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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상어 님의 서재입니다.

여장공작은 사교계의 여왕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귀신상어
작품등록일 :
2022.01.29 12:54
최근연재일 :
2022.03.28 18:20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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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글자수 :
329,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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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1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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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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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9쪽

정령과 용사와 마왕 (3)

DUMMY

“뮤렌.”

“안돼요.”

“아직 아무 말도 안했거든?!”

“도련님이 저를 그렇게 부를 때는 항상 무리한 부탁을 하신다는 걸 전 이미 알고 있거든요.”


어머니가 방을 떠나시고 나서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다짜고짜 완고하게 고개를 휙휙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말도 안 듣고 거절 하냐.


······귀신이네.


이제 우리가 함께한 시간도 10년이 넘었다는 거겠지.


하지만 그렇기에 나도 똑같이 알고 있다. 내가 계속 억지를 부린다면 결국 그녀가 내 부탁을 들어줄 거란 사실을.


“하아······.”


난 입맛을 다시며 침대 위에 앉았고 한숨을 내쉬며 뒷목을 긁었다.


“상황을 알고 싶어서 그래. 난 아무것도 몰랐는데 오늘 갑자기 오셔선 네가 위험하니 수도원 에 집어넣어 넣겠다 말씀하시면 내가 납득을 할 수 있겠어? 버림받는 건 아닐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에렌델의 탑은 수도원 같은 종교 시설이 아니라 마법 대학입니다만? 그것도 대륙의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가지 못해 안달이 나 있는 최고위급 시설. 귀족뿐만 아니라 왕족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유력자 자녀들도 번번이 그 문을 두드리다 좌절을 맛보는 곳이라고요.”

“기숙학교면 그게 그거지~”

“매우 다르거든요!”


뮤렌이 허리에 손을 얹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도련님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저도 공작 각하와 부인의 말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최근 제국의 치안은 눈에 띄게 불안정해졌고 귀족들에 대한 반감도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요. 파날라의 경우엔 경제적인 기초가 단단해서 다른 영지에 비해 걱정이 덜한 편이지만 민심이란 언제 돌아설지 모르기 때문에 민심인 법. 만약 농민들이 들고 일어선다면 가장 먼저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은 누가 될까요?”

“그래. 알고 있어 공작인 아버지겠지. 그러니 내가 지켜 드려야 하잖아?”


아버지께서는 마법 이론에 정통한 학자이자 뛰어난 마법사셨지만 동시에 순발력이 요구되는 소규모 전투 적성은 비교적 부족하다는 것은 이미 눈치 챘다.


무엇보다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 계기 역시 전장에서 고립된 아버지가 폭격 마법을 시전 할 때까지 지켜주셨던 것이라 들었고.


하지만 뮤렌은 내 호언장담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만약 그렇게 된다면 가장 먼저 노려지는 건 공작가의 정통이면서도 10살 때 귀족 사회를 매료시켰다 소문이 자자한 공작가의 영애가 될 것입니다. 아름다움을 욕정으로 더럽히는 것은 배우지 못한 남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일이니까요.”

“무슨 기분 나쁜 발언을······.”

“네. 더러운 일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 만일의 사태에서부터 조금이라도 도련님을 떨어뜨려놓기 위한 선택인 겁니다.”


진심으로 말하는 건가?


난 뮤렌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잖아······? 설사 내게 달려든다 해도 내가 전부 해치워버릴 수 있어.”

“도련님께서 손을 더럽히는 불상사가 일어나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아아!! 정말!!”


어느 쪽을 골라도 말이 안 통하잖아!!


난 이제 논리로 뮤렌을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도 없는 법. 난 그녀의 눈치를 힐끔 보고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우울하게 목소리 톤을 내렸다.


“그래 알겠어. 난 스스로 선택할 자격이 없는 허수아비라는 거지?”

“도련님······. 그게 아닌 거 아시잖아요······.”

“뭐가 아니란 거야? 태어나서 내가 자유롭게 있을 수 있었던 건 기껏해야 10살 축연이 있기 1달 남짓한 시간 정도밖에 없었어. 아니, 외출은 고사하고 저택 내부에서도 같잖은 여장이나 하고 고상한 아가씨 흉내나 내고 있어야 했다고. 전부 내가 아닌 가문을 위해서. 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지? 날 인간이 아니라 도구로 생각하고 있는 거야.”

“도, 도련님 저는!!”


뮤렌이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난 두 손으로 울듯 눈을 가렸다.


“내 주변에 내 편은 한명도 없구나······흐윽!”


