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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귿 공방

버서사이-미소녀 천재 대마법사 전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디귿(D)
작품등록일 :
2022.05.12 14:41
최근연재일 :
2023.04.19 19:10
연재수 :
10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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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1,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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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7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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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45. 샤이르와 루리아(3)

DUMMY

“그만.”


퍽!


덴의 검은 사내의 손을 빗겨 바닥에 꽂혔다.


“앞발을 자르면 다음에 또 타고 놀 수 없잖아. 괘씸하긴 해도 이 녀석 만큼 달릴 수 있는 놈이 없잖아. 그리고······.”


소년의 말이 잠깐 멈추자 바닥에 쓰러져 있던 사내는 통곡하며 소리쳤다.


“감사합니다. 도련님, 감사합니다. 다음부터 절대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사내의 외침에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루리아와 정확히 눈을 마주쳤다.


“어린 아가씨한테 끔찍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잖아.”


소년은 언덕을 미끄러지듯 내려와 루리아에게 다가갔다. 루리아는 소년이 바로 눈앞에 닿을 때까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누구니, 넌?”


루리아와 마주선 소년은 다정하게 웃으며 물었다. 지금까지 보여줬던 행동과 사뭇 다른 표정과 목소리였다. 그러나 우리의 루리아가 누구던가? 얼음공주 루리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 맞다. 내 소개부터 해야지. 나는 모흐란 상단의 장자 샤이르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아가씨의 이름은 어떻게 되실까? 응?”


무례함으로 똘똘 뭉친 소년은 다들 예상하셨듯이 14살의 샤이르였다.


“왜 대답을 안 하지? 벙어린가? 아니면 조금 모자라나?”


샤이르는 동의를 구하는 눈빛으로 뒤에 서있는 덴을 봤다. 그런데 웬일로 덴의 표정이 사뭇 심각했다.


“표정이 왜 그래?”


“저··· 혹시, 아르리안 가에서 오셨습니까?”


덴은 샤이르의 질문에 대한 답변 대신 긴장된 목소리로 루리아에게 물었다. 루리아는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


“알아 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저는 모흐란 상단에서 일을 보고 있는 덴이라고 합니다. 이 분은 조금 전 말씀 드린 대로 저희 상단의······.”


“너 뭐하냐?”


“네?”


장난기 가득했던 샤이르의 표정은 없었다. 덴을 노려보는 얼굴엔 진한 분노만 남아있었다.


“누가 네 주인인지 잊었어? 이 계집이 뭔데 내 말까지 무시할 배짱이 생긴 거야? 응?”


“죄··· 죄송합니다. 헌데 이 분은······.”


“시끄럽네. 너 쓸모없구나?”


샤이르는 덴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덴은 말과 행동이 달라 아리송했지만, 일단 손을 내밀어 잡으려 했다. 그러나 샤이르는 신경질적으로 손을 뺐다.


“그 거 말고 칼. 칼 내놓으라고.”


덴은 검을 뽑아 샤이르에게 건넸다. 검을 받아 든 샤이르는 차갑게 말했다.


“무릎 꿇어.”


“네?”


“무릎 꿇으라고. 네가 너무 커서 목을 벨 수가 없잖아. 그러니까 네가 무릎을 꿇어야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결코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도, 도련님, 진정하십시오. 그게 아니라······.”


“응. 진정은 했어. 그러니까 무릎 꿇어.”


덴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샤이르는 진심이었다. 조금 전처럼 장난이 아니었다. 어떤 말로도 설득할 수 없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이었다.


‘살려면?’


도망칠 수는 있다. 그러나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아마 사흘을 넘기기도 힘들 것이다. 고작 사흘 목숨을 연장하고 더 끔찍한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더군다나 도망친 죄는 연좌제를 묻는다. 아내와 두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여기서 죽는 방법 밖에 없었다.


“도련님, 부디 가족들을 부탁드립니다.”


덴은 무릎을 꿇고 눈을 감았다.


