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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귿 공방

버서사이-미소녀 천재 대마법사 전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디귿(D)
작품등록일 :
2022.05.12 14:41
최근연재일 :
2023.04.19 19:10
연재수 :
10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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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0
추천수 :
176
글자수 :
761,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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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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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68. 카델 침공(1)

DUMMY

* * *


얀느의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오르는 샤이르의 팔엔 두꺼운 붕대가 칭칭 감겨있었다. 칼리에게 대충 듣긴 했지만, 붕대를 감을 정도로 다쳤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괜찮아? 많이 다친 거야?”


루리아는 한걸음에 달려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샤이르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아. 별 거 아니야.”


샤이르는 얀느의 어깨에서 팔을 내리고 호기롭게 몸을 움직여 보였다. 그러나 고통을 참을 수 없었는지 얼굴은 이내 일그러졌다.


“손목이 부러졌어.”


얀느가 얕은 한숨을 뱉으며 대신 말했다. 부러졌다는 말에 루리아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어쩌다? 피아한테 던져질 때 손이 꺾인 거야?”


“아니. 낙법을 잘못 했던 것 같아. 심각하진 않으니까 신경 쓰지 마. 뼈는 맞췄고, 3주 정도 조심하면 된대.”


얀느와 칼리는 샤이르의 바뀐 말투에 진저리쳤다.


‘드디어 미쳤나? 저 말투는 뭔데?’


‘죽었다 살아나도 이정도로 변하면 문제 있는 거 아니야?’


무례하고 잔뜩 날이 선 말투는 성천과의 사건 이후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사람이 큰 사건을 겪으면 변하기도 하니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엄마가 어린 자식을 대하는 듯한 부드러운 말투는 영 적응되지 않았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하던데··· 확실히 처맞으면 고쳐지긴 하는구나.’


* * *


하늘을 찌를 듯 칼날처럼 솟은 수많은 산봉우리가 저물어가는 태양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물들어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칼날 산맥에 찾아오는 흔한 저녁 풍경이었다. 그런데 언뜻 삭막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 위로 낯선 물체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배였다. 그것도 엄청난 크기의 함선이었다. 승선인원이 이천여 명이나 된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여객선인 아틀라네스호와 비슷할 정도였다. 바람을 받아 잔뜩 부푼 거대한 돛을 펼친 세 척의 함선은 북쪽을 향해 유유히 흘러갔다.


“사령(司令), 바람이 찹니다. 그만 들어가시지요.”


선미에 서서 시원하게 불어오는 늦가을 바람에 회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던 사내가 몸을 돌렸다. 화려한 로브를 걸친 거구의 사내와 낡은 회색 로브를 걸친 여자가 서 있었다. 회색 머리 사내는 체구가 상대적으로 작은 여자에게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주작님, 얼마나 더 가야 합니까?”


“이 바람이 유지된다면 두어 시간 후면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부드러운 음색과 달리 무뚝뚝한 대답이 돌아왔다.


“해가 완전히 진 뒤에야 도착하겠군요. 야간전투라··· 카델이 무너지는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게 다소 아쉽습니다.”


주작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옆에 서 있던 거구의 사내가 마뜩치 않은 모습으로 그녀를 흘겨봤다.


“주작님은 카델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대부분의 교수와 학생들이 자리를 비웠다고 하나 대륙 최고의 무관학교니 제법 버티겠죠?”


그의 목소리엔 노골적인 조소가 섞여있었다. 주작은 대답 대신 짧은 한숨을 뱉었다. 주작의 한숨에 거구의 사내가 성난 얼굴로 몸을 돌려 주작을 노려봤다.


“사령께서 질문하고 계십니다! 예의를 갖추십시오!”


얼굴을 가리고 있는 로브 속에서 주작의 날카로운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거구의 사내는 눈빛에 압도되어 움찔 놀라 뒤로 한 발작 물러섰다.


“타쿤. 그러면 안 됩니다. 지금이야 일시적으로 제가 이 함대의 지휘권을 가지고 있지만, 왕국 내 서열은 주작님이 훨씬 높습니다.”


사내는 타쿤을 대신해 주작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타쿤이 아직 왕국의 질서와 예절에 대해 잘 모르고 한 말입니다. 너른 마음으로 용서해주십시오.”


“괜찮습니다.”


주작은 여전히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드린 질문에 대해 대답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같은 인간인 주작님의 견해를 전투에 참고하고자 합니다.”


그럴듯한 핑계를 댔지만 노골적인 비아냥이 가득한 말투였다.


“같은 인간이라··· 사령은 여전히 인간을 무시하시는군요.”


“무시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그저··· 혐오할 뿐이죠.”


