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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막심! 절망용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오렌지F
작품등록일 :
2021.05.26 01:43
최근연재일 :
2021.08.12 18:0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590
추천수 :
11
글자수 :
166,510

작성
21.06.1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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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24.

DUMMY

“커, 헉.”


이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팔다리에서 힘이 사라지고 전신을 맴돌던 무진장에 가까운 힘의 격류 또한 동시에 흐름을 멈췄다. 이에 극심한 탈력감이 용사를 덮쳤고, 갑작스러운 몸의 변화에 견디지 못해 달리다 말고 헛구역질하며 지면에 고꾸라졌다.


“우웁. 가, 갑자기, 왜.......”


용사는 느닷없이 막대한 힘이 소실된 사실에 극도의 혼란을 느껴 곧바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땅바닥을 허우적댔지만, 아무리 힘을 짜내려 해도 전과 같은 힘은 나오지 않았고 잃어버린 것이 돌아오는 일도 없었다.


그 상태로 잠시간 끙끙대던 용사는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회복되지 않는 탈력감에 그제야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끔찍한 현실을 마주했다.


‘설마 에테르에 문제가.....?’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덜컥 겁이 났다.


만약 정말로 에테르에 이상이 생겼다면, 그래서 더는 용사로서의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면 자신은 더는 용사가 아닌 무력하고 나약한 지구인일 뿐 그 무엇도 아니었다.


지금은 늑대인간으로 변한 인형도 용사 앞에서야 잡몹 취급당하지, 상대가 일반인이었다면 만화 한 컷 분량도 쓰지 않고 단칼에 썰어버릴 만큼의 힘을 자랑하는 절대강자다.


만화 한 컷이 뭔가. 만약 이 상태가 해결되지 않고 지속된다면 설명글 한줄 배당받지 못하고 죽임당하게 되는 것은 확정적이었다.


“말도 안 돼.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어. 이게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말하려던 용사는 가까운 곳에서 느껴지는 소름 끼치는 힘의 유동을 느끼고는 저도 모르게 움찔 몸을 떨었다. 그리고 천천히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을 드러낸 눈동자가 그곳을 향했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짐승의 핏빛 눈동자가 지면을 구르는 그의 모습을 비웃듯이 잔인한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마치 다잡은 먹잇감을 어디부터 먹을까 고민하는 것처럼 길쭉한 입을 찢더니 입맛을 다시듯 날카로운 이빨을 찐득한 침이 흐르는 혀로 훑기까지 하는 놈의 모습은 갑자기 에테르에 불량이 생겨버린 용사에겐 호러 그 자체였다.


‘일어나야 해.’


일어나야 한다. 이러고 있으면 꼼짝없이 당한다.


놈이 다가오는 그때까지도 극심한 탈력감에 시달리던 용사는 오로지 일어나지 않으면 죽는다는 위기감 하나로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놈이 바로 공격해오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공격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는 모습이 오히려 불안을 가중시켜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당장 뭐라도 하지 않으면 저 커다란 이빨이 당장이라도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만 같아 두려웠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살기로 번들거리는 핏빛 눈동자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이상 이 두려움이 사라질 일은 없었다.


“크윽. 으아아아악!”


결국 내면에서 솟아나는 두려움을 참지 못한 용사는 고함을 지르며 무작정 놈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혹 힘이 사라진 게 일시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며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내지른 공격이었으나 놈은 무척이나 날렵한 움직임으로 날아드는 주먹을 모두 피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몇 번이고 주먹을 휘둘렀지만 후웅 바람 스치는 소리만 들릴 뿐 놈의 가장 가느다란 털 하나 상하게 하지 못했다.


‘몸이, 둔해!’


게다가 힘도 예전 같지 않았다.


대지에 커다란 구멍을 뚫을 정도의 파괴가 일어나는 것은 기대도 안 했다. 하다못해 주먹을 휘감은 돌풍이라도 흘러나왔다면 좀 더 나았으련만 그 어떠한 바람도 스며들지 않았다.


마치 에테르를 착용하기 전 나약할 대로 나약했던 회사원이 휘두른 주먹처럼 맥빠지는 소리만이 계속될 뿐.


