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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막심! 절망용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오렌지F
작품등록일 :
2021.05.26 01:43
최근연재일 :
2021.08.12 18:0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611
추천수 :
11
글자수 :
166,510

작성
21.06.04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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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9.

DUMMY

‘그 말은 공격이 빗나간 것도 모자라 아예 피하기까지 했단 뜻인데......’


대체 이번엔 또 뭐가 잘못됐던 걸까?


노린 대로 기사의 머리부터 내려찍으려 했다.


무수하게 날아드는 공격을 전신에 녹아든 에테르로 튕겨내면서 오직 그것 하나만을 위해 집중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떨어진 곳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땅, 애꿎은 지면만 왕창 부쉈을 뿐이었다.


게다가 멀쩡히 서 있던 몸이 팔을 내려치려던 순간 갸우뚱 기울기 시작하더니 끝에 가서는 도리어 내려치는 힘에 이끌려 자세까지 무너지고 말았다.


서 있는 상태에서 팔이 땅까지 닿으려면 허리를 굽히거나 넘어지지 않는 이상에야 닿을 수가 없을 텐데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마법처럼 어느 샌가 그렇게 되어 있었다.


‘그게 이상하단 말이지.’


분명히 직전까지는 괜찮았었는데, 하고 중얼거린 용사가 답답함에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하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해답은 당장은 떠오르지 않았다.


‘뭔가에 당한 건 확실한데.’


실력도 없는 주제에 힘만 믿고 어쭙잖게 여러 가지를 시도하느니 차라리 힘 하나만 밀고나가는 편을 골랐고, 스스로도 나쁘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랬을 터다. 지금 보이는 참상만 봐도 무엇이 더 좋은 선택이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보시다시피 대실패. 더구나 뭔가를 당한 것 같은데도 그게 뭔지 도통 모르는 실정이다.


‘하긴, 난 줄곧 얻어맞기만 했을 뿐이었으니까.’


얻어맞은 게 자랑은 아니지만, 어차피 통하지도 않는다는 생각에 얼마나 두들겨 맞아도 무시했었다.


어디 이번에도 해볼 테면 해보라며 조금이지만 도전의식을 불태웠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더구나 겉으로 보기에도 기사는 눈앞의 공격을 막는 일에 온 힘을 다하고 있었으니 그 와중에 다른 것을 꾀할 여유는 없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서야 지금 이게 말이 안 되지.’


그저 열심히 검만 휘둘렀는데 알아서 이쪽의 공격이 빗나간 데다 덩달아 본인도 무사히 몸을 빼낸다?


‘그것도 그 잠깐 사이에?’


앞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당장은 용사도 그런 편리한 기술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기사는 달랐던 모양이다.


‘그냥 검만 잘 쓰는 복제인간인 줄 알았더니.’


검 이외에도 뭔가를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단언컨대 아직 기사는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힘으로, 몸으로 밀어붙이는 단순한 수밖에 가지지 못한 이쪽과 달리 아직 쓸 수 있는 패가 잔뜩 남아있다고 봐야 했다.


‘일이 이렇게 되면 생각했던 것처럼 마냥 쉽지만은 않겠어.’


그래도 명색이 용사의 튜토리얼이라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전력 차를 만들어놓았으면서도 그냥은 이기게 해주지 않겠다는 듯이 용사조차 놀랄만한 조커까지 함께 심어뒀다.


가진 패가 적은 쪽이 많은 쪽에게 끌려다니는 것은 필연, 안 봐도 뻔한 일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후에도 기사가 과연 가만히 피하고 있기만 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싸움이 오래 지속됨에 따라 역량에서 상당한 열세를 보이는 기사는 생존을 위해 조금씩 자신이 가진 패를 꺼내 보일 텐데 과연 그중에 이쪽에 유효한 수단이 하나쯤 없을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현실로 일어난 마당에 설령 그 이상의 것이 있다 해도 그리 이상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흠. 이건 조금 질투 나는데. 이 용사님에게도 그런 편리한 능력이 없는데 말이야.”


전체적으로 능력이 고루 뛰어난 용사였지만 기사와 싸우다 보니 하나에 특화된 기술이나 능력이 없는 게 조금 아쉽게 여겨지던 참이었다. 물론 그런 미흡한 점을 전부 보충하고도 남을 정도로 뛰어난 신체스펙을 가지고 있으니 더 욕심을 부리기도 뭐 했지만 말이다.