“응. 그건 걱정 마.”


샤이르는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당장이라도 내려칠 듯 팔에 힘을 잔뜩 주며 덴을 노려봤다.


“너.”


샤이르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짝!


샤이르의 고개는 루리아에게 닿지도 못하고 다시 반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 * *


짝!


초원을 울리는 경쾌한 소리에 놀란 새들이 침엽수림에서 빠르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덩달아 쌍둥이 자매 사라와 모라도 놀라 자빠질 뻔 했다.


다행히 가시덩굴 너머에서 루리아를 발견했다. 모습을 들키는 한이 있더라도 루리아를 다시 별장으로 안내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침 샤이르 일행이 나타났다.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일이 벌어졌다. 루리아가 모흐란 상단 장자의 뺨을 날려 기절시킨 것이다.


“와, X바, X됐네. 어떡하지?”


이미 신분이 발각된 이상 무작정 뛰쳐나가 루리아만 데리고 빠져나올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경호원으로 보이는 덴의 눈앞에서 샤이르의 뺨을 날렸으니 이대로 넘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몰라. 일단 지켜봐야지. 저 남자가 생각이란 게 박혔으면, 섣부른 행동을 하진 않겠지.”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차라리 모조리 죽이고 증거를 인멸하는 건 어때?”


“미쳤어? 모흐란 상단이야. 웬만한 나라 하나는 살 수 있는 재력이 있는 곳이라고.”


“나도 그걸 아니까 하는 소리 아니야! 그 상단의 장자를 기절 시킨 건 아무 문제가 안 되겠어?”


사라의 말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무리 모흐란 상단이라고 해도 아르리안 가에 직접적으로 항의하긴 힘들 수도 있다. 어쩌면 영원히 입을 다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 이 일에 앙심을 품는다면 귀족은 상상도 하지 못할, 상인만의 방법으로 아르리안 가문을 압박할 지도 모를 일이다.


“눈앞에서 저 지랄 하는 거 보면 열 받는 건 이해하는데 왜 하필 모흐란이냐고. 진짜.”


울고 싶었다. 도저히 두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대신 목숨을 내놓아서라도 해결되면 좋겠지만, 샤이르의 뺨과 루리아의 경호원 자매의 목숨은 비교 대상 조차 되지 못했다.


“일단 지켜보자. 최악의 경우 어떻게든 아가씨는 무사히 보호해야지.”


* * *


루리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기절한 샤이르를 바라보며 아린 손을 흔들며 열기를 식혔다. 적당히 혼만 내준다는 게 감정이 너무 많이 실렸던 것 같았다.


‘너무 세게 때렸네. 손만 아프게.’


상황의 심각성이나 샤이르에 대한 걱정이 아닌 손의 통증만 신경 쓰였다. 놀란 얼굴로 루리아를 보고 있던 덴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아··· 아가씨, 아무리 그래도 이건······.”


“루리아 아르리안. 내 이름.”


덴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르리안 가의 누군가라고 생각했지, 장녀 루리라일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천하의 아르리안 가의 장녀가 혼자 이곳까지 산책 나올 거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다.


“아가씨껜 누가 되지 않도록 이 일은 제 선에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산길이 험하니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눈앞에서 샤이르가 뺨을 맞고 기절했다. 경호를 책임진 덴은 사형 선고를 받은 셈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가해자가 아르리안 가의 장녀였다.


‘어떻게든 내 목숨 하나로 끝낸다.’


쉽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개 경호원의 목숨으로 끝낼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 상황이 상단과 가문의 문제로 불거지게 할 수는 없었다.


덴은 샤이르를 어깨에 들쳐 메고 말을 세워둔 언덕까지 한 번에 뛰었다. 바닥에 쓰러진 사내까지 챙겨 언덕 너머로 사라진 것을 본 뒤에야 루리아도 몸을 돌렸다.


* * *


“나이스!”


“응?”


