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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전선의 미친 네크로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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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글철인
작품등록일 :
2024.05.08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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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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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6.29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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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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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글자
13쪽

총사령관 블라디미르

DUMMY

“내가 그걸 제안을 수락할 거라 생각했나?”

“물론이지.”

“...그럼 그 생각이 빗나갔음을 알려주마. 네 제안은 거절한다.”


블라디미르는 적의 주구가 되어 신성 왕국을 공격하는데 첨병이 될 생각이 없었다.

신앙적 의문이 있었지만 그는 신성 왕국을 사랑하던 대주교였고 그건 데스 나이트가 된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의 정체성은 어디까지나 신성 왕국민인 것이다.


“그렇게 나올 줄 알았네.”

“...”

“하지만 자네는 내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야.”


블라디미르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는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주여, 사악한 마귀의 유혹에서 저를 구하소서.


“만약 네가 총사령관직을 맡아주면 한가지 약속하지.”

“...뭘 말이냐?”

“신성 왕국의 병사들을 언데드로 만들지 않겠다.”


파격.

실로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네크로맨서가 시체를 일으키지 않겠다니.

첫 수부터 블라디미르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자네가 총사령관직을 맡건 맡지 않건 북부와 신성 왕국의 충돌은 필연이야. 그쪽에서 성전을 선포했으니 말이야.”


블라디미르는 말없이 눈을 감고 고개를 들었다.

그 역시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다른 명분도 아닌 성전을 명분으로 전쟁을 시작했다.

한 번의 패전이 있었지만 고작 이 정도로 신성 왕국이 물러설 리가 없었다.

당장은 어수선했지만 신성 왕국은 대주교 하나 잃었다고 군사 행동을 못할 어정쩡한 국가가 아니었다.

그랬으면 진작 제국에 잡아먹혔을 테니까.

호기롭게 제국에 선전 포고를 했다는 건 그만한 자신감이 있다는 소리였다.


“이건 나로서도 굉장히 큰 결심이라네. 한 번 붙어보니 훈련 상태가 보통이 아니더군.”


신성 왕국군은 그야말로 정예병 중 정예병이었다.

성기사나 워록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후방에서 언데드들이 들이닥쳤을 때도 그들은 당황했을지언정 쉽게 밀리지 않았다.

그들이 무너진 것은 블라디미르의 전사 이후였다.

블라디미르는 고민에 잠겼다.


“거절하겠다.”


하지만 아이젠의 제안도 블라디미르의 신념을 꺾지 못했다.


“정말인가? 자네의 선택으로 신성 왕국의 병사들이 언데드가 되어도 상관없단 말인가?”

“말장난하지 마라. 네크로맨서, 그들을 시체로 살리는 건 네가 한 짓이지. 내가 하라고 부추긴 것이 아니지 않은가? 괜히 내 죄책감을 자극해도 소용없다.”


과연 블라디미르는 아이젠의 말에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아이젠은 ‘그래, 그렇게 쉽지 않단 말이지.’ 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두 번째 제안도 하지.”

“...”


악마의 두 번째 유혹이 블라디미르에게 마수를 뻗쳤다.


“신성 왕국의 마을과 도시, 영지를 점령해도 민간에 대한 일체의 약탈을 금지하겠다.”

“...”


블라디미르는 도저히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내게 그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이유가 뭔가?”

“너무나 간단한 질문이군. 그건 블라디미르, 그대가 가장 우수한 지휘관이기 때문이다.”


크라우스와 로이스 둘 모두 결격 사유가 있었다.

고드릭? 그에게 맡겼다간 모든 병력들이 돌격 바보가 될 것이다.

그가 지휘관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특공대나 언데드 군세 한정이었다.


“가장 우수한 인재에게 공을 들이는 건 윗사람의 미덕이지.”


라스 궁정백도 북부 대공도 아이젠에게 그런 대우를 했다.

물론 궁정백의 경우엔 사지로 보낸다는 다른 점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가 아이젠을 아꼈다는 건 그도 피부로 느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받아들일 텐가?”

“...세 번째도 준비했을 것 같군.”

“그것뿐이겠나?”


블라디미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지금 아이젠은 어떻게든 자신을 총사령관으로 만드려 하고 있었다.

그는 무척 잔인한 사람이었다.

죽은 자에게 동포를 죽이는데 앞장 서라고 하다니.

더구나 지금은 회유책이지만 만약 블라디미르가 계속해서 거절하면.


“받아들이지 않으면 협박을 할 생각이군.”

“그렇게 넘겨짚지 말게.”


아이젠은 웃으며 블라디미르의 말을 일축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는 그 미소 속에 숨겨진 잔인함을 보고 있었다.

그는 쉽게 관대해지는 인간이면서 쉽게 잔인해지는 인간이었다.

굳이 피를 보고 싶어하진 않지만 필요한 순간엔 망설이지 않는 인간.

