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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막심! 절망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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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F
작품등록일 :
2021.05.26 01:43
최근연재일 :
2021.08.12 18:05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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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6,510

작성
21.05.2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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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DUMMY

그 말은 사전에 설정된 어떤 조건이 맞춰져 검을 뽑으려 했고, 조건에 맞지 않게 되어서 그만두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마 어떤 조건이란 용사와 관련이 있거나 일정 범위 내로 접근하는 것과 연관이 있겠지.


‘게다가 소리가 들리기 직전에 느꼈던 불길함.’


시야가 막히고 호흡마저 잊고 있었을 때조차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정체 모를 불길함 덕분에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뒤로 물러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물러나지 않으면 무언가가 온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무언가가 만약 기사의 공격이라고 한다면......’


용사의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바로 직전까지 자신이 멈춰 섰던 그 자리였다.


용사는 아까의 불길함을 증명하기 위해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다가가 재차 그곳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아까 느꼈던 정체 모를 불길함이 또다시 뒷목을 저릿하게 만들었고, 용사는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오, 검 잡았다!’


예상대로 기사가 검을 잡자 용사는 볼 것도 봤겠다 혹여나 검이 뽑힐까 싶어 황급히 발을 뺐다. 그러자 검을 뽑기 직전까지 갔던 기사의 손이 스르륵 풀려나며 원래의 직립 부동의 자세로 되돌아갔다.


‘확실해. 저 발자국이 경계다.’


저 발자국을 경계로 기사의 대응이 확연히 갈렸다. 저 발자국을 넘어가면 공격이 들어오고, 그 외에는 일절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좀 더 검증할 필요가 있었지만 용사는 저 경계가 바로 기사에게 할당된 영역이라고 봤다. 자의로 움직이지 못하는 대신 정해진 구역에 발을 들인 존재를 공격하도록 미리 설정된 것이다.


기사가 검을 뽑으려다 그만둔 것은 분명 뽑기 직전에 영역에 걸친 발을 거두었기 때문이겠지.


‘어쩐지. 정신없는 와중에도 가면 안 될 것 같더라니.’


정말이지 운이 좋았다. 만약 아무것도 모른 채 그대로 멈춰있었다면 불시에 치명적인 일격을 허용해 간단히 전투 불능에 빠졌을지도 몰랐다.


아무리 에테르의 힘으로 재생에 가까운 회복력을 지니게 되었다지만 맨몸에, 그것도 불시에 검을 맞고 멀쩡할 순 없을 터. 거기다 일반인이 아닌 이세계 초인의 미지의 힘이 담긴 검이라면 단순히 베이는 것 이상의 상황이 연출될 것은 안 봐도 뻔했다.


“후우. 그래도 한시름 덜었나.”


불길한 상상으로 표정을 굳히던 용사는 이내 긴장으로 굳어진 어깨에 힘을 풀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까지 접근했는데도 움직이지 않았던 걸 떠올리면 생각 이상으로 기사의 인식범위가 좁은 것이 분명했다. 아마 이쪽에서 먼저 들어가지 않는 이상 저쪽에서 기습할 일은 우선 없다고 보면 되겠지.


즉, 자신은 먼저 공격받을 일 없이 마음 편하게 선공을 날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거, 들은 대로 정말 쉬울지도 모르겠는데?’


여신도 괜히 싸우라고 종용한 건 아닌 듯 튜토리얼이란 말대로 초짜 용사라도 충분히 싸울만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아무리 초심자라도 치고 빠지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은가? 더구나 정해진 영역만 빠져나가면 공격이 들어오지 않는 안전지대나 다름없었으니 위험할 때 도망치기도 편했다.


물론 무사히 도망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야 했지만 그 정도 위험이야 싸우는 데 당연히 따라오는 부분이었으니 리스크라 부르기에도 뭐했다.


“근데 이거 잘 생각해보니까 그냥 게임 몹 아닌가?”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그렇고, 인식범위가 한정되어 있는 것도 그렇고. 가까이 다가가지만 않으면 공격하지 않는 것까지.


자동기계니, 인공지능이니 뭐니 하면서 일단 분석부터 하긴 했는데 지금 나열한 조건만 보면 그냥 게임에 나오는 몹의 행동패턴과 거의 동일했다.


