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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귿 공방

버서사이-미소녀 천재 대마법사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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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귿(D)
작품등록일 :
2022.05.12 14:41
최근연재일 :
2023.04.1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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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1,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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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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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46. 샤이르와 루리아(4)

DUMMY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루리아는 조각상처럼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앉아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샤이르의 능글맞은 눈빛과 미소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일전엔 실례가 많았습니다. 설마 루리아 아가씨일 거라곤 생각도 못했죠. 덕분에 할머니께 크게 혼이 났습니다. 저를 무척이나 예뻐하시는 분이신데, 그렇게 화를 내시는 모습은 처음 봤죠. 제가 얼마나 못난 행동을 했는지 알겠더군요. 그날의 제 무례를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말과 달리 샤이르의 표정은 여유가 가득했다. 루리아가 고개만 살짝 끄덕이자 기다렸다는 듯 다시 말을 이었다.


“지역의 별 볼일 없는 귀족 가문이 주최하는 그렇고 그런 연회입니다. 저도 가까운 곳에 있다는 이유로 참석하는 거라 오래 있을 생각은 없습니다. 연회의 목적을 확인하면 바로 돌아올 생각입니다. 저도 모르는 사람들로 복작거리는 연회는 썩 내키지 않더라고요.”


‘저도?’


루리아가 연회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귀족 가의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밝히지 않은 성향을 은근히 꺼내 동질화 시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가 왜 이런 별 볼일 없는 연회에 루리아 아가씨를 모시는지 궁금하시죠? 아시겠지만, 전 앞으로 모흐란 상단을 이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대 아르리안 가의 장녀이신 루리아 아가씨와 껄끄러운 기억을 담아두고 있으면, 훗날 서로 불편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참에 묵은 기억은 지우고,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습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이 인연이 훗날 저희에게 좋은 영향이 될지. 하하하.”


어른스러운 척 하는 어색한 말투가 거슬렸다. 얼굴 가득한 여유로운 표정도 보기 불편했다. 그래도 몇 시간만 참으면 지난 행동을 갚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참았다.


마차는 한참을 달려 페리알 가의 저택 앞에 도착했다. 마차가 멈추자 샤이르는 품을 뒤져 화려하지 않은 가면 하나를 꺼내 루리아에게 건넸다.


“다행히 가면 연회입니다. 아가씨의 신분을 이런 곳에서 밝힐 필요는 없겠죠.”


덴이 마차 문을 열자 가면을 쓴 샤이르가 먼저 내려 손을 내밀었다.


* * *


“으으~ 오글거려. 고작 14살짜리가 그런 말투를 쓴다고? 원래 귀족은 다 그런 거야?”


5년 전 샤이르의 얼굴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금의 샤이르 얼굴에 대입해 봐도 소름끼치게 어색한 말투였다.


“경우에 따라선······.”


“그런데 겨우 연회에 동행하는 게 뺨 맞은 걸 덮을 수 있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뺨 맞고 기절한 게 더 큰일 같은데.”


“샤이르가 부탁할 때 들먹인 핑계가 그거였어.”


“응. 네가 조금 전에 그렇게 말했잖아. 그런데 그게 왜?”


“경중을 떠나서 그 사건에 대한 부탁이었고, 난 응했으니 갚은 게 되는 거야. 그게 그 아이의 계산법이야.”


“난 이해가 안 되네. 우리 고향 속담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거든. 받은 대로 돌려준다는 뜻이야.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샤이르가 손해 보는 것 같은데.”


“상인의 계산법이니까.”


알 듯 모를 듯 아리송했다.


“근데 연회라는 건 어때? 너무 멋질 것 같은데.”


영화에서 보던 화려한 연회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화려한 예복을 한껏 갖춰 입은 귀족들의 손에 샴페인이나 와인이 들려 있고, 자유롭게 다가가 인사를 주고받는다. 삼삼오오 모여 묵은 대화를 나누고 새로운 만남에 기뻐한다.


그 와중에 군중 속에서 눈을 마주치는 남녀가 있다. 가면 속 눈빛만으로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남자가 먼저 다가가 정중히 인사하고 소개한다. 여자는 부끄럽게 인사를 받는다. 때마침 음악이 흘러나온다. 지나가는 웨이터의 쟁반에 술잔을 올린 남자가 여자에게 손을 내민다.


Shall we dance?


여자는 머뭇거리다 남자의 손을 잡는다. 남녀는 손을 잡고 연회장 중앙으로 향한다. 그곳엔 이미 다른 커플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음악에 맞춰 남자가 먼저 인사하고 여자가 인사를 받는다. 조명은 그들을 비추고 어색한 듯 부끄럽게, 능숙하고 화려한 춤을 펼친다. 들러리들은 춤을 멈추고 아름다운 남녀에 주목한다. 그리고 춤의 막바지에 부둥켜안은 남녀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서로의 입술을······.


