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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상어 님의 서재입니다.

여장공작은 사교계의 여왕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귀신상어
작품등록일 :
2022.01.29 12:54
최근연재일 :
2022.03.28 18:20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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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5
추천수 :
81
글자수 :
329,731

작성
22.02.1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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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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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6쪽

황제의 명령 (1)

DUMMY

미안.


난 백작가의 아가씨를 지나치며 마음속으로 사과를 건넸다. 그대로 굳어버린 그녀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보였으니까.


이렇게 되면 내가 창피를 준 꼴이 될까?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 귀찮은 파벌싸움에 나도 휘말릴 것이 뻔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이곳에선 가능한 조용하게 지내라는 부모님의 요구도 있었고.


물론 사교계에서 이런 태도를 취한다면 당장에 구설수에 올라 따돌림을 당한 뒤 퇴출의 수순을 밟게 되었겠지. 그건 루실 선생님께서도 경을 치실 일이었겠지만 다행히도 이곳은 에렌델의 탑.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결국 이곳에서 끝난다. 제국 사교계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테지.


혹시 이곳에서 파벌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을 그녀를 무시하는 것처럼 들리려나······? 하지만 사실인걸.


카트린느 양. 학생들을 선동해 나를 욕하든 파벌원들에게 나와 친구가 되지 말라고 명령하든 알아서 하세요. 뭐, 어느 정도는 감내할 테니까.


난 그대로 그녀를 지나쳤고 강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강의실은 바깥에서 얼핏 들여다보았던 것 이상으로 방대한 규모였고 끝자락에 앉은 사람은 교수의 얼굴을 볼 수는 있을까 싶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어디 앉아야 하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순간 익숙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강의실의 중간 쯤, 붉은 단발에 옆머리를 얇게 땋은 여학생.


이름은······유나 비비프였던가? 그녀는 어제와 같은 뿔태 안경을 쓰고 책상 위에 시선을 못 박은 채 무언가를 마구 써내려가고 있었다.


어제 그 연구를 이어서 하는 건가?


괜히 웃음이 지어졌던 난 그녀의 옆에 앉기로 결정을 내렸고 그쪽으로 다가가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사각사각


열심히 하네.


난 대견하게 생각 돼 그녀의 책상 쪽을 슬쩍 보았는데 그제야 유나가 힐끔힐끔 나를 보며 의식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작이 옆에 앉는 건 부담스러운가? 사실 난 어제처럼 무례하게 굴어도 난 상관없는데.


하지만 그럴 리는 없으니.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뭐? 아. 그, 그래······.”

“유나 비비프 양이죠? 전 가련 레시오스코프라고 해요. 앞으로 같은 수업을 들을 친구인데. 잘 부탁드려요.”

“다, 답은 안보여줄 거야?!”

“네······? 마음대로 하세요?”

“우우······.”


갑자기 무슨 소리? 답을 왜 보여줘?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녀의 옆에 앉아 있던 녹발의 여성이 황급히 끼어들어 내게 인사를 해왔다.


“저, 저 안녕하세요!? 루토 아니우 라고 합니다. 저, 저도 유나 친구에요.”

“아하······. 반가워요. 루토.”

“네! 저도요! 유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이 녀석이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열등감이 있어서 딱딱하게 굴긴 해도 나쁜 녀석은 아니라서요!”

“야! 루토!”

“하하······.”


유나는 친구의 갑작스런 험담에 당황했는지 버럭 고개를 들었지만 곧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다시 푹 고개를 숙이고 마법식을 끼적이기 시작했다.


어제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무례하더니 오늘은 그냥 목석이네.


얘는 혹시 그건가? 귀족을 싫어하는 부류?


공부 잘하는 녀석에게 미움 받고 싶지는 않은데. 적어도 지금 내게 있어서 도움이 되는 건 백작가의 영애보다도 오히려 수석인 그녀의 지식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내 시선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을 뿐 다시 고개를 돌리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강의실에 들어온 교수는 흠칫 놀라며 시선이 곧장 내게로 못 박혔다.