그리고 후회도 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약속은 지켜야할 거야.”

“최선을 다해 지키지. 아, 내가 최선을 다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퓨리온 경에게 물어보게. 아마 긍정적인 대답이 나올 거야.”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어 보였다.

퓨리온의 태도를 보면 아이젠이 얼마나 철저히 약속에 최선을 다하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곧장 병사들을 봐야겠군.”


블라디미르는 곧바로 병력들을 시찰하기로 했다.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는 일이 주어지면 대충하는 법이 없는 인간이었다.


* * *


집무실에서 아이젠과 고드프리는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카데미 말씀이십니까?”

“그래, 은퇴한 자네에게 딱 어울리는 직책 아닌가?”


그것은 다름 아닌 고드프리의 거취 문제였다.


‘이런 인력을 놀릴 순 없지.’


고드프리의 고충을 이해해 그가 기사로서 은퇴하는 건 허락했지만 그의 능력을 놀릴 순 없었다.

베르너 성은 발전하는 것에 비해 너무나 인력이 부족한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고급, 아니 특급 인력이라고 할 수 있는 고드프리가 장원으로 돌아가 세월을 보내는 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베르너 령의 영주로서 아이젠은 절대 그 꼴을 볼 수 없었다.


“그대의 경험을 젊은이들에게 불어 넣는 건 큰 보람이 될 거야. 언젠가 자네의 제자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나?”

“확실히...”


고드프리는 종자를 둔 적이 없는 기사였다.

세상엔 그를 ‘마스터’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당연하지만 그에게도 명예욕이 있었다.

제자를 기르는 것은 그에게 꽤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다.


“혹시 아는가?”


그런 고드프리를 아이젠은 은근히 부추겼다.


“훗날 베르너 성에서 배운 기사들이 모두 자네의 이름을 존경하며 따를지 말이야. 어쩌면 고드프리 유파라고 불릴지도 모르네.”


트리스에게 마탑주를 운운하며 했던 말과 똑같은 패턴이었지만.


“과연...”


효과는 확실했다.


베르너 성 아카데미 출신들이 모두 고드프리를 스승으로 여긴다면 그만한 영광도 없었던 것이다.

베르너 령이 존재하는 한 사후에도 그의 이름은 저기 높은 곳에 우뚝 서 찬란한 명성을 누리리라.


“고려해보겠습니다.”

“그러게.”


다른 사람이라면 돌려서 거절하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신중한 고드프리가 저렇게 말했다면 긍정의 의미로 봐야 했다.

그는 알아서 세부적인 검토를 진행할 것이다.

초청할 교관, 입학할 학생의 신분과 수, 예산과 건물 부지 등등.

아니나 다를까 고드프리는 한 손은 팔 짱을 끼고 한 손은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겼다.

이쯤에서 쐐기를 박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아, 건물은 걱정하지 말게. 드워프들이 지어줄 테니까.”

“...!”


고드프리는 눈을 반짝였다.


“정말이십니까?”

“물론이지. 내가 자네에게 허튼 소리를 하겠나?”


드워프가 짓는 건물은 정말 남달랐다.

인간의 건축물을 본 드워프들은 이렇게 반응하곤 했다.


‘300년 이상 가지 않는 건축물을 짓는 이유가 뭐지? 게을러서 그런가?’


그들은 ‘능력 부족’이란 이유를 떠올리지 못할 만큼 건축 기술이 뛰어났다.

이미 베르너 성에 지어진 언데드 타워도, 그리고 지어지고 있는 마탑도 그 이상의 세월을 버틴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고드프리가 운영하게 될 아카데미도 드워프가 짓게 된다면 그곳은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아카데미가 될 것이다.


“과연, 과연... 매력적인 제안입니다.”


고드프리는 보기 드물게 중얼거리며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아까 계산했던 것보다 좀 더 밝은 전망으로 청사진을 그리고 있겠지.

아이젠은 자신의 재치에 크게 만족하며 수북히 쌓인 서류들에 서명을 계속했다.

팔이 아팠지만 마음은 흡족했다.


‘언데드 하나 데려와서 대필을 시킬까.’


물론 몸을 편하게 만들 방법을 구상하기도 했다.


* * *


“슬슬 떠날까 하네.”

“떠나신다면...”

“대충 자네가 가져온 서류들은 전부 훑어봤네. 쓸만한 내용은 없더군.”

“그건 죄송하군요.”

“자네가 죄송할 일은 아니지. 어쨌든 여기 앉아있을 이유가 없어.”


아이젠은 차마 퓨리온을 붙잡을 수 없었다.

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했던 말 주워담기’였다.

그리고 그는 아이젠과의 약속을 지켜 아인 연합의 엘프들이 북부에 귀부하는 것을 도왔다.

심지어 그가 출진한 동안 베르너 성을 지켜주기까지 했다.

