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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길의 중간에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2.07.11 15:56
최근연재일 :
2012.07.11 15:56
연재수 :
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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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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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글자수 :
216,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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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7.0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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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길의 중간에서 - 3장, 겨울로(8)

DUMMY

[사이린]



앞에는 겨울 숲이 있고, 뒤로는 눈 밭에 찍힌 내 발자국만 있다. 위로는 눈이 셀 수도 없이 떨어진다. 좋아좋아. 마음을 가라앉혀보자. 이곳에선 언니 냄새가 나고 기척도 느껴진다. 조금 있으면 언니를 만난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뜨기 시작하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절대 추위 때문에 그런 게 아니다. ...추위 때문에 그런 걸지도. 아무튼 이 숲에 대해선 소문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대부분 위험하니까 웬만하면 가지 말라는 말들이었다. 그런 곳 중심에 언니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걱정은 했지만 별로 충격적이지 않았다. 일단 위험할지언정 사람은 이곳에 거의 없을 테니까.

간단히 심호흡을 하고 숲으로 들어선다. 지금이 겨울인 게 다행이라고 느껴진다. 목이 마르면 언제든지 주변에서 눈을 한 움큼 집어먹으면 된다. 그런데 사실 덥지 않으니까 목이 마를 상황은 별로 없다. 그러고 보면 언니는 어느 계절에 이곳에 들어왔을까? 언젠지 몰라도 지금처럼 추울 때는 아니었겠지.

이 추운 날에도 가끔씩 새 한 마리가 날아가고 작은 동물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중에서 가장 좋은 소리는 역시 내가 내는 눈 밟는 소리렸다. 그래서 내 발소리를 뭉개는 눈 떨어지는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뿐만 아니라 눈 밟는 소리에 집중 된 정신을 흩트려버리기까지 한다.

다시 발 소리에 집중하려 할 때 눈 앞에 커다란 네 발 짐승이 보였다. 사슴이었다. 그것도 뿔이 커다란 수사슴. 사슴은 순하게 생겨서 그럴까? 말처럼 가까이 다가가서 손으로 얼굴을 만질 수 있을 것 같다. 말을 팔지 말고 좀 더 가지고 있을 걸 그랬나. 그 동안 정도 좀 들었고 내 말도 잘 들었었는데.

갑자기 사슴이 고개를 들어 나도 모르게 눈이 마주쳤다. 사슴은 어떻게 해보기도 전에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었는데… 미련이 남아 사슴이 있던 자리에 가서 남겨놓은 발자국과 헤쳐놓은 눈 구덩이를 번갈아 봤다. 하지만 구덩이를 아무리 봐도 사슴이 연상되진 않는다. 결국 그냥 바보짓 일 뿐이다. 이것보다는 지금 눈 앞에 멀찍이 서있는 커다란 갈색 곰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는 게 몇 백배는 실용적인 행동이었다. 그러고 보면 사슴이 도망간 건 내가 싫어서가 아니라 먼저 곰을 발견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데 곰은 겨울잠 잔다고 들었는데 쟤는 왜 안자고 돌아다니고 있지?

곰은 먼 곳에서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저 쪽에서 나를 피하지 않는 걸 보니까 오늘은 내가 몸을 좀 움직이고 싶어하는 것 같다, 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그건 아니다라고 머릿속에서 대답이 튀어나왔다. 난 지금 다른 무엇보다 언니를 만나고 싶은데 그걸 제치고 다른 일에 시간을 쏟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이런 특이 상황은 오랜만이지만 예전에도 자주 일어났었기 때문에 당황하진 않았다. 별 소용없겠지만 칼이라도 꺼내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곰이 고개를 돌리더니 나한테서 멀어졌다. 안도의 숨을 몰아 쉬고 곰이 간 곳과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추위에 얼어붙은 커다란 호수가 나왔다. 이제까지보다 좀 더 차가운 바람이 날 맞이했다. 호수 위로 올라가 얼음 위에서 조금씩 발을 미끄러뜨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더운 날을 이런 곳에서 보내면 정말 안성맞춤일 것 같다. 습기를 좀 참아야 하겠지만. 얼음 위를 미끄러지는 거에 재미 들려서 처음 목적을 잊을 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낯익은 모습이 눈 앞에 스쳐 지나가자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리슈넬]




리슈넬은 허겁지겁 달려가다가 자기도 얼음 위에서 넘어질 뻔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동생 앞에 도착하는데 성공했다.

