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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막심! 절망용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오렌지F
작품등록일 :
2021.05.26 01:43
최근연재일 :
2021.08.12 18:0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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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글자수 :
166,510

작성
21.06.02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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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8.

DUMMY

‘자만은 아니지만 이렇게 되면 일이 너무 쉬워지지.’


고작 쉬워지기만 할까.


기술 따위 필요 없고, 경험 따위 필요 없고, 생각도, 잔재주도, 아무것도 필요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격도, 피할 수 없는 공격도, 사방을 에워싸는 공격도, 모조리 무시한 채 그저 앞으로 밀고 들어가기만 하면 그걸로 그만.


싸우기 전부터 어렴풋이나마 이쪽이 더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은연중에 자신은 용사니까 한낱 인형보다 강한 게 당연하다 여긴 것도 그 생각에 한몫 보탰을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래로 본 게 맞았다. 하지만 그런 속내와는 다르게 행동거지를 최대한 신중하게 했다.


실수하면 정말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


몸 어딘가를 크게 다칠 수도 있었고, 자칫하면 영영 불구가 될 수도 있다.


그래도 명색이 용사이니 여신이 모든 것을 낫게 해줄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이번 일이 끝난 이후에나 바랄 수 있는 기적일 것이다. 그 전까지는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본인이 가져온 피해는 고스란히 자신이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상처도, 끔찍한 고통도, 선택의 후회도, 잃어버린 상실감도 모조리 날것 그대로를 치유되는 그 순간까지 몸으로 느끼는 것도 모자라 어쩌면 몇 개는 그 이후까지도 달고 살아야 할지도 모를 일.


그런 당연한 사실이 매 순간 자신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특별한 변화 없이 단조롭기만 한 일상에 찌들 대로 찌든 현대인으로서는 잘못하면 다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전과 비교하는 것이 죄스러울 만큼 압도적으로 강건해진 육체와 초월적인 재생력을 가지게 된 걸 알고 나서도 불안이 가시지 않았으니 오죽할까. 그런데 막상 뚜껑이 열리고 보니 여신이 왜 하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될 거라 말했는지, 그 말의 의미가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가는 기분이었다.


‘하긴. 사용할 캐릭터는 준비되었으니 운용하기만 하면 끝인데 설명이 뭐가 필요했겠어. 그냥 해보면 되는데, 입만 아프지.’


적의 공격은 애초에 통하지 않았으며, 이쪽은 그냥 한 방만 적중시켜도 이기는 실전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부연 설명 따위 필요 없는 무척이나 단순한 게임이었던 것이다.


물론 진행 방식이 상당히 주먹구구식이라 여기까지 진행하기에 약간의 애로사항을 꽃피웠다는 점이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말이다.


적어도 일반적인 게임은 게임을 즐기기 위해 필요한 건 다 알려주면서 하라고 하잖은가?


캐릭터 조작법이라던가, 스킬 사용법이라던가, 단축키 지정이라던가 하는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들 말이다.


게다가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면 상응하는 보상도 준다. 하지만 이 경우엔 그냥 조작법도 없이 하다 보면 다 안다는 식이어서 초반에 꽤나 하드한 플레이가 요구됐다. 그 때문에 심신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이젠 다를 것이었다.


‘무지막지한 힘을 가진 육체, 극악의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생존력, 어떤 상처라도 순식간에 원래대로 되돌리는 재생력, 마지막으로 어떤 공격이라도 막을 수 있는 방어력까지.’


갖추어야 할 기본은 모두 갖췄고, 알아야 할 필수적인 것도 어찌 모두 알았다.


용사는 자신이 바로 그 초반의 어려운 구간을 벗어났음을 실감했다. 그러나 고작 그 정도로 안주할 시간은 없었다.


잠깐 딴생각 좀 한 사이에 기사의 검이 다시 뽑힐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그렇겐 안 되지.’


어차피 이기는 것은 용사. 그것은 불변의 법칙이고 달라지지 않을 결과다. 하지만 이기는 것은 어디까지나 확정된 결과일 뿐, 공격이 막히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였다.


이쪽이 공격할 때마다 매번 방금처럼 위력을 죽여 튕겨내 버린다면 싸움이 길어지기만 할 뿐 시간 낭비 이외의 무엇도 아니었다.


