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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막심! 절망용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오렌지F
작품등록일 :
2021.05.26 01:43
최근연재일 :
2021.08.12 18:0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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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글자수 :
166,510

작성
21.06.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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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2.

DUMMY

***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눈을 태우는 빛이 잦아들고 드러난 그곳엔 더는 전과 같은 갈색의 황야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늘에서 아래의 생명을 태우고자 굽어보던 거대한 태양 대신 들어선 것은 새까만 구름으로 뒤덮인 음울한 하늘이었고, 흡사 암벽과도 같은 위용을 보이던 거대한 바위산은 보는 것만으로 찔릴 듯 날카롭게 곤두세워진 산악으로 탈바꿈되었다.


거대한 회전초와 먼지바람이 굴러다니던 거친 대지는 발목을 잡는 질척한 진창으로 변했고, 곳곳에 시뻘건 마그마가 부글거리는 구덩이를 파고 연신 불꽃의 혀를 날름거렸다.


“이게, 무슨......”


마치 지옥이 있다면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싶은 광경에 그만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용사는 지금 일어나는 일의 반의반에 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 하나만큼은 간신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겨우 이 정도로 놀라기엔 아직 일렀던 모양이다.


거칠게 잘린 짧은 흑발에 시리듯 푸른 눈동자.

감정의 티끌조차 보이지 않는 무감정한 얼굴.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흐트러지지 않는 부동의 자세.


용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앞에 선 그를 보며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였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건만 어째선지 그를 보는 순간 그가 누구인지 바로 알 것 같았다.


“너......”


분명 들고 있던 검과 갑옷째로 가슴을 꿰뚫었을 터인 기사가 어찌 된 이유인지 멀쩡히 살아서 대지 위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보기에도 불길한 문양을 드러내며 사방으로 빛을 폭사했던 갑옷은 그것으로 완전히 파괴된 것인지 하반신의 얇은 천조각을 제외한 모든 것을 훤히 드러낸 그는 기사라는 이름보다 한 명의 야인처럼 보였지만 틀림없이 이 순간 살아있었다.


“.......”


용사는 어떻게든 내부에서 아우성치는 이 정체 모를 감정을 표현하려 쉬지 않고 말을 자아내려 노력했지만 끝내 아무 의미 없는 숨소리만이 간신히 목구멍을 통과했다.


그런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남자는 용사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 무감정한 얼굴로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용사는 다른 누구도 아닌 그가 스스로 움직였다는 사실에 놀랄 틈도 없이 하늘에 떠오른 거대한 달의 마력에 홀린 듯 고개를 들어 올렸고, 직후 그것이 시작되었다.


우득. 우드드득.


기사가 거대한 달을 소환해 잠재된 능력을 해방한 순간 기사의 전신이 뼈를 갈듯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만들어내며 유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역의 힘으로 소환한 달에서 받아들인 막대한 양의 특수마력을 이용해 원초의 힘을 발휘하기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변이하려는 것이다.


뼈와 뼈가 달그락달그락 서로를 향해 공격적으로 부딪치고, 그들이 감싼 내부의 장기가, 근육이, 신경이 자신들의 구조를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개변해 나간다.


그렇게 서로 엉키고 부딪치던 그것들은 얼마 안 가 마치 이 작은 인간의 몸으로는 자신들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라도 했는지 몸 밖, 새로운 지평을 향해 일제히 탈출을 시도했다.


전체적인 틀을 확장하고, 점점 그 크기와 내구를 늘려가는 뼈들의 이상적인 돌출을 견디지 못한 살이, 근육이 찢어지면서 사방으로 분수처럼 피를 뿜어냈다.


매순간, 찰나를 잡아먹으며 내부구조의 변혁을 일으키는 장기들이 이마저도 느리다며, 더 빨리 움직이라고 요동치며 외적으로 상처를 벌리고, 내적으로 또 다른 상처를 생산한다.


전신을 휘도는 달의 마력이 그가 죽지 않도록 뼈가, 장기가 무자비하게 바깥으로 뚫고 나오는 걸 밀어 넣고 그 흔적을 봉합하지만, 그와 동등 이상의 속도로 육체의 변이가 이루어지고 있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행위가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그 끝없는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발생하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감히 종을 초월했다 일컬어지는 영웅급의 존재라 해도 멀쩡하게 넘길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일반적인 존재가 이 상황을 겪었다면 백이면 백 변이가 시작되자마자 눈을 뒤집고 이승을 하직했을 만큼 어마어마한 고통의 연쇄. 그러나 생명체의 계보를 따르지만 신의 손길이 닿은 인형은 일말의 비명조차 지르지 않는다.


견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애초부터 비명을 지를 권리도, 기능도 존재하지 않았을 뿐. 신은 그에게 어떠한 고통도 견디고 수용할 허무와 용사에게 쓰러질 권리만을 허락했다.


전신에서 발생하는 극한의 고통과는 별도로 전신을 휘도는 마력의 초회복과 파괴의 생과 사를 오가는 균형이 아슬아슬하게 맞아떨어진 덕분에 변이는 어느 순간에도 착실하게 진행되었다.


온몸이 기형적으로 뒤틀리고, 그 어떤 배려도 안녕도 없이 무자비하게 팽창한 끝에 골격은 물론 근육과 신경의 구조 자체가 인간의 것이 아닌 다른 존재의 것으로 변화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여파로 겉보기엔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것도 모자라 사람이라 볼 수 없는 흉측한 모습의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렸지만, 강함으로 따지자면 고작 초인급에 불과했던 이전과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고작해야 새로운 힘을 담아내고 마음대로 휘두르기 위한 기초적인 발판을 형성하는 한 공정에 불과했다. 이 상태로는 크기만 크고 알맹이가 부실한 빈껍데기로 남을 뿐이다.