“꺄아아!!”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아현은 키스하는 장면을 앞두고 부끄러운 비명을 질렀다. 루리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연회는 대부분 비슷해. 샤이르와 갔던 곳도 그랬고. 그 일이 있기 전까진.”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루리아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졌다.


* * *


화려한 예복과 가면으로 치장한 수십 명의 사람으로 번잡한 연회장의 분위기는 그다지 특별할 게 없었다. 먹고 마시고 삼삼오오 모여 친목을 나누는 모습은 지극히 평범했다.


루리아는 샤이르와 연회장의 한적한 구석에 서있었다.


“지겨우셔도 조금만 참으시죠. 큰 기대는 하고 있지만··· 중대발표라고 하니 일단 들어보긴 해야겠죠. 아, 마침 시작하는군요.”


풍채가 좋은 남자가 단상에 오르자 한 번도 끊이지 않던 연주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연회장에서 유일하게 가면을 쓰지 않은 풍채 좋은 남자는 주최자인 페리알 리안도였다. 연주가 완전히 멈추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리안도에게 쏠렸다.


“이런 조촐한 행사에 참여해 주신 여러 귀빈들께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이 외진 곳까지 여러분을 초대한 페리알 리안도입니다.”


짝짝짝


박수소리가 연회장을 울렸다.


“저희 페리알 가는 별 볼일 없는 지방의 초라한 가문이었습니다. 조상의 이름을 물려받아 귀족입네 할뿐 평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죠. 아마 여기 계신 분들 중 10년 전까지만 해도 저희 가문의 이름을 들어보신 분이 거의 없으실 겁니다. 워낙 가난했으니까요.”


하하하


형식적인 우스갯소리와 형식적인 웃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대륙 최대, 최고인 모흐란 상단으로부터 사업 제안을 받았습니다. 거절 할 수 없을 정도로 솔깃한 제안이었습니다. 전 단번에 그 손을 잡고 이렇게 목에 풀칠 할 정도까지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하하하.”


소문은 파다했다. 모흐란 상단을 등에 업고 수 년 만에 지방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칠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소문이었다.


“모흐란 상단에도 연회 초대장을 보냈는데 오셨는지 모르겠군요. 만약 이곳에 계시다면! 저의 감사하는 마음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모흐란 상단을 위하여!”


위하여!


리안도가 잔을 내밀자 참석자들도 잔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샤이르는 잔을 들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이야길 하려고 모흐란을 밑밥으로 던지는 거지?”


가면에 가려져 표정이 보이진 않았지만, 목소리는 불쾌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페리알 가와의 거래는 모흐란 상단에 흔한 일이었다. 경제적 상황이 좋아진 그들이 일 년에 몇 번씩 연회 초대장을 보내는 것도 낯선 일이 아니었다. 일일이 답할 필요도 없는 초대장에 샤이르가 직접 온 이유는 한 문장 때문이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모흐란 상단을 초대하기 위한 과정으로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페리알 가의 움직임 중 미심쩍은 부분이 여럿 있었다. 엘렌은 초대장의 문장을 확인하기 위해 샤이르를 보낸 것이었다.


“다시 한 번 모흐란 상단에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그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이 것을 완성 시킬 수 있었으니까요. 이름하여 ‘검은 모래’입니다.”


리안도는 품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유리병엔 검은색 모래가 가득 들어 있었다.


와아아아!


리안도의 손에 들린 유리병을 보자 함성과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다들 저게 뭔지 아는 건가?’


초대장에 적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란 문장이 떠올랐다.


“3년이었습니다. 무려 3년 동안 모든 것을 쏟아 부었습니다. 거기에 여러분들의 지원이 더해져 드디어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여러분들께 성과를 보여드리고 싶어 며칠 밤잠을 설쳤는지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세 명의 남자가 분주하게 단상으로 다양한 물건을 날랐다. 리안도는 물건을 하나씩 들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 안에 이렇게 정제한 검은 모레를 넣습니다. 위험하니 조심해야겠죠? 천천히, 천천히 적당량을 넣습니다. 그리고··· 뚜껑을 닫아줍니다. 조금 전 설명 드렸던 것처럼 이 안엔 특수한 장치가 되어있습니다. 그 장치가 검은 모래에 충격을 주면··· 흐흐흐. 바로 이렇게 되는 것이죠.”


리안도는 검은 모래를 넣은 호두알만한 병을 단상의 한쪽 끝에 마련된 물이 가득 든 유리 어항에 던졌다.


퐁당


물속에 잠긴 병은 서서히 바닥을 향해 낙하했다.


꽝!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굉음과 함께 어항이 박살나며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일부는 그대로 쏟아져 단상을 적시고 연회장으로 흘러갔다.


와아아아


짝짝짝


놀람도 잠시, 연회장이 떠나갈 듯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너무 놀라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있는 건 샤이르와 루리아였다.


“뭐, 뭐야? 설마 마법?”


