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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막심! 절망용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오렌지F
작품등록일 :
2021.05.26 01:43
최근연재일 :
2021.08.12 18:05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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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6,510

작성
21.06.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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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1.

DUMMY

어찌나 강한 힘으로 땅을 밀어냈는지 용사가 지나간 곳의 지반이 무너져 가라앉을 정도였지만 대신에 벌어진 거리가 단숨에 메워지고 5회째를 넘어 6회째의 공격이 기사에게 닿았다.


5회째에서 현저히 감소한 입자량은 6회째에선 거의 없다시피 했다.


용사는 지금이 승부처임을 재빠르게 간파했다.


“먹어라!”


위기를 느낀 기사가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앞으로 내밀었지만, 순백으로 빛나는 용사의 주먹 앞에 한순간도 버티지 못하고 산산이 깨져나갔다.


허공에 떠오른 검의 잔해가 태양빛을 받아 난반사를 일으켰다.


그 눈부신 빛무리를 가르고 전진한 주먹이 무방비 상태의 은빛의 갑주를 꿰뚫어 그 내부까지 완전히 파괴했다.


-아, 안 돼!


그때였다. 그런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가 들린 것은.


‘이 목소리는.......’


어쩐지 에코와 노이즈가 많이 섞인 데다 금방 끊어지기도 했지만, 그런 잡음 속에서도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듣는 순간 귀가 정화된다고 느낄 만큼 감미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존재는 그가 아는 한 여신 단 하나뿐이었다.


그렇기에 여신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린 것에는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거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드는데.’


대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용사는 그 목소리만으로도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이 저리 당황한 목소리를 흘릴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직감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외부의 강력한 힘에 견디지 못하고 파괴되어 꿰뚫린 구멍으로부터 피처럼 파편을 흩날리던 기사의 갑주에 균열과 같은 어둡고 불길한 문양이 새겨지더니 그 속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잠, 또 이거냐!”


용사는 갑주 표면에 새겨진 불길한 문양을 본 순간 딱 봐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즉각 주먹을 회수하고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으아아아악!”


이곳으로 소환되었을 때 이상으로 에테르의 보호를 받는 용사조차 눈이 불탄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의 막대한 광량이 시야 전체를 새하얗게 물들임과 동시에 용사의 전신을 붙들어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윽고 빛은 사방으로 달려 나가 중심에 있던 기사와 용사를 포함한 세상 전체를 제 뱃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렇게 고치의 형태로 공간을 둘러싼 빛이 그 끝에서부터 검게 변해 무너져갔다.


***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칠흑의 공간.


처음 용사와 만났던 장소와 완전히 똑같은 배경을 뒤로 여신 테라는 튜토리얼의 시작부터 줄곧 용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흠. 꽤 오래 걸리네요.”


새하얀 테이블 위로 펼쳐진 전송 화면으로 용사가 싸우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여신은 마치 누구에게라도 말하듯 중얼거렸다.


여신의 중얼거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잠시간 침묵을 지키던 여신은 한 차례 공백이 지나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네. 그렇죠. 원래 일반인이었는 걸요. 다짜고짜 밀어 넣은 제가 이해해야겠죠. 그럼요. 알죠.”


여신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마침 싸움도 막바지에 치닫는 시점이기도 해서 나름 주의 깊게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리고 순조롭게 기사에게 마무리를 가하려는 모습까지 지켜본 여신은 이에 적지 않게 안심했다.


당초 예상한 것보다도 시간이 걸렸지만 어떻게 첫발은 뗐으니 한시름 덜었다. 일단 답답해서 보내버리긴 했다만 막상 보내고 나니 지켜보는 내내 그 일로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후. 이제 끝나려나 보네요. 말씀대로 점점 나아지는 것 같으니 계속 지켜봐야겠어, 어?”


그러나 안심이 경악으로 변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여신은 돌연 심장을 옥죄는 격통에 가슴을 부여잡으며 테이블 위로 머리를 숙였다.


‘이, 이건 설마. 아니, 이럴 리가. 벌써?’


여신은 지금 자신에게 일어나는 현상이 무엇인지 깨닫고는 말도 안 된다는 듯 오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를 부릅떴다.


힘을 쓰지 않는 평시에는 이토록 빛나지 않는 눈이 빛난다는 말은 외부로 힘이 드러날 정도로 신력을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즉, 위험신호다.


“이건 말도 안 돼!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을 텐데 어째서!”


