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aaaaaa

후회막심! 절망용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오렌지F
작품등록일 :
2021.05.26 01:43
최근연재일 :
2021.08.12 18:0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610
추천수 :
11
글자수 :
166,510

작성
21.05.26 13:31
조회
22
추천
1
글자
12쪽

7.

DUMMY

“어때요? 괜찮지 않아요? 이 정도면 할 만하지 않아요? 용사 해볼 마음이 들지 않아요? 용사는 성검의 가호 덕분에 무병장수하는 것도 가능하다구요? 뭣하면 제가 직접 축복도 내려줄 수 있어요.”


성검은 사용자에게 온갖 가호를 걸어서 저주, 역병 따위는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할 것이다. 노화도 상당한 수준으로 지연시켜주니 늙어서 할 고생은 전혀 걱정할 필요 없었다. 게다가 성검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소원을 이용하면 그만이지 않은가?


인간의 욕망 정도야 소원만 있으면 이루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원하는 만큼 언제든지, 얼마든지 생을 구가할 수 있다니까요?”


물론 마왕토벌 이후의 이야기다. 하지만 여신은 괜히 불안만 조장할까 싶어 그 이야기는 쏙 뺐다. 대신 진지하게 생각에 잠긴 그를 보며 은근하게 속삭였다. 어차피 욕망이 자극된다면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곤란해질 터.


‘그러니까 이성적 판단이 흐려진 지금 확실하게!’


그 모습은 옆에서 보면 신이 아니라 성서에 등장하는 인간을 홀리는 악마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용사만 얻으면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신념 하나로 여신은 애써 신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냈다.


정체성마저 흔들리게 만든 여신의 은근한 유혹은 다행히도 큰 효과를 발휘했다.


어떻게든 그런 마음이 들게 하려고 작정하고 신의 위엄까지 발휘해가며 목소리를 간드러지게 만드니 안 그래도 소원성취에 강한 끌림을 느끼던 그의 얼굴이 점점 고뇌로 물들어갔다. 잠시나마 신의 정체성을 훼손해가면서까지 행한 가치는 충분히 있었던 것이다.


아마 그에게 현재의 미련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지 않았다면 그대로 여신의 미성에 홀라당 넘어가 콜을 외쳤을 만큼 여신이 제시한 미래는 달콤했다.


‘어떻게 할까.’


마왕토벌의 보수로 여신이 제시한 것은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인 여신 보증 백지수표. 마왕토벌이 이루어졌다는 가정하에 이보다 더 좋은 보수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목숨이 걸린 문제. 결정에는 신중 또 신중해야 했다.


‘미련이라고 해봤자 태어난 고향이라는 거랑 여태 조금씩 모아온 재산, 사적인 물건 정도가 전부이긴 한데.......’


용사가 된다면 살던 보금자리는 물론 그것들까지 전부 버리고 떠나야 한다. 그냥 다른 지역, 나라로 이주하는 수준이 아니라 사는 세계를 벗어나는 일이었으니 아무래도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거의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소원권에 비하면 딱히 별 것도 아닌 작은 것들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지금까지 모아온 것들이었다. 적어도 소원성취 앞에서 한 번쯤은 돌아볼 만한 애착 정도는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현 직장이 낄 곳은 없다. 쉬지 말고 정력적으로 당사에 이바지하라면서도 수당 하나 제대로 안 주는 곳에 미련을 가지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이직을 고민하게 되었을 만큼 현 직장의 이미지는 최악이었기에 애초에 고려할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그 외에는 뭐가 있더라?’


만약 용사가 된다면 지금 가진 것들을 전부 버리고 가야 할 테니 꼼꼼하게 확인해야 했다. 그래서 혹시 자신도 모르게 놓친 무언가가 있을까 싶어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지만 막상 떠올리려니 그 외에는 딱히 걸리는 건 없었다.


‘가족은, 해당 없고.’


부모님은 어릴 적 교통사고로 일찍 돌아가셨고, 대신 키워주셨던 조부도 노환으로 재작년 운명하셨다. 따로 연인을 사귄 것도 아니었고, 인간관계라고 해봤자 늘 일 때문에 바빠서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점점 소원해지기만 하는 명목상 친구들뿐이었다.


‘어. 그럼 통장 잔고는 얼마나......’


쥐꼬리만한 돈이라도 가기 전에 처리할 수 있으면 처리하고픈 마음이었는데, 막상 액수를 떠올리니 감히 상상하고 싶지 않은 수준으로 처참했다는 사실도 함께 떠올려 괜히 우울해지기만 했다.