샤이르의 예상과 달리 마법은 아니었다. 유리 파편을 막기 위해 마법사 몇 명이 보호마법을 펼치고 있었지만, 어항엔 어떤 마나의 흐름도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순식간이라 루리아가 마법의 흐름을 놓쳤을 지라도 저런 식의 마법 반응은 불가능했다.


‘마법이 아니라면 대체 뭐지?’


“어떤 마법보다 강력합니다. 요령만 알면 누구나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검은 모래만 있으면 대륙을 지배하는 것도 꿈은 아닙니다!”


페리알! 페리알! 페리알!


연회장 안 모든 사람이 페리알의 이름을 외쳤다. 마치 종교의식 같은 광기가 연회장을 가득 메웠다.


“아무래도 우리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나가시죠.”


샤이르와 루리아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검은 모래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그 성과를 보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한 게 확실했다. 더군다나 그 성과라는 게 호두알만한 크기의 병으로 엄청난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었다니··· 만약, 두 사람이 불청객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루리아도 샤이르와 같은 생각이었다. 최대한 기민하게, 그러면서도 눈에 띄지 않게 조심스럽게 연회장을 빠져나가려 바쁜 걸음을 옮겼다. 그때 루리아의 눈에 이질적인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복장은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화려한 예복, 그에 어울리는 가면이나 모자는 전혀 특별할 게 없었다. 그러나 그의 몸을 두른 살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살이 베일 것 같았다. 게다가 살기보다 거대한 존재감은 지금까지 만난 어떤 사람보다 압도적이었다.


‘대명장··· 아니, 그 이상.’


루리아가 만난 가장 강한 사람은 로메노스 왕국의 기사단장 보르스였다. 버서사이이며 대명장인 보르스 만큼 강한 존재감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눈앞에 그런 존재가 있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강한 존재감은 루리아의 몸을 굳게 만들었다. 가늠조차 되지 않는, 그저 막연히 압도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남자의 살기를 마주한 본능은 두려움에 잠식당했다.


그-혹은 그녀는 느긋한 걸음으로 단상을 향했다. 연회 참석자들도 하나둘 그의 존재를 눈치 챘다.


“급한 마음은 이해되지만, 너무 가까이 오시면 위험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리안도의 말을 무시하고 단상 위로 올라섰다. 리안도는 황급히 시종들에게 눈치를 줬다. 고용인의 눈치를 받은 시종들이 서둘러 단상으로 뛰어올라 그를 에워쌌다.


“그만 내려가시죠. 행사 진행에 방해가 됩니다.”


여유로운 표정의 리안도는 상대가 마지막 경고를 무시할 경우 강제로 끌어내릴 생각이었다. 시종들도 지시를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을 때 그의 묵직한 음성이 좌중을 압도했다.


“너희는 오만하다.”


연회장 안의 모든 사람이 휘청거렸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가슴을 세게 압박당한 것 같은 통증과 어지러움이 동시에 찾아왔다. 리안도를 비롯한 단상 위 사람은 더 큰 충격에 뒤로 주저앉을 정도였다.


“허락되지 않은 것을 탐한 죄는 크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머릿속을 울렸다. 일부는 기절하고, 일부는 바닥에 쓰러졌다. 루리아와 샤이르도 바닥에 주저앉았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 게 됐으니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라.”




아무도 보지 못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리안도의 상반신이 하반신과 분리되는 것을 본 뒤엔 모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됐다.


우당탕


리안도의 상반신이 바닥에 떨어지고 바로 하반신마저 넘어지는 소리에 연회장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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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69. 카델 침공(2) 23.03.18 16 0 13쪽
69 #68. 카델 침공(1) 22.09.01 33 0 19쪽
68 #67. 카델의 문지기(2) 22.08.23 30 0 18쪽
67 #66. 카델의 문지기(1) 22.08.14 33 0 19쪽
66 #65. 돌대가리? 닭대가리? 그리고 모질이 22.08.11 27 0 20쪽
65 #64. 가을 졸업시험(17) 22.08.08 27 0 15쪽
64 #63. 가을 졸업시험(16) 22.08.08 26 0 20쪽
63 #62. 가을 졸업시험(15) 22.08.05 24 0 19쪽
62 #61. 가을 졸업시험(14) 22.08.03 23 0 16쪽
61 #60. 가을 졸업시험(13) 22.08.02 25 0 18쪽
60 #59. 가을 졸업시험(12) 22.08.01 28 0 17쪽
59 #58. 가을 졸업시험(11) 22.07.28 31 0 18쪽
58 #57. 가을 졸업시험(10) 22.07.27 37 0 21쪽
57 #56. 가을 졸업시험(9) 22.07.25 26 0 18쪽
56 #55. 가을 졸업시험(8) 22.07.21 26 0 17쪽
55 #54. 가을 졸업시험(7) 22.07.20 24 0 16쪽
54 #53. 가을 졸업시험(6) 22.07.18 2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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