평온하던 사내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무리를 지어 파괴와 살육을 일삼는 것도 모자라, 세계수 뿌리를 독점해 제 살만 찌우는 그 욕심! 같은 종족마저 배신하고 죽이기를 서슴치 않는 잔혹함! 모든 생명의 정점에 서 있다고 착각하는 그 오만함까지! 어찌 혐오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이번 출정에 그토록 적극적이었군요.”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선봉에 설 것입니다. 이 땅 위의 모든 인간을 굴복시키고 멸할 때까지 제가 선봉에 설 것입니다. 그 서막의 불꽃을 카델에 피울 수 있는데 어찌 제가 적극적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작은 사내의 날선 분노에 동요하지 않고 무덤덤한 얼굴로 듣고 있었다. 사내는 처음부터 주작의 반응을 기대하지 않았던 듯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자꾸 대답을 회피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드린 질문이 혹 거북하셨습니까?”


“전하께서 내리신 임무를 수행하는데 두어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카델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도 해가 뜨기 전에 마무리할 수 있겠죠.”


주작의 대답을 들은 사내의 얼굴이 활짝 폈다.


“주작님도 그리 보신다니 이 하비르도 안심이 됩니다. 하하하······.”


“다만.”


호탕하게 웃던 하비르가 웃음을 멈추고 주작의 이어지는 말에 집중했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어떤 일이 일어난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죠.”


“무슨 말씀입니까? 변수가 될 만한 요소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천 년입니다. 무려 천 년이나 카델은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 긴 역사 동안 단 한 번도 무너지지 않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방심하지 말라는 말씀이셨군요. 전 또 숨겨진 무기라도 있는 줄 알고 긴장했지 뭡니까? 하하하.”


노골적인 무시와 조롱이었다. 주작을 대하는 하비르의 태도는 왕국을 떠난 순간부터 시작됐다. 서열에 따른 예의를 차리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 속엔 항상 무시와 조롱이 짙게 묻어있었다.


‘건방진 인간 년. 네 년이 언제까지 내 위에서 나를 내려다 볼 거라고 생각한 거냐? 이번 임무만 무사히 마치면 네 년 위에 서는 건 시간문제다. 고작 열 단계. 비록 네 년의 전투력이 나보다 뛰어나다고 하나 승리라는 업적이면 뛰어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인간인 주작의 서열이 자신보다 높은 게 항상 불만이었다. 하지만 서열은 왕국의 절대적인 질서 중 하나였다. 아무리 눈엣가시 같은 존재라고 해도 하비르가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주작의 서열이 더 높음에도 이번 출정에 하비르가 지휘를 맡게 됐다. 단숨에 서열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압도적인 승리, 완벽한 승리라면 전하께서 분명히 내 능력을 인정해 주실 것이다. 언제까지 언저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지. 반드시 전하께 인정받아 올라갈 것이다. 오르고 올라 언젠가 전하의 옆에 앉을 것이다. 두고 봐라. 날 무시하고 내려다보던 것들을 내 발 아래 꿇릴 것이다.’


하비르의 야욕은 고작 주작을 밟는 것으로 만족될 것이 아니었다. 주작이 인간인 것이 거슬릴 뿐이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존재였다. 그의 궁극적 목적은 절대적이고 유일하며, 누구도 내려다 볼 수 없는 그런 자리였다.


‘제법이야. 욕망을 향한 열망만 놓고 봐도 훌륭해. 그러나 너무 거침이 없어. 뒤를 생각하지 않고 행동할 인물은 아닌데··· 뒤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했다면 칭찬해줄 만 하군.’


주작은 하비르의 야욕을 완벽하게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 야욕의 과정에 자신을 누르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그러나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마치 그것을 바라는 것처럼.


“사령!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야무르가 급히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타쿤이 대신 물었다.


“카델의 성벽 위에서 분주한 움직임을 확인했습니다. 거리가 멀어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전투 준비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투 준비라고? 우리가 오는 것을 어떻게 알고? 망원경.”


타쿤은 야무르가 건넨 망원경을 눈에 가져댔다. 무수한 칼날 산맥의 봉우리 너머로 망원경을 움직여 카델의 성벽을 찾았다. 야무르의 보고대로 성벽 위에서 분주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한 번 보시겠습니까?”


하비르는 고개를 저었다.


“그대가 보기에도 전투 준비로 보입니까?”


“그렇습니다.”


“다행이네요. 인원이 없어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하는 추태를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영 싱거운 전투가 되진 않을 것 같군요.”


“원래 가만히 있는 사냥감은 재미없는 법 아닙니까? 팔딱팔딱 뛰면서 몸부림 쳐야 잡는 맛이 있지요. 하하하.”


“옳은 말입니다. 역시 타쿤은 뭘 좀 아는군요. 하하하.”