취직한 뒤로는 일이 바빠서 게임 할 시간도 거의 없었지만 그간 쌓은 경험치가 어딜 가는 건 아니다. 기사가 게임 속 몹과 유사하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이제껏 잠자고 있던 게임뇌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한마디로 게임뇌 특유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샘솟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후. 그래. 그랬지. 지금 이건 튜토리얼. 그렇다는 말은 저건 튜토리얼용 잡몹이라는 뜻. 즉, 별 거 없다 이거지!”


괜히 긴장했다면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비릿한 미소를 머금는 용사.


그런다고 모든 근심, 걱정이 싹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목표를 인식할 수 있는 범위가 좁으니 여차하면 인식범위 바깥으로 몸을 빼기 쉽겠다 싶겠지만, 반대로 그만큼 좁은 영역이기 때문에 기사가 어떤 식으로 공격해오느냐에 따라서 역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영역 안에 갇혀 주구장창 얻어맞게 될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저 좁은 영역 자체가 함정일 수도 있겠고.”


변변찮은 방어구도 없는 상태로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그냥 혀 깨물고 자살하는 게 조금 덜 고통스러운 마지막일 것이다.


일단 용사는 함정에 빠지게 되는 상황까지 머리에 넣은 뒤 정면을 바라보았다.


이제 대충 이 싸움의 조건은 다 드러났다. 그걸 다 숙지한 뒤에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니 이제는 망설이지 말고 싸워야 할 때였다.


자신이 할 일은 간단하다. 움직이지 않는 기사를 상대로 치고 빠지며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히고 최종적으로 기사를 전투불능으로 만든다.


‘뭐야. 너무 간단한 일이잖아.’


말뿐이라면 뭔들 못하겠냐마는 그래도 용사는 자신 있게 앞으로 나아갔고, 기사가 반응할 것 같은 예상지점에서 딱 한 발자국만을 남겨둔 곳에서 멈췄다.


아무리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겨도 역시 단번에 달려들 자신은 없었다.


“으음.”


‘확실히 범위 밖이라서 그런지 반응을 안 하네.’


기사의 인식범위까지 앞으로 대략 한발. 기사와의 거리는 고작 네 발자국 떨어져 있을 뿐이다. 지금의 다리로 전력으로 달린다면 한 호흡도 채 내쉬기 전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가까이서 본 기사는 가느다란 호흡을 유지하며 반듯한 자세로 흐트러짐 없이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명령을 기다리는 로봇을 연상케 만들어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인식했다.


아니,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떨쳐냈다.


‘그래. 이거면 됐다.’


그의 취급은 인형 정도면 된 거다.


이번 걸로 마음의 정리는 거의 끝났다. 그러니 이쪽의 사정으로 세워두는 것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이제는 그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할 수 있게 해줘야 할 시간이었다.


‘간다.’


상념을 떨쳐낸 용사가 천천히 다리를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다리가 선을 넘자마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 순간, 기사가 눈을 떴다.


진짜 눈을 뜬 것은 아니다. 처음 이곳에 나타났을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인형은 단 한순간도 스스로의 눈을 감은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뜬 것은 여태껏 보였던 지극히 단순한 생체반응과는 전혀 달랐다.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을 수행할 수 있게 된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사가 각성했다.


그것은 순간이었다.


용사의 발이 기사에게 설정된 감지구역으로 들어오자마자 기사의 검이 한줄기 빛이 되어 발을 내딛으려는 용사에게 쏘아졌다.


그것은 섬광이었다.


대체 언제 뽑았는지, 어느 방향에서 어떻게 날아오는지 검을 뽑은 당사자 외에는 알 도리가 없는 치명적인 섬광이다.


막 발을 내딛으려는 용사는 심장이 뚝 떨어지는 감각과 함께 마치 주변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아무리 찰나조차 잡아낼 동체시력과 보이지 않는 위협조차도 단번에 꿰뚫는 뛰어난 감지력을 가지게 된 용사라도 그것을 인지할 수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사용자의 위기를 감지한 에테르가 내장된 알고리즘에 따라 돌발적으로 체감시간을 대폭 늘려준 덕분에 지정된 결말까지 약간의 유예를 얻었지만 그럼에도 용사가 정신을 차리려면 아직은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 탓에 용사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것은 기껏 얻은 유예시간을 거의 다 써버리기 직전이었다.


