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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전선의 미친 네크로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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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글철인
작품등록일 :
2024.05.08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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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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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30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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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아인 공병대

DUMMY

베르너 령에 호수산이란 곳이 있다.

호수산 근처엔 수많은 강줄기가 있었고 그 수원지가 호수산일 것이라는 견해가 많았다.

다만 호수산 어디에 그런 수원지가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막연하게 정상에 있지 않을까 했지만 연구를 위해 등반한 학자들 중 누구도 수원지가 될만한 호수를 찾지 못했다.

엘프들의 숲은 바로 이 호수산 근처에 위치했는데 참 이질적인 곳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엘프들 때문에 이질적으로 변한 곳이다.

북부는 서늘하다 못해 싸늘한 날씨였으나 엘프의 숲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근한 느낌이었다.

멜리사의 마법처럼 온실을 만든 느낌은 아니었다.

온도는 그대로였지만 그곳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마치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따뜻해졌다기보단 추위가 모든 생물을 따뜻하게 감싸는 느낌이랄까.

그 느낌은 마치 모든 걸 사랑하는 자연의 손길과도 같았다.

포근한 어머니의 품은 한겨울 길바닥에서도 아늑함을 느끼게 해주니까.


그 느낌은 엘프의 숲에 들어서야만 느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티볼레를 비롯한 아인 언데드들을 이끌고 엘프의 숲으로 향하는 아이젠은 숲에 가까워질수록 그런 포근한 감정이 든다는 것에 낯선 기분을 느꼈다.


‘이러니 몬스터들도 날뛰지.’


비단 엘프들 뿐 아니라 몬스터들에게 어머니의 손길은 공평했다.

아늑한 기분에 몬스터들은 자연스럽게 어두컴컴한 던전에서 나와 엘프의 숲으로 향했고 엘프 사과를 서리했겠지.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의 자비에 감사하며 말이다.


엘프의 숲에 들어서자 엘프들은 멈칫하며 아이젠과 언데드 군세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봤다.

생각해보면 그들은 퓨리온의 명령에 따를 뿐 아이젠과 친분을 나눈 자가 없었다.

어쩌면 퓨리온은 자신이 떠난 후에 아이젠이 그들을 신경 쓰도록 판을 깐 것일지도 몰랐다.

머리로 그들을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얼굴을 보고 친분을 쌓아 그들을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했으니까.

원래 팔은 안으로 굽는 법 아니겠는가?

엘프가 아이젠의 사람으로 인식되면 그만큼 대우도 달라질 것이다.


“어서오십시오. 영주님.”


그때 금발의 엘프 여인이 아이젠에게 다가와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그녀는 속살이 훤히 비치는 하얀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것에 대해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아이젠 역시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이런 복식이 자연스럽다고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그들을 향한 최대한의 존중일 테니.


“그대는?”


엘프는 죽을 때까지 젊은 날의 모습을 유지하기에 아이젠은 눈앞의 엘프가 어떤 신분인지 가늠할 순 없었다.


“장로 레아라고 합니다.”

“반갑군. 레아, 퓨리온 경께서 엘프의 숲에 문제가 있다고 하기에 해결하러 왔다.”

“수호자님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과수원을 먼저 보고 싶네만.”

“그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레아의 안내에 아이젠과 언데드 군세는 줄지어 이동했다.

특히 무언가 숲에 손상이라도 갈까봐 언데드 군세는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나무 뿌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는 언데드들의 모습은 약간 우스워 보이기도 했다.


엘프의 숲을 거닐자 다양한 엘프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무를 가꾸는 엘프와 사냥한 짐승을 도축하는 엘프, 그리고 집을 짓고 있는 엘프까지.

물론 엘프의 집은 인간의 집과는 무척 달랐다.

나무의 속을 파내서 그곳을 거처로 삼는데 마치 나무 스스로 엘프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느낌이었다.

그들에게 집을 짓는다는 행위는 연장을 들고 무언가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대화를 하여 그들의 보금자리를 부탁하는 것에 가까웠다.

실제로 집을 짓는 엘프들은 나무 앞에서 무언가 열심히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무들은 스스로 자신 안에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인간의 시선으로 보자면 실로 기묘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여기가 과수원입니다.”

“...”


과수원의 상태를 본 아이젠은 입을 다물었다.

몇몇 엘프들이 과수원을 돌보고 있었지만 그 꼴이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나뭇가지는 가지치기가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고 나무엔 상처가 많았다.

땅은 여기저기 파헤쳐진 흔적이 무수히 많았다.

누가 이런 꼴을 만들어놨는지는 명백했다.

몬스터.


“부끄럽지만 이런 꼴입니다. 과수원을 지키는 엘프들이 있지만 워낙 숲이 넓은지라.”


엘프들도 바보가 아니었다.

몬스터의 침입을 방비하는 감시자 엘프들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아직 할 일이 많았고 그들에겐 모든 업무에 과부하가 걸려 있었다.

말하자면 인력 부족 사태에 시달리느라 몬스터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이었다.

