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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귿 공방

버서사이-미소녀 천재 대마법사 전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디귿(D)
작품등록일 :
2022.05.12 14:41
최근연재일 :
2023.04.19 19:10
연재수 :
10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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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6
추천수 :
176
글자수 :
761,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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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4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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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66. 카델의 문지기(1)

DUMMY

* * *


고작 2주 사이에 가을 기운이 제법 희미해졌다. 개학 이후 오랜만에 활짝 열린 성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은 겨울을 알리고 있었다.


그러나 성문 앞을 가득 메운 열기는 겨울을 잊기 충분했다. 겨울 졸업시험을 위한 전공생과 교수들, 그리고 그들을 응원하기 위해 모인 학부생의 열기가 성벽 안 가득했다.


“군대 출정식 같은데? 우리도 2년 있으면 저 자리에 설 수 있는 거잖아.”


“도대체 무슨 시험인데 학교 밖까지 나가는 거지?”


“들리는 소문엔 학교 밖에 특수 시험장이 있다던데?”


“진짜? 도대체 얼마나 비밀스럽기에 학부생에겐 비밀로 하는 거야?”


“저기! 저 검은색 머리카락이 젤뚜르다 선배야!”


“와! 예쁘다! 선배! 사랑해요! 절 가져요!”


“선배님들 힘내세요! 시험 잘 치르세요!”


“교수님들도 잘 다녀오세요!”


선망과 동경, 기대와 흥분, 환호와 응원이 끊이지 않았다. 선배에 대한 예의와 지지도 있었지만, 멀지 않은 미래의 자신에게 보내는 응원이기도 했다.


시끌벅적한 환송식은 전공생과 교수가 성문을 빠져나가자 자연스럽게 끝이 났다. 성문은 다시 굳게 닫히고 성문 앞은 썰물이 빠져나간 갯벌처럼 한적해졌다. 학부생은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역시 젤뚜르다 선배는 인기가 좋네. 진짜 멋지더라. 그렇지?”


위풍당당하게 앞만 보며 걷던 젤뚜르다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했다. 얀느는 동의를 구하며 칼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젤뚜르다의 칭찬에 잔뜩 신이 나 맞장구 칠거라 예상했던 칼리는 웬일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아니, 이를 악물고 있었다.


“아까 그 새끼 봤지? 뭐? 사랑해요? 날 가져요? 감히 젤뚜르다 선배한테 그런 천박한 말을 해? 죽여 버린다. 반드시 찾아내서 죽여 버린다.”


‘샤이르가 정상이 될수록 얘가 미쳐가네. 걱정이다.’


젤뚜르다를 향한 칼리의 동경을 넘어선 짝사랑이 점점 심해졌다. 정작 젤뚜르다는 칼리를 후배 이상도 이하로도 생각하지 않는 걸 본인만 몰랐다.


“참아라. 4학기 선밴 것 같더라.”


“선배고 뭐고 필요 없어. 젤뚜르다 선배를 기만하는 것들은······.”


“어? 피아.”


멀리서 바람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피아를 먼저 알아본 루리아의 말에 얀느와 칼리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젠장!”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몸을 돌려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거기서, 이 자식들아!”


피아의 외침에 분노가 가득 서려있었다. 샤이르는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공포가 다시 찾아오는 걸 느끼곤 황급히 몸을 숨겼다.


“서! 당장 서! 손발에 장 지진다며?”


시험 결과가 발표된 뒤로 칼리와 얀느는 피아를 피해 다녔다. ‘닭대가리’ ‘돌대가리’라고 서슴없이 떠들고, 손과 발에 장을 지지겠다며 방정을 떤 대가였다. 루리아도 차마 피아를 말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 * *


전공생과 대다수 교수가 빠져나간 카델은 고요했다. 생활공간이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어 체감은 크지 않았지만, 어딘지 휑한 기분이 들었다.


아현은 성벽 그림자가 미치지 않는 양지를 따라 걸었다. 이제 제법 쌀쌀해진 바람은 자연스럽게 그늘을 피하게 만들었다. 쉬지 않고 불어오는 바람은 머리카락을 제멋대로 흐트러뜨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머리끈 하나 더 챙겨올걸. 이게 뭐람.’