물론 현실에선 고작 콤마 단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지만, 멈춰버린 것만 같았던 시간 속에서도 기사의 검은 느리지만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늦어도 어지간히도 늦어버린 셈이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곧장 머리로 날아드는 공격에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발이 땅에 닿기가 무섭게 날아오는 검광을 뒤늦게 확인한 용사가 기겁하면서 허리를 뒤로 꺾었다.


의도적으로 빼낸 것이 아닌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내뺀 것이다. 그리고 그 행동이 반쯤 시간정지의 영역에 걸쳐 있던 용사의 정신을 완전한 현실로 되돌려 놓았다.


“헙!”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너무나도 삽시간에 일이 벌어진 탓에 그걸 따라가지 못한 용사가 속으로 패닉을 일으켰지만 쉬지 않고 이어지는 후속 공격을 피하느라 채 정신을 수습할 틈도 없이 전력으로 발을 놀려야 했다.


과연 자신이 이 무시무시한 검광을 피할 수 있을지 검이 몸에 박히려 하는 직전까지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막상 일이 닥치고 나니 생각보다 잘 피하는 자신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아예 공격 자체가 보이지 않았지만 몸을 날리다시피 전력으로 공격을 피하다 보니 어떻게든 피해지긴 했던 것이다.


‘우와, 생채기 하나 안 나는 거 실화냐?’


솔직히 이게 내 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잘 움직였다. 가히 빛이나 다름없는 속도로 날아드는 기사의 검을 한 대도 맞지 않는 것도 모자라 스친 상처 하나 내지 않고 있었으니 감탄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그렇게 쉴 틈 없이 공격을 피하다 보니 조금씩 기사의 검이 보이기 시작한 것도 희소식이었건만 설마하니 상처 하나 내지 않을 정도로 잘 피할 줄이야.


그마저도 아직은 빛이나 다름없이 보였지만 적어도 어디에서 무슨 공격이 들어온다는 정도는 인지할 수 있게 된 것은 이제부터 이어질 싸움을 생각하면 상당히 좋은 소식이었다.


게다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지만 전신의 몸놀림이 좋아지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베일 것만 같은 눈부신 검광을 상처 하나 없이 피하고 있다는 점이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붙였고, 차츰 집중력이 높아지면서 매순간 이전보다 더 좋은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고!'


이거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용사는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그러나 좋은 기분도 잠시뿐이었다.


“윽.”


돌연 용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바로 직전까지도 바쁘게 돌아가던 눈이 갈 곳을 잃고 허공을 맴돌았다.


원인은 순간적이나마 시야 전체를 백지화시킬 만큼 가득해진 무수히 많은 검광이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모조리 새하얗게 변했다.


분명 앞이 보이는데, 보이지 않았다.


기사의 검은 가히 빛으로 보일 만큼 빨라 한 획에 여러 번의 공격이 날아오는 것은 예삿일도 아니었기에 어느 정도 피하는 데 적응한 지금에야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도란 게 있었다.


‘이거, 어림잡아 수백은 되겠는데?’


감히 피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정신 나간 숫자의 검기. 더구나 날아오는 속도는 물론이고 그에 담긴 힘에 있어서도 이전에 비해 곱절은 되어 보였다.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어찌 피하는 게 가능할지라도 저런 것들이 떼로 달려든다면, 그것도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전방위에 걸쳐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다면 다 피해내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게다가 시야를 꽉 채우는 수의 압력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지게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선이 굵어 선명하게 보이는 세 가닥의 빛줄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죽음의 환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위력이 느껴졌기에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틈조차 낼 수 없었다.


완벽한 위기였다.


“큭.”


용사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수백의 검광이 뿜어내는 위압에 신음을 흘리면서도 즉시 장고에 들어갔다.


원래라면 이런 긴박한 상황에 느긋하게 생각할 여유 따윈 없었을 테지만, 지금의 용사는 전투상황에 의한 에테르의 활성화로 본인도 모르는 새 모든 능력치가 최고 수준까지 상승해 있다.


신체스펙 하나만큼은 여느 용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수준까지 올라간 것이다. 거기에 위기상황을 맞이한 용사의 지각능력과 사고속도는 인지하는 시간마저도 본능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되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덕분에 용사는 상황에 개의치 않고 거침없이 머리를 굴릴 수 있었다.


어느 샌가 온통 무채색으로 물들어버린 닫힌 세계 속에서 용사의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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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 21.06.07 13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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