‘이렇게 됐으니 힘 좀 팍팍 써서 빨리 끝내볼까.’


“흐읍.”


용사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원치 않게 올라간 팔을 그 자리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팔 전체에 단단히 힘을 집어넣은 뒤 그대로 아래를 향해 짓누르듯이 내리찍었다.


팔을 구부리거나 펼칠 필요 없이 왔던 길 그대로 중력을 따라서 떨어뜨리기만 하면 되었던 터라 이판사판으로 주먹을 내질렀을 때와 비교해 상당히 빠르고 거침이 없었다.


목표는 기사의 머리.


팔을 내리치는 각도나 떨어지는 위치가 딱 겹치기에 마침 잘 됐다 싶어서 그대로 목표로 조준했다. 이대로 팔을 내리치기만 하면 기사의 투구를 포함한 머리통이 산산조각 날 것이 틀림없었다.


사람의 뇌수가 터져 나오는 꼴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직관하기엔 아직까지 자신의 비위가 그 정도로 강하진 못했지만 이미 팔 전체가 전력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순백의 빛이 둘러져 있어 만약에라도 두개골 한 조각 남지 않을 거란 생각에 뒷일 생각 않고 그냥 질렀다.


역시나라면 역시나라고 할지 기사가 그걸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무형의 압력을 느끼게 하는 용사의 팔이 기사에게 떨어져 내리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인형의 눈은 이번에도 위기감은커녕 감정 하나 비치지 않아 무감정했다.


바로 직전에 그 정도의 검기를 보여줬으면서도 호흡 하나 흐트러짐 없이 다시 한 번 잔상을 남기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하여 누가 손 쓸 틈도 없이 펼쳐진 검광의 난무.


캉, 카타타타탕! 콰앙! 콰앙! 콰앙! 콰아아아앙!


이번 것도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무시무시한 빛과 속도를 보여주었지만 역시 직선으로 뻗어 나오는 주먹과는 달리 아래에서 찍어 내리는 힘은 타격 횟수만으로 처치하는 것이 곤란했는지 검에서 나는 소리부터가 달라져 있었다.


방금 전과 비교해도 상당한 힘이 들어간 검기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팔 전체를 두들긴다. 하지만 그것도 모자라다는 듯 점차적으로 전신을 향해 범위를 넓히더니 이내 양쪽 다 전신이 들썩거릴 정도로 격해져 갔다.


‘이야. 진짜 아무렇지도 않네.’


그런 와중에도 심적으로 평온하기만 한 용사는 느긋하게 에테르의 견고한 방어력을 확인하며 감탄했지만, 기사는 이보다 더 바쁠 수가 없다는 듯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욱 빠른 속도로 허공에 빛의 궤적을 그려냈다.


그 와중에 의도한 듯 의도치 않은 듯 조금씩, 아주 조금씩 둘의 위치가 제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보통 사람이라면 거의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미세한 변화였다. 설령 알아챘다 하더라도 그리 이상할 것도 없는 변화이기도 했다.


무릇 싸움이란 입체적인 것.


서로가 서로에게 위해를 가하기 위해 달려드는데 어지간히 실력의 차이가 나지 않고서야 죽고 싶지 않다면 계속 같은 자리에서만 머무를 순 없었다.


서로가 완벽히 같은 자리에 머무를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그때는 결착이 났을 때뿐.


물론 용사와 기사의 싸움은 일반적인 싸움과는 궤가 달라서 본신의 능력으로 어느 정도 이런 부분을 상쇄시키는 것이 가능하긴 했다.


특히 용사 본인의 순수한 신체능력만 따졌을 때 그럴 마음이 있고, 하려고만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용사에게 제자리를 고수하려는 마음이 있었으면 모르되 그렇지도 않았으니 싸우면서 엎치락뒤치락하다 보면 자연히 원래의 자리와는 동떨어진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


더구나 기사가 쌓아 올리는 공격은 공격을 받는 쪽도 가하는 쪽도 심한 흔들림을 유발했다.


그것을 용사는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대신 힘으로 우직하게 밀고 들어가는 중이었지만 제아무리 용사라도 땅에 발붙이고 있는 이상 관성의 영향을 전혀 안 받는 것도 아니었기에 조금쯤은 위치가 이동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용사는 아주 잠깐 눈길을 주었다가 무심하게 눈을 돌렸다.


