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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상어 님의 서재입니다.

여장공작은 사교계의 여왕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귀신상어
작품등록일 :
2022.01.29 12:54
최근연재일 :
2022.03.28 18:20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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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81
글자수 :
329,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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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1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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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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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에렌델의 탑 (3)

DUMMY

“그냥 가야겠다······.”


-드르륵!


“아아아! 미안해요!!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그냥 벗을 게요! 알려만 주세요!!”

“필요 없거든?! 옷에서 손 떼! 진짜 간다?!”

“죄송합니다! 저 같은 잘난척 쟁이 공부벌레를 좋아해줄 사람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오!”

“으엑!? 다, 달라붙지 마!”


얼이 빠져버린 내가 의자를 빼고 일어나려 하자 적발의 소녀는 금세 다시 또 태도를 바꾸더니 내 팔에 징징대 매달려왔고 난 당황하면서 팔을 휘젓다가 하는 수 없이 다시 의자에 앉았다.


“아니.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 걸 요구할 거라 생각하는 거야······. 난 그저 네 옷깃에 있는 황금색 배지. 그걸 보고 싶었던 거라고.”

“뭣?! 배, 배지?! 미안하지만 이것도 안 돼! 이건 내 목숨보다 소중한 거라고! 이걸 위해서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이번엔 그녀의 두 손이 교복 옷깃을 감싸 가렸다.


첫인상이랑 다르게 리액션 참 좋네. 정말······.


“달라고도 안했어. 잠시 살펴보고 싶은 것뿐이야. 대체 어떻게 생긴 건지. 그 배지가 있으면 어디든 들어갈 수 있다고 하니까 궁금증이 생겨서.

“그냥 살펴본다고······?”


유나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했지만 정말 내 목적은 그것뿐이었다.


“수석들에게만 주어진다는 특권의 상징이 어떻게 생겼는지 꼭 가까이서 보고 싶었거든.”


난 조금 전 유나가 자랑하며 이야기 했던 말을 그대로 읊으면서 헤헤 웃었다. 그러자 당혹함에 가득 차 있던 유나의 표정은 어느새 우쭐함으로 변하더니 팔짱을 꼈다.


“흐흥~ 너 이 배지가 가진 엄청난 의미를 아주 잘 알고 있잖아? 그래. 너도 수석의 상징을 부디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말이지? 그렇겠지. 내 마법식을 알아볼 정도니까. 당연히 그 정돈 괜찮지!”


그녀는 턱을 들고 고개를 후훗 끄덕이더니 주섬주섬 배지를 떼어 내곤 탁! 하고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자. 마음껏 구경하도록 해! 현재 탑에 있는 학생 중에 이걸 가진 녀석은 나를 제외하면 한 명밖에 없으니까!”

“아······고마워.”

“별말씀을.”


이 녀석 갑자기 재수 없어졌네······.


하지만 조금 전처럼 지레 겁을 먹고 움츠리고 있는 것보단 나은가? 이용해먹기도 쉬워 보이고.


난 순순히 그녀의 자랑을 들으며 책상 위 배지에 검지를 가져다대고 그 질감을 확인한 다음 그걸 집어 들어 찬찬히 앞뒤를 살폈다.


“어······뭐하는 거야?”

“그냥 만져보는 거야.”

“그, 그렇구나. 무슨 감정사 같다······. 하하.”


그렇게 선뜻 내밀어놓고 뒤늦게 혹시 내가 들고튀기라도 할까 불안 했는지 유나는 전전긍긍 눈치를 살폈지만 당연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난 다시 배지를 내려놓았다.


“됐어. 고마워.”

“응? ······끝이야?”

“내가 잠시 살펴보기만 해도 괜찮다고 했잖아.”


난 이상한 걸 묻는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곤 펜을 주워들고 양피지 위에 가필을 시작했다.


“네 이중 중첩 법식 말인데. 대충 3군데에서 오류가 있었어.”

“어, 어? 자, 잠깐만. 집중할 준비를 하고······응. 됐어.”