이젠 아이젠의 차례였으나 ‘했던 말 주워담기’ 복원 진척은 더뎠고 퓨리온은 그걸 마냥 기다리고 있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한가지 부탁이 있네.”

“어떤 부탁입니까?”

“지금 엘프들에게 문제가 있네. 영주.”


아이젠은 심장이 철렁했다.

엘프 수호자가 문제가 있다고 말하다니.

혹시 세계수가 불타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면 엘프 연쇄 살인 사건?

그것도 아니면 숲에 전염병이 돌았나?


“무슨 일입니까? 제가 적극적으로 도와드리지요.”


아이젠은 굳이 ‘적극적’이라는 말까지 써가며 퓨리온의 말에 집중했다.


“흐음, 그게 말일세.”

“예.”

“과수원에 문제가 생겼네.”


아이젠은 깜짝 놀랐다.


“과수원에 말입니까?”

“그래. 자네와도 영 관계없다고 말할 순 없겠지.”


관계없는 정도가 아니었다.

엘프 사과는 베르너의 특산품으로 베르너 성의 주 수입원 중 하나가 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과수원에 문제가 생겼다고?

당연히 영주인 아이젠이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무슨 일인지 상세히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단적으로 말할 순 없지. 상황이 제법 복잡해. 우선 근처에 ‘던전’이 많이 있더군.”

“설마...”

“그래, 몬스터들이 숲을 훼손하고 있네.”


여기까지만 들어도 아이젠은 엘프의 숲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엘프 사과의 맛과 향기는 마성의 힘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육식계 몬스터라도 그 향을 참을 수 없으리라.


“던전에서 온갖 마수들이 과수원을 망치고 있군요.”

“그래, 번번히 퇴치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상황이 곤란한 건 어쩔 수 없지.”


엘프들은 이제 막 정착한 상황이었다.

과수원을 돌보는 것만이 그들의 일은 아니었다.

숲 전체를 가꾸는 일은 인간들이 도시를 건설하는 일과 똑같았다.

하루 아침에 숲이 엘프들의 완벽한 터전이 되진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그것만이라면 엘프들끼리 어떻게 할 수 있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어.”

“그게 무엇입니까?”

“물이 부족하네.”

“물이라면...”

“자리잡은 숲에 강줄기가 그리 크지 않네. 마시기만 하는데는 문제가 없지만 과수원을 꾸리기엔 부족하지.”


퓨리온의 말엔 별다른 기대감이 없었다.

이런 자연적인 문제를 아이젠이 어떻게 해결한단 말인가?

퓨리온은 그저 엘프들의 편의를 위해 던전 토벌 정도만 의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이젠은 여유있게 웃었다.

아이젠이 자신만만할 때 드러내는 특유의 미소였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음?”


퓨리온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단 말인가?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네가?”

“예.”


아이젠은 마침 잘 됐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퓨리온에게 받기만 하고 무언갈 해준 것이 없어서 고민하던 차였다.

그의 의무를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아이젠의 마음의 빚도 조금은 덜어질 터.


“마침 그런 일에 적합한 자들이 있거든요.”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젠이 적합하게 만들 예정이었지만 어쨌거나 결과는 같은 것 아니겠는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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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아인 공병대 +3 24.06.30 2,684 79 13쪽
» 총사령관 블라디미르 +2 24.06.29 2,873 75 13쪽
57 고드프리 은퇴 +5 24.06.28 2,972 91 14쪽
56 승전 처리 +2 24.06.27 3,251 85 14쪽
55 대주교 블라디미르 3 +3 24.06.26 3,208 96 14쪽
54 대주교 블라디미르 2 +1 24.06.25 3,260 95 14쪽
53 대주교 블라디미르 1 +3 24.06.24 3,348 99 16쪽
52 성전 선포 +2 24.06.23 3,463 95 14쪽
51 대족장 티볼레 +1 24.06.22 3,487 96 14쪽
50 격돌 +1 24.06.21 3,670 106 13쪽
49 소집령 +1 24.06.20 3,766 99 12쪽
48 퓨리온의 선물 +1 24.06.19 3,858 111 13쪽
47 전운 +2 24.06.18 3,971 108 12쪽
46 도적 토벌 +3 24.06.17 4,086 104 12쪽
45 전쟁 준비 +3 24.06.16 4,251 109 13쪽
44 황제, 대주교, 그리고 +6 24.06.15 4,289 115 15쪽
43 궁정백 2 +5 24.06.14 4,332 102 16쪽
42 궁정백 1 +3 24.06.13 4,429 103 14쪽
41 마탑주 트리스 +2 24.06.12 4,498 118 14쪽
40 승작 +3 24.06.11 4,548 115 13쪽
39 악마 군세 +2 24.06.10 4,603 105 13쪽
38 아인 연합 4 +2 24.06.09 4,660 115 13쪽
37 아인 연합 3 +2 24.06.08 4,746 102 14쪽
36 아인 연합 2 +3 24.06.07 4,877 10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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