물론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다년간 아가씨 연기로 다져진 내 내공은 애송이 하나 속이기엔 충분한 것이었다.


뮤렌의 표정은 점차 흐려졌고.


“흐아아앙!!”

“정말······.”


비장의 한방. 내가 무너지듯 흐느끼자 결국 그녀는 마지못해 내 부탁을 수락했다.


“제,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선에서만 이예요!!”

“야호!!”

“앗?! 진짜!! 또 속였어요?!”


그녀는 내가 손을 때고 만세를 하자 따지고 들었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못 말리겠다는 듯 쓰게 웃으며 날 바라볼 뿐이었다.


“걱정 마. 나도 뮤렌이 아버지나 어머니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으니까. 난 그저 친구와 헤어지기 전 인사를 하고 싶은 것뿐이야.”


*


“믿을 수가 없어. 카르트라면 몰라도 멜리아까지. 용사님이 되다니.”

“뭐어? 다므넬 말 다했어?”

“아니······그렇잖아.”


멜리아가 장난스럽게 따지고 들자 다므넬은 기어가는 목소리로 변명을 할 뿐 그 의견을 꺾지는 않았다.


루드레일 가의 남매가 정령에게 선택을 받았다는 낭보는 그날이 끝나기도 전에 온 마을에 퍼졌지만 그간 그들과 친하게 지내온 친구들에게 그건 정말 싱숭생숭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나 서로 경쟁하듯 실력을 갈고닦으며 함께 제국의 모병에 지원하기로 했던 다므넬과 유진에게는 더더욱.


“평소 같으면 다므넬에게 한마디 하겠지만······솔직히 너무 동화같은 이야기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너희 둘은 마을을 떠나는 거야?”


늘 침착하던 유진도 이번만큼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는지 재차 물어왔다.


“용사라고는 해도 마왕 같은 건 이미 죽은 지 1000년도 더 됐잖아? 그럼 굳이 여행을 떠날 필요는 없는 것 아냐······?”

-그렇지 않다.

“!?”


유진의 설득 아닌 설득에 반박이 끼어들었다.


그런데 그건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의 목소리.


깜짝 놀란 다므넬과 유진은 뒤로 물러났고 목소리의 근원인 남자를 경계했다.


그의 몸 주변에는 파지직! 스파크가 불규칙하게 튀고 있었고 노란빛의 형상은 반투명한 유체에 가까워 보였다.


-난 키닛츠, 카르트 루드레일과 계약한 정령이지.


정령······? 다므넬과 유진의 시선이 카르트에게 휙 돌아갔다가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은 다시 키닛츠를 보았다.


-정령검은 언제나 인간 역사의 변곡점에 출현해 위대한 흐름에게 인류가 버림받지 않도록 수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

“위대한 흐름에게 버림받는 다고요······?”

-그래. 위대한 흐름은 이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지성체를 동등하게 대하지. 너희들 인류를 사랑하고 보살피는 것은 위대한 흐름이 아닌 우리들의 아버지 정령왕이시다.


정령왕이란 이름은 천년 전 마왕과 용사의 신화를 다룬 동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이름. 그것이 정령의 입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자 아이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키닛츠에게 질문했다.


“그럼 지금 정령왕님은 용사가 뭐랑 싸우길 원하시는 데요?”

-글쎄. 우리 또한 아버지의 의중을 알지 못한다.

“그런 무책임한······!”

“다므넬!”


정작 중요한 부분에선 맥이 빠지는 키닛츠의 대답에 다므넬이 발끈했지만 다행히 유진이 그를 말렸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용사의 선정은 필연적이며 동시에 거절할 수 없는 영광이다. 말 그대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존재가 된 것이니까. 너희들이 신처럼 숭배해 마지않는 그 황제라 하더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는 건······.”

“맞아. 어떻게든 용사로서의 자격을 얻기만 하면 기사. 아니 어쩌면 그 이상 가는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거야.”


카르트의 말에 모두의 생각이 하나로 모여졌다.


“““그럼 유유를 찾을 수 있어!!”””

“가련 아가씨를 만날 수도 있겠네!!”


잠깐 침묵.


“다므넬······.”


혼자서만 어긋난 대답을 해 불협화음을 일으킨 덩치 큰 소년에게로 모두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아, 아니! 물론 나도 유유를 찾고 싶지!! 하지만 그건 먼 일이잖아 그러니까 바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거지.”


추한 변명.


하지만 다므넬이 원래 그런 녀석이지 하는 인식이 팽배했던 탓인지 그들은 이상 따지지 않았고 카르트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곧 정식으로 출정식이 있을 테니. 그분도 뵐 수 있겠지.”