그녀는 허둥지둥 책상 위 양피지를 정리하는가 싶더니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다음 고개를 끄덕였고 나도 잠시 기다렸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먼저 3번째 식에서 설정된 기본 기압설정과 온도가 잘못됐고. 따라서 11번째 식에서 사용된 마법간 간섭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을 5퍼센트 이하로 상정해야 해. 당연히 가능성이 배제된 공식을 따로 구해서 새로 적용해야 될 테고 말이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코어를 이루는 정십이면체의 아래쪽 모서리들 비율이 틀렸어. 조금 비틀려 있는 게 균형이 맞거든.”


-사각 사각


난 아버지와 함께했던 연구를 떠올리며 익숙하게 글자를 써내려갔다.


보통은 내가 시연자의 입장이었고 아버지가 기록을 담당하셨지만 보고 배운 게 있으니까. 조금 어설프더라도 탑의 수석이라면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겠지.


그리고 얼마간 수식을 수정하고 가정을 바꿔 가필한 뒤 펜을 내려놓았다.


-탁


“이게 전부야.”

“어······? 벌써 끝이야?”

“복잡한 법식일수록 변수 설정이 조금만 잘못돼도 값이 결과 값이 어긋나거든. 반대로 말하면 네 방식은 거의 옳았다고 볼 수도 있겠지. 딱히 고칠 부분은 얼마 없었어. 물론 연구자 입장에선 이렇게 방대한 공식을 일일이 검토하는 게 상당히 귀찮겠지만.”

“저, 정말 이거면 된다고?”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선 그래. 나도 천재는 아니니까. 내가 아는 한에서 대답한 것뿐이라.”


디테일한 구조 분석은 아버지에게나 가능한 일이지.


고마워해라······아버지랑 나랑 알아내는 데 한 달이나 걸린 귀중한 정보라고


유나는 내가 양피지를 내밀자 며칠 굶은 사람처럼 얼굴을 바싹 붙이고 법식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얇게 땋아놓은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그럼 난 간다?”


내가 뭘 했는지 눈치 채기 전에.


그녀는 법식을 읽느라 여념이 없었는지 대답을 하지 않았고 난 조용히 일어나 등을 돌리고서 가상 구현화실을 빠져나왔다.


이제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이 밀려나와 복잡해질 테니 그 틈바구니 사이로 사라지면 될 일이겠지. 그리고.


-팅~


난 유나가 가지고 있던 것과 완전히 똑같이 생긴 황금색 배지를 동전처럼 튕겼다가 낚아채 주머니에 넣었다.


생각보다 복제하는 데 고생했다.


*

<15분 후>


“말도 안 돼······계산이 딱 맞아떨어지잖아. 어떻게······이건 천재적인 발상이야!!”


유나는 양피지를 한참 들여다보다 번쩍 고개를 들고 탄성을 내질렀다.


“유유!? 아직 교수님들한테 보여드리지 않은 논문이 수십 장은 있어! 같이 검토해보자! 어중이떠중이 교수들 보다 오히려 우리 둘이 함께 마법을 탐구하는 게 훨씬 효율이 좋을 거야. 그리고 그 성과가 인정받으면 너한테도 황금빛 배지가 수여될 수도 있어!! 세상을 놀라게 할 연구가 잔뜩 있다고!”


그건 어쩌면 그녀의 아버지조차도 되어주지 못했던 생애 첫 이해자를 만난 기쁨의 발로였다. 하지만······.


“어라? 유유······?”


유나의 옆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우당탕!


당황한 적발의 소녀는 다급히 안경을 추켜올리곤 책상 위의 황금빛 배지를 챙긴 뒤 냉큼 일어나 다급하게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곧장 가상구현화실을 빠져나와 두리번거렸지만 복도는 이미 수업을 마치고 흘러나온 학생들로 가득했다.


“설마 내가 귀신을 본 건가······?”


유나는 허탈하게 손 안의 황금빛 배지를 매만졌다.


그런데 그때.


“뭔가요? 당신 왜 뚱한 얼굴로 길을 막고 있어요? 기분 나쁘게.”