“아, 아냐. 첫 만남이 썩 유쾌하진 않았네?”


아현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진심을 도로 삼키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루리아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때 그 아이는 지금보다 더 막무가내였어. 그 좁은 저택에 자신만의 왕국을 이루고 있었으니 걸리는 게 없었겠지.”


‘좁은 저택이라··· 대궐 같았겠군.’


이 세계의 귀족에 대해 자세히 모르지만, 대륙 최대인 로메노스 왕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아르리안 가의 장녀의 표현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순진하진 않았다.


“와, 근데 아무리 철이 없어도 그렇지. 고작 그런 걸로 사람을 죽이려고 했던 거야? 그 정도까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엄청 무서운 애였네.”


“아니. 어차피 내가 아니었어도 검을 휘두르지 못했을 거야. 보기보다 그런 면에선 배짱이 부족하거든.”


“그렇지? 아무리 막나가도 그렇지, 사람을 그렇게 쉽게 죽일 수 있겠어? 난 닭 잡는 것도 못 보겠던데.”


사람이 사람을 칼로 베어 죽인다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해 진저리가 났다. 루리아는 그런 아현을 보며 생긋 웃어 보였다.


“뭐야? 왜 웃어?”


“아니. 그냥··· 푸른 숲에서 살던 사람 같지 않아서. 난 자세히 모르지만, 숲에 살면 그런 건 당연히 할 수 있는 줄 알았거든. 꼭 그렇진 않은가봐?”


‘이 기지베 다 알고 하는 소리 아냐?’


루리아의 예쁜 미소가 음흉하게 보였다.


“사람마다 개인차라는 게 있잖아. 난 기본적으로 비폭력 평화주의자거든.”


“아, 그렇구나.”


-그렇게까지 말하니 속아줄게-


아현의 귀엔 이렇게 들렸다.


‘아놔, 음흉한 년······.’


“근데 문제되지 않았어? 좋게 보면 또래 애들끼리 다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집안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


아현은 루리아가 의심을 더 키우기 전에 서둘러 말을 돌렸다.


“응. 아무 일 없었어. 그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됐지만··· 솔직히 나도 조금 걱정하긴 했거든.”


‘네가? 퍽이나.’


“그런데 아무 소식 없어서 잘 해결됐나 보다 생각했어. 그리고 한 달 쯤 뒤에··· 본가로 돌아가기 전에 샤이르를 다시 만났어.”


* * *


어떻게 알았는지 사만다에게 꽤 긴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제가 그 쪽으론 절대 가시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어요? 모흐란 상단입니다.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그렇고 그런 상단과 다르다고요. 그들의 땅에서 문제라도 생기면 어쩔 뻔 하셨어요?”


그래도 다행히 모흐란 상단 장자의 뺨을 때려 기절 시킨 건 모르는 눈치였다. 그 뒤로 꽤 오랫동안 잔소리와 눈치를 받아야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자연스럽게 잊혔다.


덜컹덜컹


‘또?’


3층 발코니에서 느긋하게 책을 읽던 루리아는 어렴풋이 들리는 마차 소리가 거슬렸다. 별장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고즈넉함이었다. 근처에 도시는 물론이고, 변변한 마을도 없는 시골 변두리의 정적이 좋았다. 그런데 이틀 전부터 뜨문뜨문 마차가 지나갔다.


“신경 쓰이세요?”


루리아의 맞은편에서 책을 읽던 수오마가 물었다.


“조금.”


“연회가 있나 봐요.”


루리아의 눈이 살짝 커졌다. ‘연회?’하고 묻는 것 같았다.


“여기서 반나절 거리에 페리알로 가의 별장이 있는데, 거기로 가는 마차더라고요. 마차들이 하나 같이 화려한 걸 보면, 귀족이거나 재력이 있는 사람들 같은데··· 그런 사람들이 모인다는 건 보통 연회죠.”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로 멋들어진 의복을 갖춘 사람, 다양한 음식과 음료, 끊이지 않고 연회장을 울리는 음악, 음악에 맞춰 춤추는 무리··· 수오마의 마음은 이미 연회장에 있었다.