가련과의 재회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


물론 멜리아는 말없이 뚱한 표정을 지었지만.


카르트는 주먹을 꽉 쥐며 의욕에 가득 차 말했다.


“파날라를 떠나면 우리는 곧장 황궁으로 향하게 될 거고. 황제 폐하를 만나게 될 거야. 그리고 용사로서 인정받게 된다면 유유를 찾아볼 수 있을 거야.”


*


-빰빠밤~


웅장한 관악대의 화음이 터져 나오고 뒤이어 꽃가루가 하늘에서 나풀나풀 내렸다.


용사의 출정식을 축복하기 위해 영주인 공작이 주최한 연회가 시작된 것이다.


각지의 귀족들이 모여들었던 5년 전의 연회와는 달리 이번 축제는 그야말로 영민들을 위한 것.


아이들은 최고급으로 갖춰진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고 마을의 농민들은 그들을 보며 저마다의 감상을 뱉었다.


“아웬 댁네 아이들이 설마 용사가 될 줄이야.”

“어렸을 때부터 워낙 비범하긴 했지만······.”

“아직 10대잖아!”

“거기에 단 둘뿐이 여정을 떠나야 하다니. 마물이나 도적떼에게 습격당해 죽는 건 아닌지 걱정이군.”

“멍청하긴! 난 소싯적에 용사님을 가까이서 본 적이 있어. 도적떼니 마물이니 하는 것들과 비할 바가 아니야! 그분들은 정예병 수십은 거뜬히 상대하시면서도 여유가 있었으니까!”

“또 그놈의 전쟁통 무용담이냐? 용사님이 네 옆에 왜 있어?”

“진짜라니까!!”


용사라는 전설적인 존재가 자신들과 접점이 생기자 흥분한 영민들은 수근수근 목소리를 높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도 계속해서 떠들어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시선은 두 용사에게서 새로이 등장한 누군가에게로 옮겨갔다.


그건 영지를 떠나는 용사를 격려하고 배웅하기 위해 몸소 영민들 앞에 나선 공작과 공작부인······은 아니고. 그들의 옆에 선 단 하나뿐인 후계.


공작가의 영애 가련 레시오스코프가 성숙한 모습으로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우오오오······.”


그녀가 평민들 사이를 걸어 지나치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탄식과도 비슷한 감탄사를 흘렸다.


아름답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알게 모르게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자랑삼아 떠들어 대기까지 한 그들이었지만 이렇게까지 가까이서 영애의 모습을 바라볼 기회가 있을 리가 만무했으니까.


그녀의 외형은 이제 5년 전의 앳된 티를 완전히 벗었고 성인 남자라 할지라도 숨을 멎은 채로 그녀를 바라보며 가슴속 근질거리는 욕망을 느끼게 할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후훗.”

“와아아아아!!!!”


가련이 미소를 흘리며 살랑살랑 손을 흔들자 일제히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런 놀라운 광경에 아버지인 가트 레시오스코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런이런······. 가련이 딱 싫어하는 상황이로군. 5년 전 축연 때 일을 아직까지 불평하는데. 또 새로운 레퍼토리가 생겼어.”

“본인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이건 축복이에요. 사람들을 매혹하는 재능. 아름다운 귀족 여성이 얼마나 살기 편한데.”

“애초에 가련은 남자인데다 그건 당신 입장에서나······하긴. 당신 15살 때를 생각하면 가관이었지. 어울리지도 않는 색조 화장을 덕지덕지 바르고 지나치게 큰 힐을 신어서 배꼽을 잡고 얼마나 웃었는지···”

“이 이가 정말!”


-꽈악!


“으흠!”


아내의 꼬집음에 가트의 입가가 뒤틀렸지만 영민들 앞에서의 체면이 있었던 그는 옅은 헛기침만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공작의 가계는 머지않아 쌍둥이 앞에 도달했다.


아직 완전무장이 익숙하지 않은지 어색한 자세로 몸을 쭈뼛대고 있는 그들.


“카르트 루드레일 그리고 멜리아 루드레일.”

“네, 네!”


눈앞에 있는 것은 황제를 제외한다면 사실상 제국 최강의 권력자. 그들은 답지 않게 말까지 더듬으며 고개를 들었고 공작과 눈을 마주쳤다.


짧고 깔끔하게 수염을 기른 그의 눈은 생각 이상으로 맑았다. 어릴 적 그들이 상상했던 악마와 같았던 끔찍한 모습과는 공통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멀끔한 모습.