한동안 쓸데없는 주먹질을 계속하던 용사는 용사가 된 이래 처음으로 상실과 무력함, 절망감을 느끼며 절제 없이 떨리는 양손과 인형을 번갈아 보더니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이 상태로 싸우는 건 무리다. 당장 도망쳐야 해.’


태초의 짐승은 사냥감의 마지막 발악을 지켜보듯 끝까지 그의 행동을 지켜보았으나 이내 투지를 잃고 뒷걸음치는 모습에 입맛을 다시는 것을 그만두었다.


느긋하게 사냥감의 발버둥을 지켜보는 유열이 참으로 만족스러웠으나 이렇게 되면 더는 볼 것도 없었다.


투지를 잃은 사냥감처럼 재미없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짐승은 이제 직접 피를 볼 시간이 왔음을 깨달았다.


“키흑.”


벌어진 잇새로 웃음과도 같은 쇳소리를 흘린 짐승이 하늘 높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있던 용사는 즉각 귀를 막았으나, 이번에는 아까처럼 물리적인 형태의 파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에 나타난 것은 차라리 포효소리로 귀가 찢어지는 편이 더 나았을 거란 생각이 절로 들 만큼 끔찍한 광경이었다.


쿠구구구궁.


갑작스레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거무죽죽한 지면에서 검은 진흙과 같은 것이 수도 없이 솟아났고, 솟아난 즉시 특정한 형태로 조형됐다.


어떤 것은 사람의 형상을, 어떤 것은 사람과 비슷하지만 이목구비 중 특정 부위가 강조된 존재로, 또 어떤 것은 반인반수였으며, 또 어떤 것은 아예 사람조차 아닌 이형의 괴물로 변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저 생동감 넘치는 조각상으로 보일 뿐이었지만, 그들은 이내 살아있는 생명처럼 색과 온기를 띠더니 실제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수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가볍게 수백을 넘었고, 저 멀리 뾰족하게 솟아오른 산악까지 시야를 넓히면 그곳도 지상과 마찬가지로 종류는 다르지만 산맥을 이루는 요소요소가 날개가 달린 이형의 존재들로 화해 빼곡히 들어차 감히 수를 헤아리는 것이 무의미한 수준이었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새까만 하늘은 또 어떤가.


하늘을 이루는 검은 구름이 거대한 형태로 뭉치더니 날개 달린 도마뱀처럼 보이는 흡사 전설 속 드래곤과 같은 존재들로 화해 거대한 날개를 수도 없이 펄럭이며 머리 위를 빙글빙글 맴돌았다.


‘미친. 저것들은 또 뭐야!’


마치 놈의 부름을 받고 나타나기라도 한 것처럼 세상천지에서 수도 없이 솟아나는 무시무시한 존재들의 기척들을 느낀 용사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지금 나타난 모든 존재들은 원래라면 용사가 정상적으로 튜토리얼을 진행했을 때 마주해야 했을 상대들. 즉, 눈앞의 짐승과 마찬가지로 튜토리얼용으로 개조된 복제들이었다.


테라에 존재하는 현생 종족을 비롯한 각종 마수와 마물, 마족들을 토대로 만들어진 인형들은 튜토리얼 진행 정도에 따라서 차례로 등장할 예정이었으나, 현재 튜토리얼은 여신의 몸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않는 상태였다.


그 탓에 생겨난 튜토리얼 상의 오류를 짐승이 성역의 출현과 출현한 성역의 대리인 자격으로 그들이 보관된 공간을 강제로 비틀어 열어 이곳으로 불러들였다.


이제부터 시작될 파티를 더욱 재밌게 즐기기 위해 친구들을 잔뜩 불러 모은 것이다.


가장 흔한 인간부터 시작해서 엘프나 오크와 같은 이종족에 사람과 짐승을 반반 섞은 모습의 반인반수, 오우거, 트롤과 같은 상급 마물에 지능은 둘째치고 피지컬 하나는 대륙 제일이라는 용종도 수도 없이 하늘을 누비고 있었다.