퓨리온은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 했지만 아이젠은 그렇게까지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당장 돈을 벌어야할 것 아닌가?


“티볼레.”

“말해라.”

“언데드 병력들을 24시간 돌려서 과수원을 지켜라. 저기 엘프들이 해달라는 건 모두 도와주고.”

“...우리는 전사다. 그런 일을 하라는 건가?”


티볼레는 언짢은 기색을 보였다.


“아니, 그대들은 전사이기 전에 군인이다.”


하지만 아이젠은 물러서지 않았다.

도리어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아인들은 완력이 아주 강하지. 공병에 아주 적당해.”


공병, 이 이름이 주는 울림은 아이젠에게 남달랐다.

그는 전투병 못지 않게 공병의 힘을 중요하게 여겼다.

부서진 다리를 재건하거나 진지를 구축하는 것은 싸우는 것만큼 중요했다.

병력들의 목숨을 보전하는 건 바로 그런 것들이었기에.

거기다 공병과 전투병을 겸할 수 있는 언데드 군세?

상상만 해도 전신이 짜릿해졌다.


“공병?”

“그래, 지금 이건 진지 구축의 일환이다. 이해했나?”

“...”

“경계 근무와 동시에 공병으로서 일을 해라. 티볼레. 군인의 미덕은 뭐지?”

“크르.”


티볼레는 으르렁거렸다.


“복종, 그래 복종이지. 잘 알고 있군. 그럼, 티볼레. 일하게.”


좋다는 말을 저렇게 멋지게 표현하다니 티볼레도 제법 재치가 있는 언데드였다.


“자, 그럼 레아. 모든 과수원의 위치를 알려주게. 여기있는 티볼레에게 말이야. 그리고 과수원에 인력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요청하게. 보다시피 다들 일하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거든.”

“...알겠습니다.”


레아는 그렇지 않음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염치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도와준다는데 마다할 필욘 없었다.


‘애초에 수호자님도 기꺼이 신세를 지라고 말했으니.’


그녀가 거리낄 이유도 없었다.


“...움직여라.”


돌아가는 상황을 본 티볼레는 항변해봤자 소용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결국 그릉거리며 언데드 군세에 명령을 내렸다.

그날 그들은 공병이 됐다.

숙련된 공병으로의 한 걸음을 걸은 것이다.

위대한 진보의 한 걸음이었다.


* * *


그날부터 언데드 군세는 착실한 공병이 되어 과수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사실 가꾼다고 해봤자 엘프들의 심부름이나 하는 정도였다.

비료를 퍼오거나 몬스터의 침입을 막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드문드문 삽질도 있긴 했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파각!


가령 뼈가 어긋나는 경우가 생겨도.


“붙이면 되지 않나?”


그냥 다시 잘 맞춰서 끼어넣으면 그만이었다.

부상 위험이 없는 공병이란 참으로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그르르...”

“흠.”


그리고 공병 임무로 시큰둥하던 티볼레는 은근히 흡족한 눈치였다.

이유는 다름 아닌 사냥한 몬스터들 덕분이었다.

언데드 군세는 단순히 몬스터를 막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본격적으로 던전을 토벌하기 시작했는데 그중엔 늑대형 몬스터들도 드물지 않았다.

토벌 당한 몬스터들은 아이젠의 권능으로 되살아났고 우두머리 개체였던 늑대형 몬스터는 티볼레의 애마, 아니 애랑(愛狼)이 됐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빠르게 숲이 안정을 되찾았어요.”


레아는 아이젠의 도움에 감사를 표했다.

처음 언데드를 봤을 땐 찝찝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들의 노동력은 진짜였다.

엘프의 숲은 빠르게 안정화됐다.


“진자 문제는 지금부터지.”


몬스터 처리는 사실 출발 전부터 별로 걱정하지 않은 문제였다.

진짜 문제는 과수원에 필요한 강물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대규모 토목 공사가 필요한 일.


“티볼레.”

“음?”


언데드 늑대 몬스터의 갈기를 정리하던 티볼레가 고개를 들었다.


“삽을 들 준비가 됐나?”

“...”


공병하면 삽, 삽 아니겠는가?


* * *


삽이라고 다 같은 삽이 아니었다.

드워프제 강철 삽은 그야말로 엄청난 강도를 자랑했다.

대충 푹 찍기만 해도 흙이 저절로 퍼지는 수준의 날카롭고 견고한 삽은 그야말로 삽중삽이었다.

엘프의 숲에 모여든 언데드 군세는 단 한 개체도 빠짐없이 드워프제 삽으로 무장했다.


“목표는 호수산의 강줄기 중 하나를 트는 것이다.”


아이젠의 목표는 단순하면서 어려운 일이었다.

그 물줄기 중 하나를 틀어 엘프의 숲 근처에 새로운 강을 만드는 것.

말로는 간단하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언데드 군세의 힘은 그것을 가능케 했다.

가령.


“모두 물에 들어가! 수중에서 작업해라!”


언데드에게 익사란 없었다.

가끔 공사하다 토사가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나도 상관없었다.

안전 설비 따윈 갖추지 않은 고도의 효율제일주의 공사!