익숙하고도 심기 불편한 목소리가 끼어들어 그녀에게 면박을 주었다.


은발을 길게 늘어뜨리고 뒤에 파벌인지 부하인지 모를 무리를 잔뜩 거닐고 있는 여자. 풀메이크업을 하고 멍청하게 보일 만큼 흉부가 크게 튀어나와 있는 여자.


유나가 혐오해 마지않는 학교의 여왕. 백작가의 둘째 딸인 카트린느 트리나드였다.


“카트린느 트리나드.”

“어머나? 평민에게 호명을 허락한 기억은 없는데요?”

“그렇겠지. 미안하게 됐군.”


유나는 은발의 귀족에게 비아냥대며 고개를 끄덕이곤 상대하길 포기했다. 심심하면 시비를 걸어오는 것은 이제 일상 다반사였으니까. 상대해봐야 득 볼 것도 없었고 말이다.


하지만 카트린느에게 역시 그녀의 시큰둥한 반응은 익숙했고 백작가의 영애는 능청스럽게 말을 이었다.


“뭐 이해는 돼요. 친구라고 해 봐야 녹발을 가진 못난이 하나가 전부니까.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요. 가엾어라. 뭣하면 함께 다녀 드릴까요? 마침 짐꾼이 부족한 참이라.”

“죄송하지만 전 멍청한 여자하고는 친구를 하지 않는 성격이라서. 부정행위로 시험 성적을 조작하지 않으면 학기를 이수할 수 없는 낙제생하고는 지능지수가 떨어질 것 같아서 못 놀아 주겠는데?”

“어머. 그것까지 포함해서 실력인 건데요? 혼자 발발대면서 공부하는 당신의 꼴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에요. 순순히 학기 초에 제 제안을 받아들였으면 좋았을 것을.”

“귀족의 하수인 노릇은 죽어도 안 해.”


유나는 살짝 이를 물려다 획 몸을 돌렸다.


학기 초. 카트린느 트리나드 교내에 자신의 파벌을 만들어 영향력을 넓히는 데에 여념이 없었고 수석 입학생이었던 유나 역시 그 스카우트 대상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때의 유나 역시 백작가의 인맥을 갖는 것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작위를 가지지 못한 마법사들은 으레 그렇게들 하니까. 하지만 요구 조건을 들은 순간 그럴 마음 같은 건 감쪽같이 사라졌다. 하나같이 평민인 자신을 무시하는 것들뿐이었으니까.


부정행위를 도와 그녀에게 수석의 성적을 양보해야 하며 특출남을 드러내서도 안 되고 카트린느를 따라다니며 그녀를 보좌해야만 한다니. 사람을 들러리로 보는 것도 정도가 있다.


유나는 뒤늦게 이를 갈면서 성큼성큼 걸어 카트린느로부터 멀어졌다.


“대체 왜 가문만 좋게 타고난 멍청이들이 에렌델의 탑에 오는 거지? 여긴 학업을 위한 장이란 말이야. 탑의 가르침에 대해선 관심도 보이지 않고 위조된 성적으로 그 명성만을 탐하지. 그러면서 부끄러운 줄은 모르고 귀족간 파벌을 만들어 졸업 이후 사교계 생활의 기반으로 삼을 생각이나 하고 있어.”


그녀는 그저 평화롭게 학문을 공부하고 싶을 뿐인데 왜 대륙 최고의 대학이라는 이곳에서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건지 유나는 도저히 납득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왜 교수들 역시 그녀의 폐단을 방치하고만 있는 건지. 트리나드 백작가가 탑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인가? 만약 그렇다면. 교수도 학장도 전부 제국 권력의 개라면······.


카트린느를 억누를 수 있는 건 그보다 더 높은 권력자뿐일 것이다.


하지만 누가 감히 제국 백작가 딸의 위세에 비하겠는가. 유나는 한숨을 쉬며 손에 들린 황금빛 뱃지를 매만졌다.


*


그리고 다음날 아침.


