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빛 한 점 들지 않고, 구름 하나 흐르지 않는 새까만 하늘.
기괴한 형상의 가지를 뻗으며 음울한 울음소리를 내는 검게 물든 나무들.
검게 죽어 진창이 된 진흙처럼 발목을 삼키는 대지.
나는 이 지옥 같은 풍경 위에 쓰러져 있었다.
이곳의 이름은 ‘테라’.
지구와 다른 차원과 시공의 세상. 그리고 마왕의 침공을 견디지 못해 망해가는 세상이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나는 어느 날 여신의 부름을 받아 마왕의 침공에서 세상을 구하는 용사가 되었다.
되었을 터였다. 그러니 단언컨대 스스로 이런 결말을 바랐을 리는 없다.
하지만 나는, 테라를 구할 용사로 선택된 나는.
아주 사소한 선택 하나로 구해야 할 세상을 구하지 못했다.
즉, 이 풍경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한 장본인인 셈이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던 간에 이곳에 있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아냐. 난, 이러려고 그랬던 게......”
그렇게 변명처럼 검게 물든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지만 다 헛된 일이었다.
쿵.
거대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세상이 요지경이 된 이후 조우한 강적. 칠흑을 몸에 두른 거인이 한 차례 날려 보낸 벌레를 마저 짓밟으러 오고 있었다.
저 거대한 발걸음 소리가 멈춘 순간이 바로 자신의 최후가 될 것임을 직감한 용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입고 있는 것은 용사다운 휘황찬란한 갑옷이 아니라 후줄근한 야근복 한 벌.
그나마 남아있던 성물급 아티팩트의 가호도 바로 직전 놈의 공격을 막고 거의 다 소진한 상태에 무기 역시 성검이라 불리는 신의 힘이 깃든 성물이었으나, 상황이 이 지경이 되고 난 뒤부터는 그저 날 잘 드는 명검으로 전락했다.
고작 명검 수준으로는 저놈이 가진 강철 같은 피부는커녕 겉에 두른 칠흑의 마기를 뚫는 것조차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가능성이 있다면 마나를 두른 공격기뿐이지만, 스스로 얻은 것은 하나 없이 용사가 된 내내 그저 주어지기만 했던 자신은 그런 식의 싸움법을 알지 못한다.
게다가 놈의 공격을 허용한 순간 전신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였다.
내장은 진탕되었고, 시야는 뿌연 안개가 드리운 것처럼 흐릿한 실루엣조차 잡지 못했다. 그나마 멀쩡한 기관이 청각이었는데 들려오는 이명이 너무 많아 놈의 커다란 발자국소리 외에는 뭐가 뭔지 구분도 잘 안 됐다.
당장 손에 든 검조차 확인할 수 없는데 어찌 싸우리?
“이렇게. 고작 이렇게 끝이라고?”
이럴 수는 없다.
분명 새롭게 시작하려고 용사가 되었다. 그저 쳇바퀴 도는 삶에서 벗어나 나만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 위해 용사가 되었다. 이렇게 끝나기 위해 용사가 된 것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무력하게 죽기 위해 이세계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일어나. 일어나라고. 일어나란 말이다!”
그렇게 몇 번이고 악을 지르며 일어나기 위해 몸을 비틀지만 모든 힘을 잃고 나약해질 대로 나약해진 몸은 더는 이전과 같은 힘을 내지 못했다. 그리고 용사의 필사적인 발버둥은 이내 그에게 남겨진 시간을 모두 소비해버렸다.
발소리가 멎었다.
구태여 시선을 돌리지 않아도 바로 지척에 무엇이 다가왔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거인의 커다란 그림자가 전신을 삼키듯 드리웠다.
“제, 길. 역시 난......”
용사 따위, 하지 말았어야 했다.
- 작가의말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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