우울해진 기분을 다른 기억으로 해소하자며 그 밖에도 애착을 가질 만한 기억이나 물건을 인생을 되돌아본다는 기분으로 하나하나 떠올렸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뭐 하나 괜찮은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로 잘 없었다.


‘잔고 바닥인 것도 서러운데 이것까지 이러네.’


뭐, 덕분에 새삼 자신의 삶을 재인식했다고 할까.


본인의 생각과는 달리 자신은 그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동안 차곡차곡 모은 동전 몇 푼 덕분에 통을 울리는 소리는 나지만 그렇게 모은 것조차도 이런 상황이 되니 별다른 의미를 자아내지 못했다.


이런 중요한 순간에 선택을 저울질할 만한 것이 고작 이런 것들뿐이라니 짙은 회의감이 듦과 동시에 급격한 공허를 불러일으켰다.


‘어렴풋이 그렇지 않을까 예상은 했었지만.......’


그저 일이 바쁘단 핑계로 모른 척, 아닌 척 위안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순간 눈앞에 들이밀어진 진실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마음이 흔들린다.


힘들지만 나름 괜찮은 인생이라고 자위하고 있었던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나 허무한 것이었을 줄이야. 지금 이 순간이 자신에게 있어서 다시없을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흔들림은 더욱 컸다.


‘그냥 용사 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쉽게 포기할만한 것투성이인, 줍는 것보다 떨어지는 게 더 많은 삶보단 차라리 목숨을 걸고 세상을 구하는 길을 가는 쪽이 더 가치 있는 삶이지 않을까? 하고.


용사보다, 세상의 위기를 구하러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자신에게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짓된 자신감이 산산이 부서진 순간, 그것을 거부할만한 이유가 거의 남지 않게 되었다.


있다고 한다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혹은 더 이상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미지의 세상을 향한 막연한 두려움뿐. 그조차도 지금 느끼는 허무함에 비하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까지 생각됐다.


‘하지만 내가 용사라니.’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용사에 걸맞은 인간이 아니었다.


남을 위하는 이타심 따위 없고, 불특정 다수를 사랑하는 박애도 없다.


무언가를 타인과 나누기엔 지닌 그릇도 작고, 가진 것도 없으며, 일신의 재능 또한 평범함을 벗어나지 못하니 영웅이나 용사로서는 빵점짜리라고 할 수 있겠다.


만약 여신이 찾아와 ‘용사의 자질’이라는 것이 있다고, 용사가 되어달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이렇게 인생을 되돌아볼 기회도 없이 몸담은 곳에 순응하면서 끝도 없이 범람하는 인생에 파묻혀 썩어갔을 만큼 평범한 인간.


‘그러니까. 이런 인생이니까 더더욱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용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는 하나 그게 용사를 할 수 없는 이유가 되진 않는다. 오히려 여신이 해달라고 요청하는 상황이었으니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이런 자신이라도 용사가 될 수 있었다.


‘어쩌면, 지금이 기회일지도 몰라.’


보다 나은 삶.

보다 더 의미 있는 삶.

보다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삶.


언제든 교체가능한 집단의 부품역할이 아닌 단 하나뿐인 무언가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기회.


지금의 인생은 너무나도 보잘것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벗어나고 싶다고 언제나 생각했다. 자신과는 다른, 그렇지만 비슷한 동기놈을 보며 복잡한 기분이 든 것은 역시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것을 고를 수 있는 그 녀석이 부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놈이 눈부셨다. 그리 환한 빛이 아니더라도 바로 가까이에서 빛나는 그놈이 너무나도 눈부시게 보였다.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무도 모르게 바랐다.


‘하지만 내겐 그걸 표출한 능력도, 선택할 용기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전에는 볼 수도, 내디딜 수도 없었던 길이 눈앞에 있었다.


평소라면 위험부담을 지면서까지 굳이 내디딜 이유가 없는 길. 다만, 지금까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길은 처음 이곳에 떨어졌던 그 순간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이지만 길을 안내해줄 길잡이 여신이 손을 뻗고 있다는 정도일까.


자신이 조금만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조금만 더 마음 가는 대로 고를 수만 있다면.


‘어쩌면 나도, 특별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다시 말하지만 자신은 용사에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존재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자신이 세상을 구하는 영웅에 맞는다, 맞지 않는다는 것을 떠나서 그저 하고 싶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이 자신의 안에 존재했다.


