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주간 이윤후

길의 중간에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2.07.11 15:56
최근연재일 :
2012.07.11 15:56
연재수 :
35 회
조회수 :
22,156
추천수 :
162
글자수 :
216,761

작성
12.05.09 12:42
조회
578
추천
5
글자
10쪽

길의 중간에서 - 1장, 여름으로(7)

DUMMY

[리슈넬]


평소와 같이 다니던 길로 걷던 리슈넬은 풀들 사이에서 작은 곤충이 튀어 오르는 것을 발견하고 곤충이 떨어진 자리를 유심히 살펴봤다. 처음에는 곤충이 너무 작고 색도 풀과 비슷해 찾기 애 먹었지만 손으로 그늘을 만들어 풀과 풀 사이를 가려보니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손톱 크기의 연녹색 새끼 방아깨비였는데 한참을 쳐다보고 있어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끈기를 가지고 계속 관찰하고 있자니 자연스레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지금과 같은 어느 여름날 저녁에 리슈넬은 사이린과 함께 인적 드문 길을 걷고 있었다. 굉장히 넓은 초원이었는데 나무가 한 번에 네, 다섯 그루씩 모여있는 곳이 드문드문 있었다. 먼 곳으로 언덕이나 산이 있을 법도 했지만 전혀 그럴 낌새가 보이지 않는 그곳을 두 사람은 오랜 시간 동안 걷고 있었다.

둘 다 움직이기 편한 옷을 입고 등에는 가방을 매고 있었고, 오랫동안 세탁이나 목욕은 생각도 못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느 곳 할 거 없이 매우 더러웠다. 기운이 있을 때 나름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도 침묵 속의 행진이 된지 오래였고 먹을 것도 거의 떨어진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하루 전에 비가 고인 웅덩이를 발견해서 물은 충분했다.

앞장 서고 있던 사이린이 갑자기 옆에 있던 나무에 등을 대며 주저앉자 리슈넬도 나무 반대편에 몸을 앉혔다. 휴식을 취하기 시작한 몸은 음식을 원했다. 리슈넬은 가방을 뒤져 이제는 그 크기가 처음과 비교할 수도 없이 줄어든 천 자루를 꺼냈다. 자루 안에 들어있던 말린 고기는 손바닥 크기의 반만했다. 리슈넬은 그것을 반으로, 한쪽이 약간 더 크게 자르고 큰 쪽을 등 뒤로 넘기며 말했다.

“자, 마지막 고기야.”

“에고, 그래도 언니는 힘이 넘치네? 난 죽겠구만.” 사이린은 손만 내밀어 고기를 받아 한 입 물어뜯었다. 조그만 고기 한 점을 먹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린아, 물 좀 줄 수 있어?”

“어. 여기.”

사이린은 가방에서 나무로 만든 수통을 꺼내 팔만 움직여 뒤로 건넸다. 물이라도 많이 먹고 싶었지만 앞으로 또 언제 물을 만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리슈넬은 간단히 목을 축이는 걸로 만족했다. 간단히 요기를 했지만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은 더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미 사방에 깔리기 시작한 어둠이 움직일 기운을 깔끔히 죽여버렸다. 리슈넬이 몸에 힘을 뺀 채로 남청색이 되가는 하늘을 올려다 보려 할 때였다.

“언니야, 이거 봐라.”

리슈넬이 뒤를 돌아보자 사이린이 웃으며 손에 잡은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손가락 끝에는 덩치가 큰 암컷 방아깨비가 튼튼한 두 다리를 사이린에게 잡힌 채 몸을 앞 뒤로 힘껏 흔들고 있었다.

“방아깨비 오랜만에 본다.” 리슈넬이 말했다.

“그러게.”

사이린은 열심히 몸을 흔드는 방아깨비를 오랫동안 지켜보다가 이내 흥미가 떨어져 어두운 풀밭에 던져버렸다. 어느 새 주변은 완전히 어두워지고 하늘에는 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가방에서 담요를 꺼내 덮었다.