“야, 어서 뭣 좀 뱉어내 봐. 이대로면 내가 좀 곤란하다니까?”


어쩔 수 없으니 욕심은 부리지 않겠지만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든 용사는 장난스레 주먹으로 제 가슴을 두드리며 말을 걸었다. 하지만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 에테르가 그에 반응할 리도 없어서 수신되지 못한 그의 목소리는 흘러가는 먼지에 섞여 빠르게도 저 멀리 날아갔다.


이에 다소 무안해질 법도 하지만 예상했다는 듯 용사는 고개를 저어 훌훌 털어버리고는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그런 그를 기다린 세상은 온통 적갈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짙은 갈색 연무가 물체의 윤곽까지도 덮어버린 탓에 뭐 하나 제대로 보이는 게 없었다.


보통사람이라면 일단 코와 입부터 막고 볼 장면이었지만 용사는 태연하게 짙은 연기 속을 두리번거리며 사라진 기사를 찾아 헤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연기 속을 꿰뚫어봤다.


“어디 보자......”


거대한 폭발에 밀려났던 대지의 잔해들이 흙먼지가 되어 돌풍처럼 되돌아오고 있음에도 용사의 눈은 그 정도로는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는다는 듯 간단히 배제하며 무난히 역할을 수행했다. 마찬가지로 기사를 찾아내는 것도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참 멀리도 갔네.”


용사의 시선이 닿은 곳.


앞뒤 분간도 가지 않는 자욱한 연무 너머 지면을 깨고 솟아오른 암반을 꿰뚫고, 그럼에도 한참을 더 나아간 곳에 ‘그’가 서 있었다.


정체 모를 수단으로 수직으로 떨어지는 직격을 피하고,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대지가 폭발해 발생한 여진조차도 닿지 않을 정도로 먼 곳까지 도달했던 기사가 처음과 마찬가지로 조용히 용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왠지 그럴 것 같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멀쩡하잖아?”


이전과 비교해 그다지 변한 게 없는 기사를 확인한 용사의 입가가 저도 모르게 호선을 그렸다.


딱히 기사가 무사한 것이 좋아서 웃는 게 아니었다.


그냥 어이가 없어서 그랬다.


주위를 봐라.


이제 막 용사가 된 신참내기가 주먹 하나로 만들어낸 이 참상을 봐라.


대지가 달걀처럼 깨져나가고 사방에 솟아오른 암반에 낙진이 서로 뒤엉켜 온천지가 뒤죽박죽. 본래의 형태 따위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그 정도의 힘이었고, 그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그럴진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서 있다. 적어도 눈에 띄는 상처 하나쯤은 있을 줄 알았건만 팔팔하다 못해 갑옷에 광까지 나는 기사님을 보니 도저히 웃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었다.


서로 간에 힘의 격차는 그 정도로 명백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한 꼴을 보니 그저 우습기만 하다. 그리고 그와 엇비슷하게 기분이 더럽다.


사람이 죽이려고 공격했더니만 그걸 무슨 일 있었냐는 듯 흘려버리는 저 뻔뻔한 모습이 마치 어울리지 않는 감투를 썼다고, 너는 용사가 아니라 그냥 힘만 좋은 머저리라고 비웃는 것만 같다.


인형인 그가 감정을 드러낼 일은 없을 테니 분명 스스로의 자격지심이 불러온 한낱 망상에 불과할 테지만 그럼에도 이런 생각이, 기분이 든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모자람을 드러내는 것 같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만히 보고만 있으려니 심기가 뒤틀린다.


용사는 저 변함없이 곧은 자세를 힘으로 굽히게 만들고 싶은 그런 삐뚤어진 호승심에 그만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당장 달려가서 이번에야말로 저 철판을 두른 면상을 구겨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려고 했다.


“어디 언제까지 멀쩡하게 서 있는지 한 번 해보자고.”


찾는 것도 찾았겠다 슬슬 움직이자며 제자리에서 가볍게 몸을 푼 용사가 이내 자세를 낮추며 도약할 준비를 했다.


시선이 기사에게 닿는 건 금방이었지만 실제 둘 사이의 거리는 무척이나 멀었다.


대체 언제 저기까지 갔느냐고 물어보고 싶을 만큼의 거리가 존재했고, 그 사이에는 물리적으로 이동을 방해하는 온갖 장애물까지 널려있었다.