어차피 죽지 않는다는 장점을 한껏 살린 언데드 공병 특유의 공사법이었다.


“...이렇게 공사하는게 맞소?”

“음,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니 이렇게 하는 것이 맞지.”


물론 그 모습을 본 티볼레는 떨떠름하다 못해 나중엔 진저리를 쳤지만 아이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 공사를 하고 있었지만 언제 아인 연합의 내전이 끝나고 신성 왕국이 다시 군사를 일으킬지 몰랐다.

최대한 서둘러야 했다.


그렇다고 아이젠이 인간의 마음이 죽은 것은 아니었다.

드워프들은 죽으면 곤란하기 때문에 안전제일을 강조했지만 언데드들은 죽지 않으니 효율제일을 강조할 뿐이었다.

엘프들은 ‘어? 어?’ 하면서 구경할 뿐이었는데 어느 순간 엘프의 숲을 가로 지르는 커다란 강줄기가 생겼다.

심지어 엘프들을 얼마나 배려했는지 강줄기 뚫는 것이 힘들다고 나무를 훼손한 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환경친화적 공사.

곡선이 난무하는 강줄기가 멋드러지게 만들어진 것이다.

엘프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영주는 엘프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군!’


어쩌면 인간 중에서도 엘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제 과수원은 문제가 없겠군.”


아이젠은 결과에 만족했다.

퓨리온은 부정적으로 봤지만 결국 사람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은 없었다.

안 된다면 부릴 언데드가 부족한 것이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생기고 말았다.


“여... 영주님!”

“응?”


레아가 다급하게 아이젠을 찾았다.


“왜 그러나?”

“큰일났습니다.”


레아가 침을 꿀꺽 삼켰다.

아이젠은 무슨 영문인지 들어보려고 했으나 레아의 입이 떨어지기 전에 분노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강줄기 바꾼 놈 누구야!]

“물의 대정령이에요!”


호수산에 기거하는 물의 대정령이 엘프의 숲을 찾아왔다.

엘프들은 기겁했다.

그들과 계약한 정령들이 두려움에 벌벌 떨었기 때문에 그 감정을 엘프들도 고스란히 느낀 것이다.

상위 정령과 계약한 장로 레아도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신체가 물로 이루어지고 나비 날개를 가진 어린아이가 공중에 둥둥 뜬 채로 나타났다.

물의 대정령은 다소 귀여운 모습이었다.

물론 느껴지는 기운은 전혀 귀엽지 않았다.


[네놈이구나!]


아무래도 공사가 물의 대정령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다.

원래 건축공사엔 항의가 항상 있는 법이다.

불만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면 해결하기도 편한 법이지.


“반갑습니다. 대정령이시여.”


그렇기에 아이젠은 방긋 웃었다.

원래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하지 않던가?


“어?”


아이젠을 마주하자 씩씩거리던 물의 대정령이 잠깐 머뭇거렸다.


“너... 혹시 엘프야?”


그리곤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아이젠은 고개를 갸웃했고 엘프들은 ‘아 설마 엘프 혼혈인가?’, ‘그래서 엘프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군.’ 하면서 납득할 뿐이었다.


“...아닙니다만.”


정작 아이젠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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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다시 전장으로 +3 24.07.01 2,465 68 14쪽
» 아인 공병대 +3 24.06.30 2,675 77 13쪽
58 총사령관 블라디미르 +2 24.06.29 2,865 74 13쪽
57 고드프리 은퇴 +5 24.06.28 2,964 90 14쪽
56 승전 처리 +2 24.06.27 3,241 83 14쪽
55 대주교 블라디미르 3 +3 24.06.26 3,197 94 14쪽
54 대주교 블라디미르 2 +1 24.06.25 3,253 94 14쪽
53 대주교 블라디미르 1 +3 24.06.24 3,342 99 16쪽
52 성전 선포 +2 24.06.23 3,458 94 14쪽
51 대족장 티볼레 +1 24.06.22 3,481 95 14쪽
50 격돌 +1 24.06.21 3,663 106 13쪽
49 소집령 +1 24.06.20 3,763 99 12쪽
48 퓨리온의 선물 +1 24.06.19 3,854 111 13쪽
47 전운 +2 24.06.18 3,964 108 12쪽
46 도적 토벌 +3 24.06.17 4,081 104 12쪽
45 전쟁 준비 +3 24.06.16 4,245 109 13쪽
44 황제, 대주교, 그리고 +6 24.06.15 4,283 115 15쪽
43 궁정백 2 +5 24.06.14 4,327 102 16쪽
42 궁정백 1 +3 24.06.13 4,425 103 14쪽
41 마탑주 트리스 +2 24.06.12 4,495 118 14쪽
40 승작 +3 24.06.11 4,543 115 13쪽
39 악마 군세 +2 24.06.10 4,597 105 13쪽
38 아인 연합 4 +2 24.06.09 4,653 115 13쪽
37 아인 연합 3 +2 24.06.08 4,735 101 14쪽
36 아인 연합 2 +3 24.06.07 4,866 10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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