“이런. 내 수업에. 안녕하······신가? 편입생이죠? 가련양?”

“네. 잘 부탁드립니다. 교수님.”

“흐흠. 말년에 또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되는군.”


난 웃으며 인사를 했지만 그는 노골적으로 긴장한 티를 내며 목을 가다듬었고 뻣뻣하게 아마 공작이란 지위가 학생으로 볼 수 없게 하는 거겠지.


진짜······가련 아가씨 MODE는 너무 사람들 눈에 띈다니까.


*


“아까 봤어?”

“진짜 무섭다······. 아. 트리나드? 공부나 열심히 하세요.”

“제국의 백작가를 상대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니, 공작가의 품격인가? 심지어 카트린느가 찍소리도 못하고 입을 닫았잖아.”

“전쟁인 것이야. 귀족 영애간의 알력다툼.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기사들도 사교계 알력 다툼에는 혀를 내두른다던데.”

“앙? 넌 가련 아가씨가 그런 추잡한 싸움을 하실 것 같냐? 애초에 파벌이라는 것도 카트린느 혼자서 악독하게 정치질을 해대는 거지 모든 귀족 영애들이 그런 짓을 하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백작가가 어떻게 감히 공작가가 하는 일에 반기를 들고 나서겠어.”

“그러고 보니 오늘 가련 아가씨가 유나 비비프 옆자리에 앉으셨다던데.”

“카트린느 눈 밖에 났던 학년 수석이라. 역시 아가씨께선 카트린느와는 다른 길을 가실 셈인가?”

“글쎄······. 어쩌면 본인만의 새로운 파벌을 만드려 하는 걸지도. 확실한 건 당분간 여자애들 눈치싸움 한번 살벌하겠다는 것 정도.”


그것이 학생들이 내린 가련과 카트린느의 첫 맞부딪침에 대한 인상이었다.


“수업이 너무 졸려······ZZZ”

“얘 자네······.”


정작 가련의 머릿속에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말이다.


*


<트라이아 제국의 수도 케림 인근 숲>


“으아아아······.”


젊은 상인이 엉덩이를 더러운 흙바닥에 붙인 채 질겁하며 마구 뒤로 물러났다


그는 재력을 과시하려는 듯 비싼 원단을 몸에 두르고 그의 옆에는 재물을 잔뜩 실은 마차가 줄지어 있었지만 지금 상황에선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짐덩어리일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상단원들 대부분이 오크의 거대한 곤봉에 짓뭉개져 즉사해버렸기 때문이다.


제국 중앙 길드 소속의 ‘드로와 상단’의 단장 ‘미구엘 드로와’에게 있어 지금 상황은 너무도 황당하고 억울하기 그지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 하필이면 나한테 이런 일이?!’

‘독립하고 나서의 첫 원정인데 아직 수도를 완전히 떠나지 못한 채 모든 꿈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건가?’

‘대체 왜 이렇게 마물이 많은 거야?! 도적떼에 대한 대비라면 완벽했는데 이제 와서 오크가 나타나 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잖아!!’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온갖 잡상 하지만 그런 것들도 눈앞의 괴물과 마주한 순간 전부 날아가 버렸다.


-크르르······.


인간의 2배 높이에 가로로는 4배에 달하는 거구를 가진 괴물.


오크는 소름이 끼치는 거친 울음소리를 흘리곤 그대로 곤봉을 높이 쳐들었다.


“아, 안 돼!!”


미구엘은 부하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고 눈을 질끈 감았다.


-붕~! 쾅!!!


단단한 박달나무 몽둥이가 흙바닥을 내리쳤고 분수처럼 튀어 오른 흙과 돌덩이라 산산이 부셔져 사방으로 비산했다.


인간이라면 스치기만 하더라도 사지가 박살이 날 법한 위력.


하지만


“어······라?”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목을 움츠렸던 미구엘은 뒤늦게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이상을 느끼며 서서히 눈을 떴다.


그는 죽지 않았을 뿐더러 사지도 모두 멀쩡히 붙어 있는 상태로 누군가의 두 팔 위에 사뿐히 안겨 있었다.