여신은 신으로서의 증명이자 결정체인 신핵을 비트는 고통을 감내할 시간도 없이 황급히 테이블의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에게 이상이 생겼다는 말은 용사에게도 마찬가지로 이변이 생겼다는 뜻이었으니, 그 예상대로 화면에 비친 튜토리얼에서도 어떠한 이상이 발생해 있었다.


“저건!”


화면에는 막 기사에게 공격을 명중시킨 용사의 곁에 그 순간 작동을 정지했어야 할 기사에게서 예정에도 없던 찬란한 빛이 뿜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뒤이어 나타난 불길한 문양은 여신에게 극도의 초조와 불안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이런! 빨리 용사를 저곳에서 빼내야!”


화면에 나타난 빛을 본 순간 단번에 그것의 위험성을 파악한 여신은 즉각 용사와 연결해 그를 안전지대로 보내려 했지만, 딱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또 한 번 몰려오는 격통 탓에 집중이 깨져 실패하고 말았다.


“아, 안 돼!”


아주 찰나 연결된 목소리에 반응한 용사가 놀란 얼굴로 주변을 살피는 것이 보였지만 지금의 여신에게 그 이상의 정보전달은 불가능했다.


여신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마지막까지 화면으로 손을 뻗었지만 이내 화면 전체가 새하얀 빛으로 물들면서 전혀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만이 아프게 전해질 뿐이었다.


여신은 가슴의 격통도 잊은 채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빛으로 매몰된 화면을 빛이 사라질 때까지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어쩌면 자신의 예상이 빗나가거나 혹은 그보다 더 좋은 상황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에테르가 있으니 뭐가 됐든 그리 큰 위험은 되지 않는다. 그러니 걱정할 것 없다.


여신은 그렇게 마음속으로 바랐지만 이내 빛이 잦아들면서 드러난 광경은 지금껏 보아왔던 거친 황야와는 완전히 별개의 이공간이었고, 그것은 여신의 기대를 완전히 배신하는 것이었다.


“아......”


화면 속 용사는 갑자기 뒤바뀐 필드에 당황한 듯 표정이 굳어 있었지만, 여신은 다른 의미로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여신은 저곳을 알고 있었다.


그저 알기만 할까?


저곳이 어떤 곳이며, 어떤 힘을 가지고 있고, 어떤 존재가 있어야 하는지 저곳에 관한 것이라면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모조리 말할 수도 있었다.


그도 그럴게 저 공간. 저곳의 이름은 ‘성역’.


성역이란 신이 거하는 공간이며, 오로지 신만이 법이며 질서이고 정의인 절대공간.


즉, 지금 화면을 지켜보는 여신과 같은 ‘신’이 거하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요컨대 여신의 입장으론 갑자기 자기 앞마당이 눈앞에 나타난 격이나 다름없는 셈이었지만 진짜 문제는 튜토리얼에 갑자기 신의 성역이 출현한 것이 아니었다.


저것은 성역이긴 하나 완전한 성역은 아니었다. 왜냐, 성역에는 신이 거하고 있어야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성역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신이 존재하지 않는 성역은 완벽한 성역과 품은 힘부터 능력까지 현격한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튜토리얼용으로 만든 일회성 공간에 돌발적으로 생성된 성역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원래 힘의 1할도 채 발휘하지 못할 터.


다만 그와는 별개로 불완전해도 성역인 이상 그곳에 거하는 이의 절대성을 보장하는 본질은 같았다.


원래라면 신이 아니고선 성역에서 절대성을 보장받을 일이 없으니 튜토리얼에 성역이 나타난다 해서 딱히 문제가 될 소지가 없지만 지금의 경우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아아. 성역에 대리인이.......”


신이 없는 성역에 대리인이 세워져 있었다. 이는 여신이 가장 바라지 않는 상황이었다.


성역에 거하는 신이 없어도 신에 의해 대리인이 세워진다면 대리인은 성역 내에서 한정되나마 존재에 걸맞은 절대성을 부여받는다.


그 절대성에는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성의 우위도 있어 성역 내에서라면 허락받지 않은 존재의 행동이나 힘을 어느 정도 주무르는 것도 가능했다. 그런데 분명 용사의 공격을 받고 작동을 정지해야 했을 기사가 다시 부활한 것도 모자라 불완전한 성역의 대리인이 돼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에테르가 있어도 용사는 안전을 보장받지 못했다.


아직 기사가 대리인으로서 성역의 힘을 발휘하지 않아 용사는 모르고 있겠지만 성물급 아티팩트인 에테르조차 성역에선 그 힘의 상당 부분이 억제될 것이다.


‘못해도 전체 출력의 반은 봉인될 거야.’