에렌델의 탑에는 여태까지와는 명백히 다른 수상한 기류가 맴돌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여성 기숙사 안 메이드들의 숙직실, 새로 편입하게 된 어떤 인물에 대한 소문이었다.


“고, 고고고, 공작가 따님이라고!?”

“쉿! 목소리 낮춰!”

“하지만 그렇잖아! 그 가련 레시오스코프라고? 정글 같다는 제국 사교계에서 오직 영지에만 틀어박혀 있으면서도 무수한 면담 요청과 혼약 신청이 물밀듯 들어와 곤란할 지경이라던! 거의 전설속의 존재 같은 사람이잖아? 그 사람이 에렌델의 탑에 왔다고?”

“물론 나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직접 본 사람들은 잔뜩 있으니까. 레오나 메이드장께서도 인사차 마중을 나가셨다고 하고.”

“레오나 님이??”


메이드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레오나는 그녀의 조모부터 3대째 에렌델의 탑 기숙사를 담당하고 있는 메이드장이었고 그녀 역시 그 전통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제국의 정복전쟁 이후 마법사보단 검사의 필요성이 대두된 탓에 탑의 위상이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탑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는 가르침마저 져버릴 수 없었던 레오나는 가능한 제국의 귀족들과 평민 학생들울 동등한 태도로 대해왔다.


사실상 탑의 여왕이나 다름없는 백작가의 카트린느 트리나드에게조처 사무적인 태도로 딱딱하게 대하는 그녀라면 진실을 말해줄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때 마침 레오나가 손을 닦으며 숙직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고 메이드는 그녀에게 다가가 당돌하게 물었다.


“레오나님! 새로 들어온 학생에 대한 이야기. 사실인가요?”

“네? 가련 아가씨 말인가요?”

“가, 가련이라고요?! 그럼 정말 그······공작가의 귀족께서?”

“그렇게 되겠네요.”

“히에엑!?”


메이드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공작가에서 정말로······우린 다 죽었다.”


그녀들은 카트린느가 처음 활개를 치며 탑을 장악하려 하 때의 악몽을 떠올리며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지만 레오나는 그런 그녀들의 우려를 가늠한 건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괜찮으신 분이에요. 소문대로 매력적인 분이시고.”

“네···?”


옅은 미소를 지으며 탕비실을 떠나는 메이드장이 남긴 말에. 그녀들은 물음표를 띄웠다.


*


그리고 요란스러운 것은 비단 메이드들뿐만이 아니었다.


-웅성웅성


탑의 학생들 역시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 이야기 들었어? 오늘 새로 들어왔다는 편입생······.”

“지, 진짜? 가련이라고? 그 가련 레시오스코프?”

“근데 뭐 말만 무성하지 실제로 본 사람이 없던데. 예쁜 거 맞아?”

“등신아! 보르돌 지역 교역상 아들이 그 여자 생일날 공작가 영지에 찾아갔다가 상사병으로 맛 갔다는 거 유명한 이야기인 거 몰라?”

“그, 그거 진짜야? 어차피 둘 다 소문인데.”

“아냐. 나 실제로 봤어. 우리 아버지가 그쪽 민족하고 연이 조금 있거든. 그 상인은 괜히 욕심을 부렸다가 마녀에게 저주를 받아버렸다고 벌벌 떨고 있더라고.”

“좀 무서운데······. 서, 서큐버스 같은 거 아냐?”

“넌 공작가 영애한테 못하는 말이 없네······. 함부로 입을 놀리다간 바로.”


학생은 손으로 자신의 목에 찌익 선을 그어 보이며 겁을 주었다.


“그 트리나드 아가씨도 어제 저녁에 파벌 애들하고 회의 들어간 거 몰라? 이건 탑 권력 구조의 개편이라고!”


*


강의가 시작할 때쯤엔 이미 웅성대는 잡담은 탑 안을 가득 채울 정도가 되었고. 거기 영향을 받는 건 주변에 무관심한 유나라 할지라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녀는 하나뿐인 친구 루토와 격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공작가라니, 공작가라니! 그런 말은 없었잖아!”