“유명한 집안은 아니에요. 시골의 평범한 귀족 가문인데, 몇 해 전부터 모흐란 상단의 도움을 받아 상업에 손을 댄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그런데 연회까지 여는 걸 보면 제법 성공한 것 같죠?”


루리아는 금세 흥미를 읽고 시선을 다시 책으로 옮겼다. 집안의 이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교 모임이나 연회에 참석한 적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좋은 기억은 하나도 없었다.


“루리아 아가씨? 저는 ^%&* 가문의 차남······.”


“연회가 참 고급스럽습니다. 저는 @#$% 가문의 장남······.”


“여전히 아름다우십니다. $%^* 가문의 장남······.”


시끄럽고 복잡한 걸 싫어하는 루리아는 늘 구석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어떻게 알아봤는지 문어, 꼴뚜기, 해삼 같은 사내들이 쉼 없이 다가왔다. 가문도, 이름도, 얼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해양 생명체들은 무시를 무시했다. 대답 한 마디 없는 루리아의 주변에서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르리안 가의 장녀라는 위치는 루리아의 뜻을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 요리조리 피하고 모른 척 무시를 해도 1년에 서너 번은 어쩔 수 없이 고역을 치러야 했다.


똑똑똑


수오마가 문을 열자 사만다의 다급한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가씨, 루리아 아가씨는?”


“발코니에 계세요. 무슨 일 있어요?”


사만다는 수오마를 지나쳐 빠른 걸음으로 발코니로 향했다. 발코니에서 그녀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은 루리아는 책을 덮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가씨, 혹시 지난번에 모흐란 쪽에 가셨을 때 무슨 일 있었어요?”


뜨끔했지만 바로 말하지 않았다. 사만다의 표정만 봐서는 그 일을 알고 하는 말 같지 않았다.


“조금 전에 그쪽에서 서신이 왔어요.”


“서신이요? 뭐래요?”


“모흐란의 장자 샤이르가 직접 보낸 서신이에요. 내일 저녁에 열리는 페리알 가의 연회에 함께 가고 싶대요. 오후에 직접 모시러 온다던데··· 혹시 그때 만나셨던 거예요?”


“얼핏.”


“정말요? 그럼 왜 말씀을 안 하셨어요? 듣자니 상종 못할 망나니라고 하던데. 무슨 일 겪으신 건 아니죠?”


루리아는 고개만 끄덕였다.


“하긴··· 생각이란 게 있는 사람이면, 아가씨께 함부로 굴 수는 없었겠죠. 참, 어떻게 할까요? 안 가신다고 할까요?”


“응.”


“잘 생각하셨어요. 아무리 모흐란이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상인 집안이에요. 그런 것들과 상종하실 필요 없어요. 더군다나 페리알 가는 소문도 썩 좋지 않아요. 이번 연회도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고요.”


신분을 나누는 듯한 사만다의 말투가 거슬렸지만 굳이 말을 붙이지 않았다.


“거부 서신은 제가 써서 보낼게요. 어딜 우리 귀한 루리아 아가씨를 넘보길 넘봐?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하여튼 돈만 굴리는 것들은······.”


사만다는 방을 나설 때까지 입을 쉬지 않았다. 그렇게 상황이 정리될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다음날 정오 무렵 샤이르가 찾아왔다.


“어제 분명 서신을 드렸는데, 못 받으셨나요?”


사만다의 차가운 눈빛이 샤이르를 쏘아봤다. 그러나 샤이르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받았습니다. 아가씨의 뜻도 잘 알아들었습니다. 제가 찾아뵌 이유는 다름 아니라 인사라도 드릴까 싶어서입니다. 저희 마당에서 얼핏 뵈었을 땐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했죠. 그런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이웃에 루리아 아가씨가 계신데 찾아뵙지도 않는 건 무례가 아닌가 싶더군요. 그래서 인사를 드리고자 온 것입니다.”