손으로 만든 그늘 위로 구름의 그림자가 겹칠 때 풀 잎 위에 앉아있던 새끼 방아깨비가 리슈넬의 얼굴로 튀어 올랐다. 비명 소리와 그녀가 넘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연달아 나면서 먼지가 공중에 피어 올랐다. 마침 구름이 해를 가려준 덕분에 강한 햇살이 눈을 괴롭히는 일은 없었다. 리슈넬은 넘어진 그 상태 그대로 하늘을 바라봤다. 빛을 등졌기 때문에 어둡게 된 구름과 그 주변을 떠다니는 작은 구름의 움직임에 눈을 맞추자 마음이 편안해 졌다.

“린이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숲 속에는 거미들이 쳐놓은 거미줄이 수북했는데 대부분의 경우, 발 뒤꿈치를 들어도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가다 아주 절묘하게 머리 위에 닿는 거미줄이 있었다. 미리 발견하면 다행이었지만 그러지 못했을 경우에는 머리카락에 묻어 끈적대거나 얼굴로 손수 거미줄을 뜯어내야 하는 위험에 맞닿았다.

언젠가 먹을 수 있을 만한 것을 찾아 숲 속을 걷고 있을 때였다. 잎이 마치 꽃 같은 풀을 발견해서 자세히 보려고 몸을 낮추는 도중에 그만 얼굴로 거미줄을 찢어버렸다. 기겁하면서 뒤로 물러나다가 균형을 잃어 바닥에 넘어졌더니 얼굴이 살금살금 간지러웠다. 무심결에 손으로 만져보니 거미가 손 안에서 바둥대고 있었다. 눈을 감은 채로, 비명을 지르면서, 팔이 빠져라 손을 휘두르면서 얼굴을 털어내고 황급히 일어나 뒤도 안 돌아보고 그대로 도망쳤었다.

그래도 그 때는 괜찮은 편이었다. 최악의 상황은 거미줄을 얼굴로 들이받았는데 거미가 먹다 남은 먹이가 매달려있을 때였다. 몸의 일부분이 없어져 딱딱하게 굳은 시체가 얼굴에 닿는 것만큼 소름 끼치는 일도 드물지 않을까?




숲에서 구해온 나물들을 옆에 수북이 쌓아둔 채로 호숫물을 발로 차고 있던 리슈넬은 갑자기 호수 건너편에서 들려온 짐승의 울음 소리에 발을 멈췄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울음 소리에서는 슬픔이 느꼈다. 그녀가 짐승의 울음 소리에 대해 연구하거나 짐승과 함께 살았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도 자신이 받은 느낌을 신뢰하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느꼈다.

어떤 동물의 울음이었을까?

리슈넬은 골똘히 생각했지만 이내 그만뒀다. 그녀로서는 불시에 들린 한 순간의 울음 소리로 주인을 알아내기란 불가능했다. 대신에 처음 호수에 온 목적 대로 나물을 씻기 시작했다. 쌓여있던 나물들이 적어질 수록 동물의 울음 소리는 머리 속에서 사라져갔다.

깨끗이 씻은 나물들을 치마폭에 담아 큰 나무로 돌아오려니 물을 머금은 나물의 무게가 엄청나 한 발짝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지만 호수의 냄새 덕분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그래도 그대로는 도저히 쉬지 않고는 갈 수 없던 거리여서 반쯤 왔을 때 옆에 있던 나무에 등을 대고 치마가 바닥에 닿지 않게 무릎 위에 올려놓고 휴식을 취했다. 나물에서 떨어지는 물이 치마를 뚫고 다리를 타고 땅으로 떨어졌다. 리슈넬은 그 물을 손으로 훔쳐 얼굴을 닦아냈다. 물이 준 시원함이 더운 여름 날씨에 사라질 때 마다 그녀의 손은 물을 훔쳤다.