시야에 보이는 건······금발의 소년? 아직 앳됨이 남아있었지만 상쾌한 미남에 가까운 이목구비.


미구엘은 혹시 이게 죽은 뒤에 보인다는 천사라는 건가 의심했지만 소년은 그를 내려다보며 말을 걸어왔다.


“괜찮으세요?”

“누, 누구······십니까?”

“전 카르트 루드레일라고 합니다. 저쪽은 제 동생인 멜리아 루드레일라고 하고요.”

“저쪽······?”


그는 소년의 대답에 시선을 옮겼고 방금 전 오크의 몽둥이가 내려쳐진 피폭지로부터 자신이 10m 가까이 떨어져 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찰나의 순간에 여기까지······? 그런 일이 가당키나 한가?’


“카르트~!! 그 사람 무사해?”

“어! 괜찮아.”

“다행이다!”


조금 전까지 그가 기어 다니고 있던 위치에 선 금발의 소녀가 해맑게 손을 흔들며 웃었지만 미구엘은 그 밝은 기운에도 웃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바로 뒤에 아직 건재한 오크가 몽둥이를 다시 위로 치켜들고 내리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 이봐! 네 동생에게 말해! 빨리 도망치라고! ······아잇! 어이!! 아가씨! 뒤!! 뒤를 보라고!!”

“네~? 뭐라고요~?”

“뒤!”

“밥이요~?”


멜리아가 귀에 손을 붙이며 되물었다.


지금 상황에서 밥 이야기를 할 리가 없잖아!! 왜 저렇게 태평한 건데!!


미구엘은 확 짜증과 걱정이 동시에 머리에 오르는 것을 느끼며 다시금 소리치려 했지만 오크의 몽둥이는 그대로 휘둘러져 멜리아의 작은 몸을 후려쳤다.


-콰직!


‘젠장!’


미구엘은 다시 한 번 눈을 질끈 감았지만 박살이 난 것은 소녀가 아니었다.


-텅, 터덩!


두 동강이 난 몽둥이의 반쪽이 매우 빠르게 회전하면서 날아가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어······?”


미구엘이 손을 떨면서 멍청한 소리를 냈다.


인간도 단숨에 짓이겨 버리던 그 거대한 몽둥이가 얇은 나뭇가지처럼 맥없이 부러져버린 것이다. 반면 멜리아의 작은 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자리에 멀쩡하게 서 있었다.


‘그럴 리가······.’


미구엘은 눈앞에서 일어난 광경을 믿을 수 없어 눈을 비볐지만 그 비현실적인 광경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소녀는 손을 뻗어 숲의 나무 기둥을 잡더니 우지끈! 하고 그걸 그대로 뽑아냈고 오크가 몽둥이를 다루듯 그걸 그대로 휘둘러 오크의 복부를 가격했다.


-꾸에엑!?


그러자 오크의 거구가 마치 발에 차인 고무공처럼 찌그러졌고 공중을 날아가 저 멀리에 데굴데굴 굴렀다.


마치 돼지의 멱을 따는 듯한 불쾌한 비명소리가 지나가고 남아있는 것은 오크가 일으킨 옅은 흙먼지.


“뭐, 뭐야 대체······.”


미구엘은 비현실적인 광경에 정신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화들짝 놀라며 아직 소년에게 안겨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잠깐. 좀 내려줄래?!”

“아. 그렇죠. 네.”


미구엘의 부탁에 카르트는 그를 내려놓았고 흙으로 더럽혀진 상인은 허겁지겁 마차를 향해 달려가 그 안을 살폈다.


마차가 쓰러지긴 했지만 마물들의 목적은 오직 살육을 탐하는 것뿐이었기 때문에 손해는 없었다.


그리고 주변을 살펴보자 그의 상단을 공격해왔던 오크와 고블린들은 어느새 전부 피를 흘리며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마물들에게 공격당한 그의 상단원들을 분홍색의 점액이 감싸고 있었다.


“저건······?”