창문을 흔들 정도로 세찬 바람을 보고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나왔다. 하지만 머리끈은 기숙사를 나와 숲을 지날 때 뚝 끊어졌다. 다시 기숙사로 돌아가기엔 거리가 애매했다. 그래서 얼른 도착할 생각으로 걸음을 재촉했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헝클어지는 머리를 겨우겨우 붙잡으며 아현이 도착한 곳은 중앙도서관 탑 앞이었다. 중앙도서관 탑 앞 계단엔 먼저 온 성천이 앉아있었다.


“그러고 온 거야?”


“왜? 미친년 산발 같아?”


“뭐··· 그 정도까진 아니고. 머리끈은 어쩌고?”


“오는 중에 끊어졌어.”


아현은 억지로 머리를 쓸어 뒤로 넘겨 손으로 잡았다.


“머리끈 할 만한 거 없어? 영 불편하네.”


“머리끈은 없고. 일단 이거라도 쓸래?”


성천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아현에게 건넸다. 아현은 머리를 쥐지 않은 반대 손으로 성천이 내민 손수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손수건은 아현의 손에 쥐어지지 못했다.


짝!


성천은 갑작스런 손등의 통증에 화들짝 놀라며 황급하게 손을 거뒀다.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범인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매운 손맛이 흔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말보다 손이 앞서는 건 한 명밖에 없었다.


“어딜! 그 더러운 손으로 만진 손수건을 우리 언니한테!”


역시 피아였다.


“세탁한 거야. 오늘 처음 가지고 나온 거라고.”


“그래도 안 돼! 언니의 고운 머리카락에 네 음흉한 손길이 닿은 손수건을 허락할 수 없어.”


“음흉하다니! 내가 뭘······.”


대화가 의미 없음을 깨달은 성천은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변명을 해도 피아의 대답이 달라지지 않으리란 걸 잘 알았다.


“너 뭐냐? 왜 기분 나쁘게 말을 하다 마냐?”


“됐다. 내가 너랑 무슨 말을 하냐. 그만 하고 들어가자. 춥다.”


“죽을래? 지금 나 무시 하냐? 어?”


“피아야, 그만 들어가자. 언니도 추워. 응?”


내버려 뒀다가 성천이 배를 움켜잡고 고꾸라질 게 뻔했다. 아현은 씩씩거리는 피아의 등을 떠밀었다.


“너 요즘 자꾸 기어오르는데 조심해라. 제대로 한 번 걸리면······.”


주먹을 불끈 쥐던 피아의 시선이 아현의 어깨 너머를 향했다. 미간을 찡그리며 향한 피아의 시선을 따라 아현과 성천도 고개를 돌렸다. 얀느와 칼리였다. 피아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지나가다 딱 걸렸다.


“도망쳐!”


아현이 소리치기 전에 이미 칼리와 얀느는 달리고 있었다. 옆에 있던 피아도 어느새 그들을 좇고 있었다.


“와, 빠르다.”


아현은 성천을 흘겨봤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속도에 감탄이나 하고 있는 꼴이 너무 얄미웠다.


“넌 걱정도 안 되니? 어쩜 그렇게 무심하게 반응할 수 있어?”


“뭐? 누구? 누굴 걱정해?”


“그야 당연히 피아지. 대련도 금지됐는데 저러다 교수님한테 들키면 큰일이잖아. 이번에 또 문제 일으키면 퇴학당할 지도 모르는 거잖아.”


“보통 이런 상황에선 공포에 질려 도망가는 쪽을 걱정하지 않나? 분위기만 봐선 살려둘 것 같지 않은데.”


그제야 칼리와 얀느의 필사적인 몸부림이 아현의 눈에 들어왔다. 마치 몬스터나 귀신에게 좇기는 표정이었다. 만약 문제 될 일이 벌어진다면, 피아가 퇴학보다 두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게 먼저일 것 같았다.


“그러니까 말려야지. 누가 됐든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말려야지.”


“내버려둬. 열흘이야. 시험 결과 발표 난 게 벌써 열흘 전인데 아직 아무 일도 안 생겼잖아. 앞으로도 별일 없을 거야. 그러니 신경 쓰지 말고 즐겨봐. 재밌잖아. 열흘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좇는 피아도 피아지만, 아직까지 안 잡힌 저 둘도 엄청 대단하지 않아?”