“아직 소년 소녀라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마주하니 마음이 무겁구나. 우리가 만들어낸 문제를 벌써 너희들에게로 떠넘겨야 한다니. 시대의 무책임함에 책임을 느낀다.”

“아닙니다.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무고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을 힘을 이리도 일찍 얻게 된 것을 영광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 고맙구나······. 그리고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내 딸 가련과도 교류를 나눴으면 한다만.”

“물론입니다.”


카르트는 공작과의 문답에 아주 예의바르고 침착하게 응하곤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저희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이거든요.’


카르트는 저도 모르게 그런 말마저 뱉을 뻔했다.


그리고 천천히 가련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꿀꺽


5년만의 재회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두근거리는 것이었다.


그때와는 다르게 머리를 두껍게 땋아 앞으로 내린 것도, 젖살이 빠진 탓인지 들어난 갸름한 턱 선이 드러난 것도. 전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분명 카르트의 기억 속 가련의 모습은 한없이 미화되어 있었지만 놀랍게도 지금의 가련은 환상 속의 그녀보다도 훨씬 더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현실이 늘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것처럼 말이다.


“······어떻게 인사를 드리면 좋을까요? 역시 손등에···”

“악수.”


카르트는 살짝 볼을 붉히면서 은근슬쩍 욕망을 내비쳤지만 가련은 그의 말을 잘라내곤 싱긋 웃었다.


“악수면 됩니다.”

“아, 그, 그렇군요.”


카르트도 이제 한창의 사내인지라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기서 따지고 드는 게 더 사심이 보여 추한 꼴이 될 거라는 걸 알았기에 그 이상 토를 달지 못했다.


둘은 매우 담백하게 악수를 했고 카르트는 가련이 하얀 장갑을 끼고 있다는 것에 아쉬워했다.


그리고 가련은 시선을 돌려 묘하게 볼이 부풀어 있는 것 같은 금발의 미소녀에게 손짓했다.


“가까이 다가오세요.”

“알겠······습니다.”

“좀 더요.”

“이렇게! 말입니까!”

“네~”


가련이 나긋나긋한 말투로 웃으며 이야기 하고 있었던 것에 반해 멜리아는 이를 악다물곤 목소리를 낮춘 채 발악하듯 꾸역꾸역 대답했다.


‘저 머리는 아직 하고 있네. 마음에 들었나보다.’


그는 반장반단의 머리를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앳된 티가 사라지고 목소리도 여성스러운 것으로 변했지만 여전히 그녀가 가련의 기억 속 멜리아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지표가 되어주는 것 같아서.


“태도를 보아하니 아직도 유유에 관해서 잊지 않은 것 같네요.”

“예······. 유감이지만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답니다. 아쉬우신가요?”

“아뇨. 안심했습니다.”

“······?”


자신이 그렇듯, 가련 역시 자신을 눈엣가시라 여기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던 멜리아는 눈가를 찌푸렸다. 하지만 가련은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귓가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성문 밖으로 이어진 오솔길 옆, 두 번째 나무 밑동에서 당신들을 만나보고 싶어 하는 친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


-짹짹짹


출정식이 끝나고. 영지 파날라와 무법 지대를 가르는 성문을 통과하고 나서 10분이 지났다.


어느새 카르트와 멜리아의 주변에 인기척이란 것은 살펴볼 수가 없게 되었고 들리는 것이라곤 오로지 벌래와 동물들의 울음소리들뿐이었다. 농가의 아이들로 자랐다지만 그렇게까지 날것 그대로인 자연은 처음.


하지만 그들은 그 새로운 풍경을 감상할 새도 없이 오솔길을 따라 자라나있는 나무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정말이야? 두 번째 나무 밑동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이야기 했다고? 대체 누가?”


카르트가 묻자 멜리아는 성질을 내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몰라. 되물으려 해도 인사만 해놓고 훌렁 올라가 버렸잖아.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제멋대로인 여자라니까.”

“귀족인데다 그렇게나 예쁘니까. 어쩔 수 없겠지.”

“카르트! 그러고 보니 너 이번에도 헤벌레 해선 정신 못 차렸지? 용사로 선택받은 남자가 그런 태도라니 말이 돼?”


멜리아가 드물게 역정을 내며 오빠에게 따지고 들었다.


사실 그건 순수한 칭찬은 아니었지만 흥분한 여동생을 놀려주고 싶었던 카르트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동화속의 기사는 아름다운 공주를 지키기 위해 용을 물리치는 법이야.”