‘뭐, 이렇게 격렬한 공격을 받고 있으니 당연하지.’


이것은 이른 바 최후의 발악이 만들어낸 작은 흔적에 불과했다.


그저 지면에 뿌리내린 단단한 거목처럼 흔들리지 않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모든 것을 힘으로 찍어 누르기만 하면 저절로 사라질 한순간의 반짝임일 뿐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힘이라는 아주 단순하고 절대적인 진리를 앞에 두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도 없는 미세한 변화 따위 용사에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그러니까 좀 포기해라!”


용사는 쉴 틈 없이 허공을 갈라 공간의 틈새를 쪼개고, 쪼개고, 또 쪼개면서도 또한 종횡무진 검을 휘두르며 공격을 저지하는 기사의 모습을 바라보며 질린다는 듯 소리쳤고, 가차 없이 내리찍는 힘을 더욱 더 강하게 했다.


그러자 한없이 가속된 그들만의 시간 속에서도 눈부신 속도를 자랑하던 기사의 검이 거력을 받아 순간 눈에 띄게 둔해졌고, 연쇄적으로 그를 중심으로 펼쳐졌던 검막이 삽시간에 종잇장처럼 무너졌다.


그것으로 끝. 잠시나마 가로막혔던 팔이 그 틈을 파고들어 한순간에 아래로 떨어졌다.


용사가 이변을 알아챈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


‘이게 왜 이리로?’


그런 생각이 든 직후 시야가 기울었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떨어져 내린 팔이 ‘아무것도 없는’ 지면을 내리찍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용사의 거대한 힘이 일으킨 커다란 지진과 함께 완전히 충격을 흡수하지 못한 단단한 대지가 뒤집어지면서 사방으로 돌덩어리를 폭죽처럼 터뜨렸다.


대기마저도 진원지에서 멀어지기 위해 흙과 먼지를 퍼 날랐고, 그로 인해 중심지에 한순간이지만 아무것도 없는 공백지대가 탄생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만들어낸 공백지대에서 용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툭툭 먼지를 터는 시늉을 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에테르 덕분에 먼지 한 톨 묻은 건 없었지만 그래도 어쩐지 기분상 이렇게 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메마른 지표면만이 아니라 그 밑의 단단한 암반까지 깨고서 깊은 골을 만들었지만 용사의 몸 어디에도 이렇다 할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깨끗한 정장차림의 모습은 난장판이 된 주변과 비교해 무척이나 이질적이었다.


용사는 태연하게 자신이 만들어낸 폭심지라고 할 수 있을 구덩이를 둘러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이야, 거하게도 싸질렀네.”


이렇게 될 걸 알고서도 한 일이지만 새삼 저질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만큼 굉장한 광경이었다.


고작 주먹을 내리친 정도로 이렇게까지 난장판이 돼버리다니, 만약 주변에 살아있는 것들이 있었다면 방금 걸로 핏물 한줌 남기지 못하고 증발했을 건 확실했다.


그런 조금은 섬뜩해지는 상상을 하려니 원래 그렇게 되었을지도 몰랐을 사람의 형상을 한 인형이 떠올랐다. 그리고 곧바로 미간을 좁혔다.


‘빗나간 거지 이거?’


용사의 시선이 방금 전 자신이 팔을 내리찍었던 장소로 향했다. 아래에서 위로 들쭉날쭉 솟아오른 지면 속에서도 눈에 띄게 가라앉은 자리였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속이 보이지 않는 새까만 구멍 뿐. 그곳에 있었던 존재의 흔적 같은 것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물론 한순간에 모조리 증발해버린 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주변 상황을 볼 때 그럴 가능성은 너무나도 낮았다.


설령 직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여파만 받아도 온전히 몸을 빼내기는 무리가 있을 텐데, 하물며 바로 코앞에서 그걸 받았다고 한다면 이렇게까지 깨끗하게 사라지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완벽하게 피해내지 않는 이상에야 어떤 식으로든 흔적이 남아있어야 정상인 것이다. 무엇보다 아직 여신으로부터 상황이 종료되었다는 그 어떠한 신호도 전달받지 못했다.


둘 중 하나가 행동불능이 되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다고 여신이 직접 단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이 상황 자체가 기사가 살아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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