“넌 친구들 일인데 어쩜 그렇게 매정하게 말 하니? 사고가 생길 수도 있잖아.”


“사고는 무슨··· 쟤들이 애냐? 별 걱정을 다 한다. 그것 보다 피아 공부는 잘 돼가는 거야?”


학장의 제안이 없더라도 피아의 유급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성천이었다.


“뭐 임마? 네가 지금 남 걱정할 처지야?”


피아에겐 책을 주지 않았다. 대신 요점 정리한 내용을 직접 읽어줬다. 처음엔 수업처럼 칠판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시작하자마자 쓰러지는 바람에 바로 포기했다. 그래서 이야기 하듯 자연스러운 반복 학습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다행히 예상은 맞았다. 더 이상 졸지 않았다.


“너 유급할래? 정신 똑바로 안 차리지? 네가 지금 친구들 좇고 좇기는 거 보면서 좋아할 때야?”


피아는 머리가 나쁜 게 아니었기에 방법을 찾는 것만으로 문제는 해결된 셈이다. 그러나 성천은 달랐다. 평소엔 전혀 느끼지 못했지만, 직접 성천을 지도하면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재능이 없어. 마법에 대한 재능이 전혀 없어.’


노력만으로 닿을 수 있는 영역의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최고가 될 수는 없어도 대부분 일정 수준까지는 오를 수 있다. 그러나 마법은 다르다. 날개 없는 새가 날려는 것과 같다. 멀리 뛰거나 높은 곳에서 뛰어내릴 순 있어도 결국 날 수는 없다. 마법에서 재능은 절대적인 기준이다.


‘도대체 어떻게 마법학부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거지? 학장님의 실순가?’


“알잖아. 나도 엄청 노력하고 있다는 거.”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성천의 노력은 비교를 불허했다. 그러나 노력의 성과는 지극히 미미했다. 그래서 학장에게 중앙도서관 출입을 요청했다. 농도 높은 마나로 가득한 그곳이라면 성천의 실력을 향상 시키는데 도움이 될 거라는 이유였다.


피아까지 덤으로 중앙도서관 출입허가를 받은 것까진 좋았다. 한 공간에서 두 친구를 도울 수 있는 것도 흡족했다. 오랜만에 마나로 가득한 공간에 들어가는 것도 기뻤다. 힘들고 지겨운 나선계단을 올라야 하는 게 힘들었지만 견딜만 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성천의 훈련 성과는 미미했다.


‘이대로 시험을 통과할 수 있으려나?’


운이 좋다면 아슬아슬하게 통과 기준을 넘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이다. 성천의 재능으론 다음 시험을 통과하는 건 무리였다.


‘차라리 무술학부로 전과(轉科)하는 게 낫지 않을까?’


성천에게 직접 현실을 전달해야 하나 며칠 전부터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아직 말하지 못했다. 가끔 맹해 보일 때도 있지만,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판단력과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성천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모를 리 없을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 자기 수준을 모르지 않을 텐데 시험이 걱정되지도 않나? 어떻게 저렇게 태평하게 있을 수 있지?’


피아와 칼리, 얀느의 좇고 좇기는 추격전을 즐겁게 관람하는 성천의 여유있는 표정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잡힌다!”


실실 웃으며 구경하던 성천의 눈이 커졌다. 이윽고 피아의 두 손이 칼리와 얀느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으아악!”


“피아야, 살려줘! 잘못 했어!”


목덜미를 잡히는 순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얀느와 칼리는 일단 빌기 시작했다. 그것만이 살 길이라고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우린 네가 실수할 줄 몰랐어. 정말이야? 너도 그때 우리랑 같이 농담했잖아.”


“실수? 아니야. 난 닭대가리에 돌대가리가 맞아. 그러니까 장 지지자. 넌 손, 넌 발.”


‘누, 눈이 맛이 갔어. 진심이야.’


장난이 아닌 건 알고 있었다. 피아의 무지막지한 주먹에 몇 대 맞을 각오도 했다. 그러나 이건 몇 대 맞는 걸로 끝낼 분위기가 아니었다. 기어코 장을 지지겠다는 의지가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아아악! 잘못 했어! 한 번만 봐줘. 피아야 제발!”