예상하지 못한 적의 빠른 대비는 이들에게 전혀 우려가 되지 못했다. 그저 다 잡은 사냥감의 마지막 몸부림 정도로 여겼다. 주작은 그들의 여유에 동조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그런데 저들의 대응이 생각보다 빠르지 않나요?”


“무슨 말씀이신지······.”


타쿤은 하비르가 던진 돌발 질문의 뜻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떻게 벌써 방어 준비를 하고 있죠? 우리도 지금에야 저들의 움직임을 확인한 거 아닌가요? 하늘을 감시하지 않고서 저렇게 빠른 대응이 가능하긴 어려울 것 같지 않나요?”


“그 말씀은 우리의 출정을 알고 있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뇨. 그건 아닐 겁니다. 그렇다기엔 대응이 미비합니다. 그보다 상시 하늘을 감시하고 있다고 보는 게 합당하죠. 육상으론 병력의 진입이 불가능한 곳이니 하늘을 감시할 수도 있지만······.”


하비르는 시선을 주작에게 옮기며 말을 이었다.


“하늘을 날아 공격할 적이··· 있을까요? 제가 알기론 카델 반도에 비행 가능한 생명체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들은 어째서 하늘을 감시하고 있었을까요?”


“혹··· 저들도 비행석을 알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비행선을 만들 수 있는 어떤 존재에 대한 침공을 예상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타쿤은 하비르의 의중을 정확히 짚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비행석은 우리 쥬노에서만 생산됩니다. 제가 알기론 비행석은 물론이고 그 존재여부 조차 외부로 나간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들이 세상에 알려진 적 없는 비행석에 대해 알 수 있을까요? 같은 인간으로써 어떻게 보십니까?”


노골적인 비아냥, 의심, 비하가 섞인 질문이었다.


“우연일 겁니다.”


침묵을 지키고 있던 주작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연이라고요? 그건 너무 성의없는 답변 아닙니까?”


“만약 비행석이나 비행선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면 그에 대응할 무기가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의 수성 준비는 지상병력에 맞춰있었습니다.”


타쿤은 망원경을 통해 본 성벽 위 모습을 떠올렸다. 바쁘게 움직이는 백 명 남짓한 인간들 사이 어디에도 비행선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는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그들의 수성 준비는 지상병력을 상대하는 것으로 보였다. 정말 우연히 얻어 걸린 건가?’


왕국에서 비행석이나 그 정보가 외부로 흘러나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하비르의 의심보다 주작의 말이 더 설득력 있다고 봐야했다.


‘하긴 그게 무슨 상관인가. 저들이 어떤 준비를 하던 멸망은 피할 수 없는 것을. 저런 의미 없는 준비 따위··· 가만, 그런데 어떻게 안 거지? 성벽 위가 여기서 보인다는 말인가? 육안으로?’


속으로 감추고 있지만, 놀란 건 하비르도 마찬가지였다. 육안으론 성벽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 거리임에도 주작은 직접 보는 것처럼 얘기했다.


“나름 일리 있는 말씀이군요. 그러나 다른 나라에 비행선이 없다고 확신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왕국의 정보가 외부로 유출 되었으리라 보긴 힘들지만, 쥬노 외의 지역에서도 비행석이 있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겠죠. 허나 비행선은 없습니다.”


“여전히 확신하시는군요. 우리가 모르고 있다고 해서 없는 것이라 보긴 어렵지 않을까요?”


의미 없는 대화였다. 그러나 함대의 지휘를 맡은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태도가 불만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간인- 주작의 의견을 전적으로 동의하는 게 자존심 상했다. 그래서 의미 없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 정도 했으면 적당히 숙이고 들어올 줄도 알아야지. 서열 조금 높다고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더러운 인간 계집.’


그러나 주작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답은 하비르의 생각과 전혀 달랐다. 아니, 상상조차 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제가 모르고 있다면 그건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주작의 차가운 음성과 함께 흘러나온 온몸이 베일 것 같은 지독한 살기에 타쿤은 물론이고 하비르도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뭐, 뭐냐··· 이 살기는··· 말도 안돼. 이 자의 서열이 정말 백 위 언저리에 머물고 있단 말이야? 믿을 수 없다.’


상위 서열 누구에게서도 느껴본 적 없는 존재감이었다. 도저히 손에 닿을 수 없는 아득한 존재, 한 명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전하와 맞먹는 존재감이라니. 말도 안 된다. 이런 자가 어째서······.’


왕국에서 주작의 서열은 92위였다. 낮은 위치는 아니었지만, 왕국에 영향력을 발휘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느낀 존재감만 놓고 봐도 상위 서열에 서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실력을 드러내지 않고 낮은 서열에 머무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 * *


“아자! 오늘도 끝났다!”