“치료 점액이에요. 발견하는 즉시 치료를 시작했어요. 모두가 완치될 수 있을지는 저도 확답을 드릴 수는 없지만.”


비대칭적인 금발을 하고 있는 소녀가 그에게 다가와 대답했다.


미구엘은 조심스럽게 자신보다 머리 두개는 작은 여린 소녀를 내려다봤다. 새하얀 피부에 큰 눈을 가진, 아직 떼묻은 세상의 추악함을 모를 법한 이 소녀가 정말 맨몸으로 오크를 박살낸 그 괴물과 정말 동일인이란 말인가?


“이, 이걸로 치료? 네가 한 거니?”

“정확히는 몰랑님이요······.”

“몰랑······?”


주변엔 금발의 남매를 제외하면 쓰러져있는 상단원들과 호위밖에 없는데?


미구엘은 소녀의 대답에 위화감을 느꼈지만 산뜻한 미소를 보곤 이상 묻지 않았다. 그것보다 수상한 점은 산더미처럼 많았으니까. 무엇보다도.


“너희들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지······?”


가장 근원적인 물음.


아직 앳된 티가 남아있는 소년소녀 단 둘이서 마물의 무리를 상처 없이 처리 해내다니. 소수로 그런 일이 가능한 건 마물을 상대하는 스페셜리스트인 모험가들 중에서도 불과 한줌에 정도에 그칠진데.


이 소년소녀는 모험가로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거물들이 던전도 아닌 제국 수도 인근 숲에서 모습을 드러낼 리가 없었다.


미구엘은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었지만 멜리아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물끄러미 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을 따라 미구엘 역시 고개를 돌렸는데.


“?! 이게 대체······.”


그는 무언가 끔찍한 광경이라도 본 것처럼 경악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곳에 펼쳐져 있던 건 끝없이 이어진 마물 시체들의 행렬


그들을 습격해 왔던 오크와 고블린 뿐만이 아니었다.


블랙 하운드, 킬러비, 얼터드 언데드 등. 지상에서 목격할 수 있는 마물이란 마물을 모조리 긁어 풀어놓은 듯한 수백단위의 마물들이 그곳에 죽어있었다. 퍼레이드라도 한 건가 싶은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 정도의 허황된 숫자.


‘마왕의 군세라도 다시 일어선 건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그 광경은 비정상적인 것으로 보였다. 잔뼈가 굵은 상인 미구엘의 시선에서 보더라도 말이다.


자세히 보니 그들이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도 전부 초고가로 보이는 수제품들 투성이였다. 첫 원정이기에 마음먹고 고급 정장을 맞춘 그의 옷차림이 빛바래 보일 정도의 물건들. 마물의 피와 진흙에 더럽혀져 있어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


그리고 그쯤에서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가지의 충격적인 가능성.


“너희들은······대체 누구지?”


미구엘은 반쯤 그러지 않기를 바라며 멜리아와 카르트에게 질문했지만 맬라어눈 품속에서 공작가의 문장을 꺼내 보이며 그의 기대를 저버렸다.


“저희는 제국의 수도에 계신 황제폐하를 뵈러 가는 길이었어요.”


카르트와 멜리아가 파날라를 떠나고 1달.


그들은 끊임없이 앞을 막아서는 마물들을 모조리 해치우며 앞으로 전진 했고 마침내 제국의 수도에 도달했다.


*


-딸랑~


“네. 어서오···”

“급한 일입니다!”


해가 거의 다 저문 오후의 퇴근시간. 길드의 문이 돌연 거칠게 열리더니 상인 미구엘이 허겁지겁 달려 들어와 쾅! 두 손을 책상 위에 내려치며 접수원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드로와 씨? 오늘 떠난 게······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마나양!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우리 상단의 물량을 전부 처분해줄 수 있겠나?”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이유는 묻지 말고! 급한 일이라서 그래! 그래서 가능 하겠나?”


접수원 마나는 상인의 입에서 나올 리가 없는 말에 순간 귀를 의심했지만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은 미구엘의 얼굴을 보고 더듬더듬 장부를 열었다.


