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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김민지 씨의 도도한 자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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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4.10.01 16:52
최근연재일 :
2014.12.10 09:00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20,110
추천수 :
137
글자수 :
169,110

작성
14.11.28 09:00
조회
504
추천
3
글자
11쪽

회사 -5-

DUMMY

“오늘은 우리 편집부 개별 면담을 하겠어요.”


직원들이 모두 출근하자마자 들려온 편집장님의 말에 시끌벅적하던 사무실이 일순 조용해졌다. 편집장님은 그런 반응을 예상했는지 이가 살짝 보이도록 빙긋 미소 지으신 다음 자리에 앉았다. 사무실은 다시 시끄러워졌다. 하지만 아까 전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시끄러움이었다.


나는 가짜 신혼여행이 끝나 출근한 진아 선배를 돌아보며 말했다.


“면담이라니, 저 입사하고 처음 있는 일이네요.”

“그러게. 나도 처음 겪는 일이네.”

“네?” 나는 의자째로 움직여 진아 선배에게 가까이 다가가 “선배도 이런 일 처음이에요?”

“응. 가끔 편집장하고는 일로 대화한 적은 있지만 이런 식으로 공표한 건 내 경험에 없었어.”

“그럼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유감스럽게도 모르겠다.”


진아 선배와 나는 허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일로 되돌아갔다. 편집장님과의 면담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모를 일이었다. 때문에 그 일로 걱정하는 건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편집장님의 면담이 시작됐다. 팀장급부터 한 사람씩. 직급이 낮은 사람부터가 아니라 안도하는 것도 잠시, 한 명씩 하다가 퇴근 시간이 다 돼서 면담에 들어가면 안 그래도 늦은 퇴근이 면담 시간만큼 늦춰지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걱정을 예상하듯 면담은 무척 빠르게 끝났다. 3 회의실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5분, 아니 3분도 되지 않아 다시 밖으로 나왔다.


나는 3 회의실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자세히 살펴봤다. 다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어떤 사람은 덤덤했고, 어떤 사람은 뭔가 개운치 않은 듯 머리를 긁적였고, 어떤 사람은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모두에게 같은 질문을 하는 건지, 다른 질문을 하는 건지 궁금했다.


이윽고, 내 옆자리의 진아 선배가 불려갔다. 진아 선배는 귀찮은 일을 처리하는 것 마냥 기지개를 한껏 켜고는 “갔다 올게” 한마디 하고 3 회의실로 들어갔다. 진아 선배의 면담은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렸다. 대략 7분 정도? 하지만 3 회의실에서 나온 진아 선배의 표정은 그전의 누구보다 개운해 보였다.


“무슨 얘기 했어요?”


내가 묻자 진아 선배는 의자에 앉아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시시껄렁한 얘기들.”


시시껄렁한 얘기가 어떤 얘기냐고 묻고 싶었지만 어차피 나도 겪을 일이기에 질문을 속으로 삼켰다.


내 차례는 약 2시간이 지나고 난 다음에야 왔다. 드디어 내 차례구나 하는 것보다 진아 선배 뒤로 2시간이나 지나서야 내 차례가 왔다는 것에 살짝 충격을 받았다. 바로 옆자리에서 나란히 일하며 친구처럼 얘기하지만 진아 선배와 내 직책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은 것이다. 공기가 갑자기 눈에 보이게 되면 비슷한 충격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나는 3 회의실에 들어갔다.


편집장님은 일전에 내게 기사 번역 일을 말했던 그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가 내게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어서 와요.”


몸을 묶고 있던 긴장이 저절로 풀리게 하는 푸근한 목소리였다. 나는 인사말로 안녕하세요와 실례합니다에서 고민하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걸로 결정했다. 직후 편집장님은 목소리를 내서 인사했는데 일개 사원이 고개만 끄덕이다니 너무 건방진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의자에 앉은 상태였다.


편집장님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어렵거나 거창한 거 말하려고 부른 건 아니니까 긴장 풀어요.”

“아, 예.”

“민지 씨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갑자기 바뀌면 어떨 거 같아요?”


어렵거나 거창한 게 아니라는 건 편집장님 입장에서였나 보나. 나에게는 너무나 어렵고 거창한 질문이라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건 시험인가? 아니면 단순히 궁금해서 묻는 것인가? 갑자기 바뀌는 일이란 무엇을 뜻하는 걸까?


혹시 승진인가? 나는 입꼬리에 슬쩍 미소가 감도는 걸 간신히 막아냈다. 기대는 금물이었다. 품고 있을 동안에는 행복하지만 기대와 다른 현실을 만나게 되면 그 간 느꼈던 행복 이상의 절망에 빠지게 된다. 나는 막 빛을 발하려는 기대감을 손으로 가리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을 했다.


“처음에는 불안하고 감을 잡지 못하겠지만 최대한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 같습니다.”

“음, 그렇군요.”


편집장님은 그렇게만 말하시더니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나는 무심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봤는데 편집장님은 앞에 있는 것이 아닌 저 멀리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그런 눈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편집장님의 시선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 나를 바라봤다.


“좋아요. 끝났습니다.”