“린아! 괜찮아?”

앞으로 넘어지면서 얼굴을 부딪힌 사이린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말했다.

“으…괜찮아.”

하지만 곧바로 입 안에 느껴지는 비릿한 맛이 다쳤다고 알려줬다. 리슈넬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에고, 너 입술 찢어졌다.”

“다행이네. 다른 곳은 어때?”

“이마가 빨개.”

“그건 날씨가 추워서 그래.”

“그래 그래. 좋은 옷 입고 넘어져서 좋겠다. 일단 오늘 먹을 거 잡아야 하니까 조금 있다 집에 가자.”

리슈넬이 뾰족한 나뭇가지를 들고 얼음이 깨진 곳으로 움직였다. 사이린은 아직 아픔이 가시지 않은 몸으로 일어서서 언니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며 물었다.

“집도 있어?”

“응. 누가 저 안에 하나 만들어 났더라.”

“역시 우리 언니는 운이 좋네. 집도 줍고 말이야. 그런데 고기를 그걸로 잡으려고?”

“이래도 꽤 잘 잡힌다. 볼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리슈넬은 물 속으로 나뭇가지를 던졌다. 손목에 묶어 놓은 끈을 당겨 나뭇가지를 끌어올린 리슈넬은 끝에 아무것도 있지 않은 걸 보고 실망하며 말했다.

“누가 보는 건 처음이라 긴장해서 그래.”

“맞아. 그 마음 나도 잘 알아.”

자매는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시간을 꽤 투자해서 노력하자 리슈넬은 오늘 하루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생선을 잡는데 성공했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 만난 거지만 둘 모두 거창한 인사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바로 어제도 만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농담을 섞어 대화하며 서로를 대했다. 대단한 말은 아니었다. 누구나 하는 것처럼 가벼운 수다였다.

호수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사이린이 말했다.

“여기엔 동물들이 꽤 많이 사나 봐. 아까 전에 사슴이랑 곰도 봤다?”

“사슴? 곰은 나도 봤지만 사슴은 본 적이 없는데.”

“저 앞에서 막 노려보는데 곰은 정말 무섭더라. 그냥 무시하고 딴 데로 가서 다행이지만.”

그 사이 두 사람은 큰 나무가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리슈넬은 큰 나무를 본 사이린의 반응이 정말 궁금해서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사이린은 큰 나무를 보고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뭔가 알았다는 듯이 손뼉이 부딪혔다.

“아, 여기가 거기였구나.”

“거기?”

“응. 예전에 여긴 되게 조그마했거든. 호수가 있는 숲은 다른 곳에도 많고… 저 나무보고 알았네. 여기 예전에 크게 불이 났었는데 저 나무만 살아남았었거든. 그 때도 저만큼 컸기 때문에 한번에 확하고 기억나.”

“이 숲이 작았었다고? 여기 언제 왔었는데?”

사이린은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기억을 떠올려보려고 애썼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잘 모르겠어. 그냥 왔었다는 것만 기억나. 언니, 나 어렸을 때 같이 온 거 아냐?”

“아니. 그랬으면 나도 알고 있었겠지.”

“하긴, 그것도 그랬겠다.”

리슈넬은 걱정과 불안의 눈으로 사이린을 보다가 등에 멘 가방에 시선이 멈췄다. 그건 분명 자신이 예전에 아찬에게 줬던 그 가방이었다. 리슈넬은 동생의 등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이거 어디서 났어?”

“아, 맞다. 이거 언니 꺼 맞지?”

“어. 그런데 이건 내가 분명 다른 사람한테 줬는데…”

“정말? 나 이거 시장에서 샀는데.”

리슈넬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손으로 턱을 굈다.

“어떻게 이런 낡은 물건이 시장에서 팔렸지? 이거 어떤 사람이 팔았니?”

“음… 그냥 가난해 보이는 사람이 팔았는데. 수염도 막 났고 잘 안 씻어서 더러웠고… 그거 밖에 생각 안나.”

“그래?”

리슈넬은 침울한 표정으로 낡은 가방을 바라봤다. 가방을 판 사람이 아찬이었는지 아니면 아찬이 다른 사람에게 가방을 팔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두 개의 가정 모두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래도 가방이 동생의 손에 의해 돌아온 것은 행운이라 생각됐고 훌륭한 위안이 되었다.