누가 봐도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한 핑계였다. 하지만 단순한 ‘인사’를 별 이유 없이 무시할 수도 없었다.


“아가씨께 여쭤볼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다니르를 남겨두고 별장 안으로 들어간 사만다는 잠시 뒤 루리아, 수오마와 함께 나왔다. 문을 열고 나온 루리아를 본 샤이르는 최대한 격식을 차려 인사를 건넸다.


“다시 뵙게되어 영광입니다. 루리아 아가씨.”


루리아는 고개만 살짝 숙여 답례했다.


“어제 서신으로 간략하게 말씀드렸던 것처럼 연회에 함께 가고 싶습니다.”


“이것 보세요. 그 이야기는 이미 끝난······.”


발끈하는 사만다를 무시하며 샤이르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지난번 짧은 만남에 답례를 제대로 못했습니다. 제가 그때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본인의 실수라고 말했지만, 루리아의 행동을 빗댄 말이었다.


‘무시할까?’


이미 제법 시간이 지난 일이다.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되겠지만, 아무런 증거도 없는 마당에 막무가내 우길 사항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대는 모흐란 상단이었다.


당장은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이 일을 빌미로 가문에 피해를 줄지 모른다. 별장까지 찾아와 그때 일을 꺼내는 것을 보면 지나친 추측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언젠가 상단주에 앉을 모흐란의 장자였다.


“그러죠.”


루리아는 대답과 동시에 몸을 돌려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사만다는 놀란 토끼 눈으로 루리아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거절해도 무방한 샤이르의 요청에 응하는 것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루리아가 연회를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아는 사만다로썬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화려하지 않은 드레스를 정갈하게 입고 나온 루리아는 샤이르의 안내를 받으며 마차로 향했다. 마차 옆에는 덴이 서 있었다. 루리아와 눈이 마주친 덴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눈인사로 답례한 루리아는 덴의 손을 잡고 마차에 올랐다.


샤이르까지 마차에 오르자 덴은 문을 닫고 마부석에 앉아 마차를 출발했다. 옅은 먼지를 날리며 출발한 마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사만다는 굳은 표정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사라, 모라.”


사만다의 호명이 끝나기 무섭게 쌍둥이 자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일을 키우지 않으려 루리아가 샤이르의 뺨을 때린 건 숨기기로 했다. 하지만 이젠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 쌍둥이 자매의 짧은 설명을 들은 사만다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아··· 하필이면 저 망나니를······.”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생각에 잠겼다. 졸지에 죄인이 된 쌍둥이 자매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거운 정적이 별장 앞에 감돌았다.


“너희 둘은 서둘러 아가씨를 좇아.”


침묵을 깬 사만다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때 일에 대한 책임은 나중에 물을 테니 아가씨 곁을 철저히 지켜. 지난 번 같은 일이 다신 일어나면 안 돼.”


“알겠습니다.”


쌍둥이 자매는 대답 소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모습을 감췄다. 사만다는 서둘러 별장 안으로 들어가며 소리쳤다.


“수오마는 나랑 같이 페리알 가로 갈 테니 서둘러 준비해. 다니르는 준비할 수 있는 병력을 최대한 모아 페리알 가 영지 외곽에 주둔시켜 주세요.”


“네? 병력이요?”


연회에 간다는 말에 신이 나 방으로 뛰어가는 수오마와 달리 다니르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었다.


“그 연회에 대한 소문이 썩 좋지 않아요.”


“소문이라면 어떤······.”


“우리와 연관이 없을 것 같아 자세히 알아보진 않았어요. 그런데 모이는 사람들이 수상해요. 전부 암상(暗商)과 연관된 소문이 있는 귀족들이에요. 아가씨께서 워낙 연회를 싫어하셔서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아무튼, 서둘러 주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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