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야 하는 사람들
13년 쯤 됐나.
긴 훈련을 마친 어느날, 아내와 연락이 안돼서 조금 급하게 집으로 향했다.
포근한 아기 냄새와 아내의 따듯한 미소를 떠올리며 현관문을 열었는데.
내가 마주한건 비릿한 피냄새와 차갑게 식은 아내의 시신이었다.
***
그 이후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경찰들이 내 집을 헤집고, 형사 하나가 내게 뭐라고 떠들어댔다.
"범인은 중, 고등학생 무리 6명 입니다. 노래방 갈 돈이 없다고 아파트를 돌면서 여기저기 벨을 누르다가, 문 열어준 집에 쳐들어가서 돈을 뺏을 생각으로..."
놈들은 무려 6시간이나 내 집에 있으면서 내 아내를 때리고, 한살짜리 내 딸의 입에 청테이프를 붙인 다음 이불 밑에 깔아놨단다.
우는게 시끄럽다고.
우리 애기 감기 때문에 코가 막혀서 숨을 못쉬었을텐데.
그래서 죽었나보다.
내 아내는 갈비뼈와 광대, 코뼈가 부러지고 장이 터져서 죽었다.
"..."
처음엔 실감이 안났다. 그래서 장례를 치를 때까진 영혼 없는 인형처럼 멍하니 움직였다.
기억도 안나고.
아, 범인들 부모 몇몇이 와서 난리를 친건 기억이 난다.
"아이고! 우리 아들 앞날이 창창한데 어째! 이봐요, 아저씨. 내가 대신 미안해. 응? 정말 미안해요. 그래도 이미 죽은 사람은 어쩔 수 없는건데 산 사람 인생까지 망칠 필요가 있어요? 마누라랑 자식이야 다시 만들면 되잖아. 제발 법원에 선처라도 요청해줘요. 죽이려고 한 게 아니라니까! 진짜 실수라잖아!!!"
그게 현실일리는 없고, 내가 쓰러진 사이 꿈을 꿨던 것 같다.
집에 돌아온 후 이틀은 내리 잠만 잤다.
중간 중간 깼지만 다시 눈을 꼭 감았다.
조금만 더 자고 일어나면 아내와 아기가 돌아와 있을거라고 굳게 믿었다.
필사적으로 자고, 또 자고...
그렇게 긴 잠을 자고 깼는데, 아내와 딸이 아직도 없다.
항상 요란하던 동요 소리와 따듯한 온기, 아내의 기척이 없다.
그 정적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3일을 보냈다.
아내가 있던 안방, 주방, 거실, 화장실을 서성였다.
아기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 수십개를 만지작거리며 혼자 동요를 부르고 율동을 했다.
그러다 아내가 쓰던 물건들과 옷가지 수백개를 하나하나 움켜 쥐었다.
가족과의 추억과 기억 수천개를 떠올리다 보니.
드디어 아내와 딸이 돌아왔다.
"오빠! 점시 뭐 먹을거야?"
"지현아, 미안해... 많이 무서웠지. 끄흐흑... 많이 아팠지. 내가, 내가 그날 내가 있었으면... 하영아... 끅... 끅... 아빠가 너무 보고 싶었어. 이제 걱정 하지마. 하영이 내 새끼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압빠아. 압빠."
"응 우리 아기! 아빠 안울어. 히히! 아이 좋아~ 아빠 여깄지~"
드디어 다시 행복해졌다.
매일 아내와 함께 집안 일을 하고, 맛있는 요리를 해먹고, 배달도 시켜먹고, 좋은 곳 나들이도 정말 많이 다녔다.
딸의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키고, 분유를 타서 먹이고 잠을 재웠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암흑이 찾아왔다.
세상 모든게 보이지도,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완전한 고립.
그래도 내 뱃속에서 끓어 오르는 천불 덕분에 어둡지 않았다.
'왜?'
내가 왜 내 아내랑 아기를 못봐야 되는데?
왜 내 가족이 그렇게 비참하게 맞아 죽었을까?
범인들의 얼굴을 떠올리자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호흡을 들이키면 산소 대신 서슬퍼런 면도날들이 코와 입으로 잔뜩 밀려 들었다.
"후읍! 후읍!!"
수백개의 면도날에 난도질 당한 뱃속엔 피가 잔뜩 고이다가 썩어서 지독한 증오로 응축됐다.
그 증오가 숨을 쉴 때 마다 뿜어져서 집안에 가득 차니 점점 호흡이 편해졌다.
'그새끼들을... 다...'
'다 납치를 해서 고문을 할까? 아니면 그놈들 집에서... 그럼 부모들도 죽여야 되겠다. 한놈만 먼저 죽으면 경찰이 날 찾을테니까 한번에 다 잡으려면 청부업자를... 돈이 얼마나 필요하지?'
'아니야, 죽이면 안돼. 그건 너무 금방 끝나. 그런것 보다 좀 더...'
그렇게 수백, 수천가지 복수의 방법과 경우의 수를 상상하던 어느날.
오후쯤이었나. 갑작스레 벨소리가 울렸다.
띵동- 띵동-
"..."