큰 나무로 돌아온 리슈넬은 이전에 반 토막 내났던 열매 껍질을 찾았다. 두 개의 껍질은 나무 뿌리 근처에 적당한 크기로 파놓은 구멍 안에 들어있었고 하나는 비어있었지만 하나는 물이 차 있었다. 며칠 전 호수로 들고가 물을 채워 들고 온 것이다. 물을 채우고 오는 길에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는 바람에 한번 크게 넘어졌다. 그것만 빼고는 호수에서 물을 길러오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리슈넬은 비어있는 껍질 속에 나물들을 담고 치마에 햇빛을 쬠과 동시에 탈탈 털어냈다.

다시 숲으로 나갔다. 장작으로 쓸 마른 나무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여름의 습한 숲 속에서 쓸만한 장작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 때, 숲에 처음 들어온 날 봤던 시냇물 위에 쓰러져 죽은 나무가 머리 속에 떠올랐다. 리슈넬은 호수로 돌아가 뻗어 나온 물줄기들을 살펴봤다. 호수의 크기가 크기인지라 그곳에서 파생된 물줄기의 숫자도 많았기 때문에 하나하나 일일이 찾아본 끝에 다섯 번째 물줄기에서 그 죽은 나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쓰러진 나무 윗부분으로 올라가 본 리슈넬은 동물들이 나무에 몸을 비빈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남겨진 높이로 봤을 때 그 흔적은 자기보다 큰 동물에서 허리까지 오는 동물까지 꽤 다양함을 알 수 있었다. 흔적에서 멀리 떨어진 나무 가지들부터 꺾어 바닥에 모았다. 잘 꺾이지 않는 가지는 바닥에 있던 돌로 쳐서 뜯어냈다. 돌아가기 전에 가지를 모으느라 생긴 갈증을 없애기 위해 시냇물을 두 손으로 떠 마셨다. 숲의 그늘 속에 흐르는 물은 신기하리만큼 시원했다.

나뭇가지를 큰 나무 근처로 옮겨와 모아놓은 리슈넬은 주변에 미리 모아놓은 돌로 높은 경계선을 만들고 나뭇가지 위에는 마른 풀들을 올렸다. 이제 불을 만들 차례였다. 리슈넬은 가방에서 가져와 항상 쓰던 부싯돌을 꺼내 마른 풀 위에서 능숙하게 쳐서 불을 일으켰다. 그 위에 조심스레 물이 든 열매 껍질을 올려보니 검게 그을리기는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불에 타지는 않았다. 하지만 몇 번이나 쓰기에는 불가능해 보였다. 물이 약하게 끓어오를 동안 리슈넬은 씻어온 나물을 다듬었다. 속으로는 순서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시 호수에 갔다 오기는 너무 귀찮았고 아이러니하게 그 많은 물줄기 중에서 가장 가까운 것도 호수에 가는 것만큼이나 멀리 떨어져있었다.

시간이 지나 물이 끓기 시작했다. 혹시나 냄비 대용으로 쓸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시도한 일이었지만 실제로 될 거란 기대는 사실상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기뻤다. 리슈넬은 끓는 물에 나물을 삶은 뒤 항상 가지고 다니던 나무 젓가락으로 하나하나 건져내 빈 열매 껍질에 넣고 남은 물로는 몸을 닦았다. 따뜻한 물로 하는 목욕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목욕을 끝날 때쯤에는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리슈넬은 옷도 걸치지 않은 채 삶은 나물이 든 열매 껍질을 들고 큰 나무 뿌리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작은 원형 나무통을 꺼내서 그 안에 들어있던 소금을 골고루 뿌렸다. 양이 많지 않아 넉넉히는 뿌리지 못했지만 그냥 맹으로 먹는 것보다는 확실히 먹을 만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백년전쟁
    작성일
    12.06.14 11:20
    No. 1

    안녕하세요. 다소 민감한 댓글이라 여겨져서 적을까 말까를 놓고 고민하다보니 오랜만에 댓글을 달게 됐습니다.