“으갸!!!”


나이를 먹으니 능청만 늘어난 카르트를 당해내지 못한 멜리아는 흙바닥 위에 발을 굴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은 저기 멀리서 나무 밑동 위에 누군가가 걸터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대화를 멈췄다.


후드를 뒤집어 쓴 탓에 실루엣뿐이 보이지 않아 정체를 알기 힘든 누군가.


“카르트 저건···”

“그래. 아무래도 저 사람이 우리를 만나고 싶다는 그 누군가인 모양인데?”


멜리아와 카르트는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은 채로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러니까 후드 안쪽에 보이는 얼굴이 드러날수록 잔뜩 찌푸려져 있던 그들의 얼굴은 점차 놀라운 환희로 바뀌어 갔다.


“설마······.”


두 남매는 어느새 저희도 모르게 달리고 있었고 5년 만에 그와 당황스런 재회를 하게 되었다.


“아······안녕?”


어릴 적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소년이 장성하게 된다면 아마 이러한 얼굴이지 않을까 하고 상상하곤 했던 그 모습 그대로인 소년이 후드를 푹 뒤집어 쓴 채로 어정쩡하게 손을 들어보였다.


“정말로······?”


멜리아와 카르트는 의심을 입에 담으면서도 이미 잔뜩 올라간 입 꼬리를 억제하지 않았고 그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바로 그때.


-멜리아. 전투의 준비를.

-전투태세를 취해라. 카르트.

“!?”


그들과 계약한 정령들이 강제로 전투태세를 강요하기 시작했다.


쌍둥이는 이게 대체 무슨 농담인가 싶었지만 멋대로 정령들이 불어넣은 마력이 체내에서 순환하기 시작한 것을 느끼곤 당황해 소리쳤다.


“기다려!! 저건 내 친구라고!!”


아직 직접 통성명을 하진 않았지만 그들은 이미 어릴 적 헤어졌던 친구 유유임이 틀림없다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아마 착각일 거다! 정령으로서의 감각이 전에 없을 정도로 격렬하게 뒤틀리고 있으니까. 이전에도 딱 한번 지금과 같은 적이 있었지.

-멜리아. 틀림없어요. 저건 이 세계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악의 한 종류입니다.

두 정령은 계약자가 그토록 반기는 재회의 대상에게 명백히 적개심을 드러내며 소리쳤다.


-놈은 천 년 전 인류에게 적의를 드러냈던 마왕이란 녀석과 완전히 같은 질감의 마나를 두르고 있어!


작가의말

ㄴ(ㆍㅇㆍ)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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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3) 22.03.07 33 1 18쪽
40 혼의 수복 (3) 22.03.06 35 1 21쪽
39 혼의 수복 (2) 22.03.05 45 2 19쪽
38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2) 22.03.04 40 2 17쪽
37 사이비 종교 라마트라 (1) 22.03.03 42 1 19쪽
36 혼의 수복 (1) 22.03.02 41 2 20쪽
35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4) 22.03.01 46 2 18쪽
34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2) 22.02.27 46 2 16쪽
33 모험가들의 도시 뮤스턴 (1) 22.02.26 55 2 17쪽
32 마왕의 혼 (5) 22.02.25 58 2 14쪽
31 마왕의 혼 (4) 22.02.24 54 2 15쪽
30 마왕의 혼 (3) 22.02.23 55 2 14쪽
29 마왕의 혼 (2) 22.02.22 63 2 17쪽
28 마왕의 혼 (1) +1 22.02.21 100 1 18쪽
27 황제의 명령 (2) 22.02.20 63 2 14쪽
26 황제의 명령 (1) 22.02.19 67 2 16쪽
25 에렌델의 탑 (3) 22.02.18 68 2 19쪽
24 에렌델의 탑 (2) 22.02.17 70 2 18쪽
23 에렌델의 탑 (1) 22.02.16 73 2 21쪽
22 정령과 용사와 마왕 (6) 22.02.15 79 2 19쪽
21 정령과 용사와 마왕 (5) 22.02.14 75 1 16쪽
20 정령과 용사와 마왕 (4) 22.02.13 97 1 17쪽
» 정령과 용사와 마왕 (3) 22.02.12 94 2 19쪽
18 정령과 용사와 마왕 (2) 22.02.11 99 1 18쪽
17 정령과 용사와 마왕 (1) 22.02.10 114 2 15쪽
16 세계 제일의 미녀 (5) 22.02.09 128 2 14쪽
15 세계 제일의 미녀 (4) 22.02.08 123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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