띵동- 띵동-
알아서 가겠지 싶어 그냥 있었는데 계속 벨을 눌러댄다.
띵동- 띵동-
그래도 움직이지 않았다. 애초에 몸을 일으킬 기력도, 체력도 없다.
덜컥. 위이잉-
"??"
갑자기 들리는 드릴 소리에 소름이 돋아서 벌떡 일어섰다.
위이이잉- 덜컥, 찰칵.
현관문은 금세 열렸고, 누군가 들어서더니 날 위아래로 훑어봤다.
"이럴 줄 알았다."
김정훈은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 저으며 내게 다가섰다.
"뭡니까."
"니 처남. 이지석씨 사망했다."
"!!!"
죽은 아내의 동생이다. 같은 보육원에서 자라 동생이나 다름 없던 놈.
"누나랑 조카 만나러 간다는 유서 한장 남겼더라."
"..."
휘청.
다리에 힘이 완전히 풀려서 힘없이 무너졌다.
그래. 그놈에겐 누나가 엄마였고, 친구였으니 견디기 어려웠을거다.
지석이는 자살을 한게 아니다.
그렇게 비참하게 죽은 누나를 위해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 현실이 지석이를 죽인거다.
"오늘 재판결과 나왔어. 범인들이 미성년이며 초범인 점, 진심으로 반성하고 뉘우치는 점, 최종적으로 범행의 일체에서 피해자를 사망케 할 의도는 없었던 점 등을 고려하여 주범인 김석인에게는 징역 8년을, 나머지 피고 5인에게는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다. 땅땅땅."
"..."
"씨발 새끼. 그 판사도 개새끼야."
욕짓거리를 하며 담뱃불을 붙이는 김정훈을 보며 또 잠시 정신이 나갔던 것 같다.
이미 지옥이라고 생각했는데, 더 깊은 심연이 있었구나.
"...8년? 나는 평생 지현이랑 우리 애기를 못보는데 겨우 8년?"
나는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이젠 두번 다시 볼 수 없는데...
"지현이랑 하영이는 아무 잘못도 안했는데 왜... 우리 정말 행복했는데... 너무 보고 싶어. 아니야. 아니야. 보는게 안되면 제발 목소리라도 딱 한번만... 끄으으으윽... 끄윽...”
김정훈은 그런 날 말 없이 한참을 다독여줬다.
그렇게 한참을 미친놈처럼 울다가 김정훈에게 손을 내밀었다.
"담배 하나만 주십쇼."
김정훈이 담배와 라이터를 건내며 물었다.
"너 얼굴 많이 상했는데 안먹은지 얼마나 됐어? 잠은?"
"..."
"물도 안 먹은지 꽤 됐지? 위험하니까 일단 구급차 부른다."
"...됐습니다."
치익-
담배 한대를 다 태워갈 쯤에 물었다.
"왜 왔습니까."
"뭘 왜야. 너 괜찮나 보러 왔지."
"..."
"혁도야."
"왜요."
김정훈은 어려운 표정으로 어렵게 입을 뗐다.
"자력구제 해라."
"..."
"위에서도 허락 받았어. 실장이 그러더라. 그 새끼들 하나도 살려 두지 말라고."
"...존나 고맙네."
"우리 부대 애들도 장비, 정보, 인력 지원 할거야. 다들 난리났어. 일 마치면 상하이로 가고. 거기 너 다닐만한 회사도 수배해놨어. 나랑 친한 놈이 꽤 높은 자리 있으니까 몇년만 있다가..."
혼자 주저리 주저리 떠드는 김정훈을 가만히 보다가 물었다.
"근데 옷이 생소하네요. 우리 지석이 장례식 갑니까?"
"어? 아, 이거."
자기가 입은 검은 양복을 두리번 거린 김정훈이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나 국정원 복귀 했다."
"...잘됐네요."
"혁도야,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고 나랑 같이 하자. 니 마누라랑 딸 위해서."
"그러면 팀장님도 죽어요."
"뭐?"
"뭔 씨발 저준지 뭔지. 나랑 있으면 다 뒤지잖아."
"나는 그런거 안믿는데. 진짜라고 쳐도 나는 어떻게 못할걸? 너랑 벌써 6년인데 나 아직 멀쩡 하잖아."
"그러다 죽고 나서 내 탓하지 말고 그냥 부탁 하나만 들어주십쇼."
"뭔데?"
"1년 마다 그 범인 놈들 신상 좀 주세요. 어디에 살고 어디에 취직하고 뭐 그런거."
"..."
"나중엔 결혼이나 애 낳았는지 등등도. 만나지도 말고, 그냥 우편으로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혁도야, 걔네 죽이는건 나랑 같이 해. 상하이에 몇년만 있다가 다시 와. 우리 회사에 자리 만들어 줄게."
"안 죽여요."
"뭐?"
힘 없이 주저앉은 꼴이나마 눈에 힘을 꽉 주고 김정훈을 노려봤다.
"안죽인다고. 내가 죽어도 그 새끼들은 절대 안건드릴거야."
"..."
김정훈은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진심이다.
범인들은 절대 죽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냥 기다릴 생각이다.
그 년놈들이 모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
그래서 그것들의 배우자와 아이를 죽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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