“자, 잠시만요, 지금이라면······제값의 8할. 재고 상황이 여유로운 일부 품목에 한해선 본래 판매 대금의 6할 정도밖에 되지 않는 금액이 될텐데 그래도 괜찮으신가요?”

“상관없어.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드로와 씨. 당장 계약서를 작성해주세요.”


-팔락

-획!


미구엘은 상인에게 있어서 숨 쉬는 것만큼이나 흔하고 중요한 흥정조차 하지 않고 접수원이 내민 계약서를 낚아채 빠르게 펜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꼴에 의아한 주변 동료들이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이봐. 미구엘. 대체 왜 그러는 건데? 오늘 상단의 첫 원정이라고 잔뜩 들떠 있더니 반나절만에 거지꼴로 돌아와서······혹시 다 털린 건가?”

“아니. 그런 경우라면 물건을 되팔 수가 없었겠지.”

“그것도 그렇지······.”

“미안하네만 자네들과 대화는 여기서 멈추겠네. 악의는 없어. 다만 그럴 시간조차 없이 촉박할 뿐.”

“뭐?”


상인들은 그의 대답을 듯고 황당하단 듯 웃었지만 미구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고, 다급했다.


어쩌면 자신의 인생의 전환점.


용사의 출현은 곧 대륙 정세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란 징조. 그리고 그건 이제 무역업 같은 물러터진 사업으로 돈을 만지는 것은 이제 더는 불가능해질 것이란 의미기도 했다.


*


“그래 용사가. 파날라에서 말이지.”


멜리아와 카르트는 지나치리만큼 커다란 알현실에서 무릎을 꿇은 채로 식은땀을 흘리고 바싹바싹 마르는 입을 적시고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것은 자그마치 대륙의 8할 이상을 정벌하고 하나의 제국을 이룩해낸 희대의 폭군이자 명군.


타오르는 듯한 적발과 적안을 가진 황제 크림존 3세는 황좌에 비스듬히 앉아 턱을 괜 채로 두 소년 소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작가의말

앙냥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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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3) 22.03.28 45 0 15쪽
42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4) 22.03.08 32 2 21쪽
41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3) 22.03.07 33 1 18쪽
40 혼의 수복 (3) 22.03.06 36 1 21쪽
39 혼의 수복 (2) 22.03.05 45 2 19쪽
38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2) 22.03.04 40 2 17쪽
37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1) 22.03.03 42 1 19쪽
36 혼의 수복 (1) 22.03.02 41 2 20쪽
35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4) 22.03.01 46 2 18쪽
34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2) 22.02.27 46 2 16쪽
33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1) 22.02.26 55 2 17쪽
32 마왕의 혼 (5) 22.02.25 58 2 14쪽
31 마왕의 혼 (4) 22.02.24 54 2 15쪽
30 마왕의 혼 (3) 22.02.23 55 2 14쪽
29 마왕의 혼 (2) 22.02.22 63 2 17쪽
28 마왕의 혼 (1) +1 22.02.21 100 1 18쪽
27 황제의 명령 (2) 22.02.20 63 2 14쪽
» 황제의 명령 (1) 22.02.19 68 2 16쪽
25 에렌델의 탑 (3) 22.02.18 68 2 19쪽
24 에렌델의 탑 (2) 22.02.17 70 2 18쪽
23 에렌델의 탑 (1) 22.02.16 73 2 21쪽
22 정령과 용사와 마왕 (6) 22.02.15 79 2 19쪽
21 정령과 용사와 마왕 (5) 22.02.14 76 1 16쪽
20 정령과 용사와 마왕 (4) 22.02.13 97 1 17쪽
19 정령과 용사와 마왕 (3) 22.02.12 94 2 19쪽
18 정령과 용사와 마왕 (2) 22.02.11 99 1 18쪽
17 정령과 용사와 마왕 (1) 22.02.10 114 2 15쪽
16 세계 제일의 미녀 (5) 22.02.09 128 2 14쪽
15 세계 제일의 미녀 (4) 22.02.08 123 2 14쪽
14 세계 제일의 미녀 (3) 22.02.07 113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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