“나도 몰랐지~ 설마 그런 유명인이 별 가십도 없이 슥 편입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어떻게 보면 황녀보다도 훨씬 보기 힘든 사람이잖아.”

“자, 잠깐. 생각을 정리해 보자. 그럼 그 재수 없는 카트린느보다 무려 두 단계나 높은······그러니까 제국 최고 권력자의 딸이 편입해왔고 우리랑 같은 수업을 들을 수도 있다?”

“편입생이면 우리랑 같은 1학년으로 취급할 테니까 당연히······.”

“그리고 그럴 경우 카트린느는 어떻게 되는 거지?”

“어···?”


루토는 깜빡했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그녀들의 결론도 결국 다른 학생들이 도출해낸 답과 같은 곳에 도달한다.


교내를 지배하고 있는 아젠다는 단연코 백작가의 영애 카트린느 트리나드가 형성하고 있는 귀족 카르텔.


교내 귀족들의 지지를 받으며 파벌의 정점에 군림하며 탑의 여왕이라고도 불리는 백작가의 영애. 카트린느 트리나드의 위세는 이제 교수들조차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무언가가 되었다.


하지만 만약 공작가의 영애가 난입하게 된다면 그 견고했던 권력구조는 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


“카트린느님······준비 되셨죠?”


파벌원중 한 명이 카트린느에게 물었다.


늘 여유가 넘치고 능글맞은 태도로 주변을 대하던 카트린느도 이번만큼은 긴장 역력한 표정을 애써 숨기려 하고 있었다.


“가련 레시오스코프 아가씨는 대륙 최고 유명인사중 한분이세요. 부디 침착하게······.’

“알고 계시죠? 이건 영광스러운 일이에요. 아가씨. 지금의 처신이 향후 저희의 3년을······아니 어쩌면 인생을···!”

“조용히 좀 해주시겠어요!?!?”


순간 카랑카랑한 카트린느의 목소리가 파벌원들을 넘어 복도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 동요는 자연스레 학생들의 주목을 끌었고 카트린느는 주변을 둘러보며 침을 삼키고 각오를 다졌다.


‘그래요. 긴장할 것은 없어요. 모든 상하관계가 작위만으로 결정되는 것만은 아니니까. 탑의 귀족 자제들은 이미 저를 다르고 있고 인정하고 있어요. 아버님께서도 어마어마한 양의 자금을 교수들의 연구에 후원하고 계시고요. 그러니까 제가 꿀릴 것은 없어요.’


카트린느는 침착하게 어제 밤 정한 방침을 되새겼다. 공작가 영애가 입학한 이상 파벌 구조의 변화는 필연적.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이 먼저 그녀를 끌어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공작가의 영애라고해서알력 싸움에서 밀릴 거라 여기진 않았다. 아무리 유명하다 한들 제국의 사교계에 얼굴도 잘 비추지 않는 은둔자에 가까웠으니까. 하지만 경계하며 대립각을 세우는 것보단 아군을 삼는 것이 더 이득이 될 거라 판단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사교계에서 마주쳐야 할 운명 아니었나. 오히려 일찍 마주하게 된 것이 행운이다. 내가 연상. 언니의 여유로움으로 휘어잡아 파벌의 일원으로 만든다.


카트린느는 목을 펴며 자세를 가다듬었고 멀리서부터 인파를 가르며 걸어오는 소녀를 보았다.


*


-우르르


“아, 안녕하세요. 가련님!”

“네. 좋은 아침이죠?”

“소문대로 아름다우십니다!”

“고마워요······. 소문이란 언제나 과장되기 마련인데.”

“저, 전 존경하고 있어요!”

“존경이라니. 저흰 대등한 입장인데, 그럴 필요는 전혀 없어요.”


가련 레시오스코프는 첫 등교일부터 학생들의 인파를 주변에 두른 채로 천천히 복도를 거닐고 있었다.


아름다움을 형상화해 주변에 두른 듯한 적발의 여인은 귀찮을 법도 한 주변의 칭찬 세례에도 일일이 답변해주며 미소를 지어주었고 학생들은 밝은 얼굴로 더욱 그녀를 졸졸 따랐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치사하다고 느껴지네요.’


