5) 22.02.25 58 2 14쪽
31 마왕의 혼 (4) 22.02.24 54 2 15쪽
30 마왕의 혼 (3) 22.02.23 55 2 14쪽
29 마왕의 혼 (2) 22.02.22 63 2 17쪽
28 마왕의 혼 (1) +1 22.02.21 100 1 18쪽
27 황제의 명령 (2) 22.02.20 63 2 14쪽
26 황제의 명령 (1) 22.02.19 68 2 16쪽
25 에렌델의 탑 (3) 22.02.18 68 2 19쪽
» 에렌델의 탑 (2) 22.02.17 71 2 18쪽
23 에렌델의 탑 (1) 22.02.16 73 2 21쪽
22 정령과 용사와 마왕 (6) 22.02.15 79 2 19쪽
21 정령과 용사와 마왕 (5) 22.02.14 76 1 16쪽
20 정령과 용사와 마왕 (4) 22.02.13 97 1 17쪽
19 정령과 용사와 마왕 (3) 22.02.12 94 2 19쪽
18 정령과 용사와 마왕 (2) 22.02.11 99 1 18쪽
17 정령과 용사와 마왕 (1) 22.02.10 114 2 15쪽
16 세계 제일의 미녀 (5) 22.02.09 128 2 14쪽
15 세계 제일의 미녀 (4) 22.02.08 123 2 14쪽
14 세계 제일의 미녀 (3) 22.02.07 113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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