나는 커다랗게 뜬 눈을 두어 번 깜박이고 말했다.


“면담이 이걸로 끝인가요?”

“네.”


편집장님이 일말의 뒤끝이 없는 상큼한 목소리로 말했기 때문에 나는 인사를 하고 3 회의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보다 앞서 면담을 한 사람들이 왜 그렇게 일찍 3 회의실을 나왔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 질문 하나로 면담을 끝내도 되는지, 도대체 무엇을 위한 면담이었는지 하는 새로운 물음이 생겨나 버렸다.


석연치 않은 기분을 안고 자리로 돌아오니 진아 선배가 내 쪽으로 의자를 돌리며 말했다.


“내 말대로 시시껄렁한 얘기였지?”


순식간에 내 머릿속에서 두 단계가 지나갔다. 처음에는 그 말에 동조하려다가 그래도 나름 뜻있는 말이었다고 말하려는 단계, 바로 직후에는 내용도 목적도 이해가 안 돼서 다시 동조하려는 단계. 두 입장이 쉬지 않고 치고받고 싸웠지만 세 번째 단계에 다다랐어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모르겠어요” 같은 책임 회피 발언을 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전쟁 같은 마감을 끝내고 갓 내린 커피를 마시며 지친 뇌에 카페인을 주입하고 있을 때였다. 평소라면 이번 달도 수고했다는 한마디와 함께 회식을 권유하던 편집장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바람이라도 쐬러 나가셨나 하고 생각할 때쯤에 지저분한 유리문이 열리며 편집장님이 들어왔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편집장님이 들어오고 바로 뒤에 웬 여성 분이 따라 들어왔다. 처음에는 부인분인가 생각했는데 상대적으로 젊고 또 까칠한 인상이어서 그 생각은 바로 접었다. 꼭 따지자면 채영 선배하고 비슷한 나잇대로 보였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중얼거리듯이 진아 선배에게 물었다.


“저 여자는 누굴까요?”

“누구?”


진아 선배가 의자를 돌려 여성 분을 봤으니 금방 추측성 대답이 나오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했던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아무 말이 없었다. 뭔가가 이상해서 고개를 돌렸더니 진아 선배는 평소와 전혀 다르게 입을 다물고 금방이라도 달려나가고 싶은 걸 꾹 참는 표정으로 여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 관심은 여자에게서 진아 선배의 반응으로 옮겨갔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도저히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자자, 다들 주목해주세요.”


편집장님이 손바닥을 부딪치며 편집부 인원들의 시선을 모았다. 평소에는 그저 목소리로만 사람들을 부르셨기에 가벼운 부딪힘은 생각 이상으로 효과가 뛰어났다. 편집부의 모든 인원이 시선을 모으자 편집장님이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말했다.


“몇몇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번에 작은 변화가 생기게 됐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편집장님 옆에 있던 여자가 미소를 지었다. 자기 딴에는 사람 좋은 미소라고 생각한 것 같지만 기본적인 인상이 까칠해서 그리 좋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그 인상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이번에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편집장님의 그 말에, 조용하던 편집부가 웅성거리는 말로 가득 채워졌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반사적으로 입에서 튀어나오는 “정말?” 하는 한마디를 막을 수 없었다. 다만 진아 선배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편집장님이 손을 들어 사람들을 조용히 시키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여기 있는 이해민 씨가 제 뒤를 이어 다음 달부터 우리 잡지의 편집장 자리를 맡게 되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해민 씨는 우리 경쟁잡지의 편집장으로 있었던 사람으로 그 능력에 대해 의심이 있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해민 씨입니다.”


조용한 박수 소리와 함께 이해민이라 불린 여자가 앞으로 한 발짝 나와 가볍게 목을 끄덕여 인사했다.


“이해민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좋게 말하면 기름기를 쫙 뺀 담백한 인사였고, 나쁘게 말하면 자기 할 말만 하는 건방진 인사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한 번 더 가벼운 박수를 쳤다. 사실 손을 부딪치는 시늉만 했지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편집장님이 저 여자로 바뀌었을 때 일어나는 변화를 머릿속으로 상상하다가 그만 뇌가 과부하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영혼 없는 행위란 분명 이런 것을 가리킨 말일 터였다.


편집장님은 이해민 씨와 함께 3 회의실로 들어가는 것을 끝으로 소개가 마무리되었다. 조용했던 편집부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하면 곳곳에서 의자 움직이는 소리와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무심하게 퇴근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뭉쳐서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무서운 얼굴로 굳어있는 진아 선배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고민했다.


“선배, 아쉽게도 오늘은 회식 없나 봐요.”


일부러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진아 선배의 반응은 없었다. 오히려 내 쪽이 무안해져서 후속타로 준비했던 농담은 꺼내지도 못하게 됐다. 이럴 때면 나는 왜 송아 같은 성격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송아였다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 텐데.


“민지야.”

“네.”


진아 선배답지 않은 무거운 목소리에 나는 기합이 바짝 들었다.


“나 어쩌면 빠른 시일 내에 회사 그만둘지도 모르겠다.”

“네?”


네 이외에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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