카트린느는 점점 다가오는 가련을 보며 저도 모르게 속으로 불평을 뱉고는 손을 쥐었다 폈다.


‘내가 처음 등교했을 때랑 비교하면의 반응이 천지 차이잖아······’


그 이유는 물론 가련이 두른 미색.


모두와 같은 교복을 입었음에도 그녀의 복장만은 돋보이도록 정성들여 수선된 것처럼 보였다.


미모도 저 정도가 되면 정신조작 계열 마법에 가까운 효과라도 내는 모양이다. 만약 사교계에 그녀가 데뷔를 하는 날이 온다면 어떤 영애도 그녀와 함께 서려 하지 않겠지. 카르린느 또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제국의 사교계가 아닌 에렌델의 탑. 여기서만큼은 그녀가 가련 보다 더 우월한 위치에 있다.


그녀는 자신의 지지하는 파벌 학생들을 확인하곤 자신감을 얻어 앞에 가련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가련 양. 카트린느 트리나드라고 합니다. 학생들을 대표해서 에렌델의 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 트리나드 백작가의······.”

“과연 알고 계시는 군요. 네! 저는···”

“공부 열심히 하세요. 화이팅.”

“네···?”


싱긋.


카트린느는 가련이 지어보이는 미소를 보고 당황해 반문했지만 가련은 이미 인사를 끝냈으니 볼일은 없다는 듯, 말없이 그녀를 스쳐지나갔다.


설사 탑의 파벌을 지배하는 백작가의 영애라 한들, 자신 앞에선 한낱 평민과 다를 바가 없다는 듯이.


공작가의 권력과 대륙 최고의 미모란 그런 것이다. 태양 앞에선 누구도 밝게 빛날 수 없다.


그리고 뒤늦게 자신이 노골적으로 무시당했음을 깨달은 카트린느 트리나드는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었다.


작가의말

너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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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3) 22.03.28 44 0 15쪽
42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4) 22.03.08 31 2 21쪽
41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3) 22.03.07 33 1 18쪽
40 혼의 수복 (3) 22.03.06 35 1 21쪽
39 혼의 수복 (2) 22.03.05 45 2 19쪽
38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2) 22.03.04 40 2 17쪽
37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1) 22.03.03 42 1 19쪽
36 혼의 수복 (1) 22.03.02 41 2 20쪽
35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4) 22.03.01 45 2 18쪽
34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2) 22.02.27 46 2 16쪽
33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1) 22.02.26 55 2 17쪽
32 마왕의 혼 (5) 22.02.25 57 2 14쪽
31 마왕의 혼 (4) 22.02.24 54 2 15쪽
30 마왕의 혼 (3) 22.02.23 55 2 14쪽
29 마왕의 혼 (2) 22.02.22 62 2 17쪽
28 마왕의 혼 (1) +1 22.02.21 100 1 18쪽
27 황제의 명령 (2) 22.02.20 62 2 14쪽
26 황제의 명령 (1) 22.02.19 67 2 16쪽
» 에렌델의 탑 (3) 22.02.18 68 2 19쪽
24 에렌델의 탑 (2) 22.02.17 70 2 18쪽
23 에렌델의 탑 (1) 22.02.16 73 2 21쪽
22 정령과 용사와 마왕 (6) 22.02.15 78 2 19쪽
21 정령과 용사와 마왕 (5) 22.02.14 75 1 16쪽
20 정령과 용사와 마왕 (4) 22.02.13 97 1 17쪽
19 정령과 용사와 마왕 (3) 22.02.12 93 2 19쪽
18 정령과 용사와 마왕 (2) 22.02.11 98 1 18쪽
17 정령과 용사와 마왕 (1) 22.02.10 113 2 15쪽
16 세계 제일의 미녀 (5) 22.02.09 127 2 14쪽
15 세계 제일의 미녀 (4) 22.02.08 122 2 14쪽
14 세계 제일의 미녀 (3) 22.02.07 113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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