    6,7,8화는 리슈넬의 시점에서 전개가 됐는데요.
    읽는 동안 비슷한 생각이 들어서 이곳에만 댓글을 남깁니다.

    사이린은 여행의 동기가 명확하고 그에 따라 여러사람을 만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데 비해서 리슈넬이 숲에 머무르는 이유와 사건이라 할 만한 게 부족해 보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숲이나 숲에서의 생활에 대한 묘사에만 치중이 된 게 아닐까 합니다.

    뒤에 이유와 사건이 나오는 것 같지만 현재까지는 사이린의 시점일 때보다 보는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 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1 이윤후
    작성일
    12.06.14 23:09
    No. 2

    백년전쟁님//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말씀한 부분은 의도적으로 숲 생활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하지만 약간 과했던 것도 같군요.

    자매가 헤어지고 리슈넬이 방랑을 한 이유는 예상하신대로 뒤에 나올 예정입니다.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길의 중간에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5 길의 중간에서 - 마지막화 +1 12.07.11 664 5 19쪽
34 길의 중간에서 - 3장, 겨울로(8) 12.07.09 511 4 16쪽
33 길의 중간에서 - 3장, 겨울로(7) 12.07.06 573 4 11쪽
32 길의 중간에서 - 3장, 겨울로(6) 12.07.04 745 4 13쪽
31 길의 중간에서 - 3장, 겨울로(5) 12.07.02 582 3 18쪽
30 길의 중간에서 - 3장, 겨울로(4) 12.06.29 584 3 11쪽
29 길의 중간에서 - 3장, 겨울로(3) 12.06.27 581 4 9쪽
28 길의 중간에서 - 3장, 겨울로(2) 12.06.25 860 5 13쪽
27 길의 중간에서 - 3장, 겨울로(1) 12.06.22 619 5 7쪽
26 길의 중간에서 - 2장, 가을로(10) 12.06.20 416 3 20쪽
25 길의 중간에서 - 2장, 가을로(9) 12.06.18 944 4 8쪽
24 길의 중간에서 - 2장, 가을로(8) 12.06.15 484 3 12쪽
23 길의 중간에서 - 2장, 가을로(7) 12.06.13 702 3 17쪽
22 길의 중간에서 - 2장, 가을로(6) 12.06.11 765 4 14쪽
21 길의 중간에서 - 2장, 가을로(5) 12.06.08 744 4 20쪽
20 길의 중간에서 - 2장, 가을로(4) +2 12.06.05 760 4 11쪽
19 길의 중간에서 - 2장, 가을로(3) 12.06.04 741 3 10쪽
18 길의 중간에서 - 2장, 가을로(2) 12.06.01 595 3 14쪽
17 길의 중간에서 - 2장, 가을로(1) +2 12.05.30 744 4 12쪽
16 길의 중간에서 - 1장, 여름으로(16) 12.05.28 586 3 13쪽
15 길의 중간에서 - 1장, 여름으로(15) +2 12.05.25 394 3 14쪽
14 길의 중간에서 - 1장, 여름으로(14) 12.05.23 715 3 19쪽
13 길의 중간에서 - 1장, 여름으로(13) 12.05.21 576 3 13쪽
12 길의 중간에서 - 1장, 여름으로(12) 12.05.18 621 3 17쪽
11 길의 중간에서 - 1장, 여름으로(11) +2 12.05.16 850 23 14쪽
10 길의 중간에서 - 1장, 여름으로(10) 12.05.15 748 4 13쪽
9 길의 중간에서 - 1장, 여름으로(9) 12.05.14 613 5 17쪽
8 길의 중간에서 - 1장, 여름으로(8) 12.05.10 521 4 13쪽
» 길의 중간에서 - 1장, 여름으로(7) +2 12.05.09 579 5 10쪽
6 길의 중간에서 - 1장, 여름으로(6) 12.05.08 558 4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