집 앞에 모닥불을 피우고 생선을 굽는 리슈넬에게 사이린이 물었다.

“언니. 나 물고기 싫어하는 거 잊은 건 아니지?”

“그래도 구운 건 먹잖아?”

“구운 건 비린내가 덜하니까. 뭐, 이런 곳에서 음식을 가리는 것도 예의가 아닌 건 알아. 그냥 한번 말해본 거야.”

“그럼 애초에 말을 말지. 자, 다 익었다.”

리슈넬에게서 생선을 받아 든 사이린은 못 마땅한 눈으로 생선을 살펴보다가 조심스레 한입 깨물어 먹었다. 그녀가 먹는 모습을 보던 리슈넬이 잠시 먹는 것을 멈추고 말했다.

“뼈 조심해서 먹어.”

“응.”

“그런데 너 요즘은 다그리엘 잘 안 불렀나 봐?”

“응. 그건 어떻게 알았어?”

“가끔씩 나한테 놀려왔거든.”

“그래? 걔가 뭐 말썽 피운 건 없어?”

“아니. 오히려 와줘서 고마웠는걸.”

“그래? 그럼 됐고. 아, 맞다. 언니, 들어봐. 나 요전에 웬 아저씨가 흙 피리 가르쳐 달라고 했다?”

“흙 피리? 너 그 동안 꽤 연습했나 보구나.”

그 말에 사이린의 목소리는 단숨에 풀이 죽어버렸다.

“내 연주 실력보다는 언니가 만든 곡이 좋아서 그랬던 것 같아.”

“그래도 그거 제대로 연습 안 하면 잘 안 되는 곡이야. 실력 없으면 안돼.”

“하긴 그 아저씨 마지막까지 많이 틀리더라.”

사이린은 다 먹은 생선 뼈를 모닥불 안에 던지고 허리를 있는 힘껏 폈다. 기분 좋은 통증이 몰려오자 절로 입이 벌어지며 하품이 나왔다.

“그런데 언니, 그 곡 제목이 뭐야?”

리슈넬은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꼭 제목이 필요하겠니? 음만 좋으면 되지.”

“그렇긴 한데 그 아저씨가 가르쳐달라는데 나도 아는 게 없어서 그냥 언니가 가르쳐 준 곡이라고 했거든.”

“맞잖아. 내가 가르쳐 준 거.”

그 말에 사이린이 손을 저었다.

“아니. 그걸 제목이라고 했다고.”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리슈넬의 아무래도 좋다는 반응에 사이린은 남자와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 땐 분명히 사이린도 같은 말을 했었다.

“사실 나도 제목은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 그냥 그 아저씨가 물어봤으니까 물어본 거야.”

생선을 모두 먹은 리슈넬은 사이린처럼 뼈를 모닥불 안으로 던졌다. 평소에는 숲으로 있는 힘껏 던졌지만 오늘은 왠지 동생을 따라 하고 싶었다. 그리고는 주변에서 깨끗한 눈을 한 움큼 집어먹어 목을 축였다. 몸 속뿐만 아니라 머리까지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굳이 제목을 붙인다면 말이야.”

“붙인다면?”

“딸에게…라고 붙이고 싶네.” 리슈넬은 살짝 숨을 들이켰다. “너 때문에 만든 거니까. 네가 애기 때 이걸 불러주면 잠을 잘 잤거든.”

“내가 그랬었어?”

“울다가도 잠이 들었어.”

사이린의 시선은 모닥불과 리슈넬을 왔다갔다하면서 멈출 곳을 찾지 못했다. 리슈넬은 불을 보면서 밤새 울어댔던 아기를 달래기 위해 고생했던 기억들을 불러왔다. 당시에는 설마 잠도 못 자는 고생을 추억할 날이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그럼 더 연습해야겠네. 아직도 몇 군데는 종종 틀리거든.”

사이린이 상기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니 리슈넬은 웃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곡의 제목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지금 즉흥적으로 떠오른 제목과 사이린이 말했던 제목 모두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역시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자기가 지은 게 좋았다.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을 때 린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감으로. 근처에 오니까 언니 냄새도 나던걸.”