기동하지 않은 상태였다면 모르되 한 번 눈을 뜬 인형들은 그들에게 심어진 유일한 목적인 용사와 싸운다는 목적을 위해서만 움직였다. 더구나 그들의 힘은 하나 같이 최소 영웅급 이상의 힘을 지녔고, 개중 몇몇은 짐승의 원초회귀와 동등한 태초의 힘을 지닌 개체들도 섞여 있었다.


용사는 그들이 나타난 출처나 정체는 몰랐지만, 그들 하나하나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졌다는 것 하나는 확실하게 알아봤다.


‘저렇게 많은 놈들이 한꺼번에 덤벼들었다간.......’


저만한 수가 자신을 향해 새까맣게 몰려드는 광경을 상상한 용사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 상황은 에테르가 멀쩡한 상태였어도 쫄렸을 것 같은데 지금은 에테르도 정상이 아니다. 저것들이 일제히 덤벼든다면 도저히 살아날 구석 따윈 없었다.


‘죽는다.’


용사는 사방에서 하나둘 쏟아지기 시작하는 끝도 없는 살기를 마주한 직후 뒤도 안 돌아보고 내달렸다.


-아우우우우우우!


그것이 사냥의 신호였다.


놈을 쫓으라는 듯 등 뒤에서부터 늑대의 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윽고 하늘이, 땅이 적들의 수많은 다리와 날갯짓으로 미친 듯이 뒤흔들렸다.


용사는 살기 위해 죽기살기로 달렸다. 하지만 이미 사방을 점유한 적들 탓에 어딜 어떻게 둘러봐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이제 막 생기를 얻어 신체의 활성이 덜 된 탓인지 하늘을 나는 수많은 비행종을 제외하면 움직임이 제법 굼뜬 편이었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달리기도 전에 진즉에 포위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않을 테니 만약 이대로 탈출구를 찾지 못한다면 확실하게 지옥행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이미 바로 등 뒤까지 따라붙은 기척이 여럿 느껴졌다.


용사는 조급한 마음에 이리저리 바삐 고개를 돌렸지만, 도망칠 길을 찾는 것보다도 추격자가 그를 따라잡는 것이 더 빨랐다.


“윽!”


얼핏 시야 한쪽에서 저돌적으로 어둠 속을 가르는 불길한 광채를 확인한 용사는 순간적으로 몸을 앞으로 던졌다. 그리고 간발의 차로 등 뒤를 짐승의 발톱이 휩쓸고 지나간 것을 확인하고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멈추면 죽는다!’


용사는 등을 흠뻑 적시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서도 기적적으로 넘어지지 않고 중심을 잡았다. 덕분에 도망치는 속도는 조금도 느려지지 않았지만 한 번 습격당한 탓에 그나마 달리고 있던 방향도 잃어 이젠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파고들 수 있는 곳을 찾아 필사적으로 달리던 용사는 문득 의외의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나. 생각보다 잘 뛰지 않아?’


생각보다 잘 뛰는 정도가 아니었다.


에테르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와 비교하면 그야 지금이 당연히 느릴 수밖에 없지만, 에테르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 있음에도 사방에서 몰려드는 괴물들을 피해 어떻게든 도망칠 정도의 속도로 달릴 수 있다는 것은 명백히 이상했다.


더구나 이렇게 빠른 속도로 계속해서 달리고 있음에도 호흡 한 번 흐트러지지 않다니?


‘에테르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었나?’


그렇다면 아까의 극심한 탈력감은 도대체 뭐였단 말인가? 조금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다소 적응이 됐다지만 처음 그것이 찾아왔을 땐 장난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치, 침착하자. 잘 생각해보니 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놈들의 기척이 느껴지고, 여태까지처럼 볼 수도 있고, 피할 수도 있어. 그래, 에테르가 완전히 고장 난 건 아니야.’


용사는 자신의 현 상태를 면밀하게 재점검할 필요성을 인식했다. 그러나 한가롭게 자세한 것을 알아볼 여유는 없었다.


당장 도망치는 와중에도 유독 발이 빠른 짐승을 비롯한 각종 이종족과 비행종에게 공격받고 있었고, 슬슬 활성이 끝난 괴물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포위망을 좁히고 있던 터라 다리를 멈추는 순간 게임오버 확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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