그 모두가 자신이 저지른 일의 결과물인 탓에 규모부터가 보통사람은 넘기도 전에 주저앉을 정도로 넓고 거대했기에 그것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도약력이 필요했다.


‘기껏 이런 힘을 가지게 됐잖아? 저 많은 장애물을 일일이 두 다리로 뛰어가는 것도 멋이 없지.’


그러니 한 번에 뛰어넘는다.


에테르를 몸에 들인 이래 제대로 뛰어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넘지 못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힘이 너무 들어가 괜히 되돌아와야 할지도 모른다는 게 더 걱정되었다.


‘배부른 걱정이지.’


용사가 속으로 쓰게 웃었고, 동시에 무릎을 펼친 용사의 몸이 무서운 기세로 하늘까지 솟구쳤다.


“읏.”


생각보다 상승 속도가 빠르다. 뛰기 전 나름 마음의 준비도 하고 있었건만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냐는 듯 뛰자마자 주변이 휙휙 바뀌더니 순식간에 갈색이 아니라 푸른색밖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용사가 주변을 확인할 여유가 생긴 것은 어느 정도 체공시간이 늘어난 뒤였다. 그런데 어째선지 입 안이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을 받아 고개를 갸웃했다.


‘혀가 좀, 이상한데?’


그냥 이상한 정도가 아니었다. 어째선지 혀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고, 입 안이 묘하게 침 분비가 많아진 데다 어디선가 맛본 듯 익숙한 철분 맛도 느껴지는 게 마치......


‘아니, 이거 피잖아! 게다가 혀 씹었고!’


용사는 뒤늦게 찾아온 아픔에 인상을 확 찌푸렸다.


반 정도 씹은 시점에서 멈췄다만 하마터면 혀가 잘려 나갈 뻔했다.


완전히 잘려 나간다 해도 에테르가 활동하고 있는 이상 알아서 원래대로 붙을 테니 걱정은 없었지만 겨우 높이 좀 뛰었다고 혀를 잘라먹을 뻔하다니 설령 아무도 보는 이가 없어도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잠깐 사이에 에테르가 잘 작동했는지 아픔은 오래 가지 않았다. 혹여나 이상이 있나 싶어 조심스럽게 혀를 움직여 상태를 확인해보니 곧바로 사용해도 문제없어 보였다. 아직 입 안에서 조금이지만 피 맛이 느껴졌으나 그거야말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고 말이다.


‘앞으로 뛸 때는 조심하자.’


뭐든 처음은 있는 법이라며 용사는 그렇게 다짐하고 나서야 구긴 인상을 펼치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는 인식하지 못했던 풍경이 드러났다.


“와아......”


땅 밑이 아득해질 만한 높이까지 떠오른 자신과 타오르는 태양빛을 받아 붉게 아른거리는 적색 대지를 그곳에서부터 내려다본 용사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대체 언제 여기까지 올라왔던 것일까. 혀의 아픔에만 집중하다 보니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다.


‘얼마나 넓은 거야?’


분명 여신은 테라에 실존하는 장소의 일부를 재현했다고 말했었다.


일부라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일정 범위를 넘어서면 그 너머엔 다시 어둠이 시작되고 있었지만 내심 세상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거창하지 않나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높은 곳에서 이 세상의 전경을 확인하고 나니 작다란 말이 쏙 들어갔다.


현실적으로 이런 곳이 실존하는가 아닌가 하는 것은 둘째치고 정말 말도 안 되는 넓이였다. 이토록 높은 곳까지 올라갔음에도 아직 더 올라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곳의 크기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고작 훈련장 하나에 이만한 규모라니 스케일부터가 남달랐다. 하지만 용사의 도약력에도 한계는 있었는지 어느 지점부터 빠른 상승이 잦아들고 조금씩 몸을 당기는 중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슬슬 최고점인가.’


이 세상엔 밤이 없다.


오로지 태양만이 비출 뿐이고, 그 너머에는 그저 어둠만이 존재했다. 그리고 용사가 자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곳은 딱 여기까지인 모양이었다.


“그러면 떨어져 보실까!”


그리하여 마침내 스스로가 올라갈 수 있는 최고점을 찍었을 때 용사는 망설임 없이 쏘아지듯 지상을 향해 몸을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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