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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김민지 씨의 도도한 자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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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4.10.01 16:52
최근연재일 :
2014.12.10 09:00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20,099
추천수 :
137
글자수 :
169,110

작성
14.11.05 09:00
조회
480
추천
3
글자
8쪽

대학교 -6-

DUMMY

그 주 금요일, 나는 강의가 모두 끝난 뒤에 박 교수님을 찾아갔다. 먼저 노크를 한 뒤 안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리자 문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김민지인데요.”

“아, 민지 학생. 들어와.”


교수님은 사용하고 있던 노트북을 덮어 옆으로 밀면서 맞이해주셨다.


나는 저번처럼 균형이 안 맞는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지난번 사무보조 일에 대해 얘기하려고 왔습니다.”

“그럴 것 같았어. 그래서 대답은?”


나는 보이지 않게 숨을 고른 뒤 입을 열었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역시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제일인 것 같아요. 그 일은 못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미 ‘솔직하게 얘기’ 부분에서 짐작하신 건지 교수님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다만 대답이 빨리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모처럼의 제안을 거절당한 충격을 이해하며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문밖에 한 무리의 학생들이 지나간 다음에 교수님이 입을 여셨다.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나는 이번에도 솔직하게 나가기로 했다.


“제가 이곳에서 자취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요즘 저희 가족이 많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버는 돈 중 일부를 부모님께 보내야 합니다. 사무보조 일은 제가 같은 시간에 하고 있는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벌 수 있는 돈이 적습니다. 그래서 거절하게 되었습니다.”


친구에게 하는 말이었으면 신세 한탄이 섞여 우울한 목소리가 됐을 텐데, 교수님에게 하는 말이라 그런지 자연스럽게 리포트 발표하는 것처럼 감정 없는 딱딱한 목소리와 말투가 됐다.


그런데 예상외로 교수님은 이번에 한 말에 눈을 크게 뜨며 놀란 얼굴이 되어 말했다.


“낮에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단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만…….”

“허어.” 교수님을 고개를 뒤로 젖혔다가 자세를 바로잡으면서 “그럼 주간하고 야간하고 두 개나 하고 있었던 거네?”

“네.”

“장학금만으로는 부족한가?”

“상당히 부족합니다.”


교수님은 잠시 생각하다 닫았던 노트북을 열었다.


“나는 야간만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나저나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하면서 주야간 두 개의 아르바이트라……. 힘들지 않나?”

“처음에는 좀 힘들었는데 이제는 몸에 익어서 시간 관리가 되거든요.”

“대단하다. 정말 대단해.”


학생들 사이에서 깐깐하기로 소문난 교수님의 진심을 담은 감탄에 나는 부끄러우면서도 내심 뿌듯했다.


교수님이 노트북을 다시 닫으며 말했다.


“그럼 얘기 끝인가?”

“네. 아마도…….”

“알았어. 나중에라도 사무보조 일이 필요해지면 얘기해.”

“그때까지 일이 남아있을까요?”

“그때가 돼봐야 알겠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교수실을 나왔다. 아무리 이유가 있다 해도 거절하는 일은 체질에 맞지 않았다. 그래도 이 며칠 동안 속으로 끙끙대던 것이 사라져서 기분은 홀가분했다.






그 뒤 별다른 사건 없이 일하며 학교를 다니는 평범한 나날이 이어졌다. 그리고 기말고사가 시작됐다. 시험기간 동안 월차까지 내면서 대비한 덕분에 평소처럼 시험에 임할 수 있었다. 기말고사가 끝난 날, 1학기가 끝났다는 생각에 속에서 뭉쳐있던 숨을 뱉어낼 수 있었다.


느낌이 좋았다. 성적표가 날아올 때까지 기다려봐야 알겠지만 중간고사 때처럼 좋은 성적이 나오리란 확신이 들었다.

내가 성적에 대해 안심하고 있는 동안 학과 내 다른 사람들은 방학에 대한 기쁨으로 떠들썩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들뜬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송아였다. 한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뭔가를 물어 기록하고 다녔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그 질문은 나에게도 떨어졌다.


“민지야, MT 갈 거지?”


당연히 갈 거란 전제를 깐 질문에 나는 입을 다물고 약 10초 동안 송아를 빤히 바라봤다. 마냥 웃고 있던 송아가 땀이 삐질삐질 흘리기 시작했다. 이쯤이면 적당히 벌이 됐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내가 언제 MT간적 있니?”

“그래도 3학년 1학기인데 한 번 정도는 가면 안 돼? 2학기부터는 취업 준비하느라 가고 싶어도 못 가잖아.”