“알아. 나도. 잘못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자, 가만히 있자. 움직이면 뼈 부러진다?”


얀느는 팔을 꺾는 피아의 힘을 당해내지 못했다.


“아악! 뭐, 뭐하려고? 뭐 하려고 그래?”


땅바닥에 깔린 칼리의 등에 올라탄 피아는 얀느의 팔을 등 뒤로 꺾어 힘을 줬다.


“뭘 하긴. 당연히 장 지지려고 그러지.”


“장 지지는 게 뭔지 알고 그러는 거야? 어떻게 하려는 거냐고?”


“응?”


팔을 부러뜨릴 듯 꺾던 힘이 멈췄다.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어떻게든 피아를 진정시켜야 했다.


‘뭐라고 설득하지? 생각해 내. 살려면 생각해 내라고.’


그러나 급박한 긴장 속에서 마땅한 생각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팔에 다시 통증이 찾아왔다.


“아아악!”


“몰라. 그런 거 몰라도 돼. 그냥 네가 죽을 만큼 아프면 그게 장 지지는 거겠지. 맞지?”


‘젠장, 틀렸어. 우리 힘으론 안 돼. 누가 좀 도와줘.’


자력으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은 얀느는 운명에 맡기며 눈을 감았다. 그런데 그때 낯익은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그만해. 그러다 크게 다쳐.”


번쩍 뜬 얀느의 눈에 들어온 건 샤이르였다. 믿을 수 없었다. 지나가는 개미, 쉬지 않고 불어오는 바람의 도움을 받았더라도 이렇게 놀랍진 않았다.


“꺼져라.”


샤이르는 안중에도 없는 피아는 다시 손에 힘을 줬다.


“진짜 다칠 것 같아서 그래.”


당장이라도 부러질 듯 위태롭게 꺾인 얀느의 팔을 본 샤이르는 다급하게 피아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피아는 한 손으로 얀느의 팔을 붙잡은 채 다른 한 손으로 어깨를 잡은 샤이르의 손목을 잡아 크게 휘둘렀다.


쿵!


샤이르의 몸이 순식간에 허공을 돌아 바닥에 떨어졌다. 아현과 성천, 얀느와 칼리는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입을 떡 벌렸다. 그러나 정작 바닥에 널브러진 샤이르는 상황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귀가 울려··· 귀에 바람이 가득 찬 것처럼 멍하네. 왜 이러지? 하늘? 하늘이 보이네? 분명 조금 전까지 피아를 보고 있었는데 왜 하늘이 보이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엄청 맑네. 저렇게 맑았었나? 평화롭다. 그냥 이대로 자고 싶어.’


샤이르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언젠가 한 번 느꼈던 기억이 있는 평안을 만끽하고 싶었다.


‘참, 얀느는? 얀느 어딨지? 괜찮나?’


얀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눈을 번쩍 뜨는 순간 등과 팔에 엄청난 통증이 찾아왔다.


“으윽······.”


“또 손대면 죽는다.”


샤이르에게서 싸늘한 시선을 거둔 피아는 다시 장 지지기(?) 위해 얀느에게 집중했다. 그런데 막 힘을 주려할 때 어깨에 다시 낯선 촉감이 느껴졌다.


“이것들이 진짜··· 하지 말라니까······.”


어깨에 얹힌 손을 잡아 힘을 줬다. 샤이르를 날렸던 것처럼 시원하게 업어치기를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의도와 달리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차.’


너무 흥분해 주변을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 선배들이 없는 학교에 피아의 힘을 버틸 수 있는 건 교수밖에 없었다. 정신이 번쩍 들며 현실적인 걱정이 한 번에 몰려왔다. 걱정 가득한 눈으로 팔의 주인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아저씨!”


바기라였다. 얼굴을 확인한 피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만약 교수에게 이 장면을 들켰다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만 하시죠. 장난이 너무 과하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답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부드럽고 묵직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얀느의 손을 놓았다. 칼리의 등 위에서도 내려왔다. 그리곤 어색하게 활짝 웃어보였다.


“하하하. 제 장난이 너무 심했죠? 하하하.”