에테르의 힘이 반이나 제한된 상황에서 성역의 대리인이 된 기사와 싸운다면 보나 마나 용사의 필패였다.


지금도 용사에게 위험한 상황인 것은 변함없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화면 속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갔다.


갑주가 파괴되어 감춰져 있던 본모습을 드러낸 기사가 돌연 하늘을 향해 팔을 뻗자 거대한 진동과 함께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느닷없이 거대한 달이 하나 떠올랐다.


푸른빛의 거대한 달은 그 자체로 신비한 마력을 품은 듯 보는 이를 홀리게 했지만 고작 그런 이유로 달을 불러내진 않았을 것이다.


그 짐작이 맞는다는 듯 푸른빛의 달이 한순간에 핏빛의 새빨간 달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 빛을 받은 기사의 몸에서 달빛과 동일한 푸른색 마력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면서 기사의 육체를 세포 단위에서 완전히 뒤바꾸기 시작했다.


기사의 육체가 변이하는 것을 본 여신은 이번에도 이것이 뜻하는 바를 곧바로 이해했다.


“원초회귀라니. 설마 이것까지.......”


원초회귀. 다른 이름으로는 수인화.


테라에는 인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 비슷하거나 인간보다 짐승에 더 가까운 형태의 아종과 아인들 역시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그들 중 수인이라 불리는 짐승과 인간의 경계에 선 존재들이 극히 드물게 먼 옛날 여신이 창조한 고대의 종족이자 그들의 원류, 원초를 달의 마력을 매개로 일깨워 태초의 강력한 힘을 얻는 특수능력을 가지는데 그것이 바로 원초회귀의 힘이었다.


수인 이외에 다른 매개로서 고대의 힘을 일깨우는 능력을 가진 이들 역시 존재했지만 지금 기사가 되려고 하는 것은 그중에서도 강력하다고 일컬어진 태초의 짐승이었다.


모든 수인들이 세월의 흐름에 못 이겨 어느샌가 잃어버렸다고 전해진 수인화를 전 아인족을 통틀어 최고의 영웅이라 불린 이가 자기 자신의 안에 잠든 고대의 피를 일깨워 기적적으로 되살려낸 최강의 편린을 그 카피인 인형의 몸으로 재현하려는 것이다.


“아무리 ‘그’의 복제라지만 원래라면 고대의 피가 일깨워질 일은 절대 없었을 텐데......”


이미 원초회귀를 각성한 오리지널조차 각성에는 운을 비롯한 적지 않은 시간이 소모됐고, 피를 일깨워 원초로의 회귀를 시도할 때도 그 나름의 리스크를 각오해야 했다. 그러니 한 번 쓰고 버려질 카피가 원초회귀를 각성할 일도, 원초회귀를 실행할 일도 원래라면 없어야 했다.


어차피 원초회귀를 써봐야 일회용에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도 한계까지 해봐야 1분도 되지 않기 때문에 여신 쪽에서도 진즉에 폐기한 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역과 성역의 대리인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그 안에 잠들어 있던 짐승의 피를 강제로 각성시키게 했다.


‘이 또한 성역처럼 불완전한 회귀이겠지만 태초의 짐승은 그 자체로도 강력해. 에테르의 힘이 억제된 용사에겐 승산이......’


이대로면 용사는 죽는다.


“기껏 구한 용사가, 이렇게 죽게, 된다니......”


여신은 당장이라도 기사의 대리인 자격을 박탈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기사가 대리인의 자격을 얻은 이유에 짐작 가는 것이 있었기에 분하다는 듯 입술을 짓씹을 뿐이었다.


지금의 여신의 힘으론 그를 도울 수 없었다.


용사를 도울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또한 여신이 아니라 다른 존재의 의사가 중요했기에 도움을 바란다 해도 당장은 힘들었다. 도움의 손이 닿을 때까지 어떻게든 용사가 살아서 시간을 끌어주지 않으면 안 됐다.


“아, 윽. 이젠 안 돼.......”


화면 너머의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듯이 바깥의 상황도 점점 최악으로 변해갔다.


필사적으로 고통에 저항하던 여신이 끝내 격통을 이기지 못하고 발작처럼 주변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신력을 발산했다.


막대한 신의 힘에 공간이 유리처럼 깨져나가고, 여신이 만든 기구들이 여파에 닿아 속절없이 망가지거나 부서졌다.


‘부디. 다시 눈을 떴을 때 그가 살아 있기를.’


여신이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것은 위기에 빠진 용사를 비추던 화면을 무참하게 깨부수는 검은 손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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