‘분명 지금의 선택을 후회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면,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도전은 언제 하더라도 가치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다시 생각해도 보수가 나쁘지 않아. 아니, 최고지!’


일개 소시민에 불과한 그가 말도 안 되게 커다란 것을 원할 리도 없었고, 전우주적으로 귀한 물건은 알지도 못하고 갖고 싶지도 않았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소원은 본인의 생활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마왕토벌에 비하면 굉장히 ‘소박한’ 것이 될 확률이 높았다.


그 정도로 소박한 것이라면 한도 내에서 얼마든지 이룰 수 있는 만큼 사실상 부르고 싶은 만큼 부를 수 있는 공수표를 무진장으로 가질 수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기간제한이 없는!’


생각이 점점 한다는 쪽으로 기운 지금에 와서는 마왕토벌의 보수는 여신판매 용사특별세일에 딸린 덤처럼 느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왕 하려거든 챙길 수 있는 건 챙기는 편이 좋았다.


‘그 마왕토벌이 최대의 난관이긴 한데.......’


보수가 이렇게 파격적인데 당연히 위험할 것이다. 아마 그냥 위험한 걸 넘어 죽을 가능성도 컸다. 하지만 그 부분은 아까도 말했듯이 전적으로 여신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다.


그녀는 가능성이 있다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이길 수 있게 만들 거라고 장담했으니, 줄곧 책상에만 앉아있던 나약한 직장인도 마왕토벌이 가능하게 만들 무언가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 있어야 했다. 그래야 자신의 선택이 하룻밤 꿈으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좋아요. 까짓것 용사, 해보죠.”


인생 내내 자신의 평범함에 비관하던 비루한 인간은, 용사라는 번쩍이는 감투에 홀려 자신의 미래를 천사인지 악마인지 모를 여신에게 한 번 걸어보기로 했다.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고민하는 그를 지켜보던 여신은 이윽고 그가 고심 끝에 내놓은 대답에 신의 체면도 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고마워요! 정말. 정말 고마워요! 그 선택에 결코 후회는 없을 거예요!”


이제 테라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여신이 울 것 같은 얼굴로 그에게 다가가 연신 감사를 표했다.


‘이거 너무 좋아하는데?’


용사가 된다는 것도 나름 고심 끝에 내린 대답이었지만 결국 세상을 구한다는 영웅심보다는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내놓은 대답이기도 했던 만큼 감동에 젖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진심어린 감사를 전하는 여신을 보니 어째 양심이 찔렸다.


애써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위안 삼긴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촉촉해지는 여신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볼 자신은 없었으니, 이대로는 자신만 곤란할 뿐이라는 생각에 서둘러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여신님 기분은 저도 잘 알겠으니까 일단 진정하세요. 손도 좀 놓고요. 슬슬 아픈데요.”


"네?"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하는 여신에게 슬쩍 내린 시선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곳에는 신의 악력에 사로잡혀 터질 듯 부푼 가녀린 인간의 손 하나가 존재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후회막심! 절망용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프롤로그 추가 21.06.02 13 0 -
30 29. 21.08.12 8 0 11쪽
29 28. 21.07.25 7 0 11쪽
28 27. 21.07.10 9 0 12쪽
27 26. 21.07.02 10 0 12쪽
26 25. 21.06.20 13 0 12쪽
25 24. 21.06.19 10 0 11쪽
24 23. 21.06.16 8 0 11쪽
23 22. 21.06.11 10 0 10쪽
22 21. 21.06.10 9 0 13쪽
21 20. 21.06.07 13 0 13쪽
20 19. 21.06.04 14 0 12쪽
19 18. 21.06.02 13 0 12쪽
18 17. 21.06.01 13 0 13쪽
17 16. 21.05.31 15 0 13쪽
16 15. 21.05.30 13 0 14쪽
15 14. 21.05.30 14 0 15쪽
14 13. 21.05.29 15 0 13쪽
13 12. 21.05.29 22 0 13쪽
12 11. 21.05.28 25 1 16쪽
11 10. 21.05.27 22 1 14쪽
10 9. 21.05.26 25 1 12쪽
9 8. 21.05.26 24 0 13쪽
» 7. 21.05.26 23 1 12쪽
7 6. 21.05.26 21 1 15쪽
6 5. 21.05.26 26 1 14쪽
5 4. 21.05.26 31 1 12쪽
4 3. +1 21.05.26 31 1 10쪽
3 2. 21.05.26 36 1 13쪽
2 1. 21.05.26 50 1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