“피아 학생은 언제나 기운이 넘치는군요. 두 사람도 괜찮나요?”


얀느와 칼리는 구세주의 등장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멀쩡해요. 하나도 안 아파요.”


“다행입니다. 샤이르 학생은 다쳤을 것 같은데 괜찮나요? 일어설 수 있겠어요?”


바기라는 샤이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샤이르는 아픈 팔을 감싸 쥐며 바기라가 뻗은 손을 무시하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의무실에 가봐야 하지 않겠어요?”


“내가 알아서 합니다. 신경 끄시죠.”


샤이르는 차갑게 대답하며 빠르게 바기라를 지나쳤다. 그러나 온몸에 퍼진 극심한 고통에 의도와 달리 걸음은 빠르지 못했다. 얀느는 벌떡 일어나 허리 숙여 바기라에게 인사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친구 좀 의무실까지 부축해야 돼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바기라가 미소를 대답을 대신하는 것을 확인한 얀느는 황급히 샤이르에게 뛰어가 부축했다.


“뭐야? 저 새끼는 왜 바기라 아저씨한테 버릇없이 구는 거야? 그나저나 아저씨는 쟤가 다친 걸 어떻게 알았어요?”


“하하하. 그렇게 경쾌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는데 안 다친 게 더 이상하지 않겠어요?”


“그건 그렇네요. 하하하.”


‘젠장, 샤이르를 다치게 했다고 교수님들한테 고자질 하진 않겠지?’


피아는 눈이 보이지 않는 바기라가 샤이르의 상태를 정확히 모르길 은근히 바랐다. 그러나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 피아보다 샤이르의 상태를 더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아저씨! 오랜만이네요. 요즘 바쁘세요? 졸업시험 출전 때 보고 처음이네요.”


멀리서 바기라를 확인한 아현은 그 잘생긴 얼굴을 더 자세히 보기위해 한달음에 달려왔다. 가까이서 보는 바기라의 얼굴은 여전히 감동적이었다.


“제가 뭐 바쁠 게 있나요. 문지기가 하는 일이야 늘 비슷하죠. 그나저나 졸업시험 기간 동안 수업도 없는데 어떻게 지내나요?”


“저희야 뭐······.”


파이가 강하게 고개를 흔드는 바람에 아현은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중앙도서관에 가서 공부 좀 하려고요. 학장님께 허락은 받았어요.”


“그래요? 어지간해선 학부생에게 개방하지 않을 텐데······.”


“하하하. 저희가 워낙 모범생이잖아요. 학장님이 예쁘게 봐주신 덕분이죠. 얘는 어차피 봉사활동 하러 가는 거구요.”


바기라가 의문을 갖기 전에 피아가 먼저 선수를 쳤다.


“후움···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근데 피아 학생은 책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윽··· 다 알고 하는 소리야? 뭐야?’


단순히 눈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아니다. 늘 부드러운 미소와 따뜻한 말투를 유지하는 바기라는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 다시 좋아졌을 수도 있겠군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바뀔 나이니까요. 하하하.”


‘알고 있네. 알고 있어. 음흉한 아저씨.’


아무리 둔한 피아여도 대놓고 놀리는데 모를 리 없었다.


“다 알고 계시면서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네? 제가 뭘 안다는 거죠? 아참! 볼 일이 있었는데 깜박했군요. 먼저 가볼 테니 공부는 쉬엄쉬엄 하세요.”


“아! 진짜! 놀리지 말라고요!”


바기라는 악을 쓰는 피아에게 변함없는 미소를 남기곤 유유히 자리를 떴다.


“아악! 열 받아! 이젠 바기라 아저씨까지 날 놀리네. 이게 다 너희들 때문이잖아!”


“왜? 왜 또 난데?”


‘시험은 지가 떨어지고 왜 우리한테 지랄인데?’


그러나 마음의 소리는 마음의 소리일 뿐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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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67. 카델의 문지기(2) 22.08.23 30 0 18쪽
» #66. 카델의 문지기(1) 22.08.14 33 0 19쪽
66 #65. 돌대가리? 닭대가리? 그리고 모질이 22.08.11 27 0 20쪽
65 #64. 가을 졸업시험(17) 22.08.08 27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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