얼추 힘을 담을 그릇이 만들어졌다는 것이지 아직 모든 변화가 끝난 것도 아닌 터라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이기도 했다.


변이가 덜 끝난 지금 상태로 힘을 썼다간 여신의 예상대로 그 시점에서 자폭하고 말 정도로 위험한 상태였지만, 애초에 성역의 존재를 깔고 들어간 이유부터가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한 과정이었다.


이제는 자신의 차례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일까?


끝난 줄 알았던 변이가 재차 가속화되자마자 이번에는 무리한 팽창으로 너덜너덜해져 다 죽어가는 피부와 근육에 골격을 변화시켰던 것과 똑같이 믿을 수 없는 힘이 깃들면서 한순간에 풍선처럼 크게 부풀어 올랐다.


골격에 맞춰 비대해진 몸에 억지로 살을 붙여놓은 느낌이었던 근육이 피를 덕지덕지 흘리면서 흉측하게 꿈틀거린다.


팽팽하게 당겨지다 못해 늘어나고 쭈글쭈글해져 있었건만, 반목하던 원초로의 변이와 끊임없이 흘러드는 달의 마력이 맞물리자 순식간에 생기를 되찾으며 비정상적인 진화를 거듭해나갔다.


그 시점에서 이미 용사의 두 눈은 기사에게서 못 박혀 떨어질 줄을 모르는 상태였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달과 그곳에서 뿜어내는 막대하고도 신비한 마력 때문에 아주 잠깐 그쪽으로 정신이 쏠리긴 했지만, 그 정도야 용사라면 눈만 깜빡여도 털어낼 수 있을 정도의 미약한 효과에 불과한 것.


용사가 된 뒤로 한껏 감각이 예민해진 상태에서 바로 옆에서 막대한 마력이 한곳으로 집중되는 데다 멍하니 넋이나 놓고 달구경하기는 힘들었다. 그가 아무리 둔하다고 해도 본능의 영역에서 경고를 보내는데 확인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저, 저게 뭐야?’


그래서 순간 눈을 의심했다.


그도 그럴 게 현재 놈의 몸은 처음보다 세 배 이상 거대해져 있었고, 아직까지도 끝나지 않은 변이로 전신의 근육이 꿈틀거리고 있던 탓에 도저히 원래 모습을 떠올릴 수 없을 만큼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온몸을 적신 붉은색 하며, 비대해진 근육과는 달리 뭐 하나 성한 데가 없이 너덜너덜한 것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설마 잠깐 눈을 돌린 사이에 저런 게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혹시 이것도 튜토리얼의 일부분인가?’


아까 아주 잠깐 들렸던 여신의 목소리라던지, 기사의 갑옷에 떠올랐던 불길한 문양이라던지, 여러모로 석연치 않은 점은 많았지만, 용사는 이내 그것까지 포함해 튜토리얼의 한 과정이라고 판단했다.


기사에게 치명타를 먹이자마자 갑자기 바뀐 필드하며 기사의 변이까지, 말 그대로 부활한 보스와의 2차전 양상이지 않은가?


“난이도가 올라갔다 이 말인가?”


일단 모습 자체가 꽤나 흉측하기도 했고, 느껴지는 힘이 장난이 아니었으니 일단 경계부터 취하긴 했다. 어디까지나 놈이 스스로 움직인 것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놈은 그 거대한 근육을 꿈틀거리기만 할 뿐 전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묘한 기시감을 느낀 용사가 서둘러 움직이지 않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처음 기사가 혼자 움직인 것은 이벤트성 행위라고 생각하면 말이 맞는 데다 실제로 기사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으니 기본적인 설정은 바뀐 게 없다고 짐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용사의 실수였다.


현재 이 순간에도 그는 진화와 변혁을 거듭하고 있었다.


오리지널이라면 진작에 모든 변이가 끝나 용사에게 돌진했겠지만, 마이너 카피인 인형의 한계인지 오리지널과는 달리 적합한 신체구축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 데다 변이 도중에 움직이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시피 했다.


그마저도 변이가 굉장히 빠른 축에 속했지만 용사가 상대여서야 그도 별 의미가 없었다.


다시 말해 아직 변이가 모두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용사의 시선을 끌게 된 것은 그에게 있어서 굉장히 치명적인 일이었다.


그렇기에 용사는 이 최초이자 최후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공격에 들어갔어야만 했다.


아직 성역의 힘이 본격적으로 발동되지 않아 에테르의 전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을 지금, 불완전한 각성으로 움직일 수 없는 그를 처치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용사는 그러지 않았다.


현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에.


지금이 그를 쓰러뜨릴 최후의 기회라는 것을, 스스로가 생존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가능성임을 몰랐기에 그럴 수 없었다.


어쩌면 암담한 현실을 직감하고, 견디지 못해 그만 눈을 돌린 걸지도 몰랐다.


모른 척 모든 게 다 튜토리얼이라며 합리화해버린 걸 수도 있었다.


뭐가 됐든 이제 와 뒤늦게 모든 것을 알고 공세에 나선다 해도 그가 공격이 아닌 경계를 선택한 순간부터 이미 일은 그르쳤다.


시간은 그런 틈을 놓치지 않고 상대에게도 공평하게 흘러갈 권리를 나눠주었으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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