“나는 1학년 1학기부터 취업 준비 상태였어요. 아가씨.”


단호하게 거절하는 내 말에 송아는 삐친 표정으로 스마트폰에 뭔가를 입력했다. 호기심이 일어 자리에서 일어나 스마트폰을 같이 들여다봤다. 간단한 메모 프로그램에 MT참가자와 불참가자가 적혀있었다.


“우리 과는 거의 다 가네?”

“여름이잖아. 바닷가 정도는 가줘야지.”


속 편하게 놀러 다닐 수도 있고 참 좋겠다고 생각하던 나는 불참가자 항목에 적힌 이름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


“이게 뭐야. 안 가는 건 나하고 이재명 선배뿐이야?”

“아직 안 물어본 애들도 있지만 일단은 그래. 선천적인 아웃사이더 남자와 일부러 아웃사이더가 되려는 여자라. 궁합이 척척이네. 이참에 사귀어보는 건 어때?”

“농담이 지나치다.”

“아니, 진심인데.”


내가 주먹을 들어 위협하자 송아는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 강의실 한쪽에서 수다를 떨고 있던 여학생 무리로 피신했다. 여학생들은 MT 얘기를 듣더니 요란하게 소리를 지르며 자기들도 간다고 난리였다.


나는 송아가 일을 끝내길 기다리면서 강의실을 둘러봤다. 시험이 끝난 강의실은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지며 급격히 황폐해지고 있었다. 남아있는 사람 중에 이재명 선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시험이 끝나자마자 누구보다 빠르게 강의실을 빠져나갔으리라.


“다 됐다. 민지야 가자.”


학과 내 모든 학생들의 의향을 확인한 송아가 내 팔을 잡아끌었다.






대부분 학생은 근처 상점가의 식당을 찾은 터라 학생 식당은 굉장히 한산했다. 나는 순두부국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학생 식당은 학기 마지막 날까지 맛없지는 않지만 굳이 사 먹고 싶지는 않은 맛을 자랑했다.


“여기는 10년이 지나도 맛이 개선되지 않을 것 같아.”


송아는 불평 섞인 목소리로 돈가스 조각에 갈색 소스를 듬뿍 묻혀 먹었다. 아무래도 고기 냄새가 심하게 나는 모양이었다.


나는 입안의 음식을 삼키고 가볍게 웃었다.


“싼 게 비지떡이란 속담은 사실이니까.”


입술을 불만스럽게 내밀고 있던 송아는 식사 내내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살펴보다 말했다.


“어라, 또 누가 자살했네.”


자살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마음이 강풍에 맞은 것처럼 흔들렸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며 태연하게 물었다.


“이번엔 누구야?”

“나도 처음 보는 사람이야. 배우인데, 오랫동안 무명이었나 봐.”


송아는 휴대폰을 돌려 화면을 보여줬다. 나는 기사를 빠르게 읽어 내렸다.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로, 경찰 측이 밝힌 사인은 수면제 과다복용이었다. 수면제 과다복용. 혹시 잘못 읽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몇 번이나 그 부분을 다시 읽었다.


나는 시선을 송아에게 옮기며 말했다.


“수면제로 사람이 죽나?”

“죽지 않나? 솔직히 그 많은 약을 한꺼번에 먹으면 목이 막힐 만도 하지.”


중학교 1학년의 그 밤에, 나는 많은 알약을 여러 번 나눠서 먹었다. 한꺼번에 먹지 않아 죽지 않은 걸까? 아니면 보통은 막히는데 내 소화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강해서 짧은 시간에 그 많은 알약을 소화해 버렸나?


“질식이라…….”

“아, 여기에는 약물 중독 어쩌구도 있다. 그런데 수면제도 중독이 되나?”

“잠깐만 줘봐.”


나는 송아에게서 휴대폰을 받아 약물 중독에 의한 기사를 넘기고 수면제 중독을 검색했다. 답은 빠르게 나왔다. 수면제 중독으로 인한 죽음은 급성중독에 의한 것이며 급성중독은 대량복용에 의해 생긴다고 적혀있었다. 머리가 아팠다. 중학교 때 내가 먹었던 양이 몇 알이었더라? 50알 근처 아니었나? 그런데 어떻게 나는 산 걸까. 내게 일어났던 일이라곤 다음 날 아침 있었던 복통뿐이었다.


약효가 약했던 걸까? 나는 원인을 생각하려다 그만뒀다. 어찌 됐든 그건 예전의 일이었고 지금은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도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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