감이라. 오랜 시간 함께 있었던 가족이기 때문일까? 그냥 나한테 하는 말이니까 그렇게 말했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날 찾으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고생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당분간은 푹 쉬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에 이 곳을 떠나자는 말을 하기가 힘들었다. 이 얘기를 처음 했을 때 린이의 반응은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왜? 날씨도 추운데 돌아다니면 고생이잖아.”

나도 이렇게 추울 때 집 없이 돌아다니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원래도 숲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그렇게 애를 쓰고 이 집을 발견했던 거니까. 내가 이곳을 떠나려는 건 린이가 이 곳에 왔기 때문이다. 호수 위에서 놀고 있는 린이를 봤을 때 무의식적으로 이곳을 떠나야 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린이나 숲이 싫어서가 아니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만든 조건이 채워졌기 때문이다. 조건의 내용은 나도 모른다. 그냥 린이를 만나는 순간 그게 채워졌다는 것만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언니가 꼭 가야 한다고 하면 난 괜찮아.”

린이가 한 발 물러서서 동의해주자 정말 기뻤다. 스스로는 내색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겉으로는 다 표가 나는 건지 린이가 아쉬운 눈으로 쳐다봤다.

당장은 눈도 오고 린이가 휴식도 취할 겸해서 숲을 떠날 날은 며칠 뒤로 정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마을에 가서 구입했던 물건들은 최소한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남기기로 했다. 혹시 모르지만, 진짜 어쩌면 나처럼 누군가 여기 와서 살수도 있으니까. 아니면 나중에 다시 이곳에 왔을 때 우리가 쓸 수도 있고. 무엇보다 짐이 많으면 움직이는 데 불편한데다가 난 가방이 없다. 아찬의 가방은 그 뒤에도 찾지 못했다. 예전에 다그리엘의 도움으로 한 마을에 갔을 때가 생각났다. 그 때는 숲을 떠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으니까 가방을 사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정말 후회된다.

며칠 뒤, 우리는 숲을 떠날 채비를 했다. 눈도 그쳤고 하늘도 맑은 근래에 보기 드문 날씨였다. 집을 나와 작별 인사를 하러 큰 나무에게 갔다. 큰 나무는 언제나 그렇듯이 자리에 있었고, 그 모습은 잎이 모두 떨어졌어도 여전히 당당했다. 난 언제나 앉았던 뿌리 앞에 서서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갈게요. 고마웠어요.”

당연하지만 큰 나무는 말이 없었다. 그래도 나무가 무슨 말이라도 하는 것 마냥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감상적이 되는 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했다. 내가 그러는 동안 린이나 큰 나무를 빤히 쳐다보더니 손으로 줄기를 쓰다듬어줬다.

“잘 있어.”

우리는 큰 나무를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호수에 도착하자마자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에게 목적지는 사실 별 의미 없었지만 아예 없으면 생각보다 힘이 나지 않았다. 대충이라도 어디로 가자고 정하면 생기가 돌았다.

“린아, 우리 이제 어디로 갈까?”

호수 위로 올라가 얼음 위에서 발을 미끄러뜨리던 린이는 내 앞을 지나가면서 말했다.

“언니가 생각해 났던 거 아니었어?”

“생각 안 했어. 너 어디 가고 싶은 곳 없어?”

그 말에 린이는 미끄러지며 나한테 다가와 말했다.

“언니, 내가 항상 말하잖아. 내가 가고 싶은 곳 말고 언니가 가고 싶은 곳으로도 가보자니까?”

“그래도 린이 네가 나보다 더 똑똑하고 감도 좋고…”

“아~니요. 그렇지도 않고 또 그런 건 상관없다니까. 난 언니가 가보고 싶은 곳을 가고 싶다고.”

이런 대화는 예전에도 몇 번 있었다. 내가 목적지를 물어보고, 린이가 목적지를 정하고. 그러다 가끔씩 린이가 나에게 목적지를 정해달라고 요청할 때면 난 항상 거절했다. 난 린이가 그렇게 말하는 게 그저 나를 배려하기 위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착각이었던 것 같다. 린이는 정말로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물어보고 있었다. 가고 싶은 곳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말과 전혀 다를 것 없는 그 말 한마디를 하는 건 너무 어려웠다. 속으로 몇 번이나 뱉고 나서야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럼 말이지. 바다로 한번 가보자.”

난 겨울 바다가 보고 싶었다.


작가의말

다음, 마지막 화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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