마지막 물자를 창고 넣고 나온 칼리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이제 이틀만 하면 이 고생도 끝이네. 석 달··· 정말 징그럽게 길었다.”


얀느의 표정도 칼리만큼 밝았다. 그러나 곁눈질로 샤이르의 표정을 살피는 루리아의 얼굴은 전혀 밝지 않았다.


“우리까지 빠지면 샤이르 혼자 힘들 텐데.”


“아, 진짜! 팔도 다쳤는데 혼자 어떻게 하지? 학장님께 말씀 드려서 팔이 나을 때까지 봉사활동을 유예해 달라고 해야 하나?”


“에이, 그건 아니다. 그럼 한 달이나 시간이 늘어나는 거잖아. 차라리 조금 고생하더라도 일찍 마치는 게 낫지. 안 그래?”


동의를 구하는 칼리에게 샤이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얼른 내려가서 밥이나 먹자.”


적응 안 되는 샤이르의 표정과 부드러운 말투에 남몰래 진저리를 치며 얀느가 먼저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뭐해? 밥 먹으러 안 갈 거야?”


계단을 내려가던 얀느가 칼리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칼리는 몸을 돌리지 않았다. 대답도 없었다.


“안 갈 거냐고?”


“너희들 저거 보여?”


“뭐라는 거야? 배고파 죽겠다니까 뭐가 보인다는 거야?”


얀느는 도로 계단을 올라 칼리 옆에 섰다.


“뭐? 뭔데?”


칼리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먼 하늘을 가리켰다. 어느새 곁에 다가온 샤이르와 루리아도 칼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에 집중했다. 서서히 물들어가는 서쪽 하늘을 두루 살피던 세 사람의 시선에 아주 작은 점이 포착됐다.


“저 검은 점 말하는 거야?”


“응. 뭐가 떠 있는 것 같지 않아?”


“새 아니야?”


“저렇게 멀리 있는데 보일 정도면 새는 아닐 거야.”


루리아의 차분한 대답에 수긍하며 검은 점의 정체를 파악하기위해 온 신경을 집중했지만 형태조차 파악되지 않았다.


“드래곤 아닐까?”


샤이르에게 세 친구의 시선이 쏠렸다.


“전에 리암 교수님이 말씀하셨잖아. 칼날 산맥 어딘가에 드래곤이 살고 있다고. 하늘을 날 수 있는 생물 중에 가장 거대한 게 드래곤이잖아.”


“망원경!”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물자 창고로 뛰어갔다. 지난 세 달 동안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며 물자를 나르고 정리한 탓에 망원경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망원경을 찾아들고 나오는 네 사람의 표정은 기대와 환희로 가득했다.


1급 몬스터, 전설 속의 생물,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는 고차원의 존재 등 드래곤의 수식어는 다양했다. 그러나 드래곤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 사료와 구전으로 전해 들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드래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닥친 것이다. 매사에 무미건조하고 무덤덤한 루리아도 들뜬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다시 성벽으로 돌아온 네 사람은 하늘에 떠있는 검은 점을 찾았다.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형체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흐릿하게 흔들리는 형체를 확인하기 위해 바쁘게 손을 놀려 초점을 맞췄다. 망원경을 이리저리 돌리자 흐릿했던 형체는 점점 본래 모습을 찾아갔다.


“어?”


“뭐야? 저거?”


“잘못 보고 있는 거 아니지?”


“······.”


동그란 망원경에 잡힌 건 놀랍게도 세 척의 거대한 배였다. 거대한 돛을 활짝 펼치고 하늘을 날고 있는 배였다.


“저게 말이 돼? 어떻게 배가 하늘을 나는 거야?”


“나 꿈꾸고 있는 거 아니지? 너희들도 다 저게 보이는 거지?”


보고 있지만 믿기지 않았다. 환상이 아님을 알면서도 몇 번이나 눈을 껌뻑이며 다시 확인했다. 그러나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이쪽으로 오고 있는 건가?”


“돛이 부푼 걸 봐선 바람을 타는 것 같은데··· 바람이 이쪽으로 불긴 하지만 꼭 여기로 온다고 볼 수 없는 거 아니야?”


“그런가? 그럼 교수님께 알려야 하나?”


칼리는 의견을 구하며 친구들을 둘러봤다. 그러나 누구도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샤이르와 얀느는 난처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보며 눈치만 살폈다.


“루리아는 어떻게 생각해? 어라? 루리아?”


고개를 좌우로 돌려봤지만 루리아의 모습은 성벽 위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점점 멀어져가는 다급한 발소리만 들렸다. 고개를 내밀어 